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동물들의 멸종을 막기 위해 성서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를 찾고 있다.올해 11월말에는 세계최초로 복제를 통해 멸종위기동물인 노아가 탄생할 예정이다.노아의 탄생에 맞춰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는 멸종위기동물의 복제연구를 살펴본다.
노아의 방주(Noah’s ark).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는 하느님의 심판인 홍수를 피하기 위해 커다란 방주를 만든다. 노아와 가족들은 방주에 세상의 모든 동물들을 한쌍씩 태운 후, 거대한 재난을 무사히 피한다.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는 인간과 동물을 보호해, 지구에서 이들이 다시 번창하게 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최근 생명공학계에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성서의 내용을 빗대 멸종 위험에 처한 동물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표현한 말이다. 생명공학계에 노아의 방주라는 말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9년. 미국 텍사스대 연구팀의 경우 아예 ‘노아의 방주’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해 멸종위기동물의 체세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세계 각국의 연구소들은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의 난자와 정액, 수정란, 유전자 등을 채집해 액체질소를 사용해 초저온에서 보관했다.
과학자들은 멸종위기동물의 샘플을 안전하게 보관하면, 언젠가는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해 다시 번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복제기술이 멸종위기 동물을 구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 11월 말에는 세계 최초로 복제된 멸종위기동물이 미국에서 탄생할 것으로 예정돼 태어나기 전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름도 벌써 ‘노아’로 정해졌다.
방주에 오르는 최초의 동물
노아의 정체는 가우어(gaur)다. 가우어는 인도와 인도차이나 반도 등 주로 동남아시아에 살고 있는 커다란 들소의 한 종류다. 몸무게가 1t이나 되는 가우어는 지난 세기 동안 사냥꾼들에게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무차별하게 사냥됐다. 가우어가 사냥꾼들의 집중적인 표적이 된 것은 멋진 뿔 때문이다. 현재 가우어는 대나무 숲 등 자연상태의 서식지에 대략 3만6천마리 정도가 살고 있다고 추정된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가우어를 멸종위기동물 명단에 포함시켰고,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의해 가우어의 뿔과 가죽, 발굽 등의 거래가 완전히 금지돼 있다.
가우어를 복제하는 연구는 미국의 거대 생물공학회사인 ‘어드밴스드 셀 테크놀로지’(ACT)에서 이뤄지고 있다. ACT의 의료·과학 부문 부사장인 로버트 란자 박사는 복제 분야의 권위지인 ‘클로닝’에 복제된 가우어의 탄생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발표하면서, 자신만만하게 “노아는 방주에 오르는 최초의 네발짐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ACT의 과학자들은 가우어를 복제하기 위해, 평범한 젖소에서 난자를 뽑아 핵을 제거했다. 그리고 가우어의 피부에서 채취한 체세포를 젖소의 난자와 융합해 수정란을 만들었다(복제의 세부적인 방법은 과학동아 10월호 ‘복제술로 부활하는 백두산호랑이’ 참고).
만들어낸 6백92개의 수정란 중 단지 81개만이 잉태가 가능한 단계인 배반포기까지 자랐다. 총 42개의 배반포기 배아를 32마리의 젖소에 이식했는데, 이 가운데 8마리만이 임신에 성공했다.
대부분의 젖소들은 9개월의 긴 임신기간 동안 유산했지만, ‘베시’라는 젖소 한마리가 성공적으로 대리모의 역할을 수행해 현재 임신말기 단계에 들어섰다. 지금 상황으로 판단하면, 11월 말에는 복제된 세계 최초의 멸종위기동물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노아가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
포유류 24% 사라질 위기
멸종위기동물을 구하려는 연구는 전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미 동물들의 멸종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세계 곳곳에서 직접 눈에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존연합(WCU)은 지난 10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대략 1만1천46종의 동식물이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면서, “지난 5백년 동안 멸종했거나 동물원에만 남아있다고 확인된 것이 총 8백16종이다”고 밝혔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동·식물종 가운데 5-20%가 멸종위험에 처해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9월 발표한 IUCN의 자료에 따르면 포유류 24%와 조류 12%가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화석연구를 통해 예측한 자연적인 멸종보다 약 1천배 빠른 속도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대표하면서 세계야생생물보호기금(WWF)의 로고에도 사용되고 있는 동물은 중국의 팬더다. 중국과학자들은 팬더의 근육세포와 자궁세포를 각각 추출해 일본 흰토끼의 난자와 합성해 배아를 만들어 배반포 단계까지 배양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ACT는 북미 흑곰을 팬더의 배아를 키울 대리모로 선택해 복제연구를 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봉고 영양은, IUCN의 보고서에 따르면 케냐의 일부 지역에 대략 50마리 정도만 남아있다. 미국과 케냐의 여러 단체들이 봉고 영양의 보존을 위해 연구하고 있는데, 미국의 아두본멸종위기종연구센터(AICRES)는 냉동배아를 아프리카 큰 영양에 이식해 개체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물론 복제기술이 이러한 노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백두산호랑이의 복제를 시도했다. 황교수는 백두산호랑이의 귀에서 세포를 채취한 후, 소의 난자에 넣어 전기화학적 방법을 사용해 배아를 만들었다. 이 배아를 사자에게 이식해 임신을 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임신기간(1백5일) 중에 유산됐다. 황교수 연구팀은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내년에 호랑이의 발정기가 시작되면 다시 시도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치타, 수마트라 호랑이, 오실롯(ocelot, 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고양이과 동물) 등 여러나라의 멸종위기동물들이 복제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종 사이 장벽을 넘어
양, 소, 돼지 같은 동물들이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은 복제양 ‘돌리’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어떤 종의 배아를 유사한 종에 이식해 태어나게 하는 것도 이미 가능한 기술이다. 그렇다면 복제가우어인 노아가 가진 중요한 의미는 무엇일까.
