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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억을 몸에 새기다 메멘토

충격으로 과거가 사라진 기억상실증

새로운 기억이 없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아내의 죽음, 그리고 범인에 대한 작은 단서뿐. 단기기억상실증 환자가 등장한 영화‘메멘토’얘기다. 도대체 어떻게 이처럼 기막힌 기억상실증이 생기는 것일까.

얼마 전 해외 토픽란에 호주의 한 권투선수가 경기중 얻어맞은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주인공은 트리시 데블레스라는 26세의 젊은 여성. 그녀는 지난 4월 뉴질랜드에서 가진 시합에서 KO패를 당한 뒤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최근 의식을 회복했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으로 진단돼 수술대에 눕게 됐다. 자신의 결혼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데블레스는 체육관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고집하고 있지만 그녀의 보호자인 남편이 이를 막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뇌의 손상된 네트워크

이런 뉴스를 접하면 마음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론 ‘영화 속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것은 ‘기억상실증’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환이 아니라 주로 영화나 소설을 통해 극적으로 체험되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나의 정체성이 내 머리 속에 남아있는 기억과 나에 대한 타인들의 기억으로 규정될 수 있기에,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설정은 오랫동안 영화의 단골 소재로 사용돼 왔다. 그러나 흔히 건망증에서 경험되듯, 일상 생활에서 기억상실증은 전혀 극적이지 않으며 굉장히 불편하고 고통스런 정신질환의 하나다.

얼핏 보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기억상실증은 모두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증세가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기억상실증의 형태에 따라 영화의 이야기 구조가 크게 달라진다.

가장 잘 알려진 기억상실증 유형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거나 머리에 외상을 입은 후 충격 이전의 기억을 상실하는 ‘퇴행성(후진성) 기억상실증’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기억상실증이 바로 이 경우가 아닐까 싶은데, 영화 ‘롱키스 굿나잇’에서 여주인공 사만다 케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만다(지나 데이비스 분)는 여덟살 난 딸 케틀린과 애인 할과 함께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 그녀는 캐틀린을 임신했을 때 어떤 사건을 겪고 심한 기억상실증에 결려 예전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 사건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

느긋하게 당근을 썰던 사만다는 문득 칼질에 속도를 붙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자신이 탁월한 칼 솜씨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이를 통해 전직이 요리사였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사립 탐정 미치 헤네시(사무엘 L. 잭슨 분)가 우연히 그녀의 옛 소지품을 발견하면서 그것이 심각한 오해였음이 이내 드러난다.

알고 보니 그녀는 암살 전문 CIA요원이었다. CIA는 예산을 늘리기 위해 트럭에 폭탄을 장치하고 아랍인의 행위로 꾸미려는 위장 테러 음모를 계획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만다가 얽히게 돼 그녀를 제거하려 했던 것이다.

어떻게 사만다는 사건 전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게 됐을까. 뇌는 신경세포들이 시냅스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기억은 뇌의 여러 영역에서 신경세포들 사이의 시냅스 연결 강도를 높여주는 방식으로 저장된다. 만약 연결 강도가 높아진 신경세포들이 죽게 되면 기억이 손상받게 되는 것이다. 사만다는 뇌 손상으로 인해 기억이 저장돼 있는 뇌 영역에 큰 손상을 입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이다.

과거를 잃어도 기술은 남아

때론 기억된 내용 자체는 손상을 입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기억을 끄집어내는 기능을 상실할 때도 기억상실증에 걸리기도 한다. 이 경우, 기억상실증 환자는 예전에 썼던 물건이나 옛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상실한 기억을 조금씩 되찾을 수 있다. 예전에 쓰던 물건이 옛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는 ‘인출 단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영화에서 사만다가 섬광처럼 짧은 순간 동안 예전에 있었던 일들을 문득 문득 기억해 내는 것도 상실했던 인출 능력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사만다의 증상만으론 둘 중 어떤 경우에 해당하는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두 과정 모두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사만다는 어떻게 칼을 다루는 솜씨는 잃어버리지 않고 간직할 수 있었을까. 기억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다. 첫번째는 오늘 아침 식사 때 무엇을 먹었는지, 지난 주 친구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를 기억하는 일처럼 ‘시간과 연관된 기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사에 관해 방대한 기억을 갖고 있고, 그런 과거 경험이 언제 어떤 순서로 일어났는지도 대개 기억한다.

