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의 문화,생활,그리고 정신세계까지 담겨있는 암각화.여기에는 과거 우리나라 동해 앞바다에 고래잡이가 번창했음이 나타나 있다.고대인의 흔적을 찾아가는 암각화 연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살펴보자.
과거 한반도에 살던 고대인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돌도끼와 같은 원시도구로 사슴과 같은 육상동물을 사냥하고 물가에서 고기를 잡아먹으며 움막에 살았다고 역사책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고대인이 이런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역사가들은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고대인이 삶의 흔적을 돌도끼, 움터, 고인돌 등에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고대인이 바위에 여러 형상을 새긴 암각화가 그 중 하나다.
1970년 크리스마스 이브, 울산광역시 울주 천전리 암각화를 시작으로 발견된 국내 암각화 유적이 10여개에 달한다. 이들은 주로 그리 높지 않은 수직의 바위 면에 새겨져 있다. 대체로 사람의 팔이 닿으며 조각을 새기는데 유리한 조건을 선택한 듯하다.
강가 근처 동남쪽 향해 위치
그림이 새겨진 바위 면은 대부분 동향 또는 남향이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볕을 받는다. 또 대체로 강가의 바위절벽에 위치한다. 암각화가 태양과 물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직잠케 해주는 대목이다. 비슷한 예로 중국의 내이멍꾸나 신장성 알타이 지구에서는 샘이 솟는 장소에 암각화가 새겨졌다. 혹시 산과 들, 강을 여행할 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암각화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주의 깊게 암벽을 관찰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제 암각화에는 어떤 그림들이 새겨져있는지 살펴보자. 그림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구체적인 물체의 모습으로 누구든지 보면 바로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주로 사슴이나 고래, 호랑이 등의 동물과 사람 그림이다. 이들 그림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것은 성기를 크게 과장해 노출시키고 있다거나, 배를 불룩하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시베리아나 몽골 또는 북부중국의 암각화에는 대부분의 동물과 사람이 성기를 길게 앞으로 내밀고 있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사람의 성기를 길게, 동물의 배를 불룩하게 묘사한 것이 많다.
신앙의식 치르는 신성한 장소
구체적인 사물과 달리 추상적인 도형들도 볼 수 있다. 때로는 원이나 동심원 또는 삼각형이나 물결무늬 등 기하학적인 특징을 가지기도 하고, 구체적인 물체의 모습을 극도로 생략해 묘사한 듯한 형체로 나타난다. 이러한 추상적인 모습의 그림들은 상징성이 강하며 특정한 집단만이 알아볼 수 있는 부호적 체계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추상적 그림은 구체적 물체를 묘사하는 방법보다 훨씬 뒷시대에 나타나는데, 울산광역시 울주 천전리 암각화 유적에는 이 두가지 형태의 그림이 서로 중복돼 있어서 어떤 것이 더 먼저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추상적 도형들도 동물이나 사람그림에서처럼 성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렇다면 왜 고대인은 이런 형상을 그렸을까. 이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문제는 식량 확보와 자손 번성이었다. 식량은 이들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원천이며 자손 번식은 종족을 유지시켜주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수렵인들이 식량을 확보하는데는 사냥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충분하게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많은 번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대인은 동물의 번식을 기원하기 위해 동물의 새끼 밴 모습이나 교미 장면, 또는 성기를 과장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또 사냥시 야생동물로부터 스스로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했다. 이때문에 사냥의 대상이기도 한 동물에게 자신의 안전을 기원하기도 했는데, 이 경우에 이런 동물들은 그대로 신앙의 대상이 된다. 동물은 사냥의 대상이기도 하며 동시에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암각화 유적은 바로 신앙의식을 거행하는 신성한 장소였다는 추측이 제기된다. 이를 증명하듯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 면의 앞에는 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 평평한 공간이 확보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그림을 수평 바위 면에 새긴 경북 안동 수곡리 암각화 유적은 물을 저장하기 위한 바위구덩이가 깊이 파여 있고 높은 장대를 세우기 위한 바위구멍들이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면 둘레에 있어서 당시 의식이 어떻게 치러졌는지를 추측하게 해준다.
탁본으로는 내용 파악 어려워
암각화의 연구는 먼저 정밀한 판독작업을 거친 후 그림이 새겨진 연대를 측정하고, 그림이 무슨 의미인가를 해석해야 하며, 그 결과를 통해서 그림이 새겨진 당시의 문화를 복원해내는 일이다. 여기에는 고고학, 민속학이나 미학적 접근, 그리고 구체적인 조사방법에서 첨단과학의 방법이 사용된다.
