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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고 할 일 없어 털다 -주유소 습격 사건

폭력성 생물학적 원인 존재하는가

살인이나 폭력 같은 끔찍한 범죄가 종종 뚜렷한 이유 없이 저질러져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왜 이런 범죄가 발생하는 것일까. 생물학적인 원인이 존재하는 것일까.

지난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대규모 유혈 테러 사건이 벌어졌다. 세계 무역센터 빌딩이 붕괴되고 미 국방성 건물 펜타곤이 공격을 받았으며 민간 항공기가 추락했다. 이 사건은 치밀하게 계획된 대규모 살상이었고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인들 뿐 아니라 CNN 뉴스를 지켜본 전세계인을 전율케 했다. 먼지와 잿더미로 가득 찬 뉴욕 시내를 망연자실 바라보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인간이 가진 폭력성의 끝은 어디일까. 그리고 그 근원은 무엇일까.

재미있어 살인한다?

인간이 폭력을 휘두르는 데는 대개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극단적인 상황 기저에는 억제할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킬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특히 테러나 전쟁 같은 대규모 유혈폭력은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와 문명사적 배경이 뒷면에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폭력성이 소름끼치는 대목은 살인이나 폭력, 강간 같은 잔혹한 범죄가 종종 뚜렷한 이유 없이 저질러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지난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시에 위치한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교내 불량집단인 ‘트렌치코트 마피아’ 소속 3학년생인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는 도서관에 들어가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향해 무차별 총기난사를 가했으며, 이로 인해 13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끔찍한 유혈사태가 소수민족 학생들과 교내 운동선수들에 대한 반감이라는 사소한 이유 때문에 벌어진 대량살상이었다는 사실은 전세계인들을 경악케 했다.

이같은 ‘이유 없는 반항’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보호관찰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청소년 범죄의 25% 가량이 집단심리나 충동, 호기심 등 뚜렷한 이유 없이 우발적인 충동에 의해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 우연히 소매치기 현장을 목격하고는 ‘우리도 한번 해보자’는 충동에서 소매치기를 하다가 경찰에 입건된 여고생들이 있는가 하면, 부모에게 야단맞은 중학생이 화풀이로 지나가는 여학생을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이유 없는 범죄’가 사회 병리현상으로 떠오르면서 영화에도 종종 이런 유형의 범죄가 등장했다. ‘잘 짜여진 스토리’가 생명인 영화는 본질적으로 모든 사건에 원인을 만들어야 하고, 없는 동기도 짜내야 하는데 말이다.

30년 전에 발표됐던 ‘시계 태엽 위의 오렌지’(A Clockwork Orange, 1971)는 이유 없이 폭력을 일삼는 악동 무리를 등장시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1990년대 공포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스크림’(Scream, 1996) 역시 마찬가지다. 두명의 고등학생이 치밀한 계획 아래 같은 학교 학생들과 심지어 교장선생님까지 잔인하게 죽이지만, 그들이 이런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벌이는 이유는 단 한가지. 그냥 ‘재미있어서’다. 감독은 굳이 그들에게 살인의 동기를 부여하지 않는다. 모든 살인과 폭력에 뚜렷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덕분에 이 영화 역시 국내 개봉시기가 3년이나 늦춰졌다. 우리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1999)에 등장하는 대책 없는 4인조 역시 이유 없는 폭력을 휘두른다. 야구선수 지망생 노마크, 단순무식이 신조인 무대포, 좌절한 록가수 딴따라, 그림 그리는 사이코 페인트. 이들 넷은 어느날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다가 주유소를 습격한다. 동기는 간단하다. 심심하고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냥 턴 것이다.

점점 잔인하고 경박해져

그들은 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고 기물을 파손하고 절도행각을 일삼는 것일까.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일탈행위는 사회적인 맥락에서 해석될 수도 있고, 우리가 보기엔 사소하지만 나름대로 심각한 이유가 있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살인과 같은 잔혹한 범죄를 저지를 만한 것은 아니라는데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

사회적 폭력은 피해를 입은 가족들은 물론 가해자와 그 가족들까지도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의 경우 1%의 폭력을 줄이면 연간 1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막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 바 있다.

인간이 가진 폭력성의 근원을 연구하고 범죄를 뿌리뽑기 위한 노력은 사회학자들에 의해 오랫동안 연구돼 왔다. 그들은 여러 환경요인들이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의 폭력적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약물 복용에서부터 가정 불화, 반사회적 친구들과 만남, 아동학대, 부모와의 격리, 부모의 지나친 감시, 술, 폭력적 행동의 목격 등이 폭력을 일으키는 사회적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밝혀냈다.

