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운영 프로그램인 리눅스를 개발한 리누스 토발즈,그리고 이를 계속 발전시킨 수많은 전문가들.이젠 공짜라서 돈벌이도 안될 것 같은 리눅스를 배포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리눅스 관련 기업들이 부상하고 있다.리눅스가 뭐길래?
1998년 11월초 오픈소스 운동의 리더인 에릭 레이몬드는 할로윈문서라는 기밀자료를 공개했다. 이 문서는 리눅스와 오픈소스 운동에 대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내부 대책자료였다. 빌 게이츠가 이끄는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왕국인 마이크로소프트가 왜 이런 문건을 만들게 됐을까.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문건에서 오픈소스 운동과 그것의 대표적인 산물인 리눅스가 자사의 비즈니스에 심각한 위협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눅스는 특히 서버영역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성능면에서 탁월할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존 마케팅전략으로 도저히 제압할 수 없는 상대라는 점을 시인했다.
MS가 오히려 리눅스 성장에 기여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기업에 대해 FUD라는 특유의 마케팅전략을 구사해왔다. 경쟁제품이 믿을 수 없고(Fear), 불확실하며(Uncertainty), 문제점이 많다(Doubt)는 식으로 정보를 흘려 제품의 판매를 방해하고 회사를 고사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아예 경쟁 회사를 매입하기도 했다.
리눅스에 대해서도 마이크로소프트는 “무료이기 때문에 사후 서비스를 보장할 수 없고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공짜인 듯 보이지만 총비용은 더 많이 든다”는 식으로 언론매체를 동원해 공격했다. 그러나 할로윈문서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같은 작전으로 도저히 리눅스를 제압할 수 없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따라서 인터넷과 네트워크분야에서도 윈도처럼 마이크로소프트가 표준을 독점해 오픈소스 운동의 근거를 없애고, 리눅스 세력이 미약할 때 서버 운영체제와 PC 운영체제를 통합하는 것이 근본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할로윈 문건이 공개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처음에 문서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지만 나중에는 ‘기술적인 조사자료에 지나지 않는다’는 궁색한 변명을 붙여 인정하고 말았다. 그러나 할로윈문서의 존재는 역으로 오픈소스 운동의 명성을 높이는데 기여했으며 리눅스가 세상에 주목을 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사건을 전후해 컴퓨터업체들은 앞을 다투어 리눅스 지원제품을 제공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또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과 인텔 등 대형 업체들은 리눅스 상업화의 기수로 나선 레드햇이란 벤처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출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위협을 느낄 정도라면 오픈소스 운동과 리눅스는 단순히 웃고 넘길만한 흐름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리눅스의 등장으로 IBM과 애플을 격파한 ‘윈텔’(윈도를 개발한 마이크로소프트와 펜티엄칩 등으로 CPU시장을 휩쓴 인텔을 합친 말) 진영에 치명적인 균열이 생긴 것이다.
리눅스는 PC용 유닉스
리눅스(LINUX)는 1991년 핀란드 헬싱키대학의 학생이던 스물한살 청년 리누스 토발즈가 개발한 컴퓨터 운영체제(OS)다. 리눅스란 ‘리누스가 개발한 유닉스’라는 뜻이다. 어릴 적부터 프로그래밍을 좋아한 토발즈는 유닉스 운영체제를 살 돈도 없었지만 “PC에서 돌아가는 유닉스를 스스로 한번 개발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는 중형컴퓨터에서 작동하는 유닉스를 PC용으로 개발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도스보다 훨씬 우수한 기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때까지 네덜란드의 앤디 타넨바움교수가 개발한 미닉스란 PC용 운영체제가 있었지만 16비트 기종에만 돌아가도록 설계돼 있어 32비트 PC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토발즈는 자신의 집에서 386 PC로 몇 달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프로그래밍에 몰두한 결과 마침내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운영체제에 ‘리눅스’란 이름을 붙여 인터넷에 공개했다.
누구나 리눅스를 사용하고 변형시킬 수 있는 대신 리눅스 핵심코드(커널)을 이용한 사람은 반드시 결과물을 인터넷에 올려 정보를 공유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리눅스를 개발한 동기에 대해 “돈벌이보다 순수 기술을 위해, 기술보다는 개인적인 욕심, 즉 ‘내가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란 자부심 때문에 손댄 일”이라고 강조한다.
