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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의 상징 문장

미국 대머리 독수리에서 한국의 봉황까지

문장은 권위의 상징이다. 가문과 단체, 국가에 이르는 모든 조직의 권위가 문장에서 단적으로 표현된다. 문장은 많은 뜻을 품고 있다. 신화 속의 동물과 망토를 휘날리는 중세 기사의 모습이 화려한 색채로 등장한다. 중세 초기부터 현대 국가에 이르기까지 문장 속에 담겨진 다양한 상징의 의미를 해석해보자.

방패에 새겨진 간결한 무늬 장미전쟁 붉은장미 vs 하얀장미

온 몸에 번쩍거리는 육중한 갑옷을 입고 전쟁터에 나서는 중세의 기사. 무기를 점검하고 말을 탄 적진을 향해 돌진한다. 싸움이 시작되면 적군과 아군이 뒤엉켜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 투구로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시야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탓이다. 이때 기사들이 적군을 재빨리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갑옷의 겉옷과 방패에 새겨진 무늬, 바로 문장(紋章) 때문이었다.

기사가 입은 갑옷은 강렬한 햇빛을 받으면 곧잘 변질되곤 했다. 더욱이 비가 내리면 물기 때문에 녹이 잘 슬었다. 그래서 갑옷을 천으로 만든 겉옷으로 둘러싸야 했다. 문장은 이 겉옷과 방패에 동일한 내용으로 그려졌다.

문장은 중세 유럽에서 체계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문장이 유행했던 것은 이처럼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갑옷으로 중무장한 기사들의 싸움에서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는 일이 필수적이었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 누구나 쉽게 인지할 수 있는 ‘그림’이 필요했다. 따라서 초기의 문장은 대담하고, 단순하며, 두드러진 모습을 띠었다. 대표적인 예가 장미 전쟁(1455-1485)이다.

장미 전쟁은 영국에서 강력한 왕가정부가 탄생하기에 앞서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이 왕권을 둘러싸고 벌인 치열한 내전이다. 장미 전쟁이란 이름은 랭커스터 가문의 문장이 붉은 장미였고, 요크가문의 문장이 하얀 장미였기 때문에 붙여졌다. 일반적으로 붉은 장미는 욕망이나 기쁨, 성취를 상징하고, 하얀 장미는 순결이나 영적 깨달음의 상징이다. 즉 붉은 장미와 하얀 장미는 ‘대립적인 상징물’이다.

문장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주나 귀족, 기사처럼 군대와 관계되는 계층에 한해서 왕의 허가가 있어야 문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문장은 전쟁터 외에서도 사용됐다. 기사들의 자웅을 겨루는 마상시합이 시작되기 전 참가한 기사들은 문장을 통해 자신의 소속을 알렸다. 시합을 총괄하는 문장관은 기사들의 갑옷이나 방패, 그리고 깃발에 새겨진 문장을 보고 관중에게 기사를 소개했다.

문장관

중세에 문장의 역사와 가계 업무를 담당하는 관리를 말한다. 12세기 문장관은 왕이나 영주로부터 내려진 문서를 군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쟁이 없을 때는 기사들의 마상시합을 지휘했다. 이때 전사의 이름을 공표하는 등 시합의 의식을 주도했는데, 지방 귀족들의 문장을 빨리 알아보기 위해 가계의 유래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15세기 초에 이르면 문장관의 권한은 소귀족을 임명할 정도로 확대됐으며, 문장을 수여하는 권한이 왕으로부터 문장관으로 이전됐다. 16-17세기 문장관이 지방을 순시할 때 문장을 지닌 사람은 문장을 지닌 연유를 문장관에게 증명해야 했다. 그림은 목판화에 새겨진 문장관(1574). 전통 관복을 입은 모습이다.

중세 기사의 모습

기사의 복장은 방패, 투구, 머리장식, 그리고 망토가 기본이었다. 방패에는 가끔 전쟁과 관련된 가문의 구호가 적혀있었다. 망토는 투구에 달려있는 천으로 겉옷과 함께 햇빛과 빗물로 부터 갑옷을 보호하거나 전투시 상대방의 칼이 비껴맞도록 하는데 사용됐다고 한다. 그림에서 머리장식과 망토는 보이지 않는다.

방패에 새겨진 문장

문장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동물과 식물, 그리고 각종 기하학적 무늬가 어우러져 자신의 조직을 표현한다. 전쟁터에서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단순하고 대담하게 표현된 것이 많다.
 

방패에 새겨진 문장


화려하게 치장한 기사의 모습 명예와 권위의 상징, 영국 여왕장

중세 말기 기사의 시대가 퇴조하면서 문장의 성격은 변하기 시작했다. 중세 초기에 문장을 사용한 계층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린 사람들이었다. 문장은 점차 높은 지위의 상징으로 변해갔다.

