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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로 치닫는 투명인간의 욕망 할로우 맨

만일 내가 투명인간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화‘할로우 맨’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던 투명인간 이야기를 화려한 특수효과와 함께 실감나게 그려낸 작품이다. 지난 5월 11일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한 이번 방담회에는‘정재승 박사의 사이코 시네마’로 잘 알려진 고려대 물리학과 정재승 교수가 참석했다. 정교수가 얘기하는 투명인간의 가능성, 패널들이 주고받는 영화 속 과학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파멸로 치닫는 투명인간의 욕망 할로우 맨


미 국방성이 추진하는 일급비밀 프로젝트,‘ 투명인간실험’. 최고의 과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은 실험용 고릴라를 투명하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과 실험결과에 도취된 주인공 세바스찬 케인(케빈 베이컨)은 규정을 무시하고 바로 자신에게 위험한 투명인간 실험을 강행한다.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험대 위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 투명인간이 된 케인. 그는 실험의 성공적인 결과에 만족해 기쁨에 사로잡히고 사흘 뒤 원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주사를 맞지만, 엄청난 고통만 가해질 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케인은 보이지 않는 공포에 시달림과 동시에 내재된 욕망과 망상에 사로잡혀 점점 공격적으로 변화하는데….


ㅣStaffㅣ
원제 : Hollow man
감독 : 폴 버호벤 출연 : 케빈 베이컨, 엘리자베스 슈, 조쉬 브롤린
촬영 : 조스트 바카노

ㅣ참가자(가나다순)ㅣ
김의준(인터메이저, 의준), 노성래(노아시스템, 성래), 박상준(SF 해설가, 상준), 이충환(과학동아 기자, 충환), 장미경(과학동아 기자, 미경), 정재승(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정교수)

ㅣ영화 속 특수효과 이야기ㅣ
할로우 맨의 특수효과를 위해 투입된 인원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컴퓨터로 모델링된 고릴라와 디지털 인간을 만드는데 총 2백80여명의 특수효과팀이 참여했으며, 물과 증기, 불에 닿는 까다로운 촬영을 위해 1백20여명의 아티스트와 테크니션이 참여했다. ‘투명인간’이 된 모습을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해 주인공 케빈 베이컨을 사이버 스캔해서 신체의 각 부위를 측정하고 테스트한 후, 25명 가량의 전문가들이 분담 작업하고 각 신체 부분들을 모았다. 세바스찬에게서 물이 떨어지는 장면은 몸의 표면을 물처럼 보이게 칠한 후 그 위에 파티클 워터를 컴퓨터상에서 만들어 움직일 때마다 물이 떨어지도록 했다. 또한 연기 속에 있는 투명인간을 제작할 때는 1백개 이상의 소화기가 사용됐다고 한다.

ㅣ<;할로우 맨>;의 별점ㅣ★★★
사이언스 별점은 영화의 작품성보다는 과학성과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방담회 참가자들이 평가한 점수다(다섯개 만점).

미경_ 투명인간은 만화나 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잖아요. 뭐 생각나는 거 있나요?
상준_ 저는 ‘도깨비감투’라는 만화를 즐겨 봤어요. 다들 기억나시죠?
정교수_ 생각나요. 그 만화에서는 투명인간이 권선징악의 도구로 사용됐죠.
충환_ 맞아요. 착한 투명인간이 나타나서 좋은 일만 한다는 내용이예요.
상준_ 1930년대 H.G. 웰즈의 소설에 등장하는 투명인간은 비정상적인 생각을 갖는 과학자예요. 그 모습도 좀 우스꽝스럽죠. 온몸을 미라처럼 붕대로 감고 선글라스와 중절모, 코트에 장갑을 꼈으며, 코는 만들어 붙인 것처럼 이상하고…. 그 투명인간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발을 내딛지도 못하고 마을 안에서 최후를 맞이하죠.
정교수_ 저도 읽은 기억이 나요.
상준_ 이번 영화 역시 H.G. 웰즈의 투명인간이라는 작품을 계승했어요. 작품 속에서 투명인간을 표현하는 원어는 ‘invisible man’인데, 이번 영화 제목은 ‘hollow man’인 이유가 뭘까요.