먼저 암각화의 판독 작업에서 새겨진 그림이 어떤 형태로 돼 있으며, 쪼아 새겼는지 갈아서 새겼는지 등 새긴 방법이 무엇인지를 확인한다. 바위에 새겨진 그림들 중에는 길게는 수만년을 지내온 것도 있다. 그러므로 보존상태가 좋은 것은 금방 어떤 것인지 알아볼 수 있지만, 대체로는 풍화작용에 의한 마멸이나 인위적인 훼손으로 정확한 형태를 읽을 수 없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암각화를 판독하는 방법으로 탁본이 쓰인다. 판화처럼 바위에 먹물을 먹여 종이를 덮은 후 그 종이를 떼어 내 암각화에 그려진 내용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그러나 탁본은 바위를 손상시키는 것은 물론 자연 현상에 의한 바위틈과 인공적으로 새긴 자리의 구분이 어렵고, 여러 장의 탁본 후 이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본래 모습이 변형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최근에는 탁본을 해서는 안된다는 견해가 많이 나오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투명한 비닐 용지를 바위 면에 밀착시킨 후 인위적으로 새겨진 부분과 자연현상으로 생긴 바위틈을 구분해 잉크로 기록하는 방법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사진의 정밀촬영을 통해서 판독작업을 하는 경향이 많아졌으며, 다양한 조명과 촬영위치에서 찍은 사진을 컴퓨터를 이용해서 분석하고 그림의 원형을 복원하는 방법이 이용되고 있다.
주위 유물로부터 연대 추정
판독된 그림을 해석하는 작업 또한 간단치 않다. 그림의 형태가 추상적일 경우 훨씬 더 어려워진다. 이를 위해서는 그림의 상징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며 최근에는 기호학과 함께 신경심리학 같은 특수분야가 동원되기도 한다.
암각화의 연구를 좀더 구체화시키기 위해 그림이 언제 새겨졌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처럼 자료의 연대를 결정하는 작업을 ‘편년’이라 이른다. 편년에는 그림의 형식을 분류하고 형식과 형식간의 선후관계를 설정하는 상대편년, 그림이 구체적으로 지금부터 몇년 전에 새겨졌는지를 수치적으로 알아내는 절대편년이 있다.
울주 천전리 유적에는 크게 네 차례에 걸쳐 암각화가 새겨졌다. 가장 먼저 사슴, 물고기 등의 동물과 인물상이 쪼아파기 방법으로 새겨지고, 다시 이 그림을 훼손하면서 동심원이나 마름모 등의 기하학적 그림이 새겨졌으며, 그 위에 아주 가는 선각으로 동물과 사람들이 새겨졌고, 마지막으로 신라시대 사람에 의해 글자가 새겨졌음이 확인됐다.
이처럼 한 바위 면에 여러차례에 걸쳐 서로 다른 형태의 그림들이 새겨진 경우는 비교적 쉽게 그림 형식간의 선후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 또 그림만으로 선후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울 때는 암각화와 인접한 유물의 연대를 참고하기도 한다. 경북 고령 양전리 암각화의 경우 주변에서 다량의 토기가 출토됐다. 이런 유물들은 암각화의 연대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암각화의 선후관계를 파악하는데는 미생물학적 방법이 이용되기도 한다. 미국의 캘리포니아나 유타 등 서남부 사막지대의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에는 바니시라고 부르는 죽은 박테리아의 잔류물로 보이는 검정 또는 암갈색의 얇은 층이 덮여있는 곳이 많다. 바니시 색조의 비교로 암각화의 상대연대를 측정하기도 하며 바니시의 형태를 관찰해 절대연대를 측정하기도 한다.
홍적세나 빙하기, 또는 적어도 1만1천여년 전 이전에 미국 서부지역의 환경조건은 지금보다 더 습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조건에서 생성된 바니시는 둥글고 울퉁불퉁한 덩어리 형태, 즉 포도송이 모양으로 나타난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난 1만1천년 동안 건조한 기후조건 아래에서 형성된 바니시는 납작한 판상구조로 돼있다.
물리화학적 분석 통한 절대연대 측정
따라서 일반적으로 1만1천년 전 이전에 새겨진 암각화는 판상구조와 함께 포도송이형의 바니시 층을 보여준다. 또 1만1천년 이후에 새겨진 암각화는 단지 판상구조의 바니시만을 가진다. 이 방법으로 세부적인 연대를 파악할 수는 없으나 어느 정도의 절대연대를 결정하는 기준을 제공해준다.
일반적으로 고고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절대연대 측정법은 유기물에 포함돼 있는 방사성탄소연대 측정법이다. 모든 살아있는 생물체가 방사성탄소 C-14를 가지는데, 생물체가 죽으며 C-14는 일정한 기간이 지날 때마다 절반씩 줄어든다. 이를 ‘반감기’라 하며, 고고학적 유물 중 뼈나 나무, 특히 목탄에 남아 있는 C-14의 양을 측정해서 상당히 정확한 연대를 계산해낼 수 있다.
