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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우주비밀을 과학으로 파헤치는 프로메테우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컴퓨터를 통해서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교수(58·케임브리지대학).프로메테우스의 운명을 무릅쓰고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가 지난 8월 우리나라를두번째로 찾았다.방한 기간 동안 그는 무슨 말을 했고 무엇을 남겼을까?호킹 교수의 대중강연 내용 요약본은 '동아 사이언스'인터넷 사이트(www.donga.Science.com)에 게재돼 있다.

호킹 교수는 8월 29일 서울에 도착한 뒤 31일 청와대의 ‘간추린 우주’를 시작으로 9월 2일 서울대에서 한 ‘미래의 과학’에 이르기까지 4차례의 강연회를 잇따라 가졌다. 그리고 9월4일에는 제주에서 열린 ‘입자물리학과 초기우주’(COSMO 2000) 학술대회에 참석해 자신이 최근 관심을 두고 연구해 온 결과를 발표했다.

과학동아는 호킹 교수의 방한일정을 밀착 취재해 강연현장을 스케치했다. 또 그의 수행 간호사를 단독으로 인터뷰해 들어본 호킹 교수의 일상생활을 소개한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손가락 한두개뿐인 호킹교수.휠체어에 장착된 컴퓨터가 그의 입을 대신하고 있다.


가누지 못하는 몸 속에 살아 숨쉬는 정신

8월 31일 오후, 간간이 뿌리는 빗줄기가 서울의 무더운 여름을 식히고 있었다. 3시부터 시작된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남은 벌써 예정시간을 지나 3시45분을 훌쩍 넘어섰는데도 스티븐 호킹(Stephen W. Hawking, 1942- ) 교수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청와대 영빈관에 마련된 강연장에는 대통령 비서실 직원 등 3백여명의 청중이 흥분을 감춘 채 긴장 속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4시 휠체어를 탄 호킹 교수가 장애인용 특수차량에서 내려 모습을 드러내자 장내는 이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휠체어 위에 있는 그의 몸은 앉아 있다기보다 차라리 내맡겨져 파묻혀 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도무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그런 몸으로 의식을 가지고 제대로 강연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더더욱 믿어지지 않았다. 그를 태운 휠체어 역시 이미 손에 익었을 법한데도 두 손가락으로 겨우 조종스위치를 움직여서인지 그나마 직선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청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강연장에 들어선 호킹 교수. 그는 사회자로부터 간략한 소개를 받은 뒤에도 한참 동안 무엇 때문인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정적을 깨고 어디선가 들려 오는 소리 “Can you listen well?”(잘 들립니까?) 그 사이 그는 보일까말까 손가락을 움직여 휠체어에 장착된 컴퓨터 음성장치를 조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뜻밖의 소리에 몇몇 사람만이 “yes”라고 대답했을 뿐 그의 육성을 기대하며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청중들에겐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당혹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의 강연이 시작되면서 곧 숙연함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마치 죽은 듯이 보이는 몸에서도 정신만큼은 펄펄 살아 숨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서일까. 이런 장면은 그가 강연을 할 때마다 되풀이됐다.

호킹 교수는 현재 고개조차 가눌 수 없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손가락 한두 개와 얼굴 근육의 일부뿐. 15년 전 폐렴 때문에 기관지를 잘라내 말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타고 다니는 휠체어에 장착된 컴퓨터가 그의 입을 대신하고 있다.

이 컴퓨터는 IBM호환기종으로 일반적인 컴퓨터의 기능 외에 그를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문장구성 프로그램과 음성변환 장치를 내장하고 있다. A-Z까지 스크린에 나열된 단어를 하나하나 선택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은 말의 단어를 입력해 문장을 구성한다. 그리고 나서 음성변환 프로그램과 스피커를 통해 문장을 음성으로 전달한다. 이때 들리는 음성은 이 변환장치를 개발한 사람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말을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강연을 하려면 미리 원고를 입력해 두지 않으면 안되고 질문에 대답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두세 줄의 간단한 문장을 만드는데 보통 3-5분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때그때 대화의 내용이 달라지는 대통령과의 만남이 길어진 것과 강연 전에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웃사촌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해 환담을 나누고 있는 호킹 교수.


대통령과 이웃사촌 사이

호킹 교수가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한 것은 지난 93년 1월부터 6월까지 케임브리지시 오스트하우스에서 이웃해 살면서 식사를 같이하기도 하는 등 서로 친분을 쌓은 사이기 때문.

