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와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현실을 화면에 담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고안했다. 단축법·원근법·공기원근법·해부학의 과학적 지식이 그림에 도입되면서 그림은 더욱 사실적이 돼 갔다.
약 2만년전 구석기 원시인들이 동굴 속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 미술가들은 되도록 실물과 닮게 그림을 그리려고 무진 애를 썼다. 현실지향적이었던 그리스 로마인들은 ‘소년의 초상’(1)과 같은 매우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다. 약 2천여년 전에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얼마 전에 제작된 듯 화려한 색채를 유지하고 있고, 소년의 커다란 눈은 금방 우리에게 말이라도 걸어올 듯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미술의 역사에서 사실적인 미술의 시작은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로 보고 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그린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화면에 옮겨다 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명한 르네상스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이란 실제 크기만 다를 뿐 화면 위에 옮겨다놓은 또 다른 현실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서 현실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현실의 원리도 잘 알아야만 한다고 다 빈치는 주장했다. 현실을 똑같이 화면 위에 재현하기 위해서 다 빈치는 역학(力學)과 해부학, 원근법, 중력, 색채학, 심지어는 생리학까지도 공부했다. 다 빈치가 그러한 분야들을 연구했던 이유는 또 다른 현실인 그림에서도 현실의 원칙, 즉 중력이라든가 역학, 원근법, 시간의 동일성 등이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1. 원근법 - 평면에서 3차원을 실현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화면에다 똑 같이 옮겨 놓아야만 한다. 그런데 화면은 2차원의 평면이다. 원칙적으로 3차원의 실제공간을 2차원의 화면 위에 옮겨놓는 일은 불가능하다. 현실을 화면에 옮기기 위해서는 어떤 장치가 필요한데, 그 장치가 바로 원근법이다.
원근법?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먼 곳에 있는 것은 작게 그리는 원근법 말인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원근법을 몰라서 미술가들이 15세기까지 사실적인 그림을 못 그렸다는 말인가? 믿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원근법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경험적인 원근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5세기의 원근법이란 수학적으로 계산된 공간의 재현법칙이었다. 서기 79년 베스비우스 화산의 폭발로 매몰된 ‘이피게니아의 희생’(2)이라는 폼페이의 벽화를 보자. 왼편에 등을 지고 서 있는 여인을 보라. 특히 다리의 표현에 주목을 하라. 폼페이의 미술가는 공간감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서 단축법을 사용하고 있다. 단축법이란 공간의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 멀리 있는 사물의 길이를 줄여서 표현하는 기법이다. 그런데 15세기 원근법은 이러한 경험적인 원근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화면에서 수십m의 깊이를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최고 발명품인 원근법은 15세기 이탈리아의 건축가이며 화가인 부르넬레스키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원근법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 최초의 화가는 마삿치오였다. 그의 ‘성 삼위일체’(3)라는 작품을 보자. 15세기 이탈리아의 피렌체 시민들은 이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림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그리스도의 뒤로 보이는 배경공간에 주목해보라. 이 그림의 배경공간은 ‘이피게니아의 희생’과 같이 밋밋하고 성격 없는 공간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뒤로부터 벽에 이르는 공간에서 수십m나 되는 깊이를 느꼈다. 원근법이 발명되고 나서야 비로소 미술가들은 현실과 똑 같은 공간을 화면에 옮겨 놓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근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뒤러의 ‘원근법 연습’(4)이라는 작품을 보면 르네상스 화가들이 어떻게 원근법을 이용했으며 과거의 단축법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 있다. 그림을 보자. 화가와 모델 사이에는 격자무늬가 그어진 투명한 창이 있고 화가의 눈 밑에는 카메라의 파인더와 같은 조그만 구멍이 뚫린 기구가 놓여 있다. 화가는 한 눈을 감고 이 기구의 조그만 구멍을 통해 격자무늬의 창 너머에 있는 모델을 책상 위에 펼쳐놓은 모눈종이에 옮겨 그린다.
