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따갑다, 목과 어깨가 뻐근하다, 손목과 손가락이 저리다. 만일 당신이 이 중 한가지 증상이라도 느끼고 있다면 VDT 증후군이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영상매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현대인. 디지털 시대에 길들여져야 하는 우리의 신체는 안전할까.
회사원 김씨(34세)는 요즘 눈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야가 침침하고 흐릿하게 느껴지는 증세가 심해졌다 싶더니 며칠 전부터는 한곳을 조금이라도 집중해서 보면 눈이 쉽게 피로하고 충혈되기 때문이다. 합병증처럼 두통이 찾아오고 심지어는 색깔을 구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고 자가진단한 김씨. 황금 같은 주말을 내내 숙면과 영양식사에 투자했건만, 좀처럼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 병원을 찾은 그가 의사로부터 들은 병명은 VDT 증후군. 김씨를 진찰한 안과 의사는 최근 심한 두통과 함께 시력 저하 등 각종 눈 질환을 호소하는 환자가 부쩍 늘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컴퓨터 모니터로 인한 신체의 통증이나 이상을 호소하는 VDT 증후군 환자라고 설명했다. 모니터를 자주 보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증세를 경험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서너 시간 동안 똑같은 자세로 꼼짝하지 않고 한 곳만 집중해서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떤 이는 지루해서, 또 어떤 이는 피곤해서 금새 포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의 생활 패턴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이런 자세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뉴스를 검색하기 위해, 또는 게임을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은 나를 바라보자.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자세, 경직된 몸짓으로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지 않은가. 마치 움직이지 말라는 컴퓨터의 명령에 절대 복종이라도 해야 한다는 듯.
미국 직업성 환자의 60% 이상 차지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각종 질병이다. 장시간 동안 앉아서 근무하는 사람들, 특히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는 눈이 부시고 침침해지는 안구 피로증과 같은 눈의 피로는 물론 손과 팔목이 저리고 아픈 증세, 목이나 어깨가 뻐근한 증세, 여기에 각종 스트레스성 질환까지 쌓여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증세를 총체적으로 일컫는 VDT 증후군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증후군이란 말 그대로 ‘증상과 징후의 집단’이라는 뜻이다. 당뇨병이나 백혈병처럼 특정 증상이 어떤 질병을 명확하게 드러낼 경우를 ‘질병’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공통적인 병적 증상은 있지만 명확한 증세가 없고, 여러 증상 중 하나만 나타나거나 다양하게 나타나는 등의 복합적인 형태를 보일 때 ‘증후군’이라는 표현을 쓴다.
VDT 증후군(Video Display Terminals syndrome) 은 컴퓨터 모니터와 같은 디스플레이 장치와 주변 장치를 이용한 작업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증상을 통칭한다. 미국의 경우 1990년대 초반부터 VDT 증후군을 호소하는 환자가 늘기 시작해 1990년대 말엔 직업성 환자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흔한 질환이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1990년대 중반 전화국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던 여성교환원이 VDT 증후군에 대해 집단으로 산재보상을 청구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VDT 증후군의 대표적인 증상은 눈의 피로다. 눈이 무겁고 아프거나 시리면서 심한 피로가 느껴지는가 하면 물체가 흐릿하게 보인다거나 가까운 물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경우, 심지어 눈꺼풀이 심하게 떨리거나 눈물이 저절로 흐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안구 증상을 전문용어로 ‘안정 피로’라고 부른다. 안정 피로의 대표적인 증상은 가까운 곳의 물체를 바라볼 때 초점을 맞추는 조절 기능이 장애를 일으켜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정 피로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눈은 어떤 물체를 볼 때 망막에 상이 제대로 맺히게 하기 위한 작용을 반복한다. 어떤 물체를 눈에 가까이 가져가보자. 물체가 멀리 있을 경우엔 순간적으로 초점이 맞춰지지만, 가까이 가져오면 1-2초 정도 초점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의 눈은 안구의 거리(수정체로부터 망막까지의 거리)가 고정돼 있어 물체가 있는 거리에 따라 안구의 길이가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점을 맞춰 망막에 상이 맺히도록 하는 작업은 모양체 근육을 이용해 카메라 렌즈에 해당하는 수정체의 두께를 조절(먼 곳의 물체는 얇게, 가까운 물체는 두껍게)함으로써 이뤄진다. 이와 동시에 동공을 수축해 빛의 양을 조절하고, 두 눈이 안쪽으로 몰리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면서 정확한 물체의 상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수정체를 두껍게 하기 위해서는 모양체의 근육을 긴장시켜야 하므로 그 만큼의 힘이 필요하다. 따라서 가까운 물체를 오랜 시간 동안 바라볼 경우 피로감을 느끼게 되고, 이 증세가 심각해지면 결국 장애가 발생한다.
