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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한창 더위를 ‘삼복(三伏)더위’라고 한다. 삼복은 초복, 중복, 말복을 일컫는데 이는 24절기에는 들지 않지만 여름 절기인 하지를 기준으로 하므로 더위와 밀접하다. 복날은 하지가 지난 후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10간 중 경(庚)자가 들어간 특정 날로 정해진다. 하지 후 세번째 경일(庚日)이 초복이고, 네번째 경일이 중복, 입추 후 첫번째 경일이 말복이다. 보통 초복에서 중복, 말복의 간격은 10일로 삼복은 30일간이지만, 경우에 따라 40일간이 되기도 한다. 중복과 말복 사이에 들어있는 입추의 날짜에 따라 중복과 말복이 20일 간격이 될 때도 있다.

이열치열로 더위 쫓기

하지가 6월 22일 경이니까 삼복더위는 양력으로 7월 하순에서 8월 하순까지 약 30-40일에 해당되는 기간의 더위이다. 직장의 휴가철이요, 학교의 방학 기간이니 그야말로 한창 더운 때다. 태양의 고도로만 따지면 하지 때 가장 강한 태양빛이 내리 쬔다. 하지만 지구가 데워지는데 시간이 걸리고 대기가 움직이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때는 삼복 때가 되는 것이다.

복(伏)자가 사람 인(人)과 개 견(犬)의 합자이듯이 예로부터 삼복에는 개고기를 넣은 보신탕을 먹어왔다. 몸을 보신하는 탕은 모두 보신탕이지만 우리에게는 대부분 개고기탕으로 통한다. ‘본초강목’에는 개고기는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도우며, 위를 보하고, 양기를 일으킨다고 했다. 또한 현대적인 연구에 따르면, 개고기는 사람의 근육과 가장 가까운 아미노산의 조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소화가 잘되고 흡수가 잘 된다. 개고기에는 특히 성인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포화지방산이 적고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함유돼 있다. 병후 회복을 위해서나 영양보충을 위해 보신탕이 선호되는 몇가지 이유다.

경희대 국문과 서정범 교수는 삼복더위에 보신탕을 비롯한 각종의 보양식을 많이 찾는 이유를 한국인의 체질에서 찾는다. 흔히 체질을 남방계 체질과 북방계 체질로 나누는데, 북방계는 속이 차고 겉이 뜨거운 반면, 남방계는 겉이 차고 속이 뜨겁다. 북방계는 겉이 뜨거워 추운 날씨에는 잘 적응을 잘 하지만, 더운 날씨에는 매우 어려움을 겪는다. 반대로 남방계는 늘 더운 날씨에 적응돼 있으므로 추위를 견디기가 힘들다. 우리나라와 같은 기후에서는 북방계 체질이 많은데, 이들은 여름이 가장 힘들어 여름철에 보양식을 찾는 문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또한 한의학에서는 개고기를 화(火)에 속하는 음식으로 보는데, 여름에 개고기를 먹는 것은 이열치열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복을 주는 누렁이

우리나라에서 더운 복날 개가 언급되는 것과 흡사하게 서양에는 더위와 관련해 개의 날(dog’s day)이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별자리의 운행을 살펴 더위와 홍수를 예견했다. 이때 기준이 되는 별은 큰개자리의 시리우스별이었다. 시리우스는 겨울에 잘 보이는 별로 여름에는 새벽 무렵에 동쪽에서 잠깐 모습을 보였다가 날이 밝아 사라진다. 이집트인들은 시리우스가 새벽에 보이면 여름이 됐고, 곧 홍수가 나서 나일강이 범람할 것을 예견했다. 이 때문에 시리우스가 새벽에 처음으로 보이는 날을 ‘개의 날’이라 하고 이때부터 더위와 홍수에 대비했다.

