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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우 제로 (Tau Zero)

지구 역사와 세계로의 접근

램제트 우주선 레오노라 크리스틴호는 새로운 식민지 걸설의 꿈을 안고 지구에서 출발한다.이 거리는 우주선 안의 시간으로는 5년 정도면 거뜬히 주파할 수 있다.하지만 예기치 않은 사고를 접하게 되는데….

 

광속여행으로 새롭게 시작된 은하계와 만나다 성간물질을 추진 연료로 이용하는 우주선

23세기의 미래. 램제트 우주선 레오노라 크리스틴호가 지구에서 출발한다. 목적지는 태양계에서 33광년 떨어진 처녀자리 2등성. 이미 무인탐사선을 통해 그곳에 행성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상태다. 우주선에 타고 있는 남녀 각 50명씩 1백명의 승객들은 그곳을 직접 탐사해보고 환경이 적합하다면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해 정착할 계획이다. 우주선은 앞뒤 약 1백만km의 강력한 전자기력장에 감싸여 있으며, 전방에 존재하는 성간물질(수소, 전자, 양성자 등 우주공간에 있는 물질)들을 모아 추진 연료로 이용하고 있다. 우주선 앞쪽에는 성간물질과 선체와의 마찰을 없애고, 수소 이온의 강력한 감마방사선 복사로부터 승객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붙어 있다. 이 우주선은 전방에 성간물질이 있는 한 약 1G의 중력가속도를 영구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33광년의 거리는 우주선 안의 시간으로 5년 정도면 주파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우주선이 지구로부터 9광년 정도 떨어졌을 때, 예기치 않게 작은 암흑 성운과의 충돌 사고가 일어나 감속시스템이 고장나버린다.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고장난 부분에 수리 로켓을 보내야 하지만, 그러자면 전자기력장을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전자기력장을 제거하면 승객들은 강력한 방사선에 노출돼 모두 죽게 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결국 유일한 해결책은 성간물질이 희박한 곳, 즉 방사선이 없는 공간으로 이동한 뒤 전자기력장을 제거하고 수리 로켓을 내보내는 수밖에 없다.

성간물질이 희박한 초진공상태는 아득히 먼 우주 바깥쪽, 은하와 은하 사이의 막막한 공간 뿐이므로, 결국 그들은 은하간 공간으로 나가기로 하고 항로를 수정한다. 목적지로 잡은 방향은 4천만광년 저편의 처녀자리 국부은하군. 이제 그들은 은하계를 벗어나게 되며, 이것은 지구의 역사와 영원히 격리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상대성이론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타우(τ)’라는 인수가 포함된다. 이 수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우주선의 속도가 빨라지며, 이론적으로 타우가 0이 되면 마침내 광속에 도달한다. 그러면 나머지 바깥 우주에 비해 우주선 안의 시간은 멈추고 질량은 무한대가 되는 것이다. 은하간 공간으로 나가면 우주선의 연료가 되는 성간물질은 없지만 레오노라호는 이미 가속도를 충분히 받은 상태이므로, 운동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관성비행으로 은하간 공간을 건너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들은 우주선을 천천히 선회시켜 은하계 주위를 반바퀴 돈 다음, 상상을 초월하는 가속도로 항해를 계속한다. 그런데 은하간 공간은 예상과는 달리 수소 이온의 밀도가 훨씬 높아 우주선의 가속은 엄청난 수준으로 증가한다. 이른바 ‘타우 제로’에 한없이 근접해가는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아득한 우주공간 저편에서 우주선 수리에 성공한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목적지라는게 무의미해져 버렸다. 우주선은 거의 광속에 가깝게 날아가고 있고, 선내의 시간은 외부 세계보다 수천만배나 늘어난 상태다. 감속을 시작한다 해도 과연 어디에서 정지할 것인가.

결국 그들은 이 우주가 팽창에서 수축으로 전환하고 다음 팽창으로 넘어가서 우주의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될 때까지 비행을 계속해, 마침내 다음 우주에서 안주할 땅을 발견한다. 새롭게 생성된 은하계에서 지구와 비슷한 조건의 행성을 찾아낸 것이다.

시간여행 스토리의 대가 폴 앤더슨 1926-


폴 앤더슨


최첨단의 과학 이론을 묘사한 하드 SF에서부터 북구의 신화를 재해석한 판타지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작품세계. 데뷔 이후 50여년이 넘는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미국 SF 문학계 최고의 다작가. 폴 앤더슨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이렇듯 화려하다.

‘만능 SF 작가’ 폴 앤더슨은 스칸디나비아계 이민의 자손으로 192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났다. 1948년 미네소타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2차대전 이전에는 잠시 덴마크에서 살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 전편에 걸쳐 해박하게 펼쳐지는 북구의 언어와 문학, 그리고 과학지식들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1947년에 ‘내일의 아이들’이란 작품을 SF 잡지에 발표하면서 데뷔한 그는 현재 70세가 넘은 원로임에도 불구하고 쉼없이 왕성하게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현역 작가다. 하지만 소년 시절엔 의외로 SF를 유치한 이야기들로 치부해 거의 보지 않다가, 고교생 시절 건강이 나빠 요양을 하던중 SF의 세계에 급속히 빠져들었다고 한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이며, 이때부터 그의 장기로 일컬어지는 시간여행 이야기를 비롯해 과학적 이론을 극한까지 연역해 간 하드 SF, 풍자나 유머,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매우 방대한 작품 영역을 구축했다.