이런 분위기에서 문장의 모양은 큰 변화를 겪는다. 단순하고 명확한 이미지에서 복잡하고 화려한 형태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예술적 가치가 높고 신비스러울수록 권위가 높아 보인다는 심리 탓이었다. 이런 전통은 20세기 후반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다.

‘권위의 상징’으로 표현된 문장의 대표적인 예는 영국의 여왕장이다. 이 복잡한 문장의외형적인 특징은 한마디로 ‘중세 기사의 모습’이다. 여기에 다양한 의미를 담은 상징물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이 상징물들의 의미는 영국의 성립 과정을 표현한다.

문장의 중심에 방패가 있다. 방패 위에 기사의 투구가 있고, 투구 위에는 머리 장식이, 투구뒤에는 망토가 휘날린다. 방패 옆에는 두마리의 동물이 방패를 떠받치고 있다. 기사가 말을 타고 갈 때 옆에서 시중을 드는 종자의 형상이다. 전체적으로 전쟁터에 나서는 기사의 모습
이다.

이제 영국 문장에 담겨있는 상징물의 의미를 살펴보자. 방패는 여러 조직들의 연합을 상징한다. 영국 문장의 방패는 4개로 분할돼 있다. 방패 왼쪽 위와 오른쪽 아래에는 세마리의 표범이 있다. 잉글랜드의 상징이다. 오른쪽 위에는 스코틀랜드의 상징인 사자, 왼쪽 아래에는아일랜드의 상징인 하프가 그려져 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아일랜드는 오늘의 영국을 이루고 있는 옛 국가들이다.

방패 오른쪽 옆에 서있는 동물은 잉글랜드의 또다른 상징인 사자다. 왼쪽에는 스코틀랜드의 상징 동물인 일각수(유니콘)가 있다. 그 아래에는 각 국가들의 나라 식물, 즉 장미(잉글랜드), 토끼풀(아일랜드), 엉겅퀴(스코틀랜드)가 놓여 있다. 마지막으로 맨 아래에 써있는 글씨는 '신과 나의 권리’란 뜻으로, 영국 왕권을 상징한다.

고대 왕권의 상징 올빼미ㆍ코브라ㆍ독수리

고대 국가나 왕의 상징물은 주로 동물이었다. 예를 들어 올빼미는 아테네를 상징하는 동물이었는데, 제우스의 딸이자 아테네의 수호여신인 아테나를 표현한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올빼미는 지혜의 상징이었다.

이집트의 경우 왕의 미라 머리부위에 씌워진 마스크에는 상·하 이집트의 상징인 매와 코브라가 등장한다. 이집트에서 매는 모든 수준을 뛰어넘는 상승이나 승리를 뜻한다. 또 도덕적이나 영적인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짐을 표현한다. 한편 코브라는 신과 왕이 가지는 지혜와 힘의 상징이다.

이 외에도 크레타의 상징물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우두인신(牛頭人身) 미노타우루스, 펠로폰네소스는 거북, 로마는 독수리였다.
 

아테네의 상징인 올빼미가 새겨진 동전. 뒷면에는 수호여신 아테나 얼굴이 있다. 기원전 5세기 경에 만들어졌다.


고위층에서 일반인으로 확산 여성은 마름모꼴

여성이 사용하는 문장도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문장에 비해 여러 요소가 빠져 있다. 여성은 전쟁터에 나가지 않기 때문에 전투와 관련된 방패, 투구, 망토 등이 생략됐다.

여성 문장의 경우 여성이 미혼인지 기혼인지에 따라 문장의 형태가 달라진다. 여성이 결혼 전이거나 과부일 때, 또는 이혼 후 혼자 살 때 문장의 외형은 마름모꼴이다. 중세 유럽의 문장에서 방패형이 나타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다. 일반적으로 마름모는 여성적 창조의 원리, 또는 풍요의 여신이 갖는 생명성을 상징한다.

이에 비해 여성이 결혼하면 방패형으로 바뀐다. 또 남편의 문장과 절반씩 섞여 남편 집안의문장이 왼쪽, 아내 집안의 문장이 오른쪽에 놓인다. 방패의 왼쪽은 오른쪽보다 우위에 서있음을 뜻한다. 다분히 남성 중심적 배치다.

중세 말기에는 문장을 사용하는 계층이 대폭 확대됐다. 성직자를 비롯해 상공업자의 연합체인 길드, 도시, 대학은 왕이나 문장관의 허락을 얻어 자유롭게 문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 예로 인쇄술이 번성하던 19세기 말 영국 치스윅 인쇄소의 문장을 들 수 있다. 이 문장에는 치스윅가의 상징인 사자와 함께 16세기 베니스의 유명한 인쇄인 알두스가의 상징인 돌고래가 새겨져 있다.

