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크기의 로봇, 손목에 부착하는 컴퓨터, 그리고 칩 속의 화학공장까지 최신 기술이 반영된 갖가지 초소형 첨단 기계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기반이 되는 MEMS는 어떤 기술이며, 어떤 연구를 하는 분야일까.
S여고 3학년 보람이는 얼마 전부터 소화 불량과 속쓰림에 시달리고 있다. 불규칙한 식사와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잠을 못이룰 정도로 위장 장애가 심각하다. 걱정은 되지만 병원을 찾긴 싫다. 위 내시경 진찰을 할까봐 두렵기 때문. 위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명목으로 관찰용 내시경 기계를 입을 통해 몸 속까지 삽입했던 지난 경험을 생각하면 갑자기 매스꺼움이 밀려온다. 그 경험을 다시 하자니 차라리 속쓰림을 참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환자가 아프거나 역겹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위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단순한 축소와 다르다
이런 꿈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MEMS’ 기술이다. 고통을 주지 않고 인체의 혈관을 누비고 다니면서 현재의 내시경 역할을 대신할 캡슐형 내시경 로봇,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각종 마이크로 머신. SF 영화와 소설에서나 등장할 것 같았던 요소들이 최첨단 신기술의 한분야로 정착되고 있다.
MEMS는 Micro Electro-Mechanical System의 약자로, 수 mm에서 수 ㎛(마이크로미터, 1㎛=${10}^{-6}$m)에 이르는 초소형 시스템이나 초소형 기계를 뜻한다. 즉 초소형 기계 분야는 극저온, 극고온, 초고진공 등과 같이 일종의 극한을 추구하는 기술로, 매우 작은 마이크로 기계를 만들어 각종 작업에 활용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나 청소기 등 각종 가정용 가전 제품이나 산업용 기기, 연구 장비 등의 일부 또는 전체를 소형화해서 기존 기기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미세 시스템을 제작한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기존의 기계를 단순히 축소한다고 해서 마이크로 기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MEMS 기술로 만들어진 기계는 뇌와 신경에 해당하는 논리회로, 시각 또는 청각 등을 담당할 각종 센서, 팔과 다리 역할을 할 기계 장치, 그리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구동기까지 완벽하게 갖춘, 생각하면서 운동하는 하나의 통합 시스템이라야 한다.
사과와 먼지 처리 방식의 차이
따라서 MEMS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기존 기계의 운동 방식을 공부한다기보다 마이크론 정도의 크기에서 움직이는 기계의 효율적인 운동 방식을 공부해야 한다.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MEMS 연구실의 박사 과정에 재학중인 이광철씨는 “초소형 기계의 설계를 위해서는 마이크론 크기에서의 물리적인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수학과 물리학, 그리고 마이크론 크기의 기계 구조물을 설계, 분석할 수 있는 역학 등의 분야에 흥미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MEMS 분야에서는 물리학이나 수학 외에도 생물학, 화학 등의 배경 지식을 갖는 것이 다른 어떤 분야보다 유리하다. 가령 혈관 내부를 움직이면서 인체를 진단하는 캡슐형 내시경 로봇을 만들 경우 기존 로봇의 운동 방식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아메바와 같은 생물의 운동 방식이나 식물이 양분을 땅으로부터 뽑아 올리는 방식, 그리고 독수리와 모기의 나는 방식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등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MEMS는 기계나 부품의 크기가 기존 기계에 비해 수 마이크론 정도로 매우 작으므로, 이런 크기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중력이나 관성력과 같이 물체의 체적에 비례하는 힘보다는 정전기력이나 표면장력과 같이 물체의 표면적에 비례하는 힘에 의한 영향이 커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과는 바닥에 떨어지지만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는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사과를 정리하는 방식과 먼지를 제거하는 방식은 다르다. 사과는 하나하나 집는 집게를 만들어 자동으로 정리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지만, 먼지는 그 수가 적다 하더라도 집게를 이용해 제거하기는 어렵다.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MEMS 연구실의 학생들은 “MEMS 연구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초소형 기계가 갖는 새로운 운동 방식을 설계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물체에서는 어떤 것들이 실패의 원인인지 유추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MEMS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계 가공 기술과 달리 반도체 기술 또는 초소형 가공 기술을 이용하므로 가공 재료의 특성과 가공 기술에 대해 연구하는 재료 분야의 지식도 매우 중요하다.
