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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앤지오스태틴과 에도스태틴의 미래

스타 예비 후보로 등록, 지난한 과정 거쳐야

'뉴욕 타임스'를 통해 미국의 한 과학자가 개발했다고 알려진 '기적의 항암제'가 세상을 들뜨게 만들고 있다. 병상에 누워 생의 마지막을 대책없이 기다리는 환자들이 다시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시민들이 신약을 빨리 사용하게 해달라고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화제의 주인공인 포크만 박사는 "성급한 기대를 갖지 말라"고 조심스러워 한다. 또 이번 발표에 대해 강력한 회의를 표명하는 과학자들이 적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포크만 박사의 연구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생쥐였기 때문이다. 비록 실험동물에서 성공적으로 효능을 발휘한다 해도 사람에게 적용하기에는 부적격인 신약이 부지기수다. 왜 그럴까.
 

항암제를 개발하기 위해 사람의 암세포를 쥐에 주입한 후 인의적으로 종양을 만드는 과정이 진행된다.


생쥐가 애용되는 이유

새로운 약이 개발되는 과정은 지고지난하다. 신약 후보는 두가지 중요한 자격을 갖추고 나서야 비로소 약다운 약으로 인정받는다. 즉 '약발'이 제대로 듣는지(유효성), 그리고 독성을 일으키지 않는지(안전성) 여부가 과학적으로 판단돼야 한다.

그러나 후보 물질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알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실험동물이다.

어떤 물질이 항암 효과가 있다고 밝혀지면 그것이 신약으로 최종 허가를 받기까지 크게 두가지 단계를 거친다. 동물실험 단계(전임상시험 단계)와 임상시험 단계다. 전임상 단계에 어울리는 가장 훌륭한 후보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사람과 유전 구조가 가장 유사한 유인원류일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실험을 감당하기에 유인원류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비교적 사람과 비슷한 생리 기능을 보이는 동물이 사용된다.

이영순 교수(서울대 수의학과·실험동물학회장)는 "사람의 심전도를 연구하는데는 개, 소화기는 돼지, 피부는 기니피그가 최적의 후보"라고 설명한다. 사람의 신체 부위별로 어울리는 동물이 별도로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가장 흔히 애용되는 동물은 단연 생쥐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 임신 기간이 짧고 번식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해 싼 값에 대량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항암제를 개발하는 경우 생쥐에 사람의 암세포를 주입해 인위적으로 종양을 만든다. 이때 시험중인 항암제를 투입해 종양이 없어지는지 효과를 판정하는 한편, 각종 부작용을 관찰해 시약이 안전한지 여부를 판단한다.

새로운 물질이 발견된 후 전임상시험 단계를 통과하기까지 기간은 5년 정도. 5천-1만여개의 후보 물질 중 대부분이 탈락하고 '알짜 후보' 20-25개가 추려지는 과정이다. 포크만 교수가 개발한 앤지오스태틴과 엔도스태틴은 엄밀히 말해 이 알짜 후보로 선정되기 직전의 단계에 머무른다. 약의 유효성은 인정받았지만 부작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연구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다음 코스는 가장 중요한 과정인 임상시험 단계. 여기서부터 이전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운 테스트가 시작된다. 바로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라선영 박사(연세대 의대 암센터)는 "특히 항암제의 경우 세포를 죽여서 효과를 나타내는 원리이므로, 대개 독성이 심하게 나타나 실제 환자에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이 문제점을 피하기 위해 임상연구는 크게 3단계로 나뉘어 치밀하게 시행되고 있다.

첫단계에서는 약물이 인체에 안전한지 여부를 파악하는데 주력한다. 즉 어느 정도의 양을 투여하면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를 집중적으로 관찰한다. 약물의 부작용을 아는 것이 목적이므로 환자에게 시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실험 대상은 30-40명의 신체건강한 지원자로 구성된다.

둘째 단계는 유효성에 초점을 맞춘다. 어느 정도의 약물을 주입해야 가장 효능이 크게 발휘되는가를 파악한다. 이번에는 5백-6백명의 암환자가 동원된다.

마지막 단계는 3천-5천명의 다수 환자를 대상으로 종합적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관찰하는 시기다. 연구에 착수한 이후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년. 5천-1만개의 후보물질에서 최종적으로 1개를 선발하는 지난한 과정의 종착역이다.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된 동물 실험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조심스런 실험이 진행된다.


