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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버그가 세상을 무너뜨릴 기세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컴퓨터를 전혀 모르는 컴맹에게는 밀레니엄 때문에 엄청난 국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을 수 있다. 밀레니엄 버그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살펴보자.

밀레니엄 버그는 천년을 뜻하는 ‘밀레니엄’(millennium)과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오류를 의미하는 ‘버그’(bug)의 합성어다. ‘2천년 문제’로도 불리다가 최근에는 ‘Y2K’(와이 투 케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인다. Y2K는 year의 약자인 Y, 2000년을 가리키는 2, 1천 단위를 의미하는 K(kilo)로 구성한 신조어로 2천년에 일어나는 컴퓨터 문제를 의미한다.

멀쩡하던 컴퓨터가, 사람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던 컴퓨터가 새 천년의 시작인 2000년에 와서 갑자기 말썽을 일으키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메모리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컴퓨터부품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이 메모리(기억장치)였다. 이 메모리는 컴퓨터의 두뇌인 CPU가 데이터를 불러와 처리하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그러나 워낙 고가여서 데이터를 처리할 만큼 충분한 양을 살 수도 구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은 적은 메모리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데이터의 크기를 줄이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대표적인 방법이 4자리 연도를 2자리로 줄인 것. 즉 1999년을 99년으로 표시했다. 이러한 방법은 그동안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훌륭하게 자신의 목적을 수행해왔다.

그런데 새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이 되자 문제가 생겼다. 2000년을 00이라고 표시해야 하는데, 이는 00이라고 표시해온 1900년과 구별이 안되기 때문이다.

1980년에 태어난 사람이 있다면 그의 현재 나이는 99에서 80을 뺀 19살이다. 2000년이 되는 내년에는 그의 나이가 2000-1980으로 20살이 된다. 그러나 2자리로 연도를 표시하는 컴퓨터는 00 - 80이 되어 -80살(혹은 80살)로 인식하게 된다. 20세의 젊은 청년이 80년 전에 죽은 사람이나 80살의 노인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만일 1998년부터 적금을 시작했다면 2000년에는 2년치 이자와 원금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2자리로 연도를 표시하는 컴퓨터는 00 - 98로 적금년수를 계산해 98년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수를 내보내거나 98년 동안 돈을 빌려쓴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물론 이렇게 됐다가는 은행업무가 마비될 것이다.

컴퓨터를 멈추게 하는 99 버그

밀레니엄 버그와 함께 컴퓨터를 혼란에 빠뜨리는 미래날짜 문제가 또 하나 있다. 바로 99라는 컴퓨터 종료명령이다. ‘99 버그’ 혹은 ‘9999 버그’로 알려진 컴퓨터 날짜문제는 특정 프로그램들이 99나 9999처럼 연속된 9자를 시스템 중지명령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컴퓨터 프로그램 중에는 ‘99년 1월 1일’이라는 절대적인 날짜보다 ‘99년의 첫번째 날’이라는 식으로 날짜를 처리하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원자재를 수입한 날부터 1백일째 되는 날에 제품을 출고한다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작성하려면 절대적인 날짜보다 상대적인 계산 방법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99년 4월 9일이 되면 이러한 프로그램에서는 99년의 99번째 날이 되므로 컴퓨터 내부적으로 99099로 처리하게 된다. 만일 프로그래머가 실수를 해 99099가 아닌 9999로 처리하거나, 컴퓨터가 0을 무시하고 9999라는 값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면 컴퓨터는 9999라는 동작정지신호로 인식해 작동을 멈춘다. 올해 초 스웨덴 스톡홀름의 알란다 공항에서 일어난 여권발급 중지사태는 이러한 99버그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시기 스웨덴에서는 컴퓨터 칩이 내장된 택시미터기가 연도를 인식하지 못해 일부 승객이 인상되기 전의 요금으로 택시를 타는 행운을 누렸다. 또 일본에서는 항해 중이던 선박이 작동을 멈추는가 하면, 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치인식시스템인 GPS가 날짜표기 오류를 일으켜 위성통신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모두 99 버그 때문에 발생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99 버그도 Y2K에 포함시켜 심각하게 논의하는 추세다.


신용카드는 Y2K가 노리는 주요 타킷.