김 대통령은 그를 접견하는 자리에서 “93년 케임브리지에서 이웃해 산 적이 있는데 오늘 다시 만나게 돼 영광”이라면서 “우리나라에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다”고 친근감을 전했다. 이에 대해 호킹 교수는 “김 대통령이 평화를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는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며 “케임브리지에 사셨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정중히 답례했다.

또 김 대통령이 “지구 이외의 우주에 생물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우주에는 원시적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지능을 가진 생물체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대답했다. 호킹 교수는 끝으로 김 대통령에게 “케임브리지를 꼭 다시 방문해 달라”며 저서인 ‘그림으로 본 시간의 역사’를 한권 선물했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운명처럼

이어진 우주론 강연에서 호킹 교수는 자신의 삶을 프로메테우스의 운명에 비유했다. “인간들을 위해 신에게서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의 운명을 무릅쓰고 저는 우리가 우주를 이해할 수 있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는 하늘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는 이유로 제우스 신의 노여움을 사 바위에 묶인 채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가혹한 형벌을 받았던 인물. 신의 영역인 우주의 비밀을 인간의 언어인 과학으로 풀고자 하는 자신에게 움직일 수 없는 몸의 부위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그는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그의 말에는 우리가 근접할 수 없는 비장함이 배어 있는 듯 했다.

이와 동시에 호킹 교수가 강조한 것은 자유로운 정신과 끊임없는 도전의 중요성이다. 그는 “인간은 물리적으로 매우 많은 제약을 받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만큼은 자유롭게 우주 전체를 탐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우주와 우주의 기원을 이해하는 것이 설령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라 해도 최소한 이해해 보려는 시도는 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록 한계가 있더라도 시도하고 노력하는 일마저 포기할 수 없다는 그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의 이런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루게릭 병 진단을 받기 전까지 저는 의욕이 없고 삶도 지루하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때이른 죽음에 직면하면서 저는 놀라울 만큼 정신을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삶이란 좋은 것이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병은 예상보다 훨씬 천천히 악화돼 다행히 제 관심사인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에는 큰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병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삶의 의미. 이 삶의 소중함은 그의 열정이 솟아나는 원천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때늦은 깨달음이 아니었다. 해박한 지식과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우주의 비밀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과학자라는 그의 명성을 누구나 이번 강연을 통해서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5시20분쯤 청와대 강연을 끝내고 호킹 교수는 곧바로 고등과학원으로 향했다. 강연은 98년 미국의 물리학자 랜덜과 선드럼 박사가 제시한 최신 이론을 수학적으로 해석하는 아주 전문적인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백50여명이 참석해 열기를 더했다. 앞줄에 나란히 앉은 어린 학생들이 끝까지 경청하는 모습은 눈길을 끌었다. 특히 호킹 교수의 방한소식을 접하고 멀리 인천에서 수업을 마치자마자 찾아온 학생들은 강연이 끝나자 미리 준비한 하회탈 목걸이 장식품을 그에게 선물했다. “Thank you very much”라고 답례하는 호킹교수의 표정은 피곤함도 잊은 듯했다.


호킹 교수가 서울대 문화관에서 '미래의 과학'을 강연하고 있다.


기뻐하고 슬퍼할 줄 아는 예민한 사람

9월1일 오전 삼성생명 빌딩에서 호킹 교수는 그의 방한을 후원한 삼성전자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청와대에서 한 것과 같은 내용의 강연회를 또 한차례 가졌다. 전날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강단에 선 그는 강연 후에도 질문이 있다면 얼마든 답할 수 있다며 여유를 보였다.

이날 기자는 3년 반 동안 호킹 교수를 돌보아 온 간호사 자퀴 오델(53)씨를 만나 그의 일상생활에 대해 물어 보았다. “한국의 길거리는 몹시 분주하고 차가 많지만 모두들 열심히 일하고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그녀는 호킹 교수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얘기를 꺼린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호킹 교수의 건강을 위해 현재 3명의 간호원이 하루 3교대로 그를 돌보고 있다고 한다. 여행을 할 때는 간호원 3명과 조수 1명이 필수적으로 동행해야 한다. 이번 방한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수인 닐 쉐러(23) 씨는 물리학 석사 출신. 6개월 전부터 호킹 교수의 일을 돕고 있다. 강연이 있는 날이면 호킹 교수의 설명에 맞춰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슬라이드를 강연장 스크린에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등 호킹 교수와 관련된 잡다한 행정적, 실무적 일을 담당하고 있다.

