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아래 전설처럼 있는 이어도가 종합해양과학기지로 발돋움 하고 있다. 한국해양과학의 전초기지가 될 이어도를 미리 가본다.
이어도는 제주도의 전설에 나오는 섬으로, 근래에는 파랑도라 불리기도 한다. 파랑도와 이어도가 본래 같은 섬을 가리키는지 과학적으로 규명할 길은 없다. 그러나 제주 사람들 특히 제주 여인에게 이어도는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나 남편이 깃든 곳, 자신들도 결국 그들을 따라 떠나게 될 곳으로 굳게 믿는 환상의 섬이요, 피안의 섬이다.
이어도는 물 속 바위섬
이어도는 한국의 최남단 도서인 마라도에서 서남방으로 1백52km, 일본의 토리시마에서 서쪽으로 2백76km, 중국의 퉁타오로부터 북동쪽으로 2백45km 떨어져 있다. 실제로 이어도는 동중국해 중앙에 위치한 수중 암초로 여간해서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수면 아래 이어도의 모습은 가운데 봉우리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한 개씩 세 개의 봉우리로 구성돼 있다. 정상부를 기준으로 남쪽과 동쪽은 급경사를, 북쪽과 서쪽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주변해역의 수심은 대략 55m이고, 이어도의 가장 높은 곳은 수면 아래 약 4.6m까지 돌출해 있다. 이어도는 평상시 상황에서는 전혀 눈에 띄지 않지만, 수심 40m을 기준으로 할 경우 남북으로 약 1천2백m, 동서로 약 8백m로 면적은 약 17만 3천여평에 이른다.
1900년 영국 상선인 6천t급 소코트라(Socotra)호는 일본에서 중국 상해로 항해하다가 이어도의 암초에 부딪쳐 좌초됐다. 이를 계기로 이어도는 이 배의 이름을 따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라고 국제적으로 명명됐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이어도의 실체가 확인된 것은 전란 중인 1951년으로, 국토규명사업을 벌이던 한국산악회와 해군이 공동으로 이어도 탐사에 나서 ‘대한민국영토 이어도’라고 새긴 동판을 수면 아래 암초에 설치하고 돌아왔다.
본격적인 이어도 탐사는 1984년 한국방송공사(KBS) 주관으로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암초 주변을 종합적으로 조사함으로써 비로소 이뤄졌다. 이어서 1987년 해운항만청(현재 해양수산부)에서는 이어도에 최초의 인공구조물인 등부표를 설치했고, 이 사실을 국제적으로 공표했다. 등부표는 그 후 5, 6차례 태풍 및 폭풍에 의해 유실됐으나 외국 선점을 예방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설치돼 지금도 이어도의 유일한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다.
해방 후 두차례 본격 탐사
지난 8월 25일부터 8월 26일까지 한국해양연구소, KBS, 제주대학교는 공동으로 1984년 1차 탐사에 이어 두 번째로 이어도를 탐사했다. 이번 탐사에서는 이어도의 지질학적 특성과 주변에 서식하는 생물상을 조사하고 종합해양과학기지 건설지점을 잠정적으로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8월 25일 20시 30분 16명의 대원들(팀장 이화섭)은 수중촬영 장비와 수중촬영로봇(ROV) 등을 탐사선 두 척에 옮겨싣고 제주항을 출발해 이어도로 향했다. 새벽 5시에 멀리 깜박이는 이어도 등부표를 발견했을 때, 생각지도 않은 비가 내려 탐사팀을 괴롭혔다. 비가 오면 작업효률은 반 이상 떨어지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일단 비가 와도 수중촬영작업이 가능한 지역을 살폈다. 수중촬영을 하려면 조류에 의한 유속과 수중에서의 시계(視界)상태가 가장 중요하다. 필자는 94년 10월에 수중촬영을 위해 이어도에 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유속이 너무 빨라 잠수조차 할 수 없었다. 약 2주마다 돌아오는 대조기(대략 보름과 그믐)로 밀물과 썰물의 조차가 가장 크고, 유속도 가장 빠를 때였다. 서해, 남해의 경우 대략 6시간 마다 일어나는 정조시간(밀물에서 썰물로 바뀌는 시간)에는 대조기라도 유속이 느려 잠수가 가능한데, 이어도에서는 정조시간에도 유속이 빨라 잠수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번 탐사에서는 소조기(대략 상현과 하현) 때 해상상태가 좋은 날을 잡아 탐사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물 때, 해상상태(기상상태 포함), 시계, 이 3요소를 모두 갖춘 날을 받아 작업날자를 잡는 것은 하늘의 도움이 없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이어도는 전설의 섬이라는 명성답게 사람의 접근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아침이 되자 다행히 비가 그치고, 해상상태도 점점 좋아졌다. 시계 또한 이어도 주변해역이 마치 동해로 착각될 정도로 확 트였다. 이어도 해역은 특히 하절기에 중국의 양자강과 황하에서 토해내는 황토물로 탁도가 높아 시계가 좋지 않은 것이 특징. 다행히 금년에는 중국에서 홍수가 없었고, 유입된 토사물도 중국 삼협댐의 건설로 예전에 비해 양이 적었다.