또한 컴퓨터 작업을 할 때엔 모니터와 키보드, 그리고 마우스와 원고까지 번갈아 보면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눈은 심하게 혹사당한다. 원고,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등의 대상체를 보는 거리가 각각 달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강제적인’ 눈 운동을 지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사 막고 전자파 차단한다
한편 모니터 작업을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하면 눈이 따끔거리거나 시릴 때가 있다. 이 경우는 정상적인 눈물 흐름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적신호다. 눈물샘에서 분비되는 눈물은 눈꺼풀의 깜박임에 의해 눈 표면에 골고루 퍼진다. 각막을 덮고 있는 눈물층은 눈을 깜박이지 않고 뜬 상태로 있을 경우 10초 정도 지나면 손상된다.
보통 사람은 1분에 15-22회 정도 눈을 깜박이므로 안정된 눈물층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모니터 작업을 할 경우엔 눈 깜박임의 횟수가 분당 7회 미만으로 감소한다. 따라서 눈물이 눈 표면에 골고루 퍼지지 못하고, 눈물의 증발이 많아져 눈물층이 쉽게 손상된다. 눈물층이 자주 손상될 경우 각막이 자극을 받아 눈이 시린 증세가 나타나며, 심할 경우 통증도 생기게 된다. 이런 증상이 바로 안구 건조증이다.
게다가 모니터나 브라운관에서 발산되는 빛과 각종 글자나 이미지가 변화하는 색채 등도 눈의 피로를 더욱 가중시킬 수 있으며, 실내의 조명까지 화면에 반사된다면 피로감과 안구의 건조한 느낌은 더욱 가속화된다. 드물긴 하지만 이런 증세가 지속돼 시력을 잃는 경우도 발견된 바 있다.
부산대 의대 가정의학교실 김윤진 교수 연구팀은 지난 2000년 ‘우리나라 컴퓨터 이용자의 약 27%가 VDT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가정의학회지에 발표한 바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VDT 증후군 환자 가운데 안구 피로 증상은 19.9%, 근골격계 증상은 10.8%, 신경계 증상은 0.5%를 나타냈다. 컴퓨터의 보급률과 이용률을 따져볼 때 지금은 이보다 몇배 많은 사람들이 VDT 증후군을 앓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혹사당하는 우리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돼 왔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눈을 보호하기 위한 컴퓨터 보안기. 아크릴 수지 계통의 소재를 이용해 단순히 빛의 투과율을 낮춘다는 저가의 보안기를 제외한 일반적인 보안기는 편광 필터와 전도 코팅, 그리고 무반사 코팅 기능을 갖추고 있다. 편광 필터는 일정 방향으로만 빛을 통과시키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모니터나 TV 브라운관에 편광 필터를 부착하면 화면 밖의 여러 방향으로 쏟아져 나오는 빛을 조절해주기 때문에 화면이 한층 부드럽게 느껴진다.
한편 전도 코팅은 컴퓨터에서 방출되는 각종 전자파를 차단할 수 있다고 주장되는 기술이다. 전도 코팅의 개념은 폴리에스테르와 같은 보안기 재료에 전기전도율이 좋은 구리로 코팅을 하고 이를 접지시킨다는 것. 접지는 전기 기기와 지면을 도선으로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즉 화면에서 나오는 유해 전자파를 구리 코팅된 막에서 차단해 접지시킨다는 개념이다. 전기 기기의 겉틀이나 피뢰침 등을 접지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이렇게 전도 코팅한 후 무반사 코팅을 한번 더 하면 모니터에서 나오는 빛의 반사, 그리고 실내 조명이 화면에 부딪쳐 발산하는 반사를 막아줄 수 있다.
팔목이 붓고 좁아지는 증세
이제 눈이 아닌 다른 부위로 시선을 돌려보자. 최근에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함에 따라 손목의 신경이 눌려 손가락이 저리거나 손목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증세를 ‘팔목터널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팔목터널이란 손목 앞부분에 있는 터널 모양의 작은 통로로, 뼈와 인대로 구성돼 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여러개의 힘줄과 손바닥으로 이어지는 감각 신경이 지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키보드를 심하게 두드리거나 마우스를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팔목터널이 붓고 좁아지면서 신경이 눌려 손이 저리거나 아픈 통증이 나타난다. 손목을 안으로 굽히면 더욱 심해진다. 처음에는 힘이 약해지고 감각이 무뎌지는 증세를 보이다가 심해질 경우 가벼운 물체를 들어올리는데도 손목이 떨리고, 책장을 넘기는 일조차 힘들어지기도 한다.
