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이땅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우리 조상들은 이땅의 풍토에 가장 알맞는 건축을 이룩했다. 전통 건축을 애정으로 바라보면 조상들의 슬기와 과학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건축에 숨은 기하학, 천문학, 수학을 찾아보자.
건축은 흔히 기술과 예술의 결합체라 한다. 우선 건축은 외부의 거친 환경으로부터 인간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인공적인 보호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외부환경이란 비바람이나 추위는 물론 짐승이나 벌레, 사람과 같은 침입자를 포함한다. 때문에 천연의 동굴이나 바위그늘 등을 거주지로 삼았던 구석기 시대에는 아직 건축이 탄생하지 못했다. 강가의 언덕에 낮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와 풀, 가죽등으로 간단한 지붕을 덮은 신석기인들의 움집을 건축의 시작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건축이 언제나 에술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은, 원시인들조차 그들의 집자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알타미라나 라스코의 동굴벽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구석기인들은 그들이 살고있는 동굴에 무언가 의미있는 표시를 남김으로써 다른 동굴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렇게 본다면 구석기인들의 동굴 또한 건축이라고 불 수 있다.
천문학과 기하학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기술과 예술은 과학적 성취를 발판으로 삼아 형성된 것이다. 건축 또한 마찬가지다. 고대 과학의 총아였던 천문학과 기하학은 건축에 직접적으로 활용됐다. 지구상의 어느 문명권에서나 고대의 문명은 거대한 도시와 함께 등장했으며, 도시의 내부는 가로 세로로 정연하게 구획돼 있는 격자형의 도로망을 갖는다. 이는 당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기하학에 열중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첨단과학기술은 언제나 절대권력의 상징이었고, 기하학을 활용해 그들의 세력을 과시하고자 했다. 삼국이 각각 고대국가로 성장해 세력을 다투던 7세기초, 백제와 신라에 각각 세워진 미륵사와 황룡사의 가람 배치에서 보이는 규모의 거대함과 정연한 기하학적 질서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 이후의 시대에서는 이러한 거대 건축과 기하학적 응용을 다시 볼 수 없는데, 이는 마치 고차방정식을 다룰 수 있는 학생이 더이상 1차방정식을 푼다고 자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
고대의 최고 과학인 기하학과 천문학은 기술뿐 아니라 예술에도 강한 영향을 남겼다. 미륵사나 황룡사 같은 고대 사찰은 물론, 석굴암의 본존불에서 보이는 완전한 비레는 모두 기하학적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서양의 르네상스인들이 열심히 탐구했던 바와 같이, 시각적 아름다움은 대개 엄정한 수적 비례를 가지고 있다. 고대의 사찰 가람에는 구고현(句股弦)법에 의한 직각삼각형의 비례가 적용됐고,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부석사 무량수전의 평면에는 1:1.618의 황금비가 적용됐다. 또 고구려의 장군총과 신라의 첨성대 등에는 모두 동서남북의 절대 방위가 숨어있다. 이와 같은 수학적 비례와 방위각을 채용한 것은 고대문명권 어디에서나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미학의 기초개념이다. 때문에 그것들이 발현된 시기의 차이가 고대문명의 전파경로를 추적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역학과 미감을 동시에 만족
우리나라의 전통건축은 매우 오랜 기간 기술적으로 큰 발전을 보이지 못한 채 진행됐다. 대체로 고대국가 형성기인 4세기 중엽부터 개항에 의해 외래의 건축문명이 소개된 19세기말까지 1천5백여년간 일관된 형식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건물군 전체의 배치계획은 물론 개별 건축물의 부재 구성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개선의 노력을 발견할 수 있다. 건축은 결국 지붕을 지탱하는 구조물이라고 간단히 정의해보자. 지붕을 지탱하기 위해 벽이나 기둥이 필요한데, 이들 벽과 기둥은 내부공간을 사용하는데 장애를 준다. 따라서 건축 기술의 발전은 얼마나 적은 양의 기둥과 벽으로 지붕을 튼튼하게 지지하느냐는 방향으로 진행됐으며, 거기에 많은 과학적 탐구가 집중됐다.
