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생활 곳곳에 펼쳐질 변화의 조짐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 삶의 터전인 주거 분야는 어떨까. 가정 내 네트워크 통신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고 생체인식, 스마트유리, 연료전지 기술까지 한자리에 구현될 2010년의 주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3살 난 예쁜 딸아이를 둔 결혼 5년 차 주부 이첨단씨는 조만간 집을 마련할 계획이다. 최근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업무와 가사, 그리고 여가까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주택이면 좋을 듯하다. 요즘 유행하는 맞춤주택은 어떨까.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에 어울리도록 직접 설계할 수 있는 맞춤주택이 유행하면서 주택 문화가 상당 부분 바뀌고 있다는데….
이씨는 사용자가 설계해서 완성된 내 집을 직접 보고 견적까지 뽑을 수 있다는 맞춤주택 모델하우스를 찾았다. 모델하우스 한쪽에 자리잡은 맞춤주택 시스템 룸에 들어서자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눈에 띈다. 시스템을 켜니 디스플레이에 결혼한 해와 부부의 나이, 아이의 수, 자동차 소유유무 등 기본적인 사항부터 업무의 종류, 좋아하는 색깔과 각 방의 형태, 창문의 모양 등 세세한 부분까지 묻는 질문이 단계별로 떠오른다. 전체 20단계의 질문에 상세하게 답한 뒤 머리에 HMD를 끼고 손에 데이터 글러브를 낀 이씨. 화면 속의 완성된 집으로 들어가 방문을 직접 열어보고 벽지도 만져보는 주택 가상현실 시스템을 체험한다.
이씨의 집을 둘러보자. 현관 출입문의 정맥인증 시스템에 손등을 대면 문이 열리고 에어 워시가 자동으로 작동하면서 옷에 붙은 오염물질을 깨끗이 씻어준다. 베란다와 주방의 창문엔 스마트유리가 설치돼 있어 투명도를 조절함은 물론, 계절에 따라 유리의 배경을 바꿀 수 있다. 온도, 습도, 조명의 자동조절기와 공기정화 시스템이 집 전체에 설치돼 쾌적한 주거 공간을 자랑한다. 가정 내 온수와 전기는 환경 친화적 에너지원인 연료전지 탱크가 담당한다.
가전제품은 음성인식 기능과 무선통신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어 말만 하면 작동한다. 의자와 침대 곳곳에 설치된 센서는 가까운 병원에 이씨 가족의 건강상태를 원격으로 전송한다. 이씨는 작은 사회와 다름없는 맞춤주택에 만족을 느끼며 계약서를 작성한다.
2010년 미리 내다본 미래 주택에 대한 시나리오다. “미래에는 가정이 경제활동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전망처럼 재택근무, 원격교육, 원격진료까지 해낼 수 있는 첨단주택이 점차 우리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눈으로 현관문 연다
2010년 미래의 주택에서 만나볼 수 있는 첫번째 신기술은 현관문에 설치된 생체인식 시스템이다. 현관 앞에 생체인식 시스템이 장착되면 인체를 활용해 출입문을 편리하게 열 수 있다. 보안이 그 어떤 자물쇠보다 철저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생체인식협의회의 관계자는 “국내 생체인식시장 규모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해마다 1백%가 넘는 성장률을 보였으며,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3백% 이상 급성장 했다”면서 “생체인식 시스템이 공공기관이나 주요 정보기관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터전인 주택의 자물쇠를 빠른 속도로 대체해 2010년경에는 거의 모든 주택의 현관 출입문이 생체인식 시스템 인증을 거쳐야 열릴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는 사용자가 빛을 내는 기계에 손가락을 대면 지문의 선과 골이 서로 다른 각도로 반사되는 원리를 이용한 지문인식 시스템이 가장 각광받고 있지만, 얼굴, 음성, 홍채, 정맥인식 등도 점차 실용화되고 있다. 한 예로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정맥인식 시스템’이 고급 빌라를 중심으로 설치되고 있다. 정맥인식 시스템은 인증장치 아래 손등을 갖다대면 적외선 카메라가 손등의 정맥 모양을 찍어 본인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를 개발한 넥스턴의 황창훈 이사는 “최근 정보보안이 중요한 정부부처는 물론, 고급형 빌라와 대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정의 현관 출입문에도 정맥인식 시스템이 보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채인식 기술개발 업체들도 이에 뒤질세라 발벗고 나섰다. 세넥스테크놀로지는 최근 동방그린종합건설, 경원코퍼레이션 등 고급 빌라를 짓는 건설업체들과 계약을 맺고 자사의 홍채인식 시스템인 ‘트루아이’를 가구별 출입문 통제장치로 공급키로 했다. 이 장치가 출입문에 달려있으면 눈으로 아파트 문을 여는 셈이다.