미국인 53%가 금융 혼란 예견

엄밀한 의미에서 밀레니엄 버그는 2000년 1월 1일에 일어나므로 피해가 미리 일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날짜를 앞당겨 예약을 받는 예약 시스템이나 신용카드 유효기간, 대금 정산 프로그램 등에서는 밀레니엄 버그의 영향들이 나타나고 있다. 1월 28일 전경련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기업 중 5%가 어음, 예금만기일 오류, 건설회사 중도금 정산 오류, 신용카드 유효기간 인식 오류, Y2K 테스트 중 컴퓨터 작동불능 등으로 이미 Y2K 오류를 경험했다고 한다.

Y2K가 무서운 것은 이 오류가 컴퓨터뿐 아니라 시간제어기능을 가진 컴퓨터 칩을 이용한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것. 금융, 의료, 운송, 전력, 통신, 산업설비, 행정, 군사 등 이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분야는 거의 없다. 이런 까닭에 세계 각 국가들은 오류가 발생했을 경우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점분야를 선정해 본격적인 문제해결에 나섰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안으로 대부분의 중요 분야에서 Y2K 문제를 해결할 예정이어서,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혼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가지 걱정되는 점은 Y2K로 인한 혼란을 너무 염려한 나머지 대규모 예금인출사태나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 미국 CNN 방송과 타임지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 가운데 53%가 1999년 12월 31일부터 2000년 1월 1일 사이에 금융시스템에 혼란이 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또 응답자 중 47%는 31일 이전에 예금을 찾아놓을 것이라고 밝혔다는 것. 아울러 폭동에 대비해 비상식량을 구입하거나 심지어 총을 비치하겠다는 답변도 있어 사회적 불안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386, 486에 사용되는 부품들은 단종된지 오래돼 Y2K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요 분야는 2000년 전에 해결

밀레니엄 버그는 자기가 갖고 있는 PC의 날짜를 점검하는 것 외에 일반인들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나머지 모든 일은 컴퓨터 프로그램 전문가들이 해결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정보선진국들은 일찍부터 정부가 이 문제의 해결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1993년부터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 1995년에 이미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했다. 영국은 ‘액션 2000’이라는 조직을 만든 후 우리 돈으로 7조5천억원이라는 기금을 조성했다. 반면 우리나라 정부는 1998년 3월에야 대책 수립에 나섰다. 이러한 까닭에 세계적인 정보통신연구기관인 가트너그룹은 한국을 Y2K 위험지대로 지적하기도 했다. IMF 이후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무디스나 S&P 같은 신용평가기관들 역시 Y2K 문제의 해결 여부를 신용평가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히고 있어 Y2K 해결 문제는 더욱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Y2K 문제를 해결했을까. 한국전산원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지난해 11월에 이미 거의 대부분을 해결했으며 현재는 시험 중이라고 한다. 의료분야는 대규모 의료기관은 상당 부분 해결했지만, 중소 의료기관은 아직 미진한 상태. 항공사는 지난해 4월 항공기 안전운항에는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으며, 발권업무의 50%를 해결했다고 한다. 한편 철도는 문제가 될 6개 시스템 중 1개만 해결해 시험 운영 중이고, 나머지 5개는 영향평가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민생활에 가장 파급효과가 큰 전력공급은 이상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원자력발전소는 이미 테스트를 끝내 이상이 없음이 밝혀졌고, 전체 설비 중 Y2K 오류를 지닌 23%는 현재 해결하는 중이다. 통신의 경우 한국통신 등 4대 기간통신사업자들의 영향평가가 이미 끝나 98년 11월 기준으로 36.8%가 해결된 상태다. 특히 상당수의 문제점이 발견된 교환기, 주전산기, 응용소프트웨어 등의 Y2K 오류는 늦어도 1999년 8월까지 해결할 예정.

다소 문제가 되는 분야는 산업설비와 중소기업들이다. 산업설비는 워낙 대상이 넓고 다양해 문제 발생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 산업설비의 문제들은 제조업체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해결해야 하지만, 제조업체들이 IMF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Y2K 해결 진척속도가 느린 편이다. 중소기업들 역시 IMF와 경영진의 인식 및 자금 부족으로 Y2K에 대한 대응이 미흡한 것으로 알려진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어떨까. 현재 중앙행정기관 33곳은 영향평가만 마친 상태. 정부는 올 8월까지 약 2백73억원을 들여 지방자치단체까지 포함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올 8월이면 전체적으로 주요 핵심분야의 Y2K 대응은 마무리된다는 것이 한국전산원의 전망이다.