의준_ ‘hollow’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비어있다, 거짓이다 등 부정적이잖아요. 주인공이 그렇다는 것을 제목에서 미리 표현하는 일종의 ‘암시’ 같아요. 영화 제목 외에도 주인공의 이름에서 나타나는 암시가 있어요.‘카인과 아벨’에서의 카인이 주인공의 이름이잖아요. 영화에서 복선을 깔 때 주로 이름을 사용하듯 이 영화에서도 그런 장치를 활용한 것 같아요.
미경_ ‘할로우’라는 제목을 빗대어 상징적으로 해석하자면 주인공은 머리와 영혼이 비어있다거나 마음이 허한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오네요. ^^
상준_ 실제로 영화에서 그렇게 표현되잖아요.
의준_ 잠깐 영화감독에 대한 얘기를 해보죠. 폴 버호벤의 영화 중 우리가 최초로 접한 영화라면 단연 ‘로보캅’이겠죠. 그 뒤로 ‘토탈리콜’ ‘원초적 본능’ ‘쇼걸’ ‘스타쉽 트루퍼스’ 등 비주얼에 강한 작품이 많았어요. 그런 작품을 생각해보면 폴 버호벤은 주로 인간의 내면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스타쉽 트루퍼스를 예로 들면 군국주의니 제국주의니 정치적 사상이 담겨있고, 이번 영화에서도 인간의 본능적인 면에 대해 적나라하게 표현했잖아요.
상준_ 토탈리콜이나 할로우 맨, 스타쉽 트루퍼스는 다 원작이 있는 작품이었죠.
성래_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어요. 스타쉽 트루퍼스의 원작을 쓴 사람은 ‘로버트 하인라인’인데, 개인주의보다는 군국주의, 전체주의 사상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체주의를 비판하기도 했죠. 상황에 맞지 않는 코믹한 장면이 나오잖아요. 저는 처음엔 그걸 이해하지 못했어요.
정교수_ 폴 버호벤 감독의 독특함이 작품 속에 반영되는 것 같아요. 로보캅이나 토탈리콜도 인간의 정체성을 건드리는 영화잖아요. 그는 인간 내면에 있는 성적 욕구나 폭력 등 근본적인 욕망을 주제로 삼기도 합니다. 감독의 이런 의도는 ‘왜 투명인간이냐’라는 문제와 결부되죠. 투명인간이라는 장치를 통해 인간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의준_ 투명인간이라는 단어의 의미부터 생각해보고 싶어요. 투명인간이라는 단어는 비과학적인 용어 아닌가요? 저는 투명인간의 제작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투명인간은 과학이라는 탈을 쓰고 우리 앞에 나타나지만, 앞서 말씀하신대로 실제로는 인간의 욕망을 그냥 표현하고 싶은 단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준_ 의준씨는 과학적으로 투명인간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전제 하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군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과연 투명인간이 가능한가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의준_ 투명해질 수는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인간의 몸이 투명해진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정교수_ 투명인간이 가능할 수 있겠죠. 대학재학 시절, 전자기수업이 끝나고 그 부분에 대해 토론한 기억도 떠오르네요.
미경_ 조금 전에 투명인간이라는 용어가 과학적이냐 비과학적이냐는 말을 했는데,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케인은 보이지 않는 공포에 시달리며 점차 악마성을 드 러낸다.


정교수_ 저는 상당히 과학적인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invisible’이라는 용어가 ‘투명하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원작자가 쓴 개념부터 생각해 봅시다. 웰즈의 설정은 사람 몸에 있는 굴절률을 공기의 굴절률과 똑같이 만드는 약품을 개발했다는 것이죠.
1800년대는 빛의 파동이론이 많이 발전하던 시기였어요. 호이겐스, 맥스웰, 헤르츠 등의 학자들이 빛의 파동에 대해 연구했고, 굴절률이 어떤 개념인지 알게 됐죠. ‘인비저블 맨’이라는 말은 굴절률을 포함하지 않는데, 그 용어를 번역할 때 투명인간이라고 해서 잘 번역한 것 같아요. 즉 ‘인비저블하게’ 된 원리를 포함해서 제대로 붙인 것이라는 말이죠.
상준_ 그렇군요. 하긴 투명인간에서의 ‘투명’이라면 ‘transparent’라는 용어를 써야 할테니까요.
정교수_ 먼저 ‘우리가 어떻게 사물의 색을 보느냐’부터 생각해 봅시다. 제가 파란색 옷을 입고 있는데, 이 색깔을 어떻게 알아볼까요. 모든 파장을 갖고 있는 백색광이 들어오면 옷은 파란색 파장을 제외한 모든 파장을 흡수합니다. 즉 파란색 파장만을 반사하기 때문에 파란색이 보이는 것이죠.