기둥을 적게 두고 지붕을 받치기 위해서는 기둥 상부를 가로지르는 보의 역할이 중요하다. 보를 길게 하면 내부의 기둥 수를 줄일 수 있다. 현대의 구조역학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수직 하중을 받는 수평 부재는 부재의 윗면에서는 압축력을 그 밑면은 인장력을 받는다. 압축력이란 재료를 눌렀을 때 버티는 힘이고, 인장력이란 반대로 당겼을 때 버티는 힘이다. 예를 들어 건축에 사용되는 석재는 압축력에는 강하지만 인장력에는 약하다. 또 철근은 인장력에는 강하지만 압축력에는 약하다. 그래서 현대에는 각 재료가 갖는 상대적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철근콘크리트라는 혼합재료를 사용한다. 전통 건축에서 주로 사용됐던 목재는 일반적으로 압축력과 인장력 모두에서 우수하다. 하지만 같은 굵기의 나무라면 인장력이 보다 우수하다.
전통건축에 사용된 보의 단면 모양을 보면 윗면, 즉 압축력을 받는 부분이 인장력을 받는 아랫면보다 더 크게 돼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모양의 보를 항아리보라 한다. 이는 현대건축에서 사용하는 T자형 보와 같은 원리이다. 항아리보는 역학적인 지식에 근거한 형태일 뿐만 아니라, 밑에서 볼 때 보를 작게 보이게 함으로써 시각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역할을 한다.
자란대로 세워야 비틀림 적어
기둥을 세우는 것도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처음 기둥은 그냥 땅에 깊이 박아서 세웠다. 그럴 경우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습기와 흰개미 같은 곤충에 의해 기둥의 아래 부분부터 점차 부식돼갔다. 이를 피하기 위해 기둥의 밑면을 지면으로부터 떨어뜨릴 필요가 생겼는데, 그래서 고안된 것이 주춧돌이다. 결과는 그 이상이었다. 주춧돌 위에 사뿐히 올라앉은 기둥 때문에 건물은 지진과 같은 땅의 움직임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는 효과도 아울러 얻을 수 있었다. 이는 현대의 내진 공학에서 아이솔레이션 공법으로 널리 채택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목재를 건축 부재로 사용할 때 늘 문제가 되는 것이 목재가 건조해지면서 부분별로 다르게 수축해 생기는 변형이다. 집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문짝이 뒤틀리고 문이 잘 닫히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문짝이야 필요하면 다시 바꿀 수 있지만, 만일 기둥이 그렇게 된다면 큰 일이다. 그래서 기둥으로 사용할 나무는 충분히 건조한 것을 사용했으며, 그것만으로 부족해 그 나무가 원래 서있었던 방향을 잘 살펴서 사용했다. 위아래를 맞추어서 세운 것은 물론이다. 보 역시 햇볕을 잘 받는 바깥쪽, 또는 남쪽으로 나무의 윗부분이 오도록 놓았다. 이는 나무가 원래 자라던 것과 똑같은 성질대로 배치하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자연적 기후에 순응하는 배열을 함으로써 오랜 시간이 지나도 건물의 뒤틀림이 최소화됐던 것이다.
여름 그늘은 처마에서
지붕의 마감재료로는 짚이나 억새, 나무껍질, 나무널 그리고 기와 등을 사용했다. 오랜 기간 동안 방수를 잘 유지할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아름답기 때문에 고급 건축에서는 주로 기와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지붕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졌다. 한편 우리나라의 기후는 사계절이 뚜렷해 여름에는 몹시 덥고 겨울에는 매우 춥기 때문에 햇볕을 적절히 조절하지 않으면 내부 공간을 이용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를 위해 처마가 생겨났다. 처마는 여름의 햇볕을 막으면서도 겨울의 햇볕은 가리지 않아야 한다. 또한 기둥이나 벽면에 빗물이 들이치지 않게 하는 역할도 한다. 때문에 처마는 내부공간보다 높은 위치에서 멀리 밖으로 튀어나가 있어야 한다. 가령 처마가 기둥 위에서 바로 앞으로 뻗어나간다면 여름과 겨울 가릴 것 없이 내부 공간에 그늘을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무거운 지붕을 기둥 밖으로 뻗어나가게 하기 위해 많은 고안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 가장 유용한 것이 하앙이라고 하는 부재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앙은 기둥 바로 윗면을 받침점으로 삼는 지렛대와 같아서, 기둥 안쪽에 있는 지붕의 누르는 힘이 기둥 바깥쪽의 처마를 들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이 방법은 부재를 짜맞추는 기술이 힘들기 때문에 그리 널리 보급됐던 것 같지는 않고 지금 남아있는 사례도 단 한 건에 불과하다. 그 대신 보다 간편한 대용품으로 사용된 것이 공포라고 불리는 기둥 상부의 복합 부재이다.