다음으로는 ‘지식의 기억’이다. 우리는 단어의 의미를 기억하고 구구단을 외우고는 있지만 언제 그것을 배웠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일반 지식이나 어의에 관한 지식은 시간과 연관된 기억과는 다르다.

마지막으로 ‘운동기술 기억’은 위에서 설명한 두 유형과 크게 다른 형태의 기억이다. 자전거를 타는 법이나 투수가 공을 던지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며, 어떻게 하는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 운동을 잘 할 때까지 연습을 해야만 한다. 이 유형의 기억은 말로 서술할 수 없는 기억이라 해 ‘비서술형 기억’이라고도 부른다.

기억은 유형에 따라 저장 방식도 달라서 시간과 연관된 기억이나 지식 기억은 특정 영역에 저장돼 있기도 하지만, 비서술형 운동기술 기억은 좀더 교묘한 형태로 저장돼 있어 한번 익히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사만다는 시간과 연관된 기억은 잃어버렸지만 아직 운동기술 기억은 남아있는 경우다. 많은 퇴행성 기억상실증 환자들이 사만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10분 이상 간직할 수 없다

사고 시점 이전의 기억을 상실하는 퇴행성 기억상실과는 달리, 충격이나 외상 이후 새로운 기억을 갖지 못하는 ‘전진성 기억상실증’도 있다. 새로 기억된 내용을 오래 간직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단기기억상실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진성 기억상실증 환자가 등장하는 가장 극적인 영화로는 최근 개봉해 평론가와 관객들 모두에게 격찬을 받은 바 있는 ‘메멘토’가 있다. 전직 보험 수사관이었던 레너드(가이 피어스)에게 새로운 기억이란 없다. 자신의 아내가 강간당하고 살해되던 날의 충격으로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기억상실증 환자가 된 것이다. 때문에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이름이 레너드 셸비라는 것과 아내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했다는 것, 그리고 범인은 존 G라는 것이 전부이다.

중요한 단서까지도 쉽게 잊고 마는 레너드는 자신의 가정을 파탄낸 범인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메모와 문신을 사용한다. 묵고 있는 호텔, 방문했던 모든 장소, 만나는 사람과 그에 대한 정보를 플라로이드 사진으로 남기고, 항상 메모를 해두며, 심지어 자신의 몸에 문신을 하며 기억을 더듬는다.

영화는 새로운 기억을 오랫동안 기억하지 못해 메모나 문신, 폴라로이드 사진을 이용해 기록을 남기지만 결국 그것마저도 변형 가능한 기록이라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기억에 대한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내 기억은 실제로 일어난 사실과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어떻게 이런 환자가 생길 수 있을까.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의 기억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단기기억은 특정 경험을 한 후 뇌의 전기 활동에 따라 수분, 또는 수시간 정도 지속되는 기억을 말한다. 반면 장기기억은 좀더 영구적으로 남아 있는 기억 형태를 말한다.

전화번호부에서 원하는 전화번호를 찾아낸 후 다이얼을 돌리는 동안 기억하고 있는 것을 단기기억이라고 한다면, 여러번 반복해서 전화를 함으로써 전화번호를 외우게 돼 전화번호부를 뒤지지 않고 전화를 걸 수 있다면 그것은 장기기억으로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단기기억 저장 한계는 약 7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전화번호가 7자리수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원숭이의 단기기억 저장 한계는 5개라고 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지각 등을 통해 끊임없이 단기기억을 하지만,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는 내용은 많은 반복적인 경험이나 인상적인 사건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단기기억은 이마 뒤에 위치한 전전두엽(prefrontal lobe)이라는 뇌영역에서 일어난다. 단기 기억으로 얻은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역할은 측두엽에 위치한 해마(Hippo- campus)에서 담당한다. 해마는 뇌의 가장 오래된 부분 중 하나인 변연계의 일부분이다. 만약 해마가 손상된다면 ‘메멘토’의 레너드처럼 옛날 기억은 갖고 있지만 새로 얻은 기억은 오랫동안 간직할 수 없게 돼 단기기억상실증 환자가 되는 것이다.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고, 항상 메모를 해두며, 심지어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기면서 기억을 더듬 는다. 그의 기억은 실제 일어난 사실에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환자 통해 밝혀진 메커니즘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 셀비는 H.M.이라는 실존 환자의 증상을 모델로 하고 있다. 이 환자는 아마도 의학계에서 가장 많은 연구가 이뤄진 환자 중 한명이 아닐까 싶다. 1953년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의 한 병원에 찾아온 이 환자의 당시 병명은 간질. 18세 이후 줄곧 앓아온 간질 발작이 고통스러워 병원을 찾았다. 약물 치료가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양측 측두엽의 전측 부위를 제거하는 신경외과 수술을 받으러 온 것이다. 수술은 성공적이어서 H.M.의 간질 발작은 이내 멎었지만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H.M.은 자신의 방을 찾아가지 못하고 자신을 방금 전까지 진료한 의사를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를 소개해줘도 수분 이내에 이름이나 얼굴을 까먹었다.

