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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스케이프나 야후 등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난 인터넷 관련 회사들은 90년대 들어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남동쪽 새너제이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첨단 산업기지 실리콘밸리. 이곳이 20세기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지난 1971년 산타클라라에서 일하던 엔지니어 돈 해플러가 잡지 기고문을 통해 새너제이에서 샌프란시스코에 이르는 약 8백km2의 첨단기업 밀집지역을 ‘컴퓨터 및 반도체 관련 산업중심지’라는 뜻으로 실리콘밸리라 명명하면서부터.

원래 이 지역은 지난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살구, 배, 복숭아, 포도 등을 재배하던 평화로운 과수원단지였다.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풍부한 농산물이 가득찼던 이 지역을 일러 ‘기쁨의 계곡’(Valley of Hearts Delight)이라 불렀다. 하지만 40년대 직전부터 몰아닥친 변화로 이 계곡은 오늘날 하이테크산업의 세계 중심에 우뚝 섰다.

19세기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 당시 골드러시를 꿈꾸는 개척자들의 진원지였던 실리콘밸리는 20세기 들어 하이테크 혁명의 발원지로 탈바꿈했다. 현재 이곳에 몰려 있는 회사들의 업종은 컴퓨터와 반도체, 소프트웨어, 네트워킹, 통신 등 첨단산업이 주종. 인텔, IBM, 휴렛팩커드 등 세계 1백대 하이테크 기업 가운데 상위 20대 기업의 본사가 몰려 있으며, 이들의 연간 매출액은 95년 기준으로 1천억달러에 달한다.

이 지역에는 벤처기업만도 4천여개가 넘게 입주해 있다. 지난 수년간 미국에서 벤처기업에 투자된 자금 가운데 4분의 1 가량이 지속적으로 이곳에 집중됐으며 이 액수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불과 40여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이 지역의 총 시장가치는 4천5백억달러로 추산된다. 이는 1900년대 초에 형성된 전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인 월스트리트보다 훨씬 큰 규모. 과연 무엇이 오늘의 실리콘밸리를 만들었고, 이 곳을 움직이는 밑바탕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우수한 인재공급 환경

세계의 문명을 뒤바꾼 발명품 중 실리콘밸리에서 등장한 희대의 걸작은 수없이 많다. 19세기 후반 세계 최초로 24개의 카메라로 동화상을 만들어 새로운 영상시대를 개척한 에드워드 마이브리지는 스탠포드대학의 구내 사진작가였다. 세계 최초로 음악과 뉴스 등을 송출한 라디오 방송국도 실리콘밸리의 중심 새너제이에서 시작됐다. 물론 이때는 이곳이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이 붙기 전이다.

1938년 프레드릭 터먼 스탠포드대학 교수가 자신의 제자 윌리엄 휴렛, 데이비드 팩커드와 함께 세계 최초로 음 발진기를 만든 곳도 이곳이며, 1947년 벨전화연구소의 쇼클리 등이 진공관 대신 트랜지스터로 전기제품의 소형화와 저소비 전력화를 가능하게한 곳도 실리콘밸리에 있는 연구소에서였다.

실리콘밸리가 ‘스마트밸리’라는 애칭을 갖고 세계의 우수한 인재를 끌어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학과 기업이 함께 인재를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실리콘밸리는 인근의 스탠포드대학이 산학협동 정책을 채택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첨단산업의 메카로 등장했다. 이러한 대학의 지원정책에 따라 휴렛팩커드나 최초로 워크스테이션을 설계했던 썬마이크로시스템, 실리콘그래픽스, 시스코시스템 등이 탄생한 것이다. 이와 함께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분교, 산타클라라대학, 새너제이주립대학 등에서 배출된 우수한 인력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활약할 수 있게 됐다.

이들 가운데 중급 및 초급 기술자 수준에서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사람은 퇴사 이후 이전에 적을 뒀던 대학보다 높은 순위의 대학에 들어가 ‘내공’(기술수준)을 연마한다. 이들은 졸업 뒤 더 높은 지위와 직위가 보장되는 새로운 출발을 시도할 수 있다. 이처럼 대학과 직장의 왕래가 쉽게 이루어지는 순환시스템은 실리콘밸리에 물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중심고리로 작용했다.
 

애플컴퓨터 본사 사옥. 안정권에 돌입한 회사들의 최고 경영자들은 흔히 '연금술사'로 비유된다.