예로부터 똥개에도 등급이 있었다. 최상은 황구(누렁이)요, 다음은 흑구(검둥이), 그 다음이 화구(바둑이, 얼룩이), 마지막이 백구(흰둥이) 순이었다. 황구는 보신용으로, 흑구는 약용으로 많이 썼다. 그런데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바둑이와 백구는 식용으로나 약용으로 쓸데가 없어 찾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황구는 정말로 식용으로 선호할 만한 개일까. 서울대 수의학과 윤화영 교수는 같은 품종이라도 털의 색깔에 따라 육질이나 영양에 차이가 있다는 주장은 인정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다만 혈연관계가 복잡한 똥개(잡종)의 경우 부모의 종에 따라 약간 차이가 날 수는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규경은 개를 고르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같은 누렁이라도 등빛이 흰 것은 불길하고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며 기르지 말라고 했다. 대신 앞다리나 가슴털이 흰 것을 기르면 좋은 일이 생기고, 호랑이 무늬결이 있으면 더욱 좋다고 했다. 특히 점술책에는 흰둥이가 호랑이 무늬결이 있으면 만석을 주고라도 사라고 했다. 이런 개는 하늘의 남두육성(서양의 궁수자리에 해당)의 가호가 있어 복과 수명을 늘린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털의 색깔에 따라 선호가 달라진 것을 보면, 황구를 가장 높이 친 것도 고기맛 때문이기보다는 노란색을 귀한 색으로 치는 우리 민족의 정서적인 선호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노란색이 풍년을 상징하고 마당이나 초가의 색깔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흘레붙는 개들의 비애

가끔씩 동네의 골목이나 거리에서 민망하게 흘레붙는 개들을 볼 수 있다. 쫓아버리고 얼른 떼어놓으려도 이들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개들이 음탕함의 대표가 됐고 욕설이나 비속어에는 개자가 붙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알고 보면 개들에게도 사정이 있다. 소나 말은 정관 말단부에 정액을 저장해두는 정낭이 있고, 이것이 사정관에 가까이 연결돼 있다. 평소에 생산된 정액을 정낭에 보관하고 있다가 쉽게 방출할 수 있으므로 교미시간이 짧다. 반면 개나 고양이의 생식기관에는 정액을 저장하는 정낭이 없다. 때문에 교미를 시작하면 그 자극으로 그때서야 고환에서 만들어진 정충이 수정관을 통과하고 사정관까지 도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들은 충분한 정액을 사정하기까지 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개들의 교미시간이 길다는 점 때문에 개고기가 양기를 일으키며 정력증진에 특효가 있다는 주장이 생겨난 것 같다. 하지만 국립보건원의 분석에 따르면, 개고기는 돼지고기나 닭고기에 비해 오히려 열량이 낮아 힘을 내는 데는 적당하지 않다. 1백g당 열량이 쇠고기 1백16kcal, 돼지고기 1백35kcal, 닭고기 1백26kcal인데 비해 개고기는 1백13kcal로 가장 적다. 또한 개고기에서 생식기관에 작용하는 특별한 성분이 발견되지도 않았다.

편안히 죽을 권리

복날 개 패듯 한다’는 말이 있다. 어째서 개를 잡을 때 두들겨 패서 잔인하게 잡아야 했을까. 어떤 사람들은 개가 구타당하면서 근육이 긴장하면 당분비가 많아져 육질이 쫄깃하고 맛이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고통과 스트레스로 인해 아드레날린 분비가 많아져 오히려 맛없는 고기가 될 수 있다. 역사가들은 복날 개 패듯 하는 도살법이 우리 민족의 문화적인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농경민족으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동물을 도살하는 요령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렵문화에서는 동물을 한방에 절명케 하는 법이 잘 발달해 있지만, 농경문화에서는 그런 방법이 발달하지 못해 급소를 몰라 몽둥이로 패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쨌건 이제 개를 두들겨 패서 도살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사람에게 먹히는 것이 가축들의 운명이라면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집트 신화에서 개의 얼굴을 한 아누비스 신은 죽은 사람을 저승의 심판관에게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알타이 신화에서도 사람이 저승에 가면 저승문을 지키는 개를 만난다고 한다. 저승에서 개들의 인도를 받고싶은 영혼이라면 조금은 개들을 존중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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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전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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