이 밖에 MEMS 연구실에서는 가공과 성형 등 많은 실험을 해야 하므로 기본적으로 실험이나 실습을 좋아하는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전문적이고도 수준 높은 내용을 집중해서 연구해야 하기 때문에 수식이나 계산이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칩 위에서 움직이는 3차원 구조물
MEMS 기술은 IT 혁명의 주역인 반도체 기술에서 파생했다. 작고 좁은 면적에 수많은 전기회로를 2차원으로 집적화한 반도체칩은 정보통신 혁명을 불러일으킨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MEMS는 반도체칩의 제조 공정과 유사한 방식으로 각종 전자와 기계 소자들을 칩 위에 모은다는 개념이다.
단지 반도체칩처럼 많은 회로를 좁은 면적에 2차원적으로 얇게 집적하는 공정 방식을 택한 것이 아니라 3차원적으로 공간을 마련해 회로를 배열한다는 점이 다르다. 즉 실리콘 기판 위 중간에 빈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공정 과정에서 사라지는 다른층(희생박막층)을 씌우고, 그 위에 층을 만들어 원하는 모양을 낸 후 희생층을 없애면 중간 부분이 텅 빈 3차원 구조물이 만들어진다는 개념이다.
포항공대 MEMS 연구실에서는 MEMS 가공 기술로 기존의 반도체 기술 외에 ‘리가 기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리가 기술은 1980년대 독일의 칼수루헤 연구소에서 제안한 것으로, 자외선을 이용해 감광층을 화학적으로 변화시키는 반도체 기술과 달리 X선을 이용해 구조물을 제작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즉 리가 기술은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오는 X선의 우수한 직진성과 잘 휘어지는 성질을 이용하기 때문에 반도체 기술을 이용할 때보다 구조물의 표면의 거칠기를 줄일 수 있고, 깊이가 깊은 구조물도 효과적으로 제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MEMS 기술을 이용하면 기존 센서나 구동 기기의 크기를 줄일 수 있으며, 가격을 낮출 수 있으므로 다중 배치가 가능하다.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권태헌 교수는 MEMS 기술의 활용도에 대해 “예를 들어 가로×세로 1cm의 크기 안에 대기 오염, 온도, 풍속, 압력 등을 파악하는 센서를 배치함으로써 환경 오염도를 측정하고 실내 온도를 유지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용·분석용 기기 각광
실제로 MEMS 기술은 우리 주변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 혈압 또는 자동차의 무게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압력 센서, 음주 등을 측정할 수 있는 가스 센서, 자동차의 에어백에 사용되는 가속도 센서, 캠코더의 손떨림을 인식해 보정하는 각속도 센서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MEMS 기술을 이용한 센서는 기존 센서에 비해 성능은 우수하면서도 크기가 매우 작으므로 작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드는데 유리하다.
향후 가장 각광받을 분야로는 의료용 또는 분석용 기기가 손꼽힌다. 환자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거나 적절한 약물을 투여해야 할 경우 MEMS 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의료 기기를 사용하면 낮은 비용으로도 효율적인 진단이 가능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용 캡슐, 의료 분석용 기기, 휴대용 자가진단 장치, 휴대용 정보처리 장치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MEMS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에 진학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MEMS 분야를 연구하는 대학은 포항공대를 비롯, 서울대, KAIST, 아주대, 경북대, 고려대, 서강대, 단국대 등이다.
권교수는“MEMS 분야도 최근 부각되고 있는 학문의 성격상 다학제 간 통합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분야이므로, 연구실의 석·박사 과정을 지원한 학생들의 학부 전공은 기계공학과, 전자전기공학과, 재료공학과, 의용공학과 등 다양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기초 지식을 언급하면 마이크론 정도의 기계 구조물을 설계, 분석할 수 있는 고체역학과 유체역학, 미세 기계의 진동에 대한 연구를 하는 기계진동, 그리고 제어에 대해 다루는 자동제어 등 기계공학과의 과목과 MEMS 공정 기술의 모태가 된 반도체의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 알 수 있는 반도체공학, 회로의 일반 이론과 공정 원리에 대해 배우는 전자회로이론, 그리고 집적회로제조공정 등 전자공학과에서 다루는 기초 과목에 대해 제반 지식을 갖추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