미국의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위험 요인들을 바탕으로 ‘잠재적 폭력 청소년’을 골라내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사전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유도해 왔다. 그러나 그 효과는 뚜렷하지 않았으며 폭력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미 법무성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절도나 소매치기 같은 ‘물건을 훔치는 범죄’는 약 30% 가까이 줄어든 반면, 강간이나 살인 같은 폭력범죄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1955년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제임스 딘이 보여주었던 청소년들의 방황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사라지기는 커녕 스크림의 주인공들처럼 경박하고 잔인한 형태로 바뀌기만 했다는 것이다.

강력범일수록 성호르몬 과다분비

사회학적 연구만으로 범죄를 통제하는 일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과학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특히 사회학자들의 연구 결과 중 하나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는데, ‘대다수의 범죄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저질러진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한 사회학자는 1945년에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남자 1만명에 대해 그들의 행적을 27년간 추적했다. 그 결과 그들이 저지른 살인 사건의 71%, 강간의 73%, 폭행사건의 69%가 단지 6%의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도대체 6%의 사람은 나머지 94%의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뚜렷한 이유 없이 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면 혹시 그들은 생물학적으로 폭력적인 성향을 타고난 것은 아닐까.

과학자들은 폭력 전과가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해 생물학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연구했고,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분석한 결과 상당히 일관된 결론들을 얻어냈다.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연구내용이긴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밝혀낸 몇가지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폭력적인 남자들의 경우 평균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이라는 성호르몬이 과다 분비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은 근육을 만들고 힘을 키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호르몬이다. 조지아주립대 제임스 다브 박사는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의 혈액을 조사해보니 같은 죄수들이라도 강력범일수록 체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더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브 박사의 연구결과는 많은 사회적 요인들과도 연관된 결과라서 테스토스테론이 폭력을 유발한다고 단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테스토스테론과 폭력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간접적인 증거가 된다.

최근 과학계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고 있는 내용은 폭력적인 사람일수록 세로토닌 호르몬 수치가 낮다는 사실이다. 세로토닌(serotonin)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진정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세로토닌의 수치가 낮은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 평정심을 잃고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는 성향이 높다는 것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세로토닌 분비를 관장하는 유전자를 찾고 있다. 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길 경우 태어날 때부터 폭력적인 성향을 타고날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공포영화의 걸작인 영화‘스크림’. 엽기적인 살인과 폭력을 다루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개봉시기가 3년이나 늦춰 졌다.


정상과 다른 두뇌활동

‘폭력’ 하면 또하나 빼놓을 없는 호르몬이 바로 아드레날린이다. 종종 짜릿한 흥분과 추격전, 폭력 등이 가미된 영화를 ‘아드레날린의 향연’이라고 표현한다. ‘아드레날린 드라이브’나 ‘아드레날린’이란 제목의 액션영화까지 있다. 아드레날린은 폭력과 어떤 관계일까.

아드레날린(adrenaline)은 원래 ‘부신에서 나오는 호르몬’이란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지만, 나중에 뇌에서 발견되는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것으로 밝혀져 요즘에는 주로 ‘에피네프린’(epinephrine)이라 불린다. 아드레날린(에피네프린)은 사람이 흥분할 때 근육을 긴장하게 만들고 심장박동을 증가시키며 근육이 활동할 수 있도록 포도당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 번지점프를 하거나 공포영화를 볼 때 손에 땀을 쥐게 되는 것도 바로 아드레날린 때문이다.

얼마 전 개봉한 일본영화 ‘아드레날린 드라이브’는 우연히 야쿠자의 돈뭉치를 손에 쥐게된 평범한 젊은 남녀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다루고 있다. 속도무제한의 육탄과 질주, 좌충우돌 반전과 역전이 거듭되는 줄거리를 표현하는데 있어 ‘아드레날린 드라이브’보다 더 좋은 제목이 또 있으랴!

폭력적인 사람들의 뇌는 온순한 사람의 그것과 어떻게 다를까.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이용해 뇌활동을 촬영해보니, 폭력적인 사람일수록 전두엽의 활동량이 낮은 경향이 있었다. 전두엽은 이마 뒤에 위치한 뇌영역으로서 추론과 고등사고 같은 지적 활동에 관여하는 영역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22명 살인자의 평소 뇌활동을 조사해본 결과 같은 나이 또래의 사람들보다 전두엽의 활동량이 현격히 낮았다고 한다. 사람을 윤리적으로 제어하고 사리판단을 하는 영역의 활동성이 낮아져 제어능력을 잃고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 같다고 연구자들은 해석했다.