일반적으로 닻과 돌고래가 함께 있을 때 닻은 느림, 돌고래는 빠름을 나타낸다. 즉 이 문장은 중용의 덕, 또는 “빨리 하되 차근차근 하라”는 뜻을 나타낸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볼 때 의미는 달리 해석된다. 사자가 돌고래에게 경의를 표한 것인지, 바깥으로 내몰고 있는 것인지 명확치 않기 때문이다. 즉 치스윅 인쇄소가 알두스가를 존경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극복하겠다는 뜻인지 모호하다.
 

여성의 문장^여성이 혼자일 경우(미혼, 과부) 문장은 마름모꼴이고, 결혼했을 때 남자와 마찬가지로 방패형으로 변한다.


홍콩의 식민지 문장

영국의 여왕 문장은 다른 나라의 문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지난 7월 1일, 1842년 이후 영국의 식민지로 지내다 중국에 반환된 홍콩의 문장이 대표적인 예다.

홍콩 문장은 영국 문장과 기본 구조가 같다. 중앙에 방패가 있고, 방패 위로 금관을 쓴 사자 모양의 머리 장식이 있다. 또 양 옆에는 두마리의 동물이 방패를 받치고 있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 당시 영국과 홍콩이 연합한 상황이었다면 방패에는 영국과 중국의 문장이 절반씩 나눠져 그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홍콩이 식민지로 지정됐기 때문에 그런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영국 해군을 상징하는 그림들만 존재한다. 방패의 아래 부분에는 청색과 백색의 파도무늬를 넣어 바다를 표시했다. 그 위에 세개의 돛을 단 배 2척이 그려져 있다. 또 성벽을 배경으로 한 적색바탕에 황금색 해군관이 있다.

방패 왼쪽에는 영국을 상징하는 사자가 서있고, 오른쪽에는 중국을 상징하는 용이 서있다. 영국이 우위에 있음을 알려주는 배치다. 또 머리 장식으로 쓰인 사자는 영국의 상징이다. 홍콩의 국기는 영국의 해상용 관용기 안에 문장이 그려진 형태다.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였음을 알리는 명확한 징표다.
 

홍콩문장


많은 사람 중의 하나, 대통령 미국의 대머리독수리

17세기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다. 문장의 사용은 당연히 영국 방식에 따랐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엄격히 적용되지 않았다. 특히 1776년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이후 문장에 대한 영국식 규제는 사라졌다.

미국에서 문장을 관할하는 위원회는 각 가문들을 상징하는 문장을 별다른 조건 없이 허가했다. 단지 최초의 이주민들이 사용한 문장이라는 점이 증명만 되면 후손들의 문장 사용을 허락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한다는 점이 쉽지 않았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상당히 소수의 가문만이 문장을 사용했다.

미국의 대통령 문장은 대머리 독수리가 적색, 백색, 청색으로 구성된 방패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형상이다. 대머리 독수리가 미국의 상징물로 의회의 승인을 받은 것은 미국이 독립한지 6년 후인 1782년이었다. 이후 제19대 대통령 러더퍼드 헤이스가 대통령 문장에 대머리 독수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문장에는 독립할 당시의 주의 숫자인 ‘13’이 여러 곳에 나타나있다. 독수리가 잡고 있는 화살의 수가 13개다. 방패문양에 그려진 줄무늬도 13개다.

독수리가 부리로 물고 있는 종이에는 ‘많은 사람 중의 하나’라는 말이 적혀 있어 대통령의 권위를 드러낸다. 방패문양 위쪽의 청색은 13개 주가 합중국을 결성할 당시 헌법에 의해 최고 국가기관으로 규정한 의회의 상징이다. 독수리가 잡고 있는 화살과 올리브나무 가지는 의회가 평화와 전쟁을 결단하는 기능을 가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미국 대통령 인장(印章)^대머리 독수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대통령 문장을 새겨넣었다.


세가지 십작가의 조합 영국 국기의 숨은 뜻

문장으로부터 유래된 국기가 있다. 영국 국기가 대표적인 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문장의 총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277년 잉글랜드의 성자 성 조지의 기(백색바탕에 적십자)가 잉글랜드의 국기로 사용됐다. 성 조지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용을 퇴치할 때 용의 피가 흰 방패에 흘러 십자가 모양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이후 1603년 엘리자베스 1세 사망 후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는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 왕으로 즉위하면서 잉글랜드 왕을 겸임한다. 잉글랜드 국기와 스코틀랜드 국기가 결합한 시점이다. 스코틀랜드 기는 청색 바탕에 스코틀랜드 수호신인 성 앤드류의 X자형 백십자가 그려진 형태다.

한편 1800년 아일랜드가 합병되면서 아일랜드기(백색 바탕에 성 패트릭의 X자형 붉은 십자가)가 최종적으로 합쳐짐으로써 현재의 영국기가 만들어졌다. 영국기는 1801년 1월 1일 공식적으로 게양됐다.