당시 토발즈는 사교생활이나 심지어는 먹는 것까지도 잊은 채 며칠씩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그래밍에 몰두하는 전형적인 컴퓨터광이었다.
월드 도미네이션!
리눅스는 발표되자마자 인기를 끌어 전세계 수천명의 무명 프로그래머들이 리눅스 커널을 기반으로 이 운영체제에 여러가지 부가기능을 추가했다. 바야흐로 리눅스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를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리눅스는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돼 9년만에 전세계 리눅스 이용자가 1천만명을 넘어섰고, 인터넷 서버시장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NT를 오히려 누를 정도로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레드햇, 터보리눅스, VA리눅스 등 수천개의 리눅스 관련 기업들이 생겨나고 이들 기업의 주가가 나스닥에서 고가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토발즈는 여전히 돈벌이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는 현재 고국을 떠나 미국 실리콘밸리의 산타클라라에 거주하면서 트랜스메타란 벤처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소프트웨어가 인터넷혁명의 화두가 되었건만 그는 이것을 이용해 억만장자가 될 생각이 전혀 없다. 이웃들조차 토발즈가 포브스지의 표지인물에 등장할 만큼 유명인사인줄 모르고 있다. 다만 아내와 두 딸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그는 하루 2-3시간씩 인터넷으로 각국의 프로그래머들과 메일로 의견을 나누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토발즈는 처음 리눅스를 배포할 무렵 절대로 돈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했으나 리눅스가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범위로 확산되자 “누구든 이것을 기반으로 사업을 벌여도 좋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그는 “엉뚱한 회사들이 리눅스를 이용해 막대한 돈을 버는 것이 억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내가 리눅스를 처음 만들 때 1만줄 코드를 썼다. 지금은 코드가 1천5백만줄로 늘어났고 이 시간에도 더 나은 리눅스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레드햇처럼 돈벌이를 위해 리눅스를 개발하는 업체들이 생겨나 리눅스에 재투자하는 것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몇년전부터 ‘월드 도미네이션’(리눅스의 세계 정복)이란 슬로건을 즐겨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리눅스붐으로 이 슬로건이 더 이상 의미를 잃게 되자 새로운 슬로건을 찾아 고민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남녀관계와 같아 자유로울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토발즈가 평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리눅스의 폭발적인 인기 덕분에 토발즈가 유명해졌지만 오픈소스나 프리 소프트웨어 운동의 창시자는 리차드 스톨만이다. 리눅스가 탄생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유닉스 프로그래머들 사이에 널리 퍼진 오픈소스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MIT 출신의 전설적인 해커인 스톨만은 FSF(Free Software Foundation)을 창설하고 스스로 ‘교주’임을 자처하고 있다. 전세계 해커들과 오픈소스 운동에 찬동하는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그는 우상과 같은 존재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주도하는 오픈소스 공동체가 마치 악의 군대와 맞서 싸우는 십자군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항상 외모도 광야를 헤매는 선지자나 예수처럼 꾸미고 다닌다. 히피성의 긴 머리에 창백한 피부, 숱이 많은 턱수염 등이 스톨만의 트레이드 마크다.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의 ‘교주’ 리차드 스톨만
1971년 18세의 하버드대학 학생이던 스톨만은 MIT의 인공지능연구소에서 근무했다. 당시 해커들은 주로 밤늦은 시간에 대학의 대형 컴퓨터가 한가해질 쯤이면 이용했는데, 스톨만도 연구소에서 기거하면서 매일 밤새워 프로그래밍을 하고, 그가 사랑하는 컴퓨터 옆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스톨만은 “모든 소프트웨어는 언어와 같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수정하거나 재배포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도록 소스코드가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독점적인 소유권을 이용해 엄청난 부를 누리는 빌 게이츠나 마이크로소프트를 경멸한다.
그는 1980년대초 컴퓨터업체들이 저마다 다른 유닉스 기종을 발표하면서 소스코드를 기업비밀로 하자 1983년 GNU프로젝트를 만들어 유닉스의 상업화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다. 운영체제에서 응용 소프트웨어까지 모든 것을 오픈소스 프로그램으로 개발하자는 것. 원래 오픈소스 운영체제로 출발한 유닉스가 기업들의 이기심 때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됐다는 주장이다. 그는 “소프트웨어의 복제, 수정, 재배포는 자유로워야 하고 이를 방해하는 어떤 제약도 사라져야 한다”고 외쳤다.
