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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 치료의 두가지 돌파구

인간배아복제, 돼지복제 성공

 

수정 후 4-5일이 지난 배반포기 상태의 배아.화살표 부분의 세포를 떼내 줄기세포로 키우는 일이 핫이슈다.


지난 6월 인간게놈프로젝트 성과물의 초안이 완성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더니, 8월에는 ‘복제’ 이슈가 국내외 신문방송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사례는 국내에서 성공한 인간배아복제, 그리고 일본 연구진이 수행한 돼지복제다. 첨단 생명공학의 결실인 이 두가지 사례는 공통적으로 인간에게 난치병 치료의 길을 연다는 점에서 장밋빛 희망을 던져준다. 하지만 생명체를 함부로 조작해서는 안된다는 윤리적 비판과 함께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채 적용되면 인체에 오히려 해를 준다는 경고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8월 9일 서울대 황우석교수(수의대)는 ‘체세포를 이용한 고능력 젖소의 복제생산’에 대한 연구 발표회에서 “36세의 한국인 남성의 귀에서 채취한 체세포를 이용한 복제실험을 통해 배반포 단계까지 배양하는 데 성공, 이 기술을 6월30일 미국 등 세계 15개국에 국제특허를 출원했다”고 밝혔다. 1998년 국내 최초로 복제소(영롱이)를 탄생시켜 관심을 모은 황교수가 이번에는 인간배아복제를 성공시켜 또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인간복제와 다르다

인간배아복제라는 용어는 ‘인간’과 ‘복제’라는 말 때문에 복제인간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인간배아복제와 인간복제는 엄연히 다르다.

인간복제의 원리는 최초의 복제양 돌리의 경우와 유사하다. 먼저 인간의 체세포를 핵이 제거된 여성의 난자에 융합시켜 ‘새로운 형태의 수정란’을 만든다. 이 수정란을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켜 무사히 자라게 하면 10개월 후 복제인간이 탄생한다.

하지만 인간배아복제는 이 수정란이 4-5일 정도, 즉 2백-3백 세포로 분열된 배반포기 상태로 발달했을 때 ‘다른’ 처리과정을 거친다. 배반포기의 배아(embryo) 안쪽에 있는 세포덩어리를 떼어내고 여기에 특정 배양액을 처리한다. 그 결과 신체를 이루는 2백10여개의 기관으로 자랄 수 있는 줄기세포(간세포, stem cell)가 만들어진다. 인간배아복제는 자궁에 착상시켜 복제인간을 탄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일이 주요 목표다.

이 일이 왜 중요할까. 바로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심장에 치명적인 질병이 발생했다고 가정하자. 만일 건강한 심장세포를 질환 부위에 이식한다면 병이 빨리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심장세포는 면역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인간배아복제가 빛을 발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자신의 배반포기 배아로부터 떼어낸 줄기세포를 잘만 키우면 심장세포로 분화될 수 있어 면역거부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8월 14일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진이 발표한 내용은 황교수의 실험 결과가 조만간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멜버른 모나시 대학 연구진은 쥐를 대상으로 흥미로운 배아복제실험을 수행했다. 쥐의 체세포를 떼어내 복제과정을 거쳐 만든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얻은 후 이를 동일한 쥐에 다시 이식했다. 그러자 면역적으로 아무런 거부반응이 없었다. 그렇다면 같은 과정을 인간에게 적용해도 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일본에서 태어난 장기이식용 복제돼지 제나.


장기이식용 돼지 제나

한편 심장병 환자를 구할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이 있다. 심장이식이다.

8월 16일 일본 축산시험장 연구팀은 7월 2일 태어난 복제돼지를 공개해 세계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3월 5일 영국 생명공학회사 PPL 세러퓨틱스가 복제 암퇘지 5마리를 탄생시킨 이후 처음 성공한 일이다.

돼지는 인간에게 필요한 장기를 제공하는데 ‘최적의 동물’로 여겨지고 있다. 간, 심장, 신장과 같은 장기가 사람 장기와 크기가 가장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자연산 돼지 장기는 인체에 이식됐을 때 급격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체에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돼지의 유전형질을 바꿔야 한다.이 일이 성공했을 때 복제돼지의 의미가 살아난다. 유전형질이 바뀐 돼지 한마리를 만들면 이로부터 세포를 떼내 수많은 ‘장기이식용’ 돼지를 복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연구진이 이 복제돼지의 이름을 이종이식(Xenotransplantation)에서 따 ‘제나’(Xena)라고 명명한 이유도, 면역거부반응이 없는 형질전환 돼지를 이용해 인간에 대한 장기이식이 무난히 이뤄지기를 바라는 기대감에서다.

그러나 난치병 치료를 위해 수행된 두가지 형태의 실험은 모두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8월 16일 영국 정부는 의학연구 목적에 한해 수정 후 14일 이내의 인간배아에 대한 복제 행위를 사실상 허용하기로 결정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그러자 다음날 로마 교황청은 영국 정부의 움직임을 비난하면서 인간배아복제 실험이 “실행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분야”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사실 인간배아복제의 허용 여부를 둘러싼 의견은 종교계 내에서도 엇갈린다. 감리교신학대 박충구교수는 6월 1일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주최로 서울대 호암생활관에서 열린 ‘생명공학 안전·윤리 법제화를 위한 워크숍’에서 “전통적인 로마 교황청의 입장은 생명의 시작을 수정 순간으로 보기 때문에 배아에 대한 연구 자체를 반대한다”고 전하고, “하지만 개신교 내에서는 14일 이전의 배아에 대한 복제실험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생명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실험의 목적, 과정, 결과를 공개한다면 인류 사회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는 얘기다.

인간배아복제가 허용돼야 하는지에 대해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정부 차원에서 허용 여부를 고민하고 있는 영국의 모습은 눈여겨볼 만하다.

울산의대 구영모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는 “선진국에서 윤리적인 이유로 논란중인 인간배아복제실험이 한국에서 실행되고 특허까지 출원됐다는 점이 당황스럽다”고 말하고 “한국의 경우 각종 복제실험에 대한 사회적 견제장치가 전혀 없는 점이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진국의 신중한 태도

이와 달리 복제돼지의 경우 인간에게 이식할 장기가 과연 인체에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을까에 관련된 ‘안전성’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8월 13일 영국 BBC방송은 복제양 돌리를 만들어낸 로슬린연구소 연구진이 복제돼지 연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 연구자금을 지원해온 미국의 제론 바이오메드가 더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회사는 돼지에게 존재하는 특정 바이러그사 인간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지원을 중단했다고 한다.생명공학 수준에서 세계 최고를 달리지만 안전성 측면에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선진국들의 움직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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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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