화가는 그림이 다 끝날 때까지 눈을 움직여서는 안 됐다. 눈을 움직이면 보는 위치가 틀려져 원근법적으로 맞지가 않기 때문이다. 르네상스화가들은 뒤러와 같은 방법으로 현실공간을 정확하게 화면에다 옮길 수가 있었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정물이나 풍경을 그리려면 어떻게 했을까? 간단하다. 정물을 그리려면 모델을 정물로 바꾸면 되고, 풍경화를 그리고 싶으면 투명한 창을 산이나 평야 쪽으로 바꾸어 놓으면 됐다.
기하학을 모르면 그림을 포기하라
우첼로와 같은 화가는 원근법에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잠자리에 들자는 부인의 말도 들은 척하지 않고 밤새도록 원근법을 시험했다고 한다. 그리고 15세기의 유명한 이탈리아 건축가이며 미학자인 알베르티는 “원근법을 모르면 그림을 그리지도 말라”고 얘기할 정도였다. 실물과 똑 같이 그림을 그리려 했던 르네상스화가들에게 원근법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공간표현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미술가들은 뒤러의 그림과 같이 불편한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은 아니었다.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와 같은 르네상스의 미술가들은 완벽한 데생능력을 지니고 있어 무엇이든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르네상스의 그림 대부분은 성경의 이야기나 역사화였기 때문에 투명한 창 뒤로 모델을 세워놓고 그릴 수 없었다. 그들이 그리고자 하는 내용은 바로 화가들의 머리 속에 있었다. 다 빈치가 그린 ‘마기의 경배를 위한 원근법 연습’(5)을 보면 실제 르네상스 미술가들이 어떻게 원근법을 화면 위에서 적용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 그림에서 보듯 다 빈치는 중앙의 소실점을 향해 일정한 간격으로 수렴하는 선을 그린 다음 사람이나 낙타, 그리고 건물들을 주제에 맞게 그려 넣었다. 이 그림을 보면 원근법, 즉 기하학을 모르면 그림을 그리지도 말라는 알베르티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원근법의 발명으로 르네상스 화가들은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6)에서 보듯 사건을 마치 보는 사람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이 표현할 수가 있었다. 이 그림은 그리스도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배신하리라”라고 말하자 유다가 “주여, 나입니까?”라고 반문하는 장면이다. 원근법 이전에는 이렇게 실감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가는 없었다.
2. 공기 원근법 - 먼 산은 흐릿하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선원근법의 발명으로 거리를 실감나게 화면 위에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선원근법을 사용해 그려진 그림은 실제 자연에서 느끼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실제 자연에서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크기만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나 색채도 흐릿하게 보인다. 바로 대기 중의 공기 때문이다. 이 대기 중의 공기를 표현하는 방법을 공기원근법이라고 부른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현실을 실감나게 그리기 위해서 선원근법 뿐만이 아니라 공기원근법도 화면에 적용했다.
15세기 플랑드르에는 반 아이크라는 거장이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마삿치오에 비견될만한 미술가였다. 이탈리아 미술가들이 과학적 원근법으로 뼈대를 세우고 해부학과 단축법으로 인체를 표현한 반면, 반 아이크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아르놀피니의 약혼’(7)이라는 그림을 보자. 반 아이크는 해부학에 맞춰 뼈대를 세우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화가들과는 달리 한 사물을 끈기 있게 그린 다음 다른 사물을 그려나갔다. 57 x 83cm 크기의 조그마한 그림 속에 약혼식을 거행하는 이 두사람과 그들을 그리고 있는 화가를 담고 있는 거울이나 터럭 하나하나까지 묘사된 강아지를 보면 반 아이크의 묘사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수증기와 먼지의 난반사
반 아이크의 그림이 매우 사실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뛰어난 묘사력 때문만은 아니다. 반 아아크는 이전의 미술에서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현실을 철저히 관찰하고 분석해 그림을 그렸다. ‘최후의 심판’(8)이라는 반 아이크의 이 그림에서 그리스도의 뒤로 보이는 산을 자세히 보라. 반 아이크 이전에 누구도 산을 이렇게 표현한 작가는 없었다. 그는 저 멀리 보이는 산을 푸르스름하게 표현함으로써 거리감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그는 공기원근법을 이용했던 것이다.