그러나 밀레니엄 버그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컴퓨터를 고쳤다고 해도 미처 고치지 못했거나 신경쓰지 않았던 1건의 컴퓨터가 어떤 치명적인 영향을 줄지 아무도 모른다는데 있다. 방법은 하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하나 하나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9개월이 채 남지 않은 2000년. 희망과 행복의 새해가 될지, 대혼란의 시대가 될지는 밀레니엄 버그와의 전쟁에서 인간이 어떻게 이기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올해 말이면 우리나라를 포함해 상당수의 국가들이 대부분의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할 예정이어서 지구종말과 같은 충격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집 컴퓨터와 가전제품, Y2K로부터 안전할까

많은 사람들은 2000년이 되면 밀레니엄 버그 때문에 모든 PC가 작동을 멈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다. 설령 2000년이 돼 밀레니엄 버그를 일으킨다고 해도 PC는 멈추지 않는다. 단지 PC는 날짜를 잘못 알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펜티엄급 이상의 컴퓨터들은 이미 이런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PC들은 구형 386이나 일부 486 컴퓨터에 불과하다.

또 하나의 오해. 밀레니엄 버그가 시간 기능을 갖춘 가전제품에서도 발생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은 가전제품의 오동작 여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실제로 가전회사 고객상담실에는 밀레니엄 버그에 대한 질문과 AS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 예컨대 TV의 타이머 기능이 고장났는데 밀레니엄 버그 탓이 아닌가, 2000년이 되기 전 세탁기의 예약기능을 수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등의 질문들이다. 정답부터 말하면 단순한 시간표시나 타이머 기능을 갖춘 가전제품은 밀레니엄 버그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가전제품에 내장된 시간예약기능은 단순한 시간연산기능일 뿐 연도인식과 별로 관계가 없다. 00년 1월 1일 2시에 빨래를 하도록 예약된 세탁기는 1900년이건 2000년이건 상관없이 00년에 이르게 되면 동작하게 된다.

사실 세상이 Y2K 때문에 떠들썩해도 일반인들이 손쓸 일은 거의 없다. 컴퓨터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컴퓨터가 2000년을 제대로 처리하는지의 여부만 확인해주면 된다. 게다가 웬만한 펜티엄급(흔히 586이라고 말함) 컴퓨터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한 상태에서 나왔다. 사실 개인용 컴퓨터는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는 한, 설사 연결됐다고 해도 날짜가 조금 틀렸다고 해서 컴퓨터가 다운되지는 않는다. 단지 일기를 쓰거나 가계부처럼 날짜를 이용하는 경우 일일이 날짜를 고쳐주어야 한다는 게 조금 불편할 따름이다.

개인용 컴퓨터의 Y2K 문제를 확인하는 방법은 쉽다. 우선 PC의 바이오스 셋업으로 들어간다. 컴퓨터를 켜면 부팅 메시지가 나오는데, 이때 대개 Del키나 F2키를 누르면 셋업 화면으로 들어간다. 셋업 화면의 메뉴에는 날짜를 지정하는 부분이 있다. 이곳을 2000년 이후로 바꿔보자. 바꿀 수 있다면 Y2K 문제는 없는 셈. 바이오스 셋업을 저장하면(보통 ESC키를 누르면 저장할 것인지를 물어보는데 Yes를 선택하면 됨), 컴퓨터가 다시 부팅된다.

윈도95나 98을 쓰고 있다면 컴퓨터가 완전히 부팅된 후 시작 → 설정 → 제어판에서 날짜와 시간영역을 확인해 본다. 2000년 이후로 날짜를 바꿔 제대로 바뀌면 밀레니엄 버그로부터 안전한 컴퓨터다.

그런데 아직까지 386이나 486 컴퓨터를 쓰고 있다면 밀레니엄 버그에 부딪힐 확률이 높다. 이를 해결하려면 메인보드의 바이오스 롬을 통째로 교환해야 하는데,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실제로 교환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386이나 486에 사용되는 부품은 단종된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사실 업그레이드도 불가능하다. 486에서 사용되는 부품 중에서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플로피디스크와 하드디스크(그나마도 요새는 거의 쓰지 않는 저용량)뿐인데, 말이 업그레이드이지 거의 모든 부품을 새로 사야 한다. 아쉽지만 2000년이 되면 이런 컴퓨터들은 자연도태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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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형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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