몸의 분자들도 모두 자연 진동수로 떨고 있는데, 그 떨고 있는 것과 똑같은 진동수의 빛이 들어오면 공명이 일어나면서 흡수됩니다. 투명해지려면 두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하죠. 첫째, 굴절률이 같아야 합니다. 빛이 들어왔을 때 꺾이지 않고 통과해야 할테니까요. 둘째, 자연 진동수가 빛의 진동수와 달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X선은 우리 몸을 지나가잖아요. X선은 고진동수로 떨고있기 때문이죠.
충환_ 그렇다면 투명해지기 위해서는 우리 몸의 자연 진동수도 영역이 달라져야 되겠군요.
정교수_ 분자들의 떨림을 꽉 조여줘야 하죠. 하지만 우리 몸이 물로 이뤄져 있고, 수소결합이 우리 몸을 조이고 있기 때문에 분자들의 떨림을 조여준다면 정상적인 생명활동이 불가능하거나 구조가 깨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충환_ 그렇다면 투명해진다고 가정했을 때 영화에서처럼 피부부터 내부로 들어가면서 투명해지는 것이 가능합니까.
정교수_ 사실 그 장면은 옥에 티예요. 투명하게 하는 물질을 주사하면 닿는 부분부터 투명해져야 하는데, 피부부터 투명해지잖아요.
성래_ 그렇게 표현해야 더 멋있잖아요. ^^
정교수_ 그게 바로 할리우드 영화에서 어떤 방식으로 특수효과를 나타내느냐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실제로는 내부부터 사라지고 맨 마지막에 피부가 없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표현할 경우 밋밋하잖아요.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지만 상상력을 동원해서 특수효과로 대체한 것이죠. 해부학적 구조를 나타낸다고 느낄만큼 엄청난 특수효과로 과학적 오류를 지적할 ‘여유’를 주지 않아요. 너무 멋진 특수효과 때문에 놀라고만 있는 것이죠.
충환_ 혈관에 닿는 부분이 투명해지는 것은 너그럽게(?) 눈감아 줄 수 있다고 해도 전부 없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습니다.
성래_ 또 하나 이상한 것은 투명인간을 보면 애석하게도 다 남자예요. 투명인간을 통해서 주로 남자의 성적 욕망이 표출되고 있죠.
미경_ 투명인간이 되면 다들 성적인 욕망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될까요.
성래_ 옷을 입으면 성적 상상이 그나마 수그러지지 않을까요. 투명인간이라면 비록 상대방이 보지 못한다해도 내가 발가벗고 있는 상태라서 그런 욕망이 생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투명해지는 옷을 개발해서 투명인간이 된다면 옷을 입어야 하니까 성적 욕망이 줄어들 것 같아요.
정교수_ 할로우 맨을 보면서 놀란 점이 있어요. 투명인간을 다루는 영화를 보면 주로 미친 과학자가 개인적인 호기심이나 영웅심 때문에 투명인간 약을 개발한다고 나오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국방성 프로젝트용으로 투명인간 실험이 진행됩니다. 현 시점에서는 실험실 수준에서 개인의 호기심이 아닌, 군사적인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인데, 실제로 생각해보면 투명물질이 군사적 효용가치가 있을 것 같진 않아요. 내가 무장상태가 아니라면 투명해진다고 해도 위험하고, 내가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별로없잖아요.
상준_ 맞아요. 기껏해야 적의 말을 염탐하는 정도라고나 할까요.
의준_ 또 투명인간은 음식을 먹을 수 없겠죠. 먹으면 내장에 있는 것이 보이잖아요. 그래서 영화에서는 구역질할 때 음식물이 보이지 않는 등 음식물 자체도 투명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상준_ ‘투명인간의 사랑’이라는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오죠. 음식물이 위장까지 차있는 모습이 보이고, 담배를 피우면 연기가 폐 모양으로 나왔다가 사라지고….
정교수_ 저도 잘 기억나요.
성래_ 투명인간의 행동이 잘못 표현된 것 같지 않아요? 예를 들어 우리가 물건을 집을 때는 무의식적인 피드백이 작용하잖아요. 근데 내 몸이 투명하다면 내 손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눈을 감고 잡는 것과 똑같아요. 하지만 주인공은 너무나 쉽게 물건을 집고 계단을 내려갑니다.
