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가 껌을 씹으면 시합의 긴장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그러나 오래 씹으면 오히려 더 스트레스가 쌓인다.왜 그럴까.또 껌을 씹을 때 뇌의 활동이 공부할 때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박찬호가 나오는 미국 프로야구 경기를 보면, 야구선수들이 껌을 우물우물 씹고 있는 것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껌을 씹으면 어느 정도의 긴장을 해소할 수 있어 시합의 긴장감을 줄일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껌의 맛과 향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다.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은 영양 보충의 의미가 우선이겠지만, 기분 전환에도 도움이 된다. 가령 맛있는 초콜릿을 먹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행복하게 보인다든지, 화가 났을 때 먹는 것으로 화풀이를 하는 것이 바로 예다. 한편 꽃의 향기와 같은 후각 자극도 사람에게 즐거운 감정이 돋도록 한다. 하지만 쓴 약을 먹거나, 썩은 생선냄새를 맡으면 불쾌감이나 혐오감이 느껴진다.
맛과 향이 뇌에 미치는 영향
이처럼 인간은 미각과 후각 자극의 종류에 따라 쾌감이나 불쾌감과 같은 정서적 반응을 나타낸다. 또한 자극의 농도에 따라서도 다른 감정을 느낀다. 예를 들어 미각의 경우, 대개의 단맛에 대해 사람은 쾌감을 느끼지만, 농도가 매우 약한 단맛에 대해서는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 또 일정 범위의 농도를 띠는 쓴맛이 쾌감을 주기도 한다. 껌을 씹어 느끼는 독특한 향과 단맛이 바로 쾌감 자극에 속하는 것이다.
이렇게 미각과 후각에 대해 사람이 어떤 정서를 느끼게 되는 이유는 감정을 주관하는 기관인 편도핵이 자극되기 때문이다. 편도핵은 대뇌피질 중 뇌의 한가운데 위치하는데, 손톱만한 크기로 복숭아 씨처럼 생겨서 이름이 붙여졌다. 껌의 향과 맛이 편도핵을 자극하면 껌을 씹는 사람에게 유쾌한 감정이 유발되고, 이를 나타내는 방법의 하나로 얼굴의 근육을 변화시킨다. 온화하거나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얼굴에 표정을 만드는 근육은 얼굴에 분포해 있는 안면신경의 지배를 받는다. 안면신경은 인간의 자율신경계를 구성하는 한 요소인 부교감신경계의 일종인데, 바로 행복한 얼굴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부교감신경이 작용했다는 의미다.
부교감신경이 작용하면 입과 얼굴의 혈관이 확장돼 혈류량이 증가해, 얼굴에 풍부한 산소와 영양물이 공급되고, 혈관 내 노폐물이 신속하게 정화된다. 즉 얼굴이 붉어지고 윤기가 나게 된다. 또한 침의 분비량도 증가한다.
한편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이 작용하게 된다. 경기중인 운동선수의 상황이 좋은 예다. 따라서 선수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방법이 바로 껌을 씹는 것이다. 껌을 씹어 느끼는 단맛과 향으로 인해 경기 중 스트레스로 인한 교감신경의 작용이 억제되고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돼 오히려 쾌감을 운동선수에게 제공해줄 수 있다.
그러나 껌을 계속 씹는다고 이 효과가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단맛과 향이 느껴지는 시간인 약 8분 정도만 효력이 있다. 오히려 그 이후에는 선수의 스트레스가 더해진다. 왜 그럴까.
껌을 씹는 것은 음식물을 씹을 때와 마찬가지로 혀와 턱의 복잡한 운동이다. 일반적으로 껌을 처음 입에 넣으면 껌이 노골노골하게 되도록 천천히 씹으면서 침을 삼키고, 그러다가 점점 껌을 씹는 속도가 규칙성을 가지고 빨라진다. 이런 껌 씹는 행위는 중추신경계인 뇌의 영향을 받는데, 대뇌피질, 대뇌기저핵, 소뇌, 뇌간(뇌교와 연수를 총칭한다)이 그 주인공들이다.
