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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 vs 반지의 제왕

무한 상상력의 세계, 판타지 열풍

모험가의 발걸음을 거부하는 미궁은 흉칙한 몬스터의 지배를 받고, 세계의 지배를 꿈꾸는 악신은 자신의 추종자들을 끌어 모은다. 바로 판타지의 세계이다.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최근 개봉된 두편의 영화는 전세계를 판타지의 열풍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최근 개봉된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하 해리포터)과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이하 반지원정대)는 성공한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게다가 두 원작은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해리포터와 반지원정대는 성공에 필요한 관객을 확보한 채 제작에 들어간 셈이다. 그러나 두영화의 감독(해리포터는 ‘나홀로 집에’로 유명한 크리스 컬럼버스 감독이, 그리고 반지원정대는 B급 호러영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피터 잭슨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은 보장된 성공 이상의 부담을 안고 영화를 제작해야 했다.

두 영화의 감독이 직면했던 과제는 소설을 읽은 수많은 관객들(두소설 모두 1억권 이상이 팔렸다)을 만족시켜주는 동시에 소설을 읽지 않은 더욱 많은 관객들을 만족시켜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원작을 갖고 있는 영화들의 공통적인 딜레마다. 원작에 충실하면 일반 관객들에게는 지루한 영화가 될 수 있고, 원작을 벗어나면 소설의 팬들이 영화를 외면하게 될 테니까.


원작에 충실한 영화

소설을 읽은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의 관심은 영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상상했던 이미지를 영상으로 확인하고자 한다. 텍스트는 개인의 관념 속에 구체적이지만 극히 주관적인 형상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보자. 해리포터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무대인 호그와트 마법학교와 반지원정대가 가장 큰 시련을 겪는 드워프의 도시 모리아는 소설 속의 문장으로 기술된 장소이다.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상상력의 차이와 그 사람이 속해 있는 문화의 차이에 의해 각자 다른 호그와트와 모리아의 이미지를 상상하게 된다.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그들 모두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영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점에서 두 영화는 성공한 영화이다. 소설의 팬들 대부분은 영화 속의 장면이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 똑같다며 만족했으니까. 그럼에도 일부 마니아들은 반지원정대에 등장한 엘프의 귀가 덜 뾰족하다는 것과(하지만 엘프를 모르는 관객은 신경도 쓰지 않는 부분이다) 해리포터의 주연을 맡은 아역 배우가 너무 잘 생겼다는 데에(원작에선 못생긴 아이로 묘사된다) 이의를 제기한다.

그렇다면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들은? 다행히 두 소설은 영화로 표현하기에 적당한 ‘판타지의 모험’이라는 장점과 악과 맞서 싸운다는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다. 게다가 반지 원정대는 주인공이 절대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겪는 모험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로드무비 형식으로 옮기기에 매우 좋은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긴 스토리를 짧은 영화에서 표현하는 바람에 등장인물의 개성이 떨어지고 이야기의 진행에 조금 벅찬 감이 있지만, 두 영화 모두 원작에 대한 이해가 없는 관객을 만족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두 영화의 감독은 반쪽 짜리 영광에 만족해야 했다. 두 영화의 원작자인 조앤 롤링과 J.J.R. 톨킨을 떠올리는 관객이 두 영화를 제작한 감독을 떠올리는 관객보다 많다. 감독의 영화가 아닌 작가의 영화인 것이다. 감독의 역할은 영화의 구성이나 스토리의 진행보다는 화려한 특수 효과의 구현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해리포터의 제작 과정에서는 스탭들이 주연을 맡은 아이들의 의상조차 원작자인 조앤 롤링에게 조언을 구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영화 ‘반지의 제왕’은 앞으로 두편이 더 남아있다. 그리고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원작의 에피소드를 맞춰 여섯편이 더 제작될 계획이라고 한다. 앞으로 몇년 간 판타지물은 두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전 세계적인 트렌드를 형성할 수 있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판타지는 영화와 컴퓨터 게임을 통해 빠른 속도로 대중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최근 몇년 간 우리나라에서는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수많은 작가들이 배출됐고, 판타지는 거대한 붐을 이루며 독립된 장르를 형성해나가고 있다. 쉽게 말해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소설이 바로 판타지다. 그러나 국내에서 판타지는 문학의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문학계의 보수성을 그 이유로 꼽는 사람들도 있지만, 작가들의 노력이 부족한 것에도 그 원인이 있다. 대부분의 판타지 작가들은 톨킨과 던젼 앤 드레곤에 의해 정형화된 세계관을 빌려쓰고 있다. 똑같은 종족과 몬스터가 등장하고 비슷한 마법이 사용된다.

