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지금까지 자연을 통제하고 변형해서 엄청난 문명의 진보를 거듭해왔다. 그 중에서도 인간이 건설한 수많은 건축물들은 자연을 지배하고 변형해 이룩한 인류의 기념비이다. 최근 인간이 이룩한 과학기술문명의 파괴적인 후유증을 목도하고 건축에서도 자연친화적인 사고를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른바 ‘생태건축’이라고 불리는 개념이 그것이다.
건축은 그 자체로서 환경 파괴적이다. 인간의 목적을 위해 환경을 변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태건축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생태적인 사고는 이미 멈출 수 없는 문명의 대세라고 말하고 있다. 건설기술연구원의 김현수 박사는 “생태건축이란 기본적으로 건축을, 순환하는 자연의 한 고리에 넣어 생태순환에 참여시키려는 발상”이라고 말한다. 이제 건축도 자연의 일부가 되는 길을 모색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생태건축의 기본은 모든 면에서 자연과 친화하는 것이다. 언덕을 깎아 평지로 만들어 집을 지으려 했던 기존의 발상 대신 언덕을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거주의 편리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또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살리는 건축을 지향한다. 짓는데 드는 재료가 생산과정에서 공해를 유발하거나, 사용 후에라도 쓰레기를 남기는 것이라면 생태건축에 적합한 재료일 수 없다. 자재는 집이 수명을 다하고 헐리게 됐을 때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집의 유지에 있어서도 난방이나 조명에 드는 에너지를 자연에서 얻도록 힘쓴다. 자연채광과 낭비 없는 열이용시스템이 도입돼야 함은 물론이다. 생활 속에서 배출되는 쓰레기와 오수 등도 완전히 재처리한다. 그야말로 자연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고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건축을 지향하는 것이다.
지붕 위의 잔디밭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현실에서 가능할까. 김현수 박사에 따르면, 선진국에서는 이미 성공적인 사례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세계적으로 1980년대 이후 생태마을, 소규모 주거단지, 학교 공공건물 등에 생태적 개념을 적용하고 실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독일이다. 밍케가 실현한 현대식 목조진흙주택에서는 태양열을 이용하는 온실, 흙으로 덮인 지붕에서 자라는 잔디가 한눈에 띈다. 이 집은 자연채광으로 온실에 필요한 에너지를 줄이고 실내에 정원을 둠으로써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지붕의 잔디는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처가 되고 지붕 외부의 단열재 역할도 한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건축에 사용된 진흙. 진흙은 재생 가능한 자연재료이고, 축열성능과 습도조절기능이 뛰어나다.
독일의 킬 하세에 위치한 생태주거단지는 폐신문지를 활용한 종이솜단열재와 폐목재를 재활용한 목섬유판재 등 재활용 재료만 사용된 특이한 예에 속한다. 또한 하노버 생태주거단지는 야생잔디가 무성한 지붕, 포장되지 않은 골목길 등이 인상적인 주거단지로, 건설된지 10여년이 지나도록 건축학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69세대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이곳은 ‘도심 속의 연립정원주택’으로 불린다.
일본에서도 도쿄에 ‘환경공생 집합주거단지’계획이나, 오사카의 ‘넥스트 21’같은 프로젝트는 생태건축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여기에서는 욕조에서 나오는 물을 정수해 생태정원에 공급하고, 태양에너지와 연료전지를 결합한 무공해 에너지 시스템도 도입될 예정이다.
미래의 사무실
국내에서 생태건축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최근 한국에너지 기술연구소가 내놓은 실질적인 의미의 생태건축이 그린빌딩이란 이름으로 현실화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여기에는 전통의 온돌장치를 응용한 나방과 건물 중앙에 자연채광 공간인 중정(中庭)을 둠으로써 에너지 절약과 환경친화개념을 실현하고 있다. 몸체가 큰 건물의 경우 안쪽에 있는 사물실에서는 하루종일 햇빛을 전혀 볼 수 없다. 이러한 곳에 중정을 둠으로써 모든 사무실에 골고루 자연채광이 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건축물의 유지에 사용되는 에너지의 대부분이 조명에너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연채광은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뿐 아니라, 에너지 절약에도 큰 몫을 하는 것이다.
건설에 사용된 자재들도 과학적인 평가를 통해 가장 환경친화적이고 내재에너지가 적게 드는 것들을 선택했다. 내재에너지란 자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소모된 에너지를 뜻한다. 이는 건물 운영의 에너지 효율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용된 재료에 들어간 에너지, 해체시 재활용되는 재료에 이전된 에너지 등 건축자재의 일생을 통틀어 에너지 효율을 평가한다는 개념이다.
또한 재료의 환경친화성이 중요한 기준이다. 유기합성페인트의 경우 휘발성용제가 증발하면서 실내환경을 오염시키고 작업능률을 떨어뜨릴 것은 뻔한 이치다. 이 때문에 그린빌딩에는 천연염료로 만든 페인트만을 도료로 사용했다. 에너지기술연구소의 박상동 박사는 “기본적으로 그린빌딩의 목표는 가장 쾌적한 근무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물에 들어가는 총비용을 따져보면 쾌적한 근무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한 건물의 일생동안 들어가는 총비용은 초기건축비 2%, 조명과 냉난방비 6%를 제외하면 건물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인건비와 기타 경비)이 92%에 이른다. 때문에 건물 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생산성을 향상하는 길이 건물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길인 것이다. 자연에 친숙한 쾌적한 생활환경을 제공하는 그린빌딩이 중요시되는 이유다.
최근 대한건축학회 산하에 생태건축분과위원회가 생겨나 생태건축에 대한 국내에서의 논의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분과위원회의 간사이기도 한 김현수 박사는 “제한된 땅 위에 얼마나 많은 공간을 확보했는가를 따지는 양(量)적인 용적률 개념을 지양하고, 쾌적하고 환경친화적인 질(質)적인 공간을 지향하는 쪽으로 건축관을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한국식 생태건축
우리의 환경에 생태건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자연환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사회·문화적인 배경에 대한 통찰이 요구된다. 외국의 생태건축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 맞는 생태건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건축은 우리의 자연환경과 생태학적인 조화를 이루어온 한국적 생태건축의 원형으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전통이 그대로 현실의 생태건축이 될 수 없는 것은 현대인의 욕구와 생활방식이 전통의 건축에서 그대로 충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생태계와의 조화를 따진다면 전통의 초가집이나 너와집이 가장 생태적인 건축물일 것이다. 모두 자연에서 얻은 재료들이고 수명이 다한 후에는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인간의 편의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는가. 사회·문화적인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고 현대인의 생활양식을 전통사회로 돌릴 수 는 없다. 이제 현대 한국사회의 기호에 부응할 수 있으면서 환경친화를 달성할 수 있는 우리 식의 건축을 세우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