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1. 당신을 해피룸으로 초대합니다.

스트레스는 단순히 정신적 상태 뿐만 아니라 신체 전반에 특별한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이다. 적을 알아야 싸움에 승리할 수 있듯이, 단숨에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트레스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2005년 어느 여름날 오후 1시, K씨는 5시까지 제출해야 하는 서류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상하게 서류는 한 줄 쓰기가 힘들다.

“왜 이러지? 좀 쉬었다 할까….”

이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얼마전 사무실 옆에 만들어진 ‘해피룸’이 떠올랐다. 그 방에 갔다오면 스트레스가 쫙 풀린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믿지 않던 K씨 였다. 기분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만 제어가 가능하다는 것이 평소 그의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방에 들어갈 때 무슨 측정을 한다는데, 기계로 자신의 기분을 잰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집중하려면 할수록 일은 꼬여만 가고 있었다. 벌써 3시가 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해피 룸을 열었다. 불쾌지수가 90이란다. 문을 여는 순간 상쾌한 바람이 얼굴에 부딪쳤고 은은한 조명이 눈의 피로감을 풀어주었다. 음악을 틀고 의자에 앉는 순간, 음악의 리듬에 맞춰 온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K는 긴장감이 몸에서 스르르 빠져나가면서 머리가 맑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기를 수 분. “충분히 쉬었으니 슬슬 일을 시작해 볼까”하는 의욕이 저절로 났다. 방을 나올 때 “불쾌지수는 5입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 서류정리가 잘됐다. 마지막으로 저장버튼을 눌렀다. 4시 30분이었다.

캡슐방의 미래 모습

한 10여년 전이라면 앞의 이야기는 공상과학 소설감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실제 ‘해피룸’을 만들고 있다. 들어가 앉아 있기만 하면 심신이 편안해지는 방, 스트레스 없이 일할 수 있는 사무실, 사고 걱정없이 운전하는 자동차 등 우리 일상생활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요즘 샐러리맨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캡슐방’은 해피 룸의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한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인 캡슐방에서는 수면을 취하면서 안마도 받을 수 있다. 캡슐방에 갔다 온 사람들은 단시간에 피로를 푸는데 효과가 있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기분이 좋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더 나아가 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행복에 대한 정의는 그리 쉽지 않다. ‘기뻐서 웃는다’와 ‘웃으니까 기쁘다’라는 표현은 둘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기뻐서 웃기도 하지만, 웃는다는 행동으로 기분을 좋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밥을 배부르게 먹으니 행복하다’, ‘그는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행복이라는 감정이 일시적인 것일 수 있지만, 동시에 수십년의 세월을 통틀어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행복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인간의 감정부터 정의해야 한다. 사람에게는 행복감, 즐거움, 기쁨 등 긍정적인 감정이 있는가 하면 슬픔, 분노, 공포, 우울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있다. 지금까지 사람의 감정에 대한 연구방향은 부정적인 측면에 맞춰져 있었다. 아마 기분이 너무 좋아 정신과에 상담을 하러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긍정적인 감정에 대해서도 연구를 시작하고 있다. 즉 불편한 감정 상태를 편안하게 만들고, 편안한 감정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측정할까. 웃는 얼굴이면 행복한 것이고 얼굴을 찡그리면 그렇지 않은 것일까. 얼굴표정에 사람의 감정이 많이 실리기는 하지만, 겉모양만 보고 사람의 마음을 알길이 없다.

감성공학자들의 관심은 행복감의 객관화에 있다. 행복이 어떤 요소로 구성돼 있는지, 긍정적인 느낌이란 무엇인지, 또 어떤 것들이 삶에 편안함을 주는 것인지 등 객관적인 입장에서 행복감의 차원을 나누고 측정하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은 얼굴 표정. 감성공학자들은 사람의 얼굴 표정을 통해 기본적인 감정을 7가지로 나누었다. 즐거운 생각을 하면 뺨 부분 근육의 활동이 증가하고, 불쾌한 생각을 하면 눈 위 근육의 활동이 증가한다.

또 흥분되는 음악을 들으면 피부의 전위차가 생기고, 고요한 음악을 들으면 피부전위의 변화가 없다. 이렇게 외부자극에 의해 발생하는 인체의 반응들은 중추신경계인 뇌의 지배를 받음과 동시에 뇌파에 반영돼 나타난다. 그외에도 동공의 크기, 호흡수, 심장 박동수, 피부 온도, 땀의 양 등 사람의 감정에 따라 나타나는 생체신호는 여러 가지가 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뇌는 알파파로 반응한다.