미경_ 투명인간이라면 계단을 내려갈 때도 넘어지기 쉽겠군요.
정교수_ 제가 미국에 있을 때 봤던 ‘X파일’에 나오는 내용 중 기억나는 게 있어요. 램프에서 지니가 나타나 세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자 투명하게 해달라고 하죠. 자신이 투명하게 되자 너무 좋아서 뛰쳐나가다가 차에 치어 죽어요. 남이 나를 보지 못하는 게 더욱 힘들지 않을까요?
충환_ 그러고 보니 본다는 것이 무척 중요하군요. 모든 것이 시각이라는 피드백을 통해 작용하니까요.
정교수_ 이쯤에서 ‘인간이 왜 피부색을 갖게 됐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군요. 피부색도 필요해서 생겨났어요. 멜라닌 색소가 많으면 피부가 검고, 적으면 하얗습니다. 그렇다면 ‘멜라닌 색소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먼저 통일된 이론에 따르면 멜라닌 색소는 자외선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자외선은 DNA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만일 인간이 투명해지면 빛을 직접 받아서 암으로 시달릴 수 있겠죠.
성래_ 신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많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깨달을 때가 바로 거울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때라는 말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아이의 코에 립스틱을 쿡 찍어 바르고, 거울 앞에 세웠을 때 아이가 거울을 보면서 립스틱을 지우면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이죠. 만일 구별하지 못하면 얼굴에 뭐가 묻었는데도 지우지 못합니다.
정교수_ 맞아요. 거울 속 자기가 자기인 것을 구별하는 유아 단계가 있어요.
상준_ 그런 사례는 시각 장애인의 경우에 비춰봐야 하지 않을까요.
성래_ 시각 장애인은 색 자체를 모르는 것이잖아요.
정교수_ 시각 장애인인 경우는 시각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생활하니까 시각 정보 외의 다른 정보로 주변을 인식합니다. 하지만 투명인간의 경우 외부는 인식하지만 자기를 보지 못하는 것이죠.
미경_ 이 영화는 투명인간이 시각을 갖고 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어서 그런 설명이 가능하지만 사실 투명인간은 장님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상준_ 그렇죠. 투명인간은 모든 게 투명하니까 볼 수 없겠죠.
충환_ 그러면 실제로 투명인간이 볼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없을까요.
정교수_ 망막이 아주 불투명하지도 않고 뿌연 것인데, 다른 건 안보이게 하고 망막만 조심스럽게 드러낸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네요. ^^
상준_ 투명인간이 시각을 갖추려면 망막만 투명하지 않으면 다 해결되는 겁니까?
정교수_ 망막에 빛이 오면 빛이 신경섬유를 따라서 대뇌로 가거든요. 시각 담당이 뇌 뒤쪽에 있어요. 신경이 눈으로 교차해서 가는데, 그 선을 따라서 갈 수가 없어요. 빛이 나와서 그 시각 중추까지 가려면 섬유들이 몰려 있는 길을 따라 가야 하는데, 제대로 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상준_ 그것도 과학적인 과정인가 보죠?
정교수_ 광섬유처럼 빛을 가이드하는 것이죠.
상준_ 결국 시각을 갖추려면 약간의 털이 달린 망막 비늘이 둥둥 떠다녀야 하겠군요. ^^
성래_ 신경이 앞쪽으로 나와서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이죠.
미경_ 이 영화에서 가장 부각되는 부분이 특수효과잖아요. 수많은 특수효과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죠.
의준_ 정말 이 영화는 특수효과의 잔치 같아요. 영화를 만들고 난 뒷얘기를 조사해 봤는데, 여기에 들어간 특수효과팀이 2백80여명이라고 해요. 또한 특수효과가 약 5백72개 쓰여졌고, 엄청난 시간동안 특수효과 촬영을 했죠. 주연배우인 케빈 베이컨이 연기할 때 몸에 녹색이나 푸른색의 옷을 입거나 색칠을 하고 연기를 했다고 해요. 그걸 전문 용어로 ‘블루스크린’이라고 하구요.
정교수_ 이 영화는 초록색을 사용했어요.