오전 9시 이어도 정상 주변 수심 15m 내외에 표시부이와 앵커를 5개 설치하고, 잠수를 위해 모선 무궁화호에서 소형 보트를 내렸다. 이날의 정조시간은 10시 40분으로 탐사가 가능한 시간은 9시 30분부터 12시까지 약 2시간 반 정도였다.
잠수는 예상시간보다 약간 지연돼 12시 30분까지 2개조가 2회씩 잠수하며 수중촬영 및 암석채취에 성공했다. 수중촬영은 이어도의 생물상과 암초의 형태와 특성에 집중해 이뤄졌다. 한편 작업선 탐라호에서는 수중촬영로봇을 이용해 과학기지가 건설될 예정지점인 이어도 정상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5백m 떨어진 수심 약 40m 지점과 남쪽 약 55m 지점에 대한 수중촬영을 성공리에 마쳤다. 그리고 중앙에 태극기가, 위쪽에는 ‘海洋立國’(해양입국)이라 새겨진 크리스털 기념물을 수심 약 10m 지점에 안치했다.
이어도는 수백만년 전 화산활동 결과
탐사결과 이어도의 주 구성암석은 담회색과 황갈색의 응회암으로 나타났다. 응회암은 화산활동에 의해 공급된 현무암질 입자로 구성돼 있다. 일종의 화산 부스러기 퇴적물들로 형성된 퇴적암이라 층리구조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또 수m 크기로 분화구 모양의 탄낭이 발견됐는데, 이것은 세찬 파랑이나 조류의 흐름에 휘감긴 화산탄이 맷돌운동(풍화작용)을 해 원형 모양의 흔적을 만든 것이다. 이처럼 화산탄, 탄낭이 발견된 것은 이어도 근처에 화산분화구가 있었다는 증거다. 그리고 암반 사이에 틈새를 이룬 크랙(crack)도 발견됐는데, 이는 암반 생성 당시 온도차나, 생성 후 충격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이 틈은 물고기의 집 구실을 해 많은 물고기를 촬영할 수 있었다.
수중촬영사진과 채취한 암석을 육안으로 관찰한 결과, 이어도의 지질은 제주도 성산화산쇄설층과 유사하고, 화학성분들도 이들 암석과 유사했다. 현미경 관찰에서도 동일한 결과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어도 암초는 수백만년전(제3기 플라이오세)부터 화산활동을 시작한 제주도 성산화산쇄설층과 거의 유사한 환경에서 생성된 것으로 확인된다. 내년에 굴착(boring)작업이 실시되면 보다 자세한 연구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생태계는 제주 해역보다 서해와 비슷
이어도 정상 주변에 대한 수중촬영 결과 확인된 어종은 총 8과 10종. 이 중 돌돔, 붉바리, 조피볼락 등이 특히 많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 외에도 흑돔, 쏨뱅이 등 따뜻한 해역에서 서식하는 수산 어종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형 아열대성 회유 어종인 재방어가 목격되기도 했다.