30년 동안 정신과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은 그의 증상을 연구했고 덕분에 단기기억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다. ‘해마가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넘기는 역할을 한다’는 놀라운 발견은 H.M.에게 빚진 바 크다. 신경외과 의사들은 간질 수술로 인해 H.M.의 단기기억을 관장하는 해마가 손상을 입어 더 이상 새로운 기억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낸 것이다.

영화 ‘한니발’에는 단기기억에 관한 과학적 오류가 등장한다. ‘한니발’은 ‘양들의 침묵’ 속편으로 정신과 의사이자 식인습성을 가진 연쇄 살인마 한니발 렉터가 FBI 요원 스털링과 맞서 두뇌싸움을 벌이는 내용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한니발 렉터가 스털링의 동료 FBI 요원을 의자에 묶은 다음 두개골을 깨서 뇌를 꺼내먹는 잔인함을 보인다. 뇌를 요리해 자신뿐 아니라 FBI 요원 본인에게도 먹이는 장면은 한니발의 잔인성을 유감 없이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친철하게(?) 설명한다. 뇌에는 신경이 없어서 이렇게 뜯어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물론 여기까지는 맞는 말이다. 그러면서 뇌의 앞쪽 부분을 잘라내며 말한다. 이 부분이 전두엽(frontal lobe)이라고. 요리를 하는 동안 FBI 요원은 냄새가 좋다는 둥 요리가 맛있겠다는 둥 상황판단도 못한 채 헛소리를 한다. 그러면서 동료인 스텔링 요원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묻고, 커피라는 단어를 듣더니 커피가 뭐냐고 묻는다. 전두엽을 잘라냈으니 기억력이 없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나 실제로 전두엽(그 중에서도 전전두엽)은 단기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전두엽을 손상당한 사람은 장기기억은 크게 손상 받지 않기 때문에 커피가 뭔지도 알고, 동료인 스털링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방금 나눈 대화를 기억하지 못한다거나 했던 얘기를 되풀이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말이다.


‘한니발’에서 연쇄살인마 렉터가 두개골을 깨서 뇌를 요리하 는 장면. 그러나 이 장면은 과학적으로 오류가 있다.


정신적 충격에 대한 방어수단

특정한 사건만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도 있을까.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While you were sleeping, 1995)를 본 관객이라면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할리우드 가족 영화의 귀재 존 터틀타웁 감독이 만든 로멘틱 코미디다. 도시에 사는 소시민의 사랑을 ‘환상에서 현실로 변화하는 아름다운 과정’으로 그려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인공 역할을 거절해 얼떨결에 주연자리를 따낸 산드라 블록이 맡은 역할은 전철역에서 토큰을 파는 루시. 그녀는 조그마한 아파트에서 고양이와 함께 산다.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은 매일 아침 짝사랑하는 피터가 지하철을 타러 오는 것을 보는 일이다. 어느 날 루시는 지하철 선로 위에 떨어진 피터를 발견하고는 병원으로 옮긴다. 병원으로 옮겨진 피터는 혼수상태에 빠지고 루시는 얼떨결에 그의 간호를 맡게 된다. 병문안을 온 가족들은 루시를 그의 약혼자로 오인한다.

