올해 일본은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3년 연속으로 노벨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 셈이다. 200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게 전부인 우리나라와 다른일본의 수상 비결은 무엇일까.
올해 노벨 화학상 공동수상자가 된 일본 교토시 시마즈제작소의 연구주임 다나카 코이치(44). 10월 9일 일본의 샐러리맨 기술자가 세계의 정점에 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모든 일본인들은 환호했다.
“일본도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59년생인 그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동창생 한명이 친구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 한 말이다.
거품, 부실 채권, 경기 침체, 불황, 주식 시세 하락 등 온갖 부정적인 말이 일본 사회에 춤추는 속에서도 착실히 뿌리를 뻗고 든든하게 일본을 받쳐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일본 기초과학연구의 막강한 수준과 힘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준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념과 첨단기술, 투자의 3박자
유카와 히데키가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자의 존재를 예언한 업적으로 일본인 최초의 노벨상인 물리학상을 받은 것이 1949년. 이후 올해까지 노벨상을 받은 일본인은 12명이다. 분야별로 보면 화학과 물리학 분야에서 각각 4명으로 가장 많고 문학 분야에서 2명, 평화 분야에서 1명, 생리·의학 분야에서 1명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단 1명인, 그것도 과학기술 분야나 문학 분야가 아니라 ‘정치적’인 분야로 볼 수 있는 평화 분야에서만 수상자를 배출한 한국 측에서 보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학분야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의 국적을 보면 지금까지 총 27개국에 이른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8명으로 단연 선두. 뒤를 이어 중국이 2명의 수상자를 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각각 1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인도는 1930년 노벨 물리학상을, 파키스탄은 1979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아 잠재력이 있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일본이 올해만 노벨 화학상과 물리학상을 동시에 수상하고 3년 연속으로 노벨상, 특히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일은 일본 과학계가 갖고 있는 강력한 힘의 실체를 보여준 것이다. 싫든 좋든 한국과의 엄청난 격차를 인정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일본 과학계가 가진 강력한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도쿄대 명예교수인 고시바 마사토시(76)의 경우를 보자. 이번 수상은 고시바 교수의 개인적 업적을 뛰어넘어 연구자의 신념과 기업의 첨단기술, 정부의 투자 등이 함께 어우러진 산관학(産官學) 협력의 결정체로 평가되고 있다. 1983년 기후현에 태양중성미자 관측장비를 설치하는데 당시로는 파격적인 금액인 5억엔(약 50억원)이 들어갔다. 추가로 건설한 관측소에도 1백억엔(약 1천억원)이 넘게 들었다. 하지만 고시바 교수가 세계첨단이 될 수 있다고 설득하자 문부성이 선뜻 지원했다고 한다. 핵심장비 제작에 난색을 표하던 기업도 시행착오 끝에 세계 최첨단의 설비를 만들어냈다.
지난해 일본은 과학기술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5년간 24조엔(약 2백40조원)을 투자해 앞으로 50년간 노벨상 수상자 30명을 배출하겠다고 야심차게 선언했다. 발표 당시 일본정부가 너무 앞서 나간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 이같은 계획을 비웃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거품경제에도 늘어나는 기업의 연구개발비
일본의 힘은 뭐니뭐니해도 실용성을 추구하는 정신에 있다. 때문에 우수한 이과 계통 인재가 대학보다 대기업에 몰리고 있다. 이는 대학이란 ‘간판’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일본 문화의 특징을 반영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한발 더 나아가 최근에는 대기업을 떠나 좀더 좋은 연구환경을 찾아 벤처기업으로 이동하는 사람도 많다. 이 역시 또 다른 측면에서는 대기업이란 ‘간판’보다 실리를 추구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사실 일본의 혼다나 마쓰시다도 처음에는 기술 하나만 믿고 벤처기업으로 출범했다.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기술의 상당수는 기업의 연구로부터 태어난다. 예를 들면 나일론이 그랬다. 미국 듀퐁사의 연구자가 1939년 석탄과 물과 공기를 이용해 아름답고 강한 새로운 섬유를 합성해냈다. 바로 나일론이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듀퐁사는 나일론으로 막대한 돈도 벌어들였다.
일본에서도 각 기업은 연구소를 설립했다. 나일론과 같은 엄청난 금맥을 찾으려 한 것이다. 우수한 이과 계통 대학생을 스카웃하려는 경쟁도 치열해졌다. 그 결과 반도체 개발 등을 통해 세계 첨단산업계를 리드하다시피 했다. 물론 거품경기가 꺼지면서 한때 아낌없이 펑펑 쓰는 것처럼 보였던 연구비는 줄었지만 아직도 대단한 규모다.
신소재인 탄소나노튜브를 2001년에 발견해내는 등 세계 첨단을 달리고 있는 일본전기(NEC)의 예를 들어보자.
2001년도 연구개발비는 약 3천6백억엔(약 3조6천억원). 거품이 한창이라고 하던 1991년보다 오히려 4백억엔이나 늘어났다. 연구원은 전년도 1천6백명 가운데 2백50명을 연구부문에서 사업부문으로 돌렸기 때문에 한사람 당 연구비는 더욱 늘어난 셈이다.
물론 연구테마에 대한 회사의 ‘간섭’은 심해졌다. 회사측은 초경쟁시대에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선택과 집중’을 실천하기 위해 연구 주제의 30% 정도만 연구자가 희망하는 분야에 배정하고, 나머지는 경영진이 선택한 10가지 테마에 연구인력과 자금을 집중투자하고 있다.
