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컴퓨터와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포스트PC가 곧 등장할 예정이다. 휴대폰이 개인 모두에게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통신시대를 연 것처럼, 포스트PC는 어떤 형태로든 사용자에게 항상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줄 전망이다.
지난 1970년대부터 약 30년 동안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을 바꿀 정도로 혁명적인 발전을 거듭해오던 컴퓨터 분야가 이제 다시 한번 질적인 도약을 맞이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컴퓨터 분야가 데스크탑 중심의 하드웨어와 유선으로 연결된 인터넷이었다면, 가까운 미래의 컴퓨터 환경은 휴대전화 형태의 작은 컴퓨터와 무선 인터넷으로 대표될 것이라는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손바닥보다 작은 휴대용 PC를 가지고 다니면서 영상 통신, 무선 인터넷, 온라인 영화 등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그 모든 영상들이 PC 위에서 3차원 입체 홀로그램으로 표현돼 실제 사람이 움직이는 것과 동일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구 정지궤도를 돌고 있는 수백개의 통신위성을 통해 24시간 끊임없이 소통되는 정보는 전세계 모든 도로 정보, 건물 정보, 사람의 위치 등을 알려준다. 잃어버린 아이도 위치 추적장치로 곧바로 찾을 수 있고, 외국인과 만나면 실시간 통역 시스템으로 불편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집에 있는 모든 가전제품들은 네트워크로 연결돼 집 밖에서 휴대용 PC로 밥도 할 수 있고, 설거지도 할 수 있으며, 도둑의 침입도 영상으로 감시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이야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실현된 기술들도 있고, 가까운 미래에 사용되고 보편화될 기술들이다.
“데스크탑 PC 여전히 중요”
이런 미래를 가져다줄 포스트PC에 대한 정의나 개념이 확립된 상태는 아니다. 즉 특정한 형태나 조건을 갖춘 PC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재의 PC가 지니고 있는 단점을 극복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더욱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하는 모든 컴퓨터 관련 시스템을 넓은 의미에서 포스트PC라고 말한다. 자동화되고 네트워크가 보강된 가전제품도 포스트PC의 한 종류다.
또한 데스크탑 PC를 대신할 포스트PC의 형태나 표준화도 아직 합의되거나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지금까지 유지되던 컴퓨터 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포스트PC는 어떤 형태로 발전하게 될 것인가를 놓고 많은 논쟁들이 오가고 있다. 이와 같은 논쟁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됐던 2000년 컴덱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인 빌 게이츠는 컴덱스에서 PC의 중요성을 수없이 강조했다. 1만5천여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행사장에 갈색 정장에 넥타이없는 차림으로 나타난 빌 게이츠는 A4 크기만한 신형 휴대용 PC인 펜으로 입력가능한 ‘태블릿 PC’를 선보이며 연설을 시작했다.
“아무리 날씬하고 사용이 간편한 휴대용 디지털 기기라 하더라도 데스크탑 PC만큼의 성능을 갖추어야 한다”며 포스트PC 시장을 겨냥해 잇따라 선보이고 있는 휴대용 단말기가 PC의 성능을 갖추지 못하면 포스트PC의 자리를 넘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빌 게이츠는 또한 “일부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 각 개인의 PC 기능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처럼 서버가 모든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라며 “인터넷에서 정보를 잘 가려내서 활용할 수 있는 데스크탑 PC의 필요성은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빌 게이츠의 주장은 현재의 데스크탑 시스템에서 가장 큰 영향력과 이득을 보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포스트PC의 대표적인 형태로 떠오르고 있는 휴대용 단말기에 대한 공격인 것이다. 각 업체나 회사별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형태의 제품이 포스트PC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에서 이러한 논쟁은 시작됐으며,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차기주자 휴대폰, PDA, 웹패드
포스트PC의 선두자리를 기존 PC의 하드웨어 부분을 크게 줄이고, 제품 크기도 아주 작게 만든 ‘씬컴퓨터’(Thin PC)와 전자수첩 크기의 휴대하기 편한 PDA(개인휴대단말기) 등이 노리고 있다. 여기에 모바일 인터넷 기능을 장점을 내세우는 기기로 현재 가장 많이 보급돼 있는 휴대폰, 그리고 데스크탑 PC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 포켓 PC와 웹패드 등도 포스트PC 자리를 넘보고 있다.
미국 휴렛팩커드(HP)의 류 플랫 전임회장은 “PC기능 중 사용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은 5% 정도에 불과하다”며 “휴대용PC, PDA 등은 PC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능을 집적해놓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 포스트PC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각각의 기기들 중 하나만을 사용하기에는 아직 사용자의 요구를 완벽하게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즉 사용자들에게 휴대가 간편하고, 무선이며, 인터넷과 접속해야 한다는 세가지 특성을 충족시키고 있지 못하다. 이런 이유로 사용자가 들고 다니면서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고, 각 기기들이 갖고 있는 고유기능에 덧붙여 인터넷 기능을 단순하게 추가시키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논쟁은 과연 어떤 기기의 형태로 기능이 통합될 것이냐에 맞춰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에 PDA 기능이 추가되는 형태가 될 것이냐, 오히려 PDA가 활용도가 더 크므로 여기에 무선기능을 강화한 제품이 더 유력할 것이냐, 아니면 데스크탑 PC와 가장 가까운 포켓 PC나 웹패드가 높을 것이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조차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같은 결론은 쉽게 정리될 것 같지는 않다. 또한 하나의 형태로 통합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가전제품에서 라디오가 라디오 나름대로의 기능을 자랑하고, 가습기가 가습기 나름대로의 기능을 자랑하듯 각 제품이 하나로 합쳐질 수 없는 것처럼 기기마다 지니고 있는 고유한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도전
하지만 이번 컴덱스에서 나타난 것처럼 새로운 형태에 대한 시도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고, 또 분명 어떤 형태로든 그 모습은 갖춰갈 것이다. 이번 컴덱스에서 가장 큰 변화는 인터넷과 무선통신, 소형 PC의 결합이었다. 현재의 PC 형태를 좌우하고 있는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컴퓨터 환경에 대해 휴대용 PC와 무선 인터넷이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던 PDA(개인휴대단말기)에 무선통신기능을 강화시킨 제품이 포스트PC의 선두를 차지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되고 있다.