오해는 오해를 낳는 법. 피터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자 약혼자로 오해받았던 루시는 난처해하지만, 오히려 가족들은 루시를 알아보지 못하는 피터를 기억상실증이라 오해한다. 여기에 의사도 한몫을 한다. 두부 외상으로 인해 특정 사건만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이 있을 수도 있다고!

그렇다면 과연 영화 속 의사의 말은 사실일까. 최근 과학자들은 정신적 충격이나 두부 손상으로 인해 특정한 사건이나 기억만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러차례 발견했다. 신경과학자들은 이것을 루카나 기억상실증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이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새로운 기억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의 두려움, 과거의 기억을 상실한 자가 느낄 황망함.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짐작하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기억상실증이 단지 뇌 손상에 의한 기능 장애가 아니라 자신이 평소 회피하고 싶은 기억이나 정신적인 충격을 방어하기 위해 일부러 잊으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본다. ‘방어와 회피’라는 역동적 목적이 있는 능동적인 과정의 결과라는 것이다.

‘롱 키스 굿나잇’에서 사만다는 CIA 암살전문 비밀요원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불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신적 충격 이후 무의식적으로 지난 과거를 잊고 평범한 가정주부의 모습으로 살기 원했을 수도 있다. 가끔은 망각이나 기억상실이 정신적 고통이나 아픔으로부터 오히려 나를 지켜 주는 방어막 역할을 한다니 아이러니칼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소개


| 롱키스 굿나잇(The Long Kiss Goodnight, 1996) |
레니 할린 감독, 지나 데이비스, 사무엘 L. 잭슨 주연. ‘클리프 행어’, ‘다이하드 2’로 잘 알려진 핀란드 출신의 감독 레니 할린과 그의 실제 아내였던 지나 데이비스의 액션대작. 독특한 액션 장면 연출과 여전사 지나 데이비스의 강도 높은 액션 연기가 볼만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기억상실증에 걸려 평범한 가정주부 사만다 케인으로 살아가는 전CIA 비밀암살요원 찰리 볼티모어(지나 데이비스 분)다. 그녀는 흑인 사설탐정 미치 헤네시(사무엘 L. 잭슨 분)의 도움과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하나씩 기억을 되찾아간다. 이 영화의 매력은 수많은 첩보 영화들의 내러티브를 장식해온 ‘냉전’이란 모티브가 훌륭하게 각색돼 삽입됐다는 점이다. 악당은 옛소련도 이슬람 국가도 마약 밀매단도 아닌 바로 CIA 자신이며, 그들은 예산을 늘리기 위해 트럭에 폭탄을 장치하고 아랍인의 행위로 꾸미려는 음모를 계획한다. ‘컷스로트 아일랜드’의 실패를 만회하고도 남을 만한 오락 영화.

| 메멘토(Memento, 2000)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가이 피어스, 캐리 앤 모스, 조 판톨리아노 주연. 퍼즐을 풀듯 사건의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추리 영화. 독특한 구성과 참신한 내러티브, 압도하는 연기가 볼만한‘올해 개봉된 가장 독창적인 영화’. 전직 보험 조사관 레너드(가이 피어스 분)는 아내가 강간 살해당한 충격으로 10분이상 기억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전진성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그는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간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틈나는 대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고 몸에 문신을 새기며 기억을 연장시킨다. 그의 주변을 맴도는 정체 불명의 테디(조 판톨리아노 분)와 웨이트리스 나탈리(캐리 앤 모스 분)는 끊임없이 사건의 단서를 암시하며 범인을 죽일 것을 주문하지만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른다. 레너드는 불완전한 기억 때문에 늘 새로운 인물을 범인으로 여기고 살인행각을 벌여나간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지만 시간의 순서가 거꾸로 배치돼 있기 때문에 혼란스럽다. 첫 시퀀스는 사건의 결말이며 마지막 장면이 바로 이야기의 시작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시퀀스의 첫장면을 다음 시퀀스의 마지막 대목과 반복적으로 맞물려 놓아 1백14분의 러닝타임이 10여개의 뫼비우스 띠로 연결된 사슬을 이룬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즈 영화평에 따르면, 비범한 연출 아래 스크린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영화라는 장르의 온갖 복잡하고 창의적인 가능성을 모두 사용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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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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