또한 마우스를 사용하는 인터넷 게임 인구가 늘어나면서 팔목터널 증후군의 새로운 형태로 ‘마우스 증후군’이 생겨나기도 했다. 마우스 증후군이 나타나면 팔의 힘이 약해지고 마우스를 사용하는 오른쪽 검지손가락에 특히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영국의 의학 협회에 보고된 최근 자료에 따르면 6-12세 아동 1천1백42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나치게 게임을 즐기는 어린이 중 20%가 수면 부족, 어깨 결림, 근육 경련 등의 증세가 나타났다.
근골격계의 이상으로 근육이 뭉치거나 통증이 생기는 증상과 요통도 VDT 증후군의 증상이다. 특히 근골격계 이상은 고정된 자세, 특히 나쁜 자세로 오랜 시간 동안 컴퓨터 작업을 할 때 근육의 긴장과 수축이 과도하게 진행되면서 나타난다. 이런 근육이나 신경의 이상으로 인해 손목, 손가락, 팔꿈치, 어깨, 목 등에 통증이 생기는 것이다.
이 밖에 심리적으로는 스트레스로 인해 게임중독증, 수면장애 등 정신과적 이상이 생길 수 있으며, 전자파 노출, 피부 질환, 기형아 출산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논문이 계속 발표되고 있어 VDT 증후군은 끊임없이 논란과 이슈를 몰고다니고 있다.
바른 자세와 적절한 휴식 필요
VDT 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한 좋은 대책은 없을까. VDT 증후군은 다양한 형태의 불확실한 증상을 나타낸다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판단에 의해 진단하고 치료 방법을 선택한다. 결국 이런 처치로 인해 완전한 치료가 된다기보다 일시적인 증세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게 된다.
최근에는 VDT 증후군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제품으로 모니터 보안기 이외에도 각종 제품이 봇물 터지듯 출시되고 있다. 안구 부위의 열을 흡수하고 원적외선을 방출해 피로를 줄여준다는 시력보호장치인 원적외선 아이마스크, 자세에 따라 모니터와의 거리와 키보드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성 테이블, 딱딱했던 기존의 판 마우스 받침대 대신 손목의 피로감을 줄여줄 수 있는 겔 타입의 마우스 받침대와 손목 받침대, 잡는 손의 모양에 따라 형태가 변해 손바닥에 밀착해 사용할 수 있는 마우스도 등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컴퓨터 사용에 있어 바른 자세를 갖추고 적절한 휴식을 취함으로써 신체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다. 즉 VDT 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작업 스타일과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작업 시간은 총 4시간 이하, 1회 연속 작업은 50분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휴식을 취할 땐 반드시 컴퓨터와 떨어진 먼 곳을 바라보면서 눈에 편안함을 줘야 한다.
모니터의 배치도 중요한 문제다. 모니터가 사용자의 시선보다 위쪽에 있게 되면 눈을 더 크게 떠야 하므로 눈물이 쉽게 증발할 수 있다. 따라서 눈에 편안함을 주려면 모니터를 정면에 배치시키고, 화면의 상단을 눈높이와 비슷하게 맞춰야 한다. 모니터와 눈의 거리도 40cm 이상이 유지돼야 한다. 조명도 중요 요소다. 실내 조명이 모니터에 반사되면 눈에 주는 피로가 몇배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외부 조명에 의한 반사를 막기 위해 모니터 위쪽에 덮개를 씌우기도 한다.
근육에 이상 증세가 나타날 경우 특정 부위를 손가락으로 누를 때 유난히 통증이 심한 부위를 찾아내야 한다. 이 부위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풀었다 하는 동작을 수십 차례 반복하면 뭉쳐있는 근육이 풀려 차차 호전된다. 그래도 좋아지지 않는다면 통증유발 부위에 직접 주사를 놓거나 진통제나 국소마취제를 투여해야 한다.
키보드나 마우스 작업을 할 때는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 일직선을 이뤄 손목이 뒤로 꺾이지 않도록 작업 환경의 높이를 낮춰야 한다. 손목을 고정시킬 수 있는 손목 받침대를 키보드 아래 장치하거나 입체 마우스를 사용하면 좋다.
키보드는 책상 끝에 걸쳐있기보다 끝에서 15㎝ 가량 떨어진 곳에 설치하는 것이 손목과 팔목관절의 경사를 자연스럽게 유지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