위생적 난방장치 온돌
내부 공간을 따뜻하게 덥히기 위한 난방장치로는 온돌이 일찍부터 사용됐다. 온돌은 열을 저장하는 성능이 뛰어난 석재, 즉 구들장을 덥혀서 그 잔열을 이용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성능은 물론 위생상으로도 가장 뛰어난 난방 수법으로 전세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온돌을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겨우 고려시대 후기에 들어서 지금과 같은 온돌 구조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온돌은 방의 일부만을 온돌로 만들고 불을 때는 아궁이도 방안에 두는 형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방의 전체에 온돌을 깔고 아궁이를 방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으로 발전했다. 아궁이에서 나온 불기운이 구들의 고래를 따라 방 전체에 고루 퍼지고 마침내는 굴뚝을 통해 밖으로 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고래의 경사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아궁이 및 굴뚝과의 연결 부위에 세심한 고려를 해야 한다.
온돌이 우리나라의 기후에 적합한 것은 단지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름에 장마철이 있기 때문에 습기를 머금은 나무가 꿉꿉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온돌의 경우는 장작을 때 습기를 쉽게 없앨 수 있고, 또 불을 때지 않았을 때의 청량한 감촉은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고대 건축은 당대의 최고 과학을 보여주는 시험장으로 작용했으나 중세 이후에는 첨단 과학의 중심이 화학공학이나 기계공학, 전기공학 등으로 이전해 간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고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우리의 경우 조선시대에 융성했던 성리학이 조형 예술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며, 물질보다는 정신적 작용에 지나친 우위를 둠으로써 과학적 탐구 노력이 건축에 직접적으로 집중되는 기회는 적어진다. 하지만 실학이 융성했던 정조대에는 도르래를 이용한 거중기를 만들고 합리적인 벽돌 생산 기법을 고안해내는 등 당시의 서구 사회와 비교해 손색없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밝혀지지 않은 지혜들
오랜 기간 시행 착오를 거쳐 완성해나간 경험 과학의 결과는 현대 과학으로도 아직 해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특히 근대 학문의 초기에는 전통 과학의 많은 부분을 잘못된 관습이나 미신으로 치부하면서 이들을 훼손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전통 지리과학인 풍수에 대한 오해가 자연 환경에 대한 무분별한 훼손의 결과를 낳았다. 석굴암의 경우 보존을 위해 세운 여러 장치와 구조들이 오히려 소음을 만들고 이슬을 맺게 하는 등 역효과를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해인사의 대장경 목판을 영구히 보존하겠다는 생각으로 현대 과학 기술을 총동원해 만든 최신식 판고가 여러 문제점으로 사용되지 못하는 형편이다. 기후에 약한 목판을 5백년 이상 단지 자연적 처리만으로 보존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최근 컴퓨터를 활용한 시물레이션을 통해 전면에 있는 담장의 높이마저 미세 기류에 매우 좋은 영향을 주고있다는 정도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각 건물의 개구부 처리, 바닥에 깔린 표토의 성분 등 보존에 도움이 되는 각 부분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는 아무래도 좀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경험적이고 종합적인 전통과학 역시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근대 과학과 마찬가지로 그 탐구의 중심에 인간이 있으며, 현대의 과학도들이 전통과학에 더 큰 관심을 가질 때 국적 있는 과학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