오래 씹으면 턱이 미끄러지는 이유
껌을 씹는 초반에는 혀가 물리지 않으면서도 껌이 치아의 씹는 면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천천히 턱과 혀가 조화로운 운동을 해야 한다. 이때 느껴지는 단물과 향기는 편도핵을 자극하고, 이 편도핵의 자극으로 뇌의 전전두영역(앞이마부위)이 각성돼 대뇌피질의 씹는운동 중추가 작용하게 된다. 대뇌피질은 초반 껌씹기에서 이뤄지는 의식적인 느린 턱과 혀 운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메시지를 대뇌기저핵에 전달한다. 그러면 대뇌기저핵은 턱과 혀의 느린운동프로그램을 작성해서, 이 프로그램을 시상을 거쳐 다시 대뇌피질로 보낸다.
한편 껌을 씹을수록 무의식적으로 점점 턱과 혀의 운동이 빨라진다. 이는 대뇌피질이 대뇌기저핵에 보낸 메시지를 소뇌로도 보내게 돼서 일어나는 일이다. 소뇌는 무의식적이면서 빠른 운동을 하게 하는 빠른운동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점점 씹는운동프로그램이 작성되는 곳이 대뇌기저핵에서 소뇌로 이전하는 것이다.
이 둘의 상반된 정보가 시상에서 모아져 대뇌피질로 전달되면, 여기서 껌 씹는 속도와 리듬이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이 정보는 다시 뇌간의 ‘턱운동 리듬 발생기’로 전달돼 얼굴 앞면의 많은 부위가 관여하는 복잡한 껌씹기 운동이 원활하게 이뤄지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단물도 빠지고 향기도 다 날아가 더 이상 편도핵을 자극하지 못하게 되면, 껌씹기 운동에 대한 대뇌 관여가 줄어들게 된다. 즉 편도핵 자극으로 이제까지 각성상태를 유지해오던 전전두영역의 활동이 미약해지면서 대뇌피질의 턱운동영역의 기능이 줄어들게 된다. 대신에 기계적이고 반사적인 턱운동이 이뤄지게 된다. 이때 운동의 중추는 소뇌가 된다. 소뇌의 빠른운동프로그램이 대뇌피질을 거치지 않고 바로 뇌간의 턱운동 리듬 발생기로 전달되는 비율이 높아진다. 물론 대뇌피질로 얼마간의 정보가 가기는 하지만.
따라서 규칙적이던 턱운동이 불규칙해지면서 침을 심키는 횟수도 줄어든다. 또 껌을 씹는 빠른운동프로그램과 느린운동프로그램 간의 부조화가 발생해 운동프로그램에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 간혹 껌을 씹다보면 턱이 미끄러지거나 이가 갈리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때 미세하지만 치아가 닳거나, 그렇지 않으면 치아 뿌리 주위에서 치아를 보호하는 치근막 조직이 손상을 입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방어체계를 구축한다. 예를 들어 씹는 근육의 피로를 일으키게 하고, 혀의 운동을 둔하게 하며, 미각을 쓴맛으로 유도하고, 타액 분비를 감소시켜 결국에는 껌씹기를 그만둔다. 더 이상 부교감신경이 작용함으로 해서 쾌감을 주지 못하고, 교감신경이 작용하는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된다. 즉 운동선수의 스트레스 해소를 가져다준 껌이 이제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해주는 역할로 변한 것이다. 따라서 운동선수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껌씹기는 껌의 단물과 향이 살아있는 시간인 8분 정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입안의 이물질을 제거해 충치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껌의 또다른 기능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 단물이 다 빠진 이후 몇분동안 씹도록 권하고 있다. 껌의 종류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단물만 빨고 껌씹기를 그만두면 오히려 충치의 원인이 되는 껌의 단 성분이 입안에 남게 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해소냐 충치예방이냐에 따라 껌 씹는 시간을 조절해야 하는 셈이다.
만일 무리하게 껌씹기를 오래하면 치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무리한 껌씹기는 스트레스로 작용해 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이로 인해 흔히 잇몸이라고 부르는 구강점막인 치은의 혈관이 수축돼, 치은의 혈류 순환에 장애가 발생한다. 치은에는 치은낭상피가 있는데 치은의 혈액 순환에 의해 체액이 이곳에서 배설된다. 이 체액은 치아와 잇몸 사이에 낀 음식물 찌거기를 청소해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치은의 혈류 순환 장애로 인해 체액 배설이 원활하지 못하면 잇몸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을 앓게 된다.