노아의 탄생은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이 복제기술을 통해 태어나는 첫 사례다. 현재 대부분의 멸종위기동물들은 서식지가 회복돼 야생상태로 되돌려지기까지 동물원에서 보호받고 있다. 그러나 서식지의 회복이 더디고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멸종위기동물들은 동물원에서 개체수가 크게 줄어들고 절멸하기도 한다.
노아의 복제기술은 멸종위기동물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막는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란자박사는 “죽은 가우어 세포를 이용해 노아를 만들었다”면서, “복제기술이 죽은지 얼마되지 않았거나 오래됐어도 잘 보관된 경우에는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노아는 다른 종 사이에서 복제가 돼 태어나는 첫번째 동물이 된다. 즉 가우어라는 한종에서 유전정보를 가진 세포를 채취했고, 이와는 다른 종인 젖소에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난자를 얻어 배아를 만들었다. 서로 다른 종 사이에서 배아를 만든 경우는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만들어낸 배아를 통해 실제 개체를 만들기 위한 시도는 많았지만, 성공한 예는 단 한차례도 없었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는 “백두산호랑이 연구가 다른 종 사이에서 임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세계최초의 연구”라면서, “다른 종이었기 때문에 성공하기가 힘들었다”고 밝혔다. 황교수의 연구에서 알 수 있듯, 다른종 사이에서는 임신시키기도 어렵고, 성공하더라도 임신기간 중에 유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올 11월말에 탄생하는 노아는 종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을 과학기술로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줄 것이다.
멸종한 동물도 가능
이미 멸종한 동물들의 경우, 복제를 통해 되살려내는 것이 가능할까. 영화 ‘쥬라기공원’의 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은 공룡을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복제기술은 완전한 유전정보를 가진 세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얼음 속에서 발굴되는 매머드나 알코올병 속에 보관돼 있는 태즈메이니아호랑이를 복제하려는 연구의 경우, 세포핵의 DNA가 많이 손상돼 염색체를 다시 조합해야 할 형편이다.
그러나 샘플을 잘 보관하고 있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올해 멸종한 부카르도(bucardo, 스페인의 산악지대에 사는 산양)는 복제를 통해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초 마지막 부카르도 한마리가 나무에 깔려 죽는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났는데, 스페인의 과학자들은 세포를 채취해 냉동보관했다. 현재 ACT와 스페인의 과학자들은 공동연구를 통해 부카르도의 복제를 연구하고 있는데, 내년 여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멸종한 동물의 경우, 여러 개체의 샘플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부카르도의 복제가 성공한다고 해도, 이것은 단지 한마리의 개체를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고 다시 번성할 가능성은 없다. 부카르도의 마지막 개체는 성염색체가 XX인 암컷이었는데, ACT의 과학자들은 수컷 개체(성염색체 XY)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들은 부카르도의 세포에서 X염색체를 하나 제거하고 부카르도와 가장 가까운 종의 Y염색체를 넣어 수컷을 만드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복제, 완벽한 대안?
과연 복제를 통해 멸종위기동물을 구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물들의 멸종을 막는 방법을 인류는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복제라는 생명공학기술이 멸종이라는 위험에서 종을 보호하는데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환경오염 등에 의해 서식처가 파괴되면서 위협받는 개체들을 모두 대신할 수 없다. 복제기술은 단지 몇마리의 멸종위기동물을 더 만들어내, 약간의 시간을 벌어 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대다수의 과학자들도 복제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부분적인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현재 생명공학기술이 발달하는 속도를 감안할 때, 샘플만이라도 잘 보관한다면 언제인가는 멸종동물을 완벽히 재현하고 번성시키는 방법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성경에서 노아가 방주에 동물을 한쌍씩 태운 것처럼, 멸종위기동물의 샘플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더 많은 ‘냉동 동물원’의 설치가 중요하다.
성경 속의 노아는 커다란 방주를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했겠지만, 현대판 노아의 방주는 비용도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미국에 있는 냉동 동물원의 경우, 2천마리 정도의 멸종위기동물 샘플을 보관할 수 있는 냉동실의 전기료가 1년에 단지 몇달러다.
홍수보다 더 무서울 수 있는 환경파괴라는 재난에서 동물들을 대피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다.이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들이 많은 동물들을 잃어버리고 있지만,후손들에게 지구에서 살았던 동물의 정보만이라도 간직해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