수심이 얕은 곳에서는 진주담치, 해면, 파래, 그리고 갈조류의 몇몇 해조류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수심 10m 이하에서는 해조류를 거의 볼 수 없고, 잘 발달된 말미잘, 히드라 군락과 태형동물이 많이 있었으며 군체멍게 등이 관찰됐다. 이곳에 서식하는 해면, 말미잘, 히드라, 군체멍게 등 무척추동물들은 대개 햇빛을 좋아하지 않는 ‘피복성 동물 군집’이다.
생물분포로 보아 이어도 주변 해역은 조류가 빠르고 탁도가 높은 날이 많다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제주도 남부 해역에서와 같은 다양한 해조 군락이나 아열대성 소형 어류군락은 관찰되지 않았고, 오히려 서해안의 생물상 특성을 많이 보여줬다. 이어도 주변은 수중암초를 중심으로 주변 해역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독립적인 생태적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태풍예보에 최적위치
이어도는 우리나라로 오는 태풍 및 폭풍의 길목에 위치해 기상학적으로 이들의 연구 및 예보에 최적의 장소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친 태풍 중 약 35%가 이 해역(이어도에서 약 2백km 이내)을 통과했고, 이 해역을 통과한 태풍은 약 10시간 후에 남해안에 상륙했다. 특히 우리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사하라, 베라, 셀마, 브렌다 등의 태풍이 이 해역을 경유했다. 또 동중국해에서 갑자기 발달한 폭풍도 자주 이어도 부근을 통과한다.
이어도의 주변 해역은 수산자원이 풍부해 한·중·일의 대형조업장이 형성된다. 따라서 수산학적으로도 예보가 필요한 지점이다. 이어도 주변은 북상하는 쿠로시오 해류, 남하하는 황해 해류 및 중국 대륙의 연안수가 접촉하는 해역으로 계절에 따라 해양환경 변화가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서해와 남해의 해수운동 메커니즘을 파악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해역이다. 또한 이어도는 동중국해의 중앙에 위치해 이곳을 통과하는 연중 16만여척의 선박을 위해 등대설치가 절실히 요구되는 곳이다.
해양수산부에서는 이어도를 비롯, 우리나라 국토의 끝 지역인 독도, 흑산도, 백령도, 선갑도 등에 선단해양과학기지를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주요 연안에는 과학기지를 소규모로 건설해 기상예보와 해양과학연구에 활용할 계획이다. 그 중에서 천혜의 입지조건을 갖춘 이어도 해양기지는 선두주자에 해당한다.
해양과학의 미래 담은 과학기지
“이어도여 이어도여 이어말 하면 나는 눈물이 난다. 이어란 말은 말고서 가라. 강남으로 가려면 남쪽을 보아라. 이어도가 절반이다.” 제주 여인들이 한을 달래던 민요 ‘이어도하라’의 한구절이다. 그 한과 전설의 섬 이어도가 이제 첨단 과학기지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2천년에 완공될 과학기지는 기지의 안정성이나 미관, 그리고 활용도 등을 고려해 자켓형 구조물로 설계됐다. 이는 해상에서 석유나 천연가스 등의 자원을 생산하기 위해 설치된 구조물과 같은 원두막 형태다. 규모는 해난사고시 구난기지로도 활용할 수 있는 약 2백10평 규모(한 변 약 22m). 상부에는 헬기 이착륙 시설도 갖출 예정이다.
기지는 관측실험실, 회의실, 침실, 발전실, 등대시설, 선박 계류시설, 오수처리 시설, 화재진압 시설 등 7명이 14일 간 임시 거주할 수 있는 모든 시설을 갖춘 2층 구조물로 세워질 예정이다.
태양열, 풍차발전, 디젤발전 등으로 자체 전력 공급체제도 갖추게 된다. 또 각종 기상관측장비, 해양관측장비, 환경관측장비 등이 설치돼, 여기서 관측된 자료는 국제해사위성(INMARSAT)을 통해 사용자에게 실시간으로 즉시 배포된다.
세계는 1994년 유엔해양법 협약의 발효 등 신해양 질서의 형성에 따라 해양의 자유이용시대에서 해양의 분할관리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반도 주변해역의 경계를 정할 때 주변국가 간에 치열한 외교 논쟁이 예상된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국제적인 해양관할권 분쟁에 적극 대처하는 의미에서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