다른 비유를 해보자. 만약 우리의 가수들이 외국에서 유행하는 것과 비슷한 것만을 만들어 내놓는다면 우리의 대중 음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물론 국내의 팬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흉내내기 이상이 될 수 없다. “저 가수는 미국의 흑인 가수만큼이나 랩을 잘 해”라는 팬들의 칭찬에 만족한다면 그 가수는 영원히 지금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말이 있다. 우리의 가수들이 세계적인 가수로 성장하기 위해선 ‘랩’을 부르더라도 그 안에 우리들, 한국 사람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정서를 담아내야만 한다.판타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작가들이 한국적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판타지는 한때의 유행으로 밖에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판타지에는 항상 중세의 기사와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등장해야 한다고? 톨킨이 북구 유럽의 신화를 바탕으로 반지 원정대의 세계를 창조했듯 우리는 우리의 고대 신화를 사용할 수있다. 조엔 롤링이 오토바이를 탄 히피 마법사를 만들어낸 것처럼 우리는 마법사를 만들어 낼수 있다. 판타지는 무한한 상상력이다. 판타지를 규정짓는 형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작가의 상상력 뿐….


영웅이 된 평범한 아이들
해리포터 vs 프로도

 

(왼)제왕의 주인공인 프로도는 매우 평범한 호비트족이었다. 얼떨결에 주어진 반지로 인해 프로도와 친구들의 모험이 시작된다 (오)해리포터가 마법을 갖게 된 것은 일상 탈출 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희망사항이 아닐까. 해리포터와 그의 친구들은 호그 와트 마법학교에서 갖가지 모험을 즐기게 된다.


▶▶▶ 계단 아래의 빈 공간을 개조해서 만든 좁은 방. 햇살조차 들지 않는 아침이면 심술과 이기로 똘똘 뭉친 뚱뚱이 사촌이 계단 위에 발을 구르며 이유 없는 심술을 부린다. 동화치고는 너무나도 예리한 시각으로 평범한 이들의 생활을 그려내고 있다. 해리포터의 가장 통쾌한 장면을 꼽으라면 필자는 호그와트의 사냥터 관리인이자 히피 마법사인 해그리드가 문을 부수며 들어와서는 해리포터를 부르는 장면을 말하겠다. 그 장면은 에든버러의 초라한 단칸방에서 정부 보조금으로 딸을 키우던 조앤 롤링의 꿈이 아니었을까. 그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는 마법만이 이 지긋지긋하고 희망이 없는 현실을 탈출하는 유일한 바람이었을지 모른다. 평범한 천덕꾸러기 해리포터의 일상 탈출은 신데렐라의 감동을 능가하는 우리 모두의 꿈이었다. 그의 평범함은 헤라클레스나 테세우스 같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영웅들보다 더욱 강력한 힘으로 관객과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인다. 호그와트의 마법학교에서 해리포터는 ‘아이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어른들’ 대신 문제를 해결하는 전형적인 꼬마 영웅으로 변신한다.