이것은 사람이 컴퓨터가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변화를 가져왔다. 언제 어디서든지 원하는 사람과 통신할 수 있고, 필요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으며, 문자, 영상, 음성, 그래픽 등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방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것이 포스트PC의 개념을 실현시켜주는 것이다.
포스트PC의 선두자리를 노리고 있는 PDA에서 미국의 팜 계열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중심으로 하는 포켓PC 계열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한편으로는 PDA가 포스트PC 자리를 넘보는 것을 비판하면서도 그 가능성을 무시하지 못해 PDA에도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윈도CE를 운영체제로 채택한 포켓 PC 계열은 컴팩의 아이팩, HP의 조나다, 카시오의 카시오페아, 엠플러스텍의 제스 등이 있다. 포켓 PC 계열 제품은 기존 데스크탑과 완벽하게 호환되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다, PDA의 하드웨어 환경이 팜 계열보다 월등히 좋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제품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윈도CE에서 작동하는 응용 프로그램이 매우 적다는 것이 단점이다.
PDA 분야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지만, 기존의 데스크탑 PC와의 관계에서 PDA 진영은 2001-2002년 사이에 데스크탑 PC 분야를 제치고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제품으로 예견되고 있다. 이미 다양한 형태의 PDA 주변기기들이 선보이고 있어 데스크탑 PC를 대신할 수 있는 영역이 더욱 넓어지고 있다. PDA용 무선 모뎀, 위성 위치정보 수신기, 휴대용 키보드, 음성 녹음장치, 카메라 등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이 출시됐다.
다기능 일원화에서 단기능 다양화로
하지만 ‘ㅎ·ㄴ글’로 유명한 드림위즈 대표인 이찬진은 “모든 기능을 통합한 제품이 나온다고 해도, 현재 사용하는 휴대폰으로 전화와 통신을 하며, 전화번호를 찾거나 증권정보를 얻을 것이고, 개인정보관리와 전자우편을 위해 무선데이터 통신 기능이 내장된 PDA를 이용할 것이다. 그리고 데스크탑 대용으로 웹패드에 접는 키보드를 붙여서 사용할 것이다. 이 정도라면 그다지 불편하지 않게 인터넷을 몸에 붙이고 다니는 게 아닌가 싶다”며 새로운 제품의 등장이 무조건적으로 기존 제품을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 도쿄대학의 사카무라 켄 교수는 “기존 PC가 다양한 기능을 하나로 통합하는 ‘다기능 일원화’를 추구했다면, 포스트PC는 특정기능을 수행하는 다양한 형태의 단말기로 ‘단기능 다양화’를 지향하고 있다”며 “디지털 시대에는 이같은 포스트PC가 커뮤니케이션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포스트PC가 어느 한가지 형태로, 즉 형식적인 틀에 맞춰진 제품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모습, 즉 다원화된 사회처럼 각 기기도 다양화된 특성을 자랑하며 발전할 것으로 전망한다.
생활의 편리성은 무시못해
현재 기술 발전, 표준화 등 넘어야할 산이 많지만 포스트PC 시대는 곧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포스트PC 시대가 되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바뀐 환경은 지금보다 얼마나 더 좋아지는 것일까.
지금은 각 가정과 직장에 데스크탑 PC가 있고, 노트북 컴퓨터를 가지고 다니며 업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특정한 장소에 컴퓨터를 두거나, 부피가 큰 노트북 컴퓨터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더군다나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모뎀, 케이블, 초고속통신망 등을 모두 유선으로 연결해야 한다. 무선 인터넷이 되는 노트북 컴퓨터가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부피가 큰 것이 단점이다.
하지만 포스트PC 환경은 PDA로 대표되는 컴퓨터의 소형화, 무선 인터넷 기술, 위성 TV, 초고속 통신망, 무선 네트워크, 음성 데이터 통신 등을 가능케 한다. 휴대용 컴퓨터는 동영상 전화기로 사용되며, 각종 개인 정보를 담고 있고, 무선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각종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음악, 영화 등 멀티미디어 자료를 검색하며 모르는 길을 갈 때, 가장 빠른 길, 차가 막히지 않는 길 등 지리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현재의 컴퓨터 환경에서 가장 열악한 부분이 바로 네트워크 환경이다. 기업에서는 랜(LAN)으로 연결돼 있어 자료나 정보를 교환하기가 쉽지만 일반 가정에서는 아직도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각 가정에 있는 가전 제품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사용할 뿐 서로간의 호환성이나 연결점이 없다. 즉 복합적으로 활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포스트PC 환경에서는 모든 컴퓨터와 전자제품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누구든지 컴퓨터로 전자레인지를 작동시키거나 외부에서 전화로 밥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 빨래와 건조도 세탁기가 자동으로 프로그램돼 있는 정보를 이용해서 처리하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할 일이 거의 없어지게 된다. 가사노동에 묶이는 시간이 줄어들고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돼 시간을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어떤 형태로 모습을 갖춰갈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생활을 편리하게 해줄 포스트 PC에 대한 기대를 지금 품어본다고 해서 빠른 것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