그러나 암각화는 유기물에 새겨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C-14에 의한 방법이 곧바로 이용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림을 새기면서 파여진 좁은 홈 속에 형성된 바니시 층 밑에 남은 꽃가루 같은 유기물이 미량이라도 남아 있다면 가속질량분광기(AMS)와 같은 장치를 이용해 C-14가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측정해서 연대를 알아낼 수 있다.
이와 달리 암각화 자체만으로 절대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은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의 표면에 대한 물리화학적 분석을 통해서다. 최근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양이온비율에 의한 연대측정법’(Cation-ratio dating)이 대표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로날드 돈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 방법은 바위에 덮인 바니시 층 연구로부터 시작됐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우선 절대연대를 알 수 있는 유적의 바니시 층으로부터 칼륨과 칼슘의 양이온과 티타늄 양이온의 비율을 측정한다. 양이온 비율에 따른 연대 기준을 설정하고 새로운 유적의 바니시 층에서 얻어진 양이온 비율을 이 기준과 비교해 연대를 결정하는 방법이다. 이들 양이온 비율은 시간이 갈수록 감소하는 특성이 있다. 이 방법은 어느 한정된 지역에서만 가능하며 C-14와 같은 다른 방법에 의해 확인된 절대연대 자료들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지만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최근 사용 예가 늘어가고 있다.
30년 발견 역사, 연구는 걸음마 단계
이와 같은 기본적인 작업을 통해 얻어진 암각화의 정보는 고고학이나 인류학은 물론 역사학, 미술사학, 미학, 민속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가 이뤄진다. 이것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자료적 가치 때문이다. 암각화에 새겨진 다양한 내용은 이를 새긴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심지어는 그들의 정신세계까지도 추적할 수 있다.
또 동일한 성격을 가진 암각화의 분포를 조사하면 암각화를 제작한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이동해왔는가 또는 그 문화가 어디로부터 들어왔는가를 알 수 있다. 바로 민족문화의 형성문제나 민족의 이동문제 등을 푸는 결정적 단서가 된다. 또한 하나의 미술작품으로서 미술의 기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도 있으며 특정 민족집단의 미의식 세계를 추적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글자기록이 없는 시대의 문화복원은 현재 남아 있는 극소수의 고고학적 유물과 유적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해석에 따라서 실제와는 엄청나게 다른 모습이 일반인에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암각화는 당시의 생활이나 문화현상을 그림이라는 구체적인 기록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실제 생활모습을 복원하는데 더없이 귀중한 자료다. 암각화 연구는 한국 암각화가 중앙아시아에서 동쪽으로 연해주에 이르는 암각화 분포권에 속하고, 한국 암각화에서 나타나는 그림이 시베리아나 몽골 그리고 알타이산맥을 중심으로 분포돼 있는 것과 공통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우리나라의 암각화 연구는 초기 단계에 있다. 이미 울주의 천전리 암각화와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된지 30년이 됐지만 내용이 비교적 단순하고 추상화에 가까운 암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해석에서 학자마다 상당한 이견을 보이고 있다. 또한 주변 지역과의 폭넓은 비교작업이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이후 새로운 유적들의 발견이 활발하게 이뤄져서 1990년대에는 고고학이나 민속학 분야에서 암각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에 관한 심포지엄이 열리고, 학자들의 저서가 출간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몽골과 러시아, 중국 등 동북아 일대의 암각화 조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1999년에는 한국암각화학회가 창립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은 암각화 연구자의 수도 소수에 불과하며 발견된 유적의 정밀보고서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우리 학계의 현실이다. 앞으로 고고학이나 미술사, 지질학 등 관련분야의 학제적 연구가 이뤄지고 인접분야의 연구성과들이 쌓여가면서 이러한 문제가 점차 해결되리라고 생각한다.
수몰로부터 위협받는 국내 암각화
암각화 유적은 대부분 강변이나 야산처럼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하므로 인위적인 파손이 쉽기 때문에 보존에 특히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댐의 건설과 같은 국토개발에 의한 파손도 상당히 많다. 이미 우리나라 최대의 암각화 유적인 반구대 암각화는 태화강 상류의 사연댐 수면 밑으로 들어간지 오래다.
또한 연구자 자신들도 연구목적에서라도 훼손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조사는 하지 말아야 한다.반구대 암각화의 표면에 묻어 있는 왁스와 하얗게 페인트칠을 한 듯한 실리콘 찌꺼기들은 잘못된 조사결과로 생긴 것이다.그리고 천전리 암각화와 포항 칠포리 암각화에서 볼 수 있는 먹물 자국은 미숙한 아마추어들의 탁본으로 인한 것들이다.미국의 경우 암각화에 관한 안내서나 연구서 등 대부분의 책자에는 암각화의 보호와 관련한 항목이 반드시 들어가 있으며 파손에 관한 법률조항까지도 실어 놓고 있다.이는 암각화 유적이 얼마나 중요한 보호대상으로서 관리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