반지원정대의 주인공인 프로도 역시 평범함으로는 해리포터에게 뒤지지 않는다. 프로도는 빌보의 조카로 샤이어 밖으로는 한번도 나가보지 않은 평범한 호비트족이었다. 얼떨결에 건네진 반지는 프로도를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으로 떠밀어버렸다. 허수아비가 서있는 가을 들판을 지나며 프로도의 모험에 동참한 샘이 잠시 머뭇거리고 나서 말한다. 여기를 벗어나면 마을에서 가장 멀리 떠나게 되는 것이라고. 별 것 아닌 듯 보이는 경계선을 넘어서는 순간 평범한 이들의 모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웅은 신의 아들이고, 왕의 아들이며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근육질의 아름다운 육체에 평범한 사람들은 따라갈 수 없는 지혜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영웅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처럼 작고, 볼품없고, 겁 많은 평범한 영웅이다.


동화적 패러디 세계와 정화된 세계
호그와트 vs 미들어스


(왼)원작자인 톨킨은 고대 북유럽 의 신화와 언어를 끌어모아 천재적인 상상력으로 판타지의 세계를 재구성했다. (오)해리포터의 배경인 호그와트 마법학교는 영국식 기숙학교의 전형이다


▶▶▶ 반지원정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미들 어스는 로마제국 침략 이전, 즉 기독교와 문자가 전해지기 이전의 고대 유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당시의 북유럽 사람들은 마법과 자연의 정령을 숭배했고, 엘프 등의 신비한 존재들과 더불어 살았다. 이쯤에서 영화를 본 일부 고증 마니아들은 딴지를 걸기도 한다. 사우론과의 첫 전투장면에서 전사들이 입고 있었던 플레이트 아머는 15세기가 돼서야 등장했으며 프로도가 입고 있던 링 메일은 10세기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타지에서 역사적 고증을 하려는 시도는 드래곤이 불을 뿜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생물학자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미들 어스는 이 세상에 존재했던 세계가 아닌 톨킨의 세계다. 톨킨은 고대 북유럽의 신화와 언어를 끌어모았다. 그리고 천재적인 상상력으로 판타지의 세계를 재구성했다. 톨킨은 미들 어스의 역사와 지리, 신화와 언어 등 모든 것을 직접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 세계 안에서 그리스·로마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고 켈트족의 요정들과 중세의 기사들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엉터리 같은 세계는 치밀하고 세심하게 구성돼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톨킨이 언어학자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며, 톨킨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꼽혀진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의 판타지 작가들은 아직까지도 톨킨의 세계를 빌려쓰고 있다.

반면 해리포터의 배경인 호그와트 마법학교는 톨킨에 의해 정형화된 판타지 세계관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다. 해리포터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곳은 아득한 과거가 아닌 현대의 영국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호그와트가 현실의 동화적 패러디라는 것이다. 호그와트는 영국식 기숙 학교의 전형이며, 히피풍의 마법사는 지팡이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한다. 아이들은 스포츠 스타의 카드를 모으듯 마법사의 카드를 모으며, 상점에서 판매하는 하늘을 나는 빗자루에는 스포츠카를 연상시키는 상표가 붙어있다. 호그와트는 마법의 힘에 의해 재구성된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판타지 독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 빠른 속도로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여태껏 판타지는 그 시조인 톨킨에 의해 발목이 묶여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수의 판타지 마니아들은 톨킨식의 고증에 따르지 않는 판타지 물을 사이비라며 배척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해리 포터의 성공은 판타지 문학의 미래에 물음표와 느낌표를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모험의 장소인 복잡한 미궁
호그와트 지하실 vs 드워프의 지하도시 모리아