의준_ 계속 초록색을 입고 촬영해서 상당히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는 케빈 베이컨을 좋아해서 이 영화를 봤는데, 얼굴을 자주 볼 수 없어서 아쉬웠어요. 배우의 개성적인 감정이 표현되는 표정을 잘 볼 수 없어서 나중에는 그 사람이 악해지는 것도 설득력을 잃었던 것 같아요.
성래_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교수_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사실 투명하게 하는 건 쉽잖아요. 그냥 보이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촬영하면 되니까. 투명하지만 존재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투명인간을 다루는 영화의 특징이자 딜레마입니다.
폴 버호벤 감독은 그런 장치들을 많이 만들어놨어요. 예를 들어 수영장에서의 장면, 스팀을 통해 몸에 비추는 것, 피를 던지는 것 등에서 그런 걸 느낄 수 있죠. 만일 케빈 베이컨이 아니라 모르는 배우라면 리얼한 표정이나 장면을 상상할 수 없을 거예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케빈 베이컨을 계속 상상하게 하는 것이죠.
상준_ 그렇군요. 저는 주인공의 실제 모습이 나올 때 지나치게 악하게 연기한다고 생각했는데, 관객으로 하여금 투명해졌을 때 악한 이미지를 잘 연상할 수 있도록 과장 연기를 했을 수도 있겠군요.
성래_ 배우의 직업 설정에서 차라리 유명한 과학자라기보다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일반인이 투명인간이 되면서 변해가는 내면세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욕망을 분출하고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며, 자신에 대해 고뇌하는 등 그런 모습을 다뤘다면 더 실감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경_ 근본적인 문제, 즉 투명하지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 때문에 옥에 티가 많이 생기지 않았나요?
정교수_ 몇가지 오류가 있어요. 투명한 고릴라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실험에서 뇌에 전극을 꽂아놨을 때 고릴라는 안보이고 전극은 보입니다. 이를 통해 뇌파와 뇌전도도를 알 수 있다는 장면이 있구요.
주인공을 원래 상태로 복원하려다가 실패할 때도 꽂고 있죠. 하지만 주인공을 투명하게 만드는 실험에서는 전극을 꽂지 않고 있는데, 뇌파나 뇌전도도를 보는 장면이 있어요. 전극을 꽂고 있으면 해부학적 명장면이 손상되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표현한 것이죠.
상준_ 영화에 또다른 옥에 티는 없었나요?
정교수_ 주인공이 불에 뎄을 때 덴 부분이 떨어져 나오는 것도 잘못됐어요. 불에 데는 것은 단백질이 변형되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남아있게 됩니다. 턴다고 재가 날리는 것처럼 털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상준_ 털릴 정도면 완전히 타서 숯만 남을 정도여야 하겠죠?
정교수_ 탄 부분을 잘라낸다면 또 모르겠어요. 투명한데 묻은 것처럼 털려 나가서 이상했어요.
미경_ 전류가 흘렀을 때 감전되는 장면에서도 옥에 티를 찾을 수 있어요. 투명인간이 고압전류에 감전될 때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멀쩡했잖아요.
정교수_ 여성 과학자와 남성 과학자를 다른 방식으로 그렸다는 점도 주목할만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여성 과학자가 두명 등장했는데, 환경친화적이고 동물을 사랑하며 정의롭게 표현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했어요.
반면 남성 과학자는 노벨상에 사로잡혀 있고 일중독증에 시달리면서 명예만을 추구하는 미친 과학자의 전형으로 표현되죠.
의준_ 등장인물의 내면세계를 고려할 때 ‘플라이’라는 영화와 이 영화를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두 영화의 공통점은 실험이 실패한다는 것이죠.
어떤 현상에 의해서든 부작용이 생기는데, 플라이에서는 주인공이 파리인간으로 형태가 변모하면서 자기 혐오와 자괴감 등이 생기는 것으로 내면이 표현되고, 투명인간에서는 자기가 투명해짐으로 인해 폭력성이나 욕망이 나옵니다. 과학자의 모습이나 그런 식으로 전개되는 영화의 스토리를 분석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상준_ 할로우 맨보다는 플라이가 인간적인 정서가 흐르는 작품이었죠.
충환_ 동물 실험도 나오잖아요.
정교수_ 할로우 맨에 나오는 동물실험은 실제와 비교했을 때 무척 비정상적입니다. 실험대상 동물들을 다양하게 넣어놨잖아요. 실제로는 동물들이 매우 민감해서 한종류의 동물을 몰아서 넣어놓지 그렇게 다양하게 넣을 수 없어요. 동물에게 주사하러 우리에 들어갔을 때 문을 잠그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 안되죠.