처벌이냐 치료냐

폭력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는 인간의 폭력적인 성향을 이해하고 범죄를 줄이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리라는 전망이지만, 이런 연구가 야기하는 사회적 문제 또한 만만치 않다. 인간의 폭력성향이 생물학적인 원인에 의해 야기될 수 있다는 주장은 자칫 ‘우생학’의 망령을 되살릴 수 있다.

극단적인 과학자들은 폭력과 범죄를 일종의 질병이라고 여기며, 범죄자들을 유전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생각한다.

실제로, 범죄율이 치솟았던 1960년대 말 미국에서 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XYY 염색체를 가진 사람들이 더 폭력적이며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갓 태어난 아이들의 유전자를 검사해 XYY 염색체를 가진 아이들을 색출하려는 시도가 미 동부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나중에 XYY염색체를 가진 사람들이 지능이 다소 떨어지는 경향은 있으나 비정상적인 폭력성향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XYY염색체를 가진 사람들이 더 폭력적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만약 폭력과 범죄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향에 영향을 받는다면, 과연 우리는 범죄자들에게 법적 처벌을 가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치료의 대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어떻게 그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부여할 수 있을까.

또 만약 당신의 아이가 폭력성향을 일으키는 생물학적 요인을 타고났다면, 당신은 그 아이를 범죄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할 것인가. 아이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미리 프로그램을 충실히 따르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아직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의 대가를 치루며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예방프로그램으로부터 자유롭게 키울 것인가. 과학자들은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좀더 깊은 이해를 우리에게 안겨줄 것이지만, 앞으로 더 복잡한 사회적 문제를 떠안겨줄지 모른다.

이유 없는 폭력을 소재로 만든 영화

| 스크림 (Scream, 1996) |


웨스 크레이븐 감독, 니브 켐벨, 커트니 콕스, 데이빗 아퀘트 주연. MTV세대를 위한 공포영화의 새로운 교과서. 잘 짜여진 줄거리와 신세대 감각에 어필하는 연출, 무엇보다도 기존 공포영화들의 관습적인 장치들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면서도 그 규칙을 충실히 따라가고, 그러면서도 기존 영화들을 훌쩍 뛰어넘는 구성이 참신하고 독창적인 작품. 영화의 무대는 우즈버로라는 미국의 조그만 마을. 깜짝 카메오로 출연한 드류 베리모어와 살인 게임을 즐기는 연쇄살인자와의 숨막히는 전화 대화로 시작되는 첫장면은 여러번 패러디되기도 했다. 괴상한 마스크를 쓴 살인자가 노리는 목표는 시드니 프레스코트. 그녀는 1년 전에 있었던 엄마의 피살과 그 뒤를 캐는 열성 기자 게일 웨더스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다. 그녀가 살인자로부터 피습을 당하고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가면서 이야기는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살인 파티로 치닫는다. 살인자가 누구일지 ‘감독과의 두뇌싸움’을 벌이면서 영화를 보면 영화가 두배로 재미있다.

| 주유소 습격 사건 (1999) |

김상진 감독, 김성재, 유오성, 강성진, 유지태 주연. 네명의 건달이 각자 특기를 발휘해 주유소를 습격하는 하룻밤의 폭소액션극. 주유소라는 일상적인 공간을 스쳐가는 32명의 등장인물들 하나하나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 군상을 대변한다. 노마크(이성재 분), 무대포(유오성 분), 딴따라(강성진 분), 페인트(유지태 분)는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다가 뚜렷한 이유 없이 근처 주유소를 습격한다. 돈을 아끼기 위해 경보기도 달지 않았던 구두쇠 주유소 사장(박영규 분)은 책상 밑에 감추어둔 돈뭉치를 4인조가 눈치채지 않게 사수하며 날이 밝기만을 기다린다. 4인조는 주유원 대신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으며 기름값을 챙긴다. 손님들과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이 끊임없이 폭소를 자아내지만, 사태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눈덩이처럼 커진다. 결국 동네 폭력배 수십명과 뒤늦게 출동한 기동경찰대들과 뒤엉켜 대규모 패싸움을 벌인다. ‘웃음 뒤의 페이소스’보다는 폭소 자체가 주는 ‘2시간의 통쾌함’을 만끽해야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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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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