공기원근법은 뛰어난 현실관찰이 없이는 발견할 수 없는 방법이다. 대기는 수증기와 먼지로 가득 차 있다. 이 수증기와 먼지에 빛 입자가 부딪쳐 빛의 난반사가 일어난다. 그 결과 먼 곳에 있는 물체의 형태와 색채는 선명하지 않게 돼 반 아이크가 그린 산과 같이 흐릿하게 보이게 된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발견이었다. 반 아이크는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크기만 작게 그린 것이 아니라 빛과 색채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이탈리아미술과는 또다른 북유럽의 르네상스미술을 구축했던 것이다.
공기원근법의 대가는 16세기 르네상스 회화의 최고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 그는 르네상스가 낳은 불세출의 천재였다. 이 대천재는 책을 통한 지식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다 빈치는 자기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다 빈치는 자기 주변의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았다. 그는 해부학, 생리학, 역학, 기계 등 손대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었을 정도였다. 모든 일에 관심이 많았던 다 빈치는 자연 그림 그리는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모든 지식을 미술에 활용했다.
살아있는 모나리자의 눈과 입
다빈치는 회화를 과학적 토대 위에다 올려놓고자했다. 미술가는 비천한 육체 노동자가 아니라 품위 있는 정신 노동자라고 굳게 믿은 그는 당시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는 "미술은 단순한 육체노동이 아니라 과학이다. 왜냐하면 회화는 현실의 세계를 옮겨 놓은 또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다 빈치는 미술이 과학이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 그는 해부학, 원근법, 색채학, 역학 등을 열심히 연구했다.
다 빈치의 그 유명한 ‘모나리자’ (9)를 보자.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미술을 이야기 할 때 들먹이는 그림이 바로 이 모나리자이다. 루브르미술관에 방탄유리로 보관돼 있는 ‘모나리자’는 너무나 유명해 미술관을 방문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그림 앞에서 사진 찍기를 원해서 평소에도 제대로 그림을 볼 수 없을 정도이다.
도대체 ‘모나리자’는 왜 그토록 유명한 것일까? ‘모나리자’가 유명한 이유는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볼 때마다 표정이 바뀐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단순한 그림 속의 인물이 아니라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을 주게 된다. 모나리자의 신비는 바로 ‘살아 있음’에 있고, 그 비밀은 모나리자의 눈과 입의 표현에 있다.
다 빈치는 미술가 이전에 과학자였다. 과학자였던 그는 반 아이크와 같이 공기 원근법에 대해 정통해 있었다. 그는 예리한 자연 관찰을 통해 대기 속에서는 수분과 먼지가 빛을 난반사시켜 멀리 있는 물체의 윤곽선이 흐릿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북유럽의 대가 반 아이크도 공기원근법의 원리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다 빈치는 과학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이 대기원근법의 원리를 자신의 작품에 적용했다. 그리고 이것을 특별히 ‘스푸마토’(Sfumato)라고 불렀다. 스푸마토란 ‘연기와 같은’이란 이탈리아 말이다. 굴뚝을 통해 연기가 공기로 퍼져나가면 얼마 후 연기는 공기 속으로 퍼져나가면서 연기와 공기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이 원리가 바로 스푸마토이다. 다 빈치는 스푸마토기법을 이용해 공기를 표현한 것이다.