확실한 투자환경

실리콘밸리의 기업은 크게 3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기술개발의 주체인 평가실험회사, 투자회사, 상품화 전문업체가 그것이다. 이에 따라 이곳은 기술에 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주체들의 제안을 받은 투자회사가 개발 아이템의 성공 가능성 여부를 검토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된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투자회사가 투자를 결정했다면 대략 3개월 정도의 주기로 목표 내용의 달성도를 평가한다. 투자회사들은 대개 단일 기업에 집중하기보다는 여러개의 자금을 분할해 투자한다. 만약 1백의 자금이 있다면, 이를 넷으로 나눠 위험도를 분산하는 식이다. 이는 벤처기업에 따를 수밖에 없는 위험도를 사전에 막자는 의도다.

이와 함께 ‘에인절’(angel)이라 불리는 개인 투자가의 존재는 초기 단계의 자금 조달에 큰 의미가 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에 대한 독특한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는 에인절은 개인적인 자산가들이 설립 초기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벤처기업에 자금지원은 물론 경영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하기도 한다. 여기에 참가하는 ‘천사’들은 기업가로 성공해 큰 자금을 번 자산가나 50세 이상의 은퇴한 사업가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사업에 투자하기보다는 창업 초기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5년 이내에 기업을 급성장시켜 막대한 자본이득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자신들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전문 분야에 투자하기 때문에 창업 초기에 비교적 위험을 안을 각오와 자세가 돼 있다.

이처럼 고수익의 기술 개발 투자에 매력을 느끼는 자금 전문가와 투자가가 모여 오늘의 실리콘밸리를 만들어냈다. 뛰어난 인재들이 다른 데 신경쓰지 않고 연구개발에만 매달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막대한 자금을 아낌없이 지원하는 투자가들이 느끼는 실리콘밸리의 매력은 한 마디로 ‘돈이 될 만한 기술’이 이곳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사실. 반도체, 컴퓨터 하드웨어에서부터 무선통신 부품, 생명공학 기술, 정보보안과 에너지를 포함하는 군사기술, 우주기술 등 지구상의 최첨단 기술력은 실리콘밸리가 자생적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이러한 핵심기술을 골라 벤처기업을 설립하려는 창업자들에 대해 투자가들은 다양한 선택권을 가진다. 반도체와 통신기술, 생명공학 기술과 반도체의 조합 등 수많은 기술의 상호 교차를 시도하는 창업자들의 뉴비즈니스 기획과 이들의 움직임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들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다이내믹한 관계에서 형성되는 자금은 벤처기업의 생명유지 장치로 작동하며, 하이테크 기술의 개발의욕을 한껏 부추긴다.

네트워크 페리퍼럴스라는 벤처기업의 성공 사례는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는 실리콘밸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페리퍼럴스의 부사장을 맡고 있는 다렐 샤바스는 휴렛팩커드에서 이직, 썬마이크로시스템에 재직 중이던 88년 가을 네트워킹 기술에 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다음해 4월 썬마이크로시스템을 퇴사한 이후 7백만달러 규모의 네트워크 서버 비즈니스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약 5개월 동안 20개 이상의 벤처자본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모두 불발탄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는 다시 계획을 수립, 투자규모를 2백만달러로 줄인 다음 투자가를 찾아 나섰다. 이 사이 내셔널 세미컨덕터 컨설팅 업무를 맡으면서 25만 달러의 밑천을 마련하기도 했다.

89년 12월 그는 결정적으로 행운의 여신을 만났다. 휴렛팩커드 재직 시절 상사였으며, 컨버전 테크놀로지 사장을 거쳐 알파 벤처자본을 설립한 폴 이리를 만난 것이다. 이리는 상품개발을 위한 세가지 주요 일정을 설정하고, 신용있는 사장을 선택한다는 조건으로 90년 1월 2백만 달러의 출자를 샤바스에게 약속했다. 그후 다섯 차례에 걸친 출자를 거쳐 93년 4월에는 드디어 흑자를 기록했다. 주가는 첫날 6달러에서 둘쨋날 22달러로 급등했다.

이같은 사례에서 보듯, 벤처기업이 자금을 지원받기까지의 과정은 만만치 않다. 하지만 벤처기업의 기술력을 입증시킬 수만 있으면, 실리콘밸리에서의 성공은 절반 이상 확보한 셈이다.

주당 90시간을 일하게 하는 이유

오늘의 실리콘밸리는 몰려든 돈과 사람이 어우러져 만들어졌다. 그리고 사람과 기술의 뒤에는 반드시 전문가가 있다. 여기서 이들이 서로 결합하는 과정에는 실리콘밸리만의 독특한 시스템이 작동한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에 가면 젊은 엔지니어들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국내에 진출한 실리콘밸리의 한 현지법인 홍보담당자는 “이전에 그가 생각했던 미국인들의 모습을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찾는다면 큰 오산”이라고 잘라 말한다.