또한 기초 연구를 국가가 아닌 민간기업이 주도해온 것이 일본의 전통이다. 이같은 전통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먼저 일본의 자연과학 분야에서 국가 전체 연구개발비를 살펴보자. 2000년도(2000년 4월-2001년 3월)의 경우 약 14조9천8백86억엔(약 1백50조원)이다. 이는 한 나라의 연구투자 수준을 재는 잣대인 GDP(국내총생산) 대비 비율로 따져보면 2.92%에 해당한다. 일본은 1992년 이후 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에 있어서 세계 1위 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다. 일본의 전체 과학기술 투자는 한국의 7-8배 가량 된다.
특이한 것은 일본의 국가 전체 연구개발비 가운데 79%가 민간기업 자금이란 점이다. 미국은 민간기업 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72%, 독일은 64%다. 일본 민간기업의 기술개발에 대한 열의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일본 기업은 제품개발에 당장 필요한 응용기술 분야에만 투자하지는 않는다. 기초기술 분야로만 한정해도 민간기업의 연구자금이 국가 전체의 기초기술 분야 투자액의 36%를 담당하고 있다. 최근 일본이 10년에 걸친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연구투자환경이 악화되고 있다고는 해도 세계 최고의 연구투자 수준을 지키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기업들이 ‘기초보다는 응용’을 위주로 연구개발비를 투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저비용 고효율이 가능한 이유
그러나 일본의 경우를 보면 유연한 발상과 모험심을 가진 연구자의 정신 자세야말로 연구에 있어서 가장 큰 밑천임을 보여준다.
“그렇군요. 시약과 유리 기구…. 합계가 2만엔(20만원)이 안되는군요.”
세계 최초로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 전도성 폴리머를 발견한 업적으로 2000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쓰쿠바대의 명예교수인 시라카와 히데키의 말이다. 시라카와 교수는 2000년 가을 노벨상 수상이 결정됐을 무렵, 발견 당시인 1967년에 소요된 비용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그의 대답은 ‘돈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만 하고 있던 일본의 연구자 사이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시라카와 교수는 연구인으로서 오랜 생활을 해오면서 자금을 어디에서 얼마나 얻었는지를 충실히 기록해왔다. 이는 ‘정부에서 주는 돈이지만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세금이 모아진 중요한 돈인 만큼 한푼도 함부로 쓰지 않겠다’는 자세에서 비롯됐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1967년부터 2001년까지 34년간 받은 연구비는 총 2억2천만엔이었다. 연평균 6백45만엔(약 6천4백50만원)이었던 셈이다.
“결코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구를 하는데 곤란했던 기억은 없다.”
일본의 경우 화학분야에서 1년에 쏟아 붓는 돈만 2억엔(약 20억원)짜리 연구프로젝트가 있는 터라 시라카와 교수의 업적은 ‘저비용 고효율’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일본인 연구자들의 진지한 자세는 이어지고 있다. 걸핏하면 예산 타령만 하고, 연구비를 탄 다음에도 자신을 채찍질하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 연구자가 많은 한국에 귀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히로시마대 총장의 네평짜리 연구소
노벨상을 탄 경우는 아니지만 일본 연구자의 정신자세를 보여주는 또다른 예를 살펴보자. 히로시마대의 전 총장인 하라다 야스오(69)는 여태 의문에 쌓여 있던 비둘기의 귀소본능에 대한 열쇠를 푸는 발견을 2000년에 해냈다. 그는 연구 결과 내이(內耳)의 특정 부분으로 지구자기를 파악해 날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하라다의 연구실은 히로시마시내 자택 한 모퉁이에 있다. 히로시마대 총장으로 취임한 1993년 봄, 그는 그동안 모친이 사용하던 네평 남짓한 부엌에 소년시대부터 소중히 간직해온 현미경과 작업대, 실험기구를 들여놓았다. 총장이 되면서 규정상 학내에 따로 연구실을 가질 수 없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만든 연구실이었다. 그만큼 연구를 계속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회유본능이 있는 물고기 연구부터 시작했다. 자택 앞에 있는 생선점에서 손님들이 잘라달라고 해 버려진 물고기 머리를 얻어다 해부했다. 꺼낸 조직은 사진 필름통이나 잼을 넣었던 빈 병에 보존했다. 비둘기를 사용한 실험도 했다. 이때는 연구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갔다. 마을의 ‘비둘기 애호회’가 기르던 30마리를 연구에 사용하도록 제공받았으며, 그는 이에 대한 답례로 50만엔(약 5백만원)을 지급했던 것이다.
시립병원의 사업 관리부문 책임자로 전직한 현재에도 하라다는 평소에는 현 직책을 충실히 하고 있지만,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골프장이 아닌 연구실로 직행한다. 동물의 신비를 쫓는 학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다.
연구를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할 수 없다는 말은 믿지 않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호기심, 그리고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기술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거액을 투자해야 한다는 말만 무성한 한국의 학계는 ‘꿈과 호기심’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그의 말조차 꿈 같은 이야기로 치부하고 말 것인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뒤 다나카 고이치 연구주임은 회사측이 이사대우로 승진시키려하자“하고싶은 연구를 할수 있으면 족하다”며 거절했다. 회사측은 그의 의사를 존중해 연구소를 차려 주기로 했다. 세상에서 쏟아지는 환호와 박수에 한눈을 팔지않고 연구자 본연의 자세를 지키고 있는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