동물과 다른 '약발'

전임상시험 단계에서 선발된 20여개의 후보 물질은 왜 대부분 부적격으로 탈락되는 것일까. 실험동물과 사람의 생리는 그만큼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암세포의 특성 자체가 다르다. 사람의 암은 수개월이나 수년간에 걸쳐서 성장한 결과물이다. 이에 비해 쥐에 인공적으로 형성시킨 암은 길어야 몇주 내에 자란 것에 불과하다. 이 시간의 간극 동안 암세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설사 생쥐와 사람의 암세포가 동일한 특성을 가진다 할지라도 생쥐에게 '약발'이 듣는 정도 만큼 사람에게 효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종에 따라 동일한 물질이라도 몸 안에서 작용하는 과정이 제각기이기 때문이다(같은 종이라도 개체마다 차이가 발생한다).

약물이 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몸에 투여된 후 정확히 목표물에 도달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몸에서 분비되는 수많은 물질들이 약물을 분해시키기 때문이다. 그만큼 약효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간에서 약물을 분해하는 주요 효소계인 CYP(cytochrome p450)는 동물마다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가진다. 따라서 생쥐에게 약효가 있는 양이라 해도 사람에게 투입됐을 때 거의 모두 분해돼버려 별다른 효능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라선영 박사는 "특히 앤지오스태틴이나 엔도스태틴과 같은 단백질일 경우 투여 후에 약제가 암 부위로 도달하기 전 몸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단백질 분해효소에 의해 대부분 파괴된다"고 설명하고 "생쥐와 사람의 단백질 분해효소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투여한 약제의 안전성과 대사가 쥐와 사람에서는 완연하게 다르다는 점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탓에 생쥐에서는 관찰된 암 억제 효과를 인체에서 동일하게 얻기 위해 하루에 수천알의 약제를 복용해야 하는 황당한 결론이 나오기도 했다.

생쥐에게 약이 되는 물질이 사람에게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조정식 실장(식품의약품안전청 동물실험실)은 "CYP가 약물을 산화시키는 과정에서 약물로 하여금 본래의 활성보다 더 큰 활성을 일으키게 만들어 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비단 CYP뿐 아니라 아직 알려지않은 수많은 복병에 의해 약이 예상치 못한 독성 물질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신약 개발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사례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가장 흔하게 비유되는 예는 '최고의 기형 유발약'으로 알려진 살리드마이드. 1960년대 독일에서 개발된 이 약은 임신 초기 산모의 입덫을 방지하는데 효과가 커서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켰다. 물론 동물 실험을 했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임신 2개월 이내의 산모가 약을 복용했을 경우 팔이 없는 기형아가 태어난 것이다. 묘하게도 임신 3-4개월째인 산모의 경우 아무런 부작용이 없었다. 시판은 중지되고 과학자들은 다시 동물실험에 매달려야 했다.

약물이 무사히 암 부위까지 도달했다 해도 문제는 남아있다. 생쥐의 암세포는 사람에게서 이식한 것이다. 따라서 생쥐의 몸 속에서 암세포가 어떻게 변형되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유선동 교수(성균관대 약대)는 "예를 들어 암세포의 표면에 존재하는 수용체에 변화가 올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항암제는 수용체와 결합함으로써 암세포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생쥐의 몸 속에서 자란 탓에 어떤 변화에 의해 애초의 항암제와의 결합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사랑이 넘치는 애인 간의 포옹과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끌어 안는 포옹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두가지 상황 간에 약효의 차이가 난다. 또 바늘에 살짝 찔려도 자지러지는 사람이 있는 한편 무덤덤한 경우도 있는 것처럼 똑같은 정도의 결합이 발생해도 반응도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수용체 수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도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꺼져가는 생명에 희망을 주는 항암제는 개발될 것인가.


'학문'적 희망과 '환자'의 희망

이처럼 동물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해도 사람에게 적용되는 약이 개발되기까지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이를 미리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강건일 박사(전 숙명여대 약대 교수)는 "동물에게 효능을 보이는 약이 사람에게 어떻게 작용할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경험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만큼 막대한 예측불허의 상황이 아직 '암흑상자' 속에 싸여있다는 의미다.

현재까지 알려진 암의 종류는 거의 1백가지에 달한다. 그리고 이 수의 수백, 수천배 만큼 다양한 신약 후보생들이 나타났다 사라져갔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앤지오스태틴과 엔도스태틴이 어떤 운명에 처할지 아직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강건일 박사는 "두 약물이 '개발'됐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아직 임상시험 단계라는 험준한 봉우리가 남아있으므로 '개발예비품목' 정도로 표현돼야 마땅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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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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