액센트와 억양, 문맥까지 인식
미래 주택에서 볼 수 있는 또하나의 첨단 기능으로 음성인식 기술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방영되는 TV 프로그램에서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해 ‘문 열어’ ‘창문 닫아’ 등의 명령어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집안에 장착해 음성인식 기술의 주택에 응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세계 최대의 컴퓨터업체인 미국 IBM은 올해부터 20개국의 언어를 자동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고성능 음성인식 기계를 개발하는 ‘슈퍼휴먼 음성인식’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오는 2010년 말까지 진행될 예정인 이 프로젝트에는 거액의 개발비는 물론, IBM에 소속된 1백여명의 음성인식 관련 전문연구원 중 20여명이 투입됐다. IBM의 기술 매니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될 음성인식 기계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억양, 액센트, 그리고 문맥까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IBM의 목표대로 2010년까지 고성능 음성인식 기계가 탄생한다면 문이나 창을 닫는 단순한 명령어뿐만 아니라 가정에 있는 각종 시스템의 복잡한 기능도 말로 작동할 수 있는 편리함을 맛볼 것이다.
국내에서도 음성인식 기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미국 음성기술 솔루션업체인 스피치웍스의 주제로 열린 음성인식 기술 포럼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KAIST의 이수영 교수는 2010년 만들어질 곰인형은 사용자의 말을 알아듣고 말할 것이라는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현재 세계의 음성인식 시장은 이미 안정적인 태동기로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다만 잡음처리와 자연어처리 기술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응용할 것인지가 숙제로 남아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기본적인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음성인식 기술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각 기관과의 협력체계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절약 환경친화는 기본
2010년의 주택 창은 스마트유리가 담당할 전망이다. 스마트유리는 색깔이 자동으로 바뀌거나 햇빛 중 열을 내는 빛만 차단하는 등 빛의 투과도나 반사율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갖는 유리를 말한다. 스마트유리에는 유리와 유리 사이에 두장의 얇은 필름이 들어있는데, 이 속에 전기로 배열을 조절할 수 있는 극미세 광편광입자가 들어있다. 전기가 없을 때는 자유롭게 브라운운동을 하고 전기를 가할 경우 입자가 규칙적으로 움직여 빛이 통과할 수 있는 투명한 상태로 전환된다. 예를 들어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조절하고 싶을 경우 전기 스위치를 누르면 유리 색깔이 변하면서 빛이 조절된다.
스마트유리를 개발하는 업체인 SPDI의 유병석 이사는 “일반 유리의 빛 투과율은 40-80%인데 비해 스마트유리를 어둡게 조절할 경우 빛 투과율은 1-30%까지 낮아질 수 있다”면서 “스마트유리를 쓸 경우 커튼 없이도 빛의 양을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으므로 햇빛이 강한 날 커튼을 친 후 어두워진 내부를 밝히기 위해 대낮에 조명을 켜야 하는 등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기능성유리가 대형화하고 값이 내리면 빠르면 4-5년 뒤 스마트유리가 대중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래 주택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열과 전기를 지금의 보일러 시스템과 확연히 다른 방식인 연료전지를 통해 얻어낸다는 점이다. 연료전지는 수소와 산소의 전기화학반응으로 전기와 물, 그리고 열을 얻는 발전방식으로, 기존의 발전 방식이 고온·고압의 가스나 증기로 터빈을 돌리는 것과는 달리 전기를 직접 발생시킨다. 연료로 사용되는 수소는 천연가스나 메탄올 등을 변환해 얻어지며, 산소는 공기를 그대로 이용한다. 연료전지를 이용한 발전은 에너지효율이 화력발전에 비해 두배 가량 높고, 소음이나 진동은 물론 질소, 아황산가스 등 환경오염물질도 배출하지 않는다.
한국에너지연구원의 양태현 박사는 “연료전지 중 고분자 연료전지는 다른 연료전지에 비해 저온 운전과 소형화가 용이하므로 주택이나 건물의 분산형 전원, 노트북 컴퓨터와 같은 이동 전자 기기 전원으로서의 실용화 가능성이 높다”면서 “지난 2000년 6%였던 고분자 연료전지 시장 점유율이 2008년이 되면 이보다 7배가 늘어난 40%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2010년경에는 연료전지를 사용해 자가 발전과 온수 공급을 하는 주택이 일반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한 주택이 증가할수록 독신 세대와 실버 세대가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족의 해체를 오히려 부채질 하는 셈이다. 인간화된 과학기술이 절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