미경_ 동물실험에서 실험의 완성도를 테스트할 때 고릴라 같은 거대 동물이 바로 사용되기도 하나요. 보통 쥐가 가장 흔한 실험용 동물이잖아요.
정교수_ 어떤 화학물질을 발견했는데, 안정적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해서 고릴라에게 직접 투여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먼저 세포에 뿌렸을 때 세포가 없어지는 것을 보고, 그 다음엔 기관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그 뒤 개체로 넘어가죠. 쥐 같은 작은 실험 동물을 테스트하죠. 물론 영화에서와 같이 동물실험에 성공한다고 해서 사람한테 곧바로 테스트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구요.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비밀 실험실이었잖아요.
충환_ 실험실도 지하 벙커식으로 돼 있어요.
정교수_ 주사를 놓으려고 하자 고릴라가 도망가는 장면도 생각나죠? 시간이 지날수록 난폭해진다는 얘기가 나오더라구요. 주인공도 투명인간이 된 후 시간이 흐를수록 난폭해지고, 인간의 폭력성이 생물학적 반응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옵니다. 실험대상이라면 24시간 모니터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투명하게 만들고 나서 그냥 방치하잖아요. 그것도 현실과 맞지 않는 장면입니다. 동물 실험이 상당히 비인간적이고 학대에 가까운 실험이 많아서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도 민감합니다. 사체 처리 문제도 있어요. 이런 사안이 동물을 보호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문제이지만 한편으로는 실험이 갈수록 잔인해질 수밖에 없거든요. 좀더 고등한 생명활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의 자극을 줘야 하고, 그것이 동물들에게 지나친 자극이죠. 제가 했던 동물 실험도 정말 끔찍했답니다.
성래_ 실험실에서 실험용 쥐를 많이 죽일 경우 나중에 위령비를 세워 주는 사례도 있더라구요. 물론 동양적인 거겠죠.
충환_ 사람이 진짜 안보이면 악해지기만 할까요. 그런 측면을 함께 생각해 볼만하지 않아요?
상준_ 타고난 천성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요.
의준_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투명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얘기해보죠. 먼저 저는 여자 목욕탕에 한번 가고 싶어요. ^^
상준_ 저라면 세상을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바꾸는데 일조할 수 있는 이벤트를 생각해봤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편견으로 특정 인간을 정해서 혼내준다거나.
충환_ 저는 구체적으로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은행을 털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 농담이구요. 착한사람에게는 득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는 홍길동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성래_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앞에서 다 하신 것 같아요. 목욕탕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욕망보다 한명을 찍어서 쫓아다니고 싶어요. 목욕탕 같은 곳에간다면 5분만 봐도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것 같거든요. ^^
의준_ 이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우리는 욕망을 해결할 수 있는 많은 장치들을 사회적으로 이미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몰래카메라, 도청장치, 감시카메라….
정교수_ 어렸을 때 학급 신문에 내가 투명인간이 된다면 무엇을 할까에 답을 한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반공이데올로기가 강해서 북한에 가서 공산당을 물리친다는 글을 썼어요. 지금 투명인간이 된다면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나 없는 곳에서 무슨 얘기를 주고받는가 그런 것을 알아보러 다닐 것 같아요.
충환_ 결국은 그다지 좋은 얘기가 나오지 않는군요. ^^
정교수_ 폴 버호벤이 한 영화 잡지와 인터뷰하면서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했던 기억이 납니다. 끼면 투명해지는 반지를 주운 사람이 왕궁으로 들어가서 여왕과 동침하고, 왕을 죽인 다음 자기가 왕이 되는 내용이예요. 절대 권력을 가진 자는 스스로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그렸다고 하는데, 영화에서 주인공이 나는 신이라는 얘기를 자주 하잖아요. 저는 그걸 익명성이라는 코드로 읽었는데, 폴 버호벤은 절대 권력으로 표현하고 싶었나봐요.
의준_ 그렇다면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파멸한다는 것이 결론인가요.
상준_ 그런 결론은 조금 비약된 것 같군요.
정교수_ 현대사회에서 우리들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 숨고 익명성을 앞세워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투명인간이라는 리얼 스페이스 버전으로 자신의 내재된 욕망을 드러내고 궁극적으로는 파멸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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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만화

    박찬영
  • 진행

    장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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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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