기분 좋을 때는 알파파

손진훈 교수(충남대 심리학과)는 기분 좋은 소리와 기분 좋은 촉감을 알아내는데 뇌파를 이용했다. 머리 표면에 전극을 부착하면 뇌전위를 측정할 수 있다. 사람의 뇌전위는 보통 수십 μV정도로 매우 미약하고 0.1Hz에서 40Hz의 주파수 영역을 갖는다.

이중 10Hz 전후를 알파(α)파라고 하는데, 눈을 감고 있거나 안정한 심리상태에서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안정파라고 한다. 한편 불안하거나 흥분하게 되면 주파수가 20Hz인 베타(β)파가 나타난다.

소리에 대한 손교수의 연구결과, 계곡물과 새소리가 가장 기분 좋은 소리였고, 뻐꾸기 소리, 소쩍새 소리, 물떨어지는 소리, 성당 종소리 순으로 기분이 좋다는 반응을 얻었다. 또 가장 기분 나쁜 소리는 헬리콥터와 건축장의 해머소리였다. 한편 기분 좋은 소리라고 대답한 음을 들을 때는 알파파가 증가했고, 기분 나쁜 소리를 들을 때는 베타파가 증가했다.

손교수는 피부감각에 대한 실험도 했다. 양털, 밍크털, 면헝겊 조각을 만질 때는 기분이 좋다는 대답과 함께 알파파가 증가했고, 컴퓨터 카드 뒷면, 석고, 사포 등을 만질 때는 기분이 나쁘다는 반응과 함께 베타파가 증가하는 결과를 얻었다.

즉 기분이 좋을 때는 알파파가 많이 발생하고 기분이 나쁠 때는 베타파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왠지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이나, 입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옷은 알파파를 많이 발생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어떤 물건을 만들 때는 알파파를 많이 발생시키는 쪽으로 만들어야 잘 팔릴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피부감각이나 청각 이외에도 시각, 미각, 후각 같은 인간의 오감을 측정하고 인간의 감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실험결과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 같은 사람을 앉혀놓고 똑같은 과정으로 실험을 실시해도 얻어지는 결과는 매번 다르다는 말이다.

지난 5월3일 연세대학교 엘렌관에서는 ‘제9회 G7 감성공학 감성요소 기술개발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 워크숍’이 열렸다. 우리나라 감성공학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워크숍에 참석한 과학자들이 토론한 공통된 어려움은 실험대상이 ‘인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들이었다. 사람을 상대로 감성을 측정할 경우, 동일한 실험을 똑같은 사람에게 반복하는데도 일정한 실험결과를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사람의 기분이 매일 동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연구자들의 고민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얻어진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것이다.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측정한 다양한 생체 신호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재의 과학수준으로는 알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연구방법은 뇌를 블랙박스로 둔 채, 자극에 대한 반응을 단순 측정할 따름이다. 앞으로의 감성공학연구의 방향은 다양한 연구결과를 적절히 조합하는 데이터 처리 기술을 개발하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국 감성요소 기술개발 연구회에서는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를 모아 인터넷에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그림)통제 신경과 관련된 얼굴근육


뇌연구로 발전

감성공학은 뇌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뇌는 과학에서 ‘마지막 남아있는 미개척지’다. 이미 미국에서는 지난 10여년간 6억달러(5천4백억원)나 되는 돈을 뇌를 연구하는데 쏟아부었다. 일본에서도 뇌과학을 연구 1순위로 정하고 앞으로 20년간 2조엔을 투입하기로 예산을 책정했다. 물론 국내에서도 ‘뇌연구 태스크 포스’를 발족시켜 정식으로 뇌연구를 시작할 예정이다.

몸매를 가꾸기 위해 일부러 조이는 불편한 속옷이 아닌, 입어도 입은 것 같지 않은 인체 교정 란제리, 운전자가 졸면 알아서 자동차 간격을 조정하는 장치, 눈동자를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커서 등 인간에게 더 친밀하고 편안한 감성제품의 개발이 멀지 않았다.
 

간단한 일(왼쪽)과 복잡한 일(오른쪽)을 할 때의 뇌 상태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7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곽수진 과학동아 재미 통신원

🎓️ 진로 추천

  • 심리학
  • 컴퓨터공학
  • 의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