스톨만이 주도한 FSF와 GNU는 저작권(카피라이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것으로 흔히 사람들은 그의 사상을 ‘카피레프트’라고 부른다. GNU는 ‘GNU is Not UNIX’의 약자로 스톨만의 반항정신과 재치가 엿보인다.
소스코드 공개를 통한 정보 공유
스톨만의 GNU에 동조하는 전세계 수천명의 프로그래머들이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 인터넷에 올려놓았고 이들 프로그램은 여러 사람의 끊임없는 수정작업을 거쳐 현재 인터넷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웹서버 소프트웨어인 아파치, 메일서버프로그램인 샌드메일, 인터넷 도메인명을 관리하는 바인드, 리눅스나 윈도의 파일서버기능을 제공하는 삼바 등이 대표적인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다. 말하자면 리눅스도 이들 프리 소프트웨어의 하나인 셈이다.
GNU가 소프트웨어의 상업적 판매까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스톨만은 복제 수정 재배포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소프트웨어를 판매해도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인터넷에 소프트웨어 소스코드를 무료로 얻을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두어야 한다.
스톨만은 요즘 인터넷상의 특허기술을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작년 연말부터 대표적인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에 대항해 “아마존의 원클릭 기술독점이 정보공유의 정신에 위배된다”며 아마존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마존이 원클릭 기술에 대해 특허를 내고 경쟁사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월드와이드웹과 전자상거래의 발전에 중대한 장애를 주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포브스지가 1998년 네티즌들을 상대로 인터넷의 영웅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리누스 토발즈와 리차드 스톨만이 나란히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월드와이드웹을 개발한 팀 버너스리와 리얼네트워크를 개발한 로브 글래서가 그 뒤를 이었고, 제리 양(야후 설립자)은 5위, 빌 게이츠는 7위에 머물렀다.
미친 사람처럼 보였던 ‘빨간 모자’
리눅스를 상업화해서 가장 성공한 기업은 레드햇(Redhat)이다. 실리콘밸리에서 멀리 떨어진 미국 동부 노스캐롤라이나의 소나무숲과 딸기밭, 그리고 담배농장이 끝없이 펼쳐진 지역에 레드햇 본사가 자리잡고 있다. 첨단산업과는 거리가 먼 도시에 그것도 무료이자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주력 아이템으로 잡아 레드햇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 지역 언론들은 이들을 ‘모자 쓴 미친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인터넷에서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팔고 자신들이 결코 소유하지도 못할 기술을 개발하는데 시간과 정성을 들이다니 돌아도 한참 돌았군. 그것도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인이 장악하고 있는 운영체제 시장에서….”
로버트 영과 마크 어윙이 이끄는 레드햇은 1995년 이런 의문 속에서 설립됐다. 20여년간 컴퓨터업계에서 자금 및 영업을 담당해온 로버트 영은 1993년 인터넷에서 리눅스의 인기를 실감한 후 돈이 된다고 판단, 즉시 리눅스 배포 및 카탈로그 사업을 시작했고 2년후 마크 어윙과 뜻을 모아 레드햇을 세웠다.
당시 레드햇은 리눅스 초기버전에 제3자 어플리케이션, 기술지원 프로그램, 리눅스 관련 오픈소스 프로그램 등을 모아 CD롬에 패키지로 구워 50달러에 팔았다. 그로부터 5년후 레드햇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 회사 제품을 통해 리눅스를 접하는 대표적인 리눅스 기업이 됐다. 국내에서 처음 배포된 한글판 ‘알짜 리눅스’도 레드햇을 기반으로 했다.