더 나아가 치아 아래 부분인 치근막 조직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치근막 조직은 턱 관절 디스크와 함께 치아가 딱딱한 물체와 부딪칠 때 발생하는 기계적 충격파를 흡수하는 완충 역할을 한다. 또 턱운동을 코디하기 위한 리포터 역할도 담당한다. 만약 치근막 조직과 턱 관절 디스크가 없다면 위아래 치아가 맞부딪칠 때마다 발생하는 소음과 충격파, 그리고 두개골과 턱뼈가 부딪치는 소리와 충격파로 인해 뇌는 한시도 안정을 취할 수 없게 된다. 건강한 치아 구조가 얼마나 뇌에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생각할 때와 껌 씹을 때 뇌 활동 차이 없다
하지만 씹는 행위가 뇌 발달을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딱딱한 고형식으로 사육한 쥐와 분말식으로 사육한 쥐를 대상으로 한 조건반사 실험에서 이런 사실이 확인됐다. 쥐를 전기적 자극이 가해지는 장치와 연결된 지렛대가 놓여진 실험상자에 넣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형식으로 사육한 쥐의 경우 분말식으로 사육한 쥐보다 지렛대를 누르는 행위가 점점 줄어들었다.
또 쥐의 미로 학습에서도 이같은 사실이 확인됐다. 고형식으로 사육한 쥐에 비해 분말식으로 사육한 쥐가 길을 잘못 찾아가는 횟수가 많았다. 이러한 차이를 일으키는 이유 중의 하나는, 딱딱한 사료를 잘 씹는 쥐와 부드러운 음식물 섭취로 잘 씹지 않는 쥐 사이에 기억에 작용하는 뇌내물질의 분비량과 대뇌피질세포의 발달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유식 이후, 분말사료로 성장한 쥐는 치아 주위의 근섬유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씹는 근육 중에 존재하는 감각영역인 근방추의 발달도 방해받는다. 근방추는 씹는 능력을 강화시키는 일에 작용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으면 근섬유 자체의 미발달과 함께 씹는 능력을 약화시켜, 딱딱한 음식물을 충분히 씹을 수 없게 된다. 결국 분말사료로 성장해 음식물을 잘 씹지 못하는 쥐는 평생을 지능이 낮은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 셈이다.
중추신경계의 발달이 구강기능 발달과정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개의 경우 생후 3주 이전에는 대뇌피질부를 전기자극해도 아무런 운동이 유발되지 않지만, 생후 3주쯤에는 빨기 모양의 운동이 유발된다. 또 4주 후에는 씹는 행위와 같은 운동이 유발된다. 즉 유치가 올라오는 3주 이후에 대뇌피질에서 씹는 행위를 담당하는 중추가 성숙한다는 것이다.
한편 껌 씹는 행위에 대한 놀라운 실험결과가 올 6월 일본의 치과학전문지인 ‘치계전망’에 인용됐다. 이에 따르면 껌을 씹을 때 뇌의 활동 모습이 복잡한 사고 행위를 할 경우와 비슷하다. 이 연구에서 껌을 씹을 때의 뇌를 촬영했는데, 공부하거나, 글을 쓰거나, 생각할 때와 동일한 대뇌 부위에서 혈류량이 증가했다.
이런 이유는 뇌세포가 활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원이 포도당이고 그 포도당을 풍성하게 공급하고 뇌세포 활동으로 발생한 노폐물을 신속하게 정화해 뇌세포 환경을 항상 신선하게 유지 관리하기 위해 혈류를 많게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시스템을 통해 뇌세포 각자에게 필요충분한 혈류공급이 되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점도 있어 앞으로 더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과연 얼마동안 껌을 씹어야 왕성한 뇌 기능에 도움이 되면서, 스트레스도 해소되는지는 좀더 연구해야 할 문제다. 지능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 때문에 오래 껌을 씹으면 스트레스를 받게 돼 뇌 발달에 오히려 저해될 수 있다.
미각과 후각과 같은 자극을 받아들이는 신체의 말초로부터 대뇌로 운반되는 다양한 정보는 대뇌피질의 감각영역에 보내진다. 그런데 신체 부위에 따라 대뇌피질을 차지하는 범위가 상당히 차이가 난다. 특히 얼굴을 포함해서 씹는 행위와 관련된 말초기관 영역(악안면)이 차지하는 범위가 전체의 1/3를 차지할 정도다. 그만큼 뇌로 보내지는 정보량이 다른 부위보다 많다는 의미다.
따라서 다른 기관보다 악안면에 의한 정보의 오류는 뇌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씹는 행위는 일생을 통해 반복해서 이뤄지는 운동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뤄지는 운동량의 미세한 차이는 장기적으로 생체에 커다란 차이를 발생시킨다. 정상적으로 씹는 운동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