호킹 교수의 하루는 보통 7시15분쯤 시작된다. 8시쯤 아침식사를 하는데, 메뉴는 차와 감자, 잘게 썰은 토마토 등. 그가 좋은 하는 음식은 카레라고 오델 씨는 전한다. 여행 중에는 식당에서 나오는 요리를 간호원들이 잘게 다져 먹기좋게 해 떠 먹여준다. 대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빠짐없이 학교 연구실에 나가 저녁 7시까지 컴퓨터로 책과 논문을 읽고 메모하며 다른 학자들과 편지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들과 대화를 많이 하지만, 이 시간을 제외하고는 새벽 2시쯤 잠들 때까지 생각을 많이 한다고.

그에게는 2남1녀의 자녀가 있다. 큰 아들은 미국에서 컴퓨터회사를 다니는데 얼마 전에 결혼했다. 둘째 딸은 런던에서 신문사의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고 3살 짜리 아들을 두고 있다. 이 아이가 호킹의 유일한 손자. 셋째 아들은 아직 영국 엑스터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오델 씨는 손자가 놀러올 때 웃는 표정을 맘껏 짓지 못해 호킹 교수가 속을 태운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웃는 모습으로 손자를 맞이할 수 있도록 간호원이 일부러 그의 표정을 지어주기도 한다.

얼마전 한국어로도 번역된 자서전 ‘스티븐 호킹 - 천재와 보낸 25년’에서 호킹 교수의 전부인인 제인 호킹 여사는 “사실 그는 나의 아이였다. 육체적인 질병, 그리고 고도의 지성을 갖춘 사람 특유의 상처받기 쉬운 순수성 때문에 나의 보호를 필요로 하면서도 언제나 제멋대로 행동하려는 아이였다”고 적고 있다. 오델 씨도 호킹 교수가 움직이지 못하는 육신 때문에 항상 갓난아이처럼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지만 그 역시 “슬퍼하고 기뻐할 줄 아는 예민한 사람”이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가장 큰 업적”

호킹 교수는 98년 3월 미국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 부부와 과학자 등이 참석한 ‘밀레니엄의 밤’ 행사에서 ‘새로운 천년의 과학’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 적이 있다. 9월 2일 오전 10년만에 다시 찾은 서울대에서 그는 이와 비슷한 내용의 ‘미래의 과학’을 들려 주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아침부터 3천5백여명에 이르는 많은 인파가 서울대로 몰려들었다. 문화관 대강당에 마련된 강연장에는 1, 2층 모두 청중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입추의 여지없이 자리를 빼곡이 채운 청중들은 호킹 교수가 강연장 안으로 들어서자 모두 기립박수로 그를 환영했다.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도 좌석사이 통로에 앉아 그의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이날 강연에는 대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 초등학생들이 대거 참석해 호킹 박사의 대중적 인기를 실감케 했다. 강원도에 있는 민족사관고등학교와 인천과학고등학교 등은 아예 한 학년 전체가 단체로 상경, 강연에 참석하기도 했다. 또 어린 자녀들의 손을 붙잡고 강연장을 찾은 부모들도 적지 않았다.

강연에서 호킹 교수는 21세기에도 과학의 발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록 그 결과가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다 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은 인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또 “상식이란 우리가 자라면서 익숙해진 편견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며 상식을 깨는 새로운 이론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험을 통한 검증이 불가능하더라도 수학에 의존해 우주의 기본 법칙에 관한 완전한 이론을 찾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강연을 마치고 청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다시 힘겹게 휠체어를 움직여 서울대를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는 "저의 가장 큰 업적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입니다"라는 그의 첫 강연 첫마디가 아련히 꼬리처럼 붙어 있었다.엄청난 액수의 돈이 오가는 그의 강연 여행이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있는게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이 없지 않지만,힘없이 주저앉은 자신의 육신을 우주의 신비를 밝히겠다는 치열한 정신으로 감싸 안으며 살고 있는 그에게 '살아있음이 업적'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건강한 육체를 가졌지만 정신이 무너진 사람들,무너진 육체 때문에 정신마저 무너진 사람들,육체는 무너졌지만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멍들게 하는 사회, 이 모두에게 그는 '살아있는 것이 업적'인 존재로 남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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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신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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