“리눅스는 프리 소프트웨어인데 어떻게 비즈니스가 될까”하고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그래머들이 개발해 공개하는 리눅스 프로그램은 커널이라 불리는 운영체제의 핵심부분으로 사용자가 실제 리눅스를 사용하려면 커널말고도 리눅스에서 돌아가는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고도의 전문지식을 가진 마니아라면 인터넷에서 이들을 하나씩 모으고 각각의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설정해 전체 시스템을 만들 수 있지만 일반 컴퓨터 사용자에게 이것은 너무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서 커널 뿐 아니라 필수적인 툴이나 유틸리티, 애플리케이션 등을 패키지로 포장해 일반 사용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판매하는 기업(디스트리뷰터)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한다. 현재 세계적인 리눅스 디스트리뷰터로는 레드햇을 포함해 칼데라, 수제, 터보 리눅스 등이 있다.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라
레드햇에서 배포하는 리눅스는 사용자층이 가장 넓고, 인텔, IBM, 컴팩, 오라클 등 대규모 기업들과 제휴를 맺고 있다. 레드햇의 기본 전략은 시스템의 안정성이나 사용의 편리성 같은 기본 욕구보다 프로그램의 참신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즉 가장 최신의 프로그램을 모아 사용자에게 제공함으로써 프로그래머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최신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시장점유율을 키워가자는 발상이다. 레드햇은 패키지를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출시하고 널리 배포하는 한편 서비스나 교육 등 지원사업으로 수익을 높인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아직 서비스나 지원에 의한 매출이 전체의 7%에 머물러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레드햇은 전자상거래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아마존처럼 당장의 수익성보다 미래의 브랜드 가치를 중시하는 경영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각종 벤치마크 테스트에 리눅스의 이름을 내걸고 나가는 것도 대부분 레드햇 제품이다. 전세계 리눅스 추종자 수천명을 실리콘밸리에 모아 ‘리눅스 월드 엑스포’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도 펴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8월 골드만삭스를 주간사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을 때 주가가 이틀만에 14달러에서 72달러로 4백19%나 급등해 리눅스기업의 폭발적인 성장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모은 자금을 발판으로 시그너스 솔루션 같은 리눅스를 정보기기에 내장하는 임베디드 업체를 인수했고 게임 소프트웨어 산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리눅스 벤처 1호 칼데라
1994년 리눅스기업으로는 가장 먼저 설립된 칼데라는 유명한 소프트웨어업체인 노벨 출신들에 의해 세워졌다. 노벨의 전 사장인 레이 놀더가 출자를 했고 노벨의 엔지니어 출신 브라이언 스파크스가 현재 CEO로 있다. 이외에도 노벨이나 워드퍼펙트 출신이 10여명 된다. 칼데라는 설립 당시부터 ‘비즈니스를 위한 리눅스’를 구호로 외쳤다. 데스크탑 PC 사용자보다 기업사용자를 목표로 서버영역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최신 커널보다 안정성이 높은 옛 커널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칼데라는 리눅스 비즈니스에 고전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시대를 너무 앞서간 측면도 있고 제품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칼데라는 리눅스를 다루는 소프트웨어 부문 회사와 시스템 구축을 다루는 하드웨어 부문 회사로 분할됐다.
수제는 4명의 독일 과학자가 설립한 회사로 리눅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유럽에서 열성적으로 리눅스를 보급하고 있다. 리눅스 패키지 뿐 아니라 하드웨어도 취급하고, 리눅스 지원과 교육사업으로 가장 성공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실리콘밸리에도 지사를 설립했지만 2년동안 사장이 여러번 바뀌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제의 리눅스판은 응용 프로그램 수가 대단히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터보리눅스는 미국 뿐 아니라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속도가 가장 빠른 리눅스기업이다. 본사는 미국에 있지만 처음부터 아시아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등 아시아 언어에 맞춘 제품을 개발, 시장공략에 나서고 있다.
터보리눅스의 설립자인 클리퍼 밀러(43)도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는 10대 청소년 시절 부모와 떨어져 2년간 일본에 머물면서 동양 문화와 언어를 익혔고, 20대에 다시 일본과 중국으로 건너와 영어강사를 하면서 중국 여성과 결혼까지 했다. 그후 다양한 언어실력 덕분에 미국 제록스사의 다언어 워드프로세서 개발팀에 뽑혀 일하게 됐고, 이때 컴퓨터에 눈을 떠 유타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기도 했다.
그의 평소 소신은 “아시아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미국 만능주의, 영어 만능주의를 버리고 아시아 법을 따르라”는 것. 최근 펴낸 저서 ‘리눅스 비즈니스.com’을 통해 리눅스를 둘러싼 비즈니스 환경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인 리눅스의 잠재력을 살릴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달에는 터보리눅스의 CEO 자리를 폴 토마스에게 넘기고 그 자신은 뒷자리로 물러나 기업의 장기전략을 짜는 일과 오픈소스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