작가로서 그의 입지를 다진 최초의 작품은 1954년 발표된 ‘뇌파’(Brain Wave)이며,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타임패트롤’시리즈가 그의 이름을 크게 드높였다. 글자그대로 ‘시간경찰’, 즉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시간여행 무법자들을 다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어 일본 SF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돼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밖에 독일에서 영화화되기도 한 유머 SF인 ‘우주의 십자군’과 일종의 우주활극인 ‘호카!’ 시리즈 등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는 서양 SF 문학 사상 손꼽히는 작가이지만, 작품의 질이 고르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휴고상 등 다수의 SF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부인인 카렌 앤더슨도 SF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1980년대 이후에 ‘블러드뮤직’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SF 작가 그레그 베어는 그의 사위다.

과학적 교양 전달에 의미부여 장거리 우주여행법 설득력 있게 묘사

타우 제로는 과학적 논리 묘사에 중점을 두는 ‘하드 SF’의 고전으로 꼽힌다. 특히 이론적인 우주여행의 가능성을 사실상 극한까지 펼쳐 보였다는 점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여러가지 모양의 비행기를 고안해냈지만, 당시에는 충분한 힘을 낼 수 있는 엔진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아이디어는 설계도만으로 그쳐야 했다. 이를테면 기술보다 이론이 훨씬 앞서나갔던 것. 장거리우주선도 바로 이같은 경우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과학 이론으로 장거리 우주여행을 하는 방법은 이미 여러가지가 제시된 바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실효성이 높은 것이 바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램제트 우주선이다.

태양계가 아닌 다른 항성계로 날아가려면 최대한 속도를 내야 하는데, 그에 필요한 막대한 가속도를 얻는 방법은 로켓 추진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로켓의 설계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연료이다. 현재의 과학기술로 만들 수 있는 가장 효율이 좋은 로켓 엔진은 핵분열이나 핵융합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지만, 이 경우에도 오랜 시간 가속을 계속하기 위해선 막대한 양의 연료가 필요하다. 게다가 목적지에 도착해 우주선을 멈추려는 감속 과정에도 많은 연료가 필요하다. 가속을 받아 그만큼 질량이 증가한 우주선을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계산에 따르면 태양계에서 5.5광년 떨어진 버나드성까지 5백t의 장비와 인원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연료가 무려 6백만t 정도로 산출되기 때문에, 사실상 핵융합로켓도 항성간 여행의 실제적 대안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램제트 엔진은 이런 문제점이 간단히 해결된다. 이 방식은 우주공간에 흩어져 있는 수소 등의 성간물질들을 빨아들여 핵융합연료로 쓰는 것이다. 이 경우엔 희박한 성간물질을 다량으로 흡입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입자포획기가 필요하지만, 그래도 연료를 직접 싣고 가는 것 보다는 훨씬 효율적이다. 램제트란 원래 공기를 흡입, 압축시켜 연료와 섞은 뒤 연소시키는 엔진 방식으로 실용되고 있는 비행기 엔진의 이름이다. 미국의 물리학자인 로버트 버사드가 이 엔진 방식을 응용해 ‘항성간 램제트’라고 명명했다. 현재는 버사드의 이름을 따서 흔히 ‘버사드 램제트’라 부른다. 아무튼 이론적으로 버사드 램제트의 입자포획기는 크기가 수백km에 달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가까운 미래에 건설하기가 불가능하다. 작고한 저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램제트 우주선이 완성된다면 ‘하나의 작은 세계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타우 제로는 이처럼 항성간 우주선의 아이디어와 함께 상대성이론의 논리적 전개도 흥미롭게 펼쳐 보이고 있다. 운동하는 물체는 정지해 있는 물체보다 시간 경과가 느려지므로, 레오노라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몇년을 지내는 동안 지구는 수백-수천만년이 흘러가 버린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지구의 역사와 완전히 격리되는 것이다. 또한 우주가 팽창과 수축을 끝내고 다음 팽창의 사이클로 넘어간다는 설정은 이른바 ‘팽창우주론’의 이론적 배경을 그대로 채택한 것이다. 실로 이 작품은 과학적 교양의 전달에도 의미를 두는 SF의 계몽적 성격에 적절히 부합하는 셈이다.

원래 1967년에 단편으로 SF잡지에 처음 발표되었던 타우 제로는 1970년에 단행본 장편소설로 출간된 뒤 최고의 SF에 수여되는 휴고상 장편 부문에 후보작으로 올랐지만,과학적 상상력에 비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묘사가 미흡한 탓인지 수상은 하지 못했다.우리나라에는 1992년에 (주)나경문화에서 번역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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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박상준 SF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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