국내 현지법인의 이 관계자는 “크리스마스 휴일 기간인데도 미국에서 한국의 프로젝트 추진현황에 대해 알려달라는 전자메일 때문에 지난해 크리스마스 연휴에 제대로 쉬지 못했다”며 미국 벤처기업들의 일에 대한 적극성의 한 단면을 소개했다.

벤처기업의 특성상 종업원들에게 고액의 급료를 지불할 리 없다. 그러나 이들은 ‘주당 90시간을 일해도 좋다’라고 새긴 티셔츠를 입고 다니며 젊은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잠 못이루는 밤으로 몰아넣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골드러시 시대에 몰려들었던 젊은이들처럼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주역들에게 지급되는 자사주 배당권리인 스톡옵션과 같은 비장의 정책 때문이다.

신흥 벤처기업의 주식은 사실 종이 쪽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 이 휴지조각이 금은보화로 뒤바뀔 수 있다. 그들은 각자 받은 주식으로 무에서 거액의 부를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이다.

실리콘그래픽스사의 전 회장이었던 제임스 클라크는 94년초 인터넷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인 모자이크를 개발한 젊은 기술자 집단을 일리노이대학에서 스카웃해 벤처기업을 설립했 다.

이들은 밤 늦게까지 퇴근할 줄을 몰랐다. 배당받은 주식을 현금화하려면 자신들이 노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구조를 감안할 때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초기 멤버들이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탁월한 연금술사들

미국 우량기업의 대다수가 그러하듯 실리콘밸리에서 안정권에 접어든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경영의 연금술사’로 채워져 있다. 벤처기업 설립 초기에는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멤버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귀동냥으로 얻은 경영 지식으로 직원 서너명의 기업을 꾸려간다. 하지만 일단 정착 단계에 접어들고 기업의 주가가 올라가면 주먹구구식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긴다.

미국 굴지의 기업인 시스코 시스템의 경영자는 창업 당시부터 10년간 세번이나 교체됐다.심지어 창업자도 회사 경영에 재주가 없으면 다른 주주들에 의해 쫓겨난다. 앞서 언급한 제임스 클라크는 실리콘그래픽스의 창업자였지만, 1%의 회사지분을 가진 채 경영 일선에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 이렇게 스카웃돼 벤처기업의 사장이나 임원으로 자리잡은 이들은 자사의 주가가 오르도록 신규사업을 계획하고 실현해야 한다. 주식을 금은보화로 바꿀 수 있는 연금술사가 아니면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출범 10년 정도 지난 벤처기업에는 많은 주주들이 관여하게 된다. 중견회사로 돌입하는 이들에 대해 주주들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실적이 나쁜 기업에 대해서는 주주들이 경영진을 해고하고 새 경영자를 발탁, 경영권을 넘긴다. 물론 이들에게는 경력과 능력에 따라 몇 십주에서 몇 만주까지 주식 배당을 받는다. 이러한 과정은 철저한 자본의 논리가 개입된다.

21세기를 위한 준비

21세기를 앞두고 실리콘밸리는 새로운 변혁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정보고속도로(National Information Infrastructure)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첫 과제로 21세기 미국의 모델을 만들어내려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정책이 이곳을 근거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92년 빌 클린턴 대통령 집권 이후 제기된 NII 구상은 정보인프라를 토대로 21세기 미국 사회를 떠받쳐주는 원동력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은 이같은 정부 정책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시장 논리에 입각한 나름대로의 철학과 목표를 가지고 실리콘밸리의 멀티미디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이를 테면 94년 존 영 휴렛팩커드 회장은 “실리콘밸리가 추진하는 멀티미디어 사회는 소비자와 사용자가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 틀을 추구하려는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최우선의 과제로 제시했지만, 기업은 사용자와 소비자를 위한 기술개발과 멀티미디어 발전계획을 공유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다시 말해 클린턴 행정부의 정보화 전도사인 앨 고어 부통령은 정보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원칙에서 접근했다. 하지만 이 원칙을 너무 강조한다면 기술 혁신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것이 실리콘밸리 민간 정책기획가들의 판단이다.

기술지상주의는 수정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최고 경영진과 컨설턴트들로 구성된 시민기획가들은 기술을 중심으로 설정했던 80년대의 혁신과 달리 90년대의 혁신은 기술과 시장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뤄진다고 판단하며 21세기를 겨냥한 새로운 실리콘밸리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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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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