(왼)해그리드와 해리포터가‘마법사의 돌’이 있는 지하 창고에 가고 있다. (오)사방에서 몰 려오는 괴물들에 대항하는 주인공과 그 일행들의 모습은 어드벤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 사방이 막혀있는 복잡한 구조의 미궁은 판타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험의 장소다. 미궁은 산더미 같은 보물을 지키기 위한 장소인 동시에 도망칠 수 없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어둠에 잠긴 복도 끝에서는 인간의 공포가 만들어낸 괴물들이 번뜩이는 눈빛으로 침입자를 감시한다. 미궁 속의 모험은 그리스 신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영웅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르를 죽인 후 자신이 만든 미궁에 아들과 함께 갇히게 된 다이달로스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고대 왕들은 자신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 미궁처럼 복잡하고 거대한 무덤을 건설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중국의 진시황릉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해리포터에서 등장하는 학교 지하실은 보물을 지키기 위한 미궁이다. 입구는 머리 셋달린 개가 지키고 있으며 사람을 조이는 덩쿨과 마법의 힘으로 움직이는 체스의 전사들이 지키고 있다. 문제를 해결해야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 게임의 구성과 같다.

반면 반지원정대가 들어서는 미궁은 드워프들의 거대한 지하 도시이다. 계속해서 땅 속으로 도시를 확장하던 드워프들은 땅 속에 묻혀 있던 고대의 악마인 발록의 잠을 깨웠다. 톨킨의 이런 설정으로 인해 이후의 수많은 판타지에서 드워프들은 땅 속의 악마나 드래곤을 깨우는 역할을 떠맡게 됐다. 어쨌든 관객은 반지원정대라는 영화 속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장면을 보게 된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괴물들에게 잡힐 듯 말 듯 하면서 좁은 통로를 달려가는 주인공의 일행들, 그리고 무너지는 미궁. 이 부분은 어드벤처 영화의 공식처럼 쓰이는 장면이다. 사실 소설을 읽은 관객들에게 지하 도시의 장면에서 가장 흥미를 느꼈던 부분을 물어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로도의 일행이 쫓기는 장면보다 발록의 모습에 더 많은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발록의 모습에 만족했다고 한다.


무한한 힘과 영원한 삶 보장
마법사의 돌 vs 절대 반지


▶▶▶ 시대와 세계관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해리포터와 반지원정대는 많은 면에서 닮아 있다. 그 중 가장 유사한 설정은 마법사의 돌과 절대 반지이다. 두 보물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게 무한한 힘과 영원한 삶을 살게 해준다. 그러나 사람은 보물이 갖고 있는 절대적인 힘을 사용하기엔 정신적으로 미숙한 동물이다. 결국 절대적인 힘의 제어력을 상실하고는 힘의 지배를 받게 된다. SF 영화인 ‘스피어’에서도 비슷한 타원형 물체가 나온다. 등장 인물들은 상상만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을 얻지만, 결국 그 힘은 그들 모두를 파괴해 버린다.

마법사의 돌과 절대 반지는 중세 연금술의 궁극적인 목표인 현자의 돌(Elixir)에서 유래했다. 중세의 연금술사와 마법사들은 고대 그리스의 사상을 계승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물, 불, 공기, 흙으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금이 원소라는 사실을 몰랐던 연금술사들은 촉매를 이용해 쇠나 구리 등의 금속을 금으로 바꿀 수 있었다고 믿었다. 현자의 돌은 금을 만들기 위한 촉매였던 것이다. 연금술이 발전하면서 현자의 돌은 종교적인 의미를 얻게 된다. 연금술사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에 따라 인간의 육체와 영혼 역시 물, 불, 공기, 흙으로 이뤄져 있으며 현자의 돌에 의해 육체의 성질이 바뀌면 영원한 생명력과 무한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비록 연금술은 실패했지만 연금술사들은 연구와 실험의 과정에서 여러 화학 물질을 발견했다. 그리고 영구기관이 현대 열역학의 기본 원리들을 이끌어낸 것처럼 연금술은 현대 화학의 모태가 됐다. 현대의 과학자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도 현자의 돌과 다르지 않다. 무한한 에너지원으로 알려진 ‘수소 핵융합’과 유전자 조작을 통한 영원한 삶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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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노성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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