비밀은 흐릿한 윤곽선
다 빈치는 사물과 사물의 경계를 이루는 윤곽선을 문질러 흐릿하게 처리했다. 모나리자는 이러한 스푸마토의 원리를 적용해 그려졌다. 모나리자의 눈과 입, 손 등을 보면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그 결과 빛이 비치는 각도나 강약에 따라 모나리자의 눈과 입술의 윤곽선의 위치가 달라진다. 볼 때마다 모나리자의 얼굴이 달라 보이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윤곽선을 명확히 그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10)과 비교하면 ‘모나리자’의 특징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보티첼리와는 달리 다빈치는 윤곽선을 명확히 그리지 않아 보는 사람의 머리 속에서 윤곽선이 그려지게 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림을 볼 때의 실내 조건과 보는 사람의 감정 상태에 따라 모나리자의 얼굴은 수시로 달라 보이게 된다. 이것이 모나리자의 비밀이었다. 이외에도 다 빈치는 모나리자의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을 비대칭으로 만들었고, 인물 뒤의 지평선을 불일치 시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했다. 다 빈치는 치밀한 묘사력 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담는 방법도 알았던 천재 중의 천재였다.
3. 해부학 - 인체에 생명을 불어넣다
우리는 앞에서 르네상스 미술가들이 공간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원근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감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또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해부학이다. “의사도 아닌데 미술가가 해부학을 배울 필요가 있담…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물을 실감나게 그리기 위해서 화가는 그 물체의 내부를 구성하는 뼈대나 근육 등의 구조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만 한다. 겉모습만 비슷하게 그린다고 사실감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비드의 생동감
다 빈치의 말대로 화면공간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축소된 현실이다. 이 또다른 현실 속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모든 생물들은 실제와 같이 피가 통하고 근육이 있는 온전한 모습이어야만 한다.
르네상스의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11)를 보자. ‘다비드’는 이전의 조각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당당하게 두발로 서 있는 ‘다비드’는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현실의 공기를 호흡하고 있다. 특히 그의 눈썹과 손목의 힘줄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피가 통해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다비드’가 이전의 조각과 다른 점이란 바로 이 살아 숨쉬는 듯한 생동감에 있었다. 르네상스의 미술가들은 어떻게 이리 생생하게 인체를 표현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해부학에 대한 지식 때문이었다.
‘라 헤프트 왕자와 그의 아내’(12)라는 고대 이집트의 조각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된 작품이다. 그러나 사실적으로 표현됐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다비드’와 같이 생동적이지가 않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집트의 조각은 사실에 기초를 하고는 있지만, 르네상스조각과 같이 해부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맥의 위치까지 파악
미켈란젤로는 인체의 구조를 알 때까지 인체를 그리고 또 그렸다. 그가 그린 ‘리비아의 무녀를 위한 스케치’(13)를 보자.
미켈란젤로는 어느 위치, 어느 각도에서나 자유자재로 인체를 묘사할 수 있었다. 다 빈치는 한술 더 떠서 뼈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근육이 어떻게 붙어 있는지, 동맥이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직접 자기 손으로 인체를 해부해 인체의 구조를 확인하기도 했다(14).
만테냐의 ‘형장으로 끌려가는 성 야곱’(15)을 보자.
이 그림을 보면 르네상스화가들이 어떻게 그림에 접근했는가를 알 수 있다. 완벽한 인체 묘사를 위해 만테냐는 우선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해부학적 지식에 의해 정확하게 스케치를 했다(15-1).
그리고 그려진 인물의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의복이나 장신구를 결정하고 의복을 그려 넣었다. 의복이나 장신구는 단순히 화가의 미감에 따라 결정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철저한 고증학적 접근에 의해 의복과 장신구가 결정됐다. 사실적인 그림이 단순히 해부학만 잘 안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해부학 지식을 통해 피부 아래 감추어진 인체의 뼈대나 근육, 힘줄, 핏줄 하나하나의 위치까지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이 해부학을 배웠던 이유는 두말할 필요가 없이 인체를 사실적이고 생동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