이와 반대로 문장과 무관한 대표적인 국기가 프랑스기다. 이 기는 단지 색깔들을 배열한 것 일 뿐이다. 절대군주제의 붕괴를 유발한 프랑스 혁명의 해인 1789년, 파리의 상징색인 청색과 적색 사이에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상징색인 백색을 넣어 혁명군의 모자에 붙였다. 이것이 프랑스기의 기원이다.

프랑스기는 왼쪽부터 청색, 백색, 적색으로 구성되는데, 각기 자유, 평등, 박애를 의미한다. 국기가 바람에 날릴 때 바깥쪽이 가장 펄럭이기 때문에 안쪽에 비해 좁아보인다. 그래서 세가지 색깔이 균등하게 분배된 것으로 보이기 위해 청색의 폭을 30%, 흰색을 33%, 적색을 37%로 나눴다.

십자가가 그려진 국기

국기에 십자가를 그린 나라는 유럽의 영국,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랜드, 아이슬랜드, 스위스, 그리스 등이다. 십자가는 유럽인들이 이슬람교도들을 상대로 벌인 군사 원정인 십자군전쟁(1095-1270)에서 군사 표지로 등장했다. 예루살렘과 그리스도의 성묘를 이슬람교도의 지배로부터 탈환할 목적이었다.

십자가는 제3차 십자군 원정에 참가한 유럽의 기사단이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기 위해 기에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 성 요한 기사단은 붉은색 방패에 흰색 십자를 그렸다. 십자군 원정이 끝난 뒤 십자가는 유럽 각국의 징표로 남았다.
 

전쟁에 나서는 십자군의 모습. 수많은 문장 깃발이 보인다.


신라 보검에 새겨진 삼태극의 비밀 다리 셋 달린 까마귀의 상징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왕실의 문장에 대한 기록이 잘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문화를 구성하는 원리를 살펴보면 문장에 사용됐음직한 요소를 추측할 수 있다. 최근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한 우실하씨의 논문 ‘한국전통문화의 구성원리에 대한 연구’(1997.6)는 바로 이 점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우실하씨는 한국의 전통 문화를 읽는 인식틀로 세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역(易) 사상(후에 음양론과 결합), 둘째 음양오행론,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양숭배사상이나 샤머니즘과 관련된 삼재론(三才論)이다. 삼재론은 하늘과 땅, 인간 3자의 조화를 추구하는 사상으로, 이를 상징하는 생물이 삼족오(三足烏), 즉 다리 셋 달린 까마귀다.

삼국시대에 백두대간 서쪽에는 고구려와 백제, 동쪽에 신라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당시 삼국의 토착 사상은 삼재론이었다. 그러다 산동반도와 요동반도를 잇는 발해만 지역에서 발생한 음양오행론이 기원전 4세기 경 철제무기의 보급과 함께 백두대간 서쪽으로 도입됐다.

고구려와 백제의 경우 음양오행론이 삼재론을 흡수했다. 하지만 신라에는 음양오행론이 서쪽보다 1-2세기 늦게 넘어왔다. 이때는 이미 신라에 삼재론이 통치사상으로 완비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음양오행론은 삼재론에 흡수된다.

우실하씨는 신라시대에 삼재론이 우세했던 증거로 왕의 부장품에 새겨진 상징물을 제시했다. 삼태극이었다.

신라 미추왕릉 지구 계림로 14호분에서 발굴된 장식 보검(보물 635호)에는 삼태극이 새겨져있다. 이는 삼족오의 변형된 형태다.

또 서봉총 출토 금관(보물 339호)에서 발굴된 신라의 왕관에서도 삼재론이 표현된다. 금관 한가운데 금테가 있는데, 그 위에 나뭇가지에 앉은 3마리의 새가 존재한다. 바로 삼족오의 형상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는 한 민족의 정체성이 형성됐다. 이 통일된 국가의 문화가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삼재론에 기원을 둔 삼태극의 형상이다.

군왕의 덕목 상징하는 봉황 열가지 동물 장점 갖춘 상상의 새

대한민국의 문장(1963년 12월 10일 규정)은 무궁화와 태극무늬로 구성된다. 무궁화는 햇빛을 받을 때 온 생명을 다해 피고, 해가 지면 꽃을 떨군다. 이런 하루살이는 세속적인 행복과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즉 억겁의 세월 속에서 일순간에 사라지는 인생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무궁화의 하루살이는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겸손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무궁화의 꽃 하나하나는 하루만에 진다. 하지만 나무 전체로 볼 때 끊임없이 새로 피어나는 것이 무궁화다. 끈질긴 생명력의 상징이다.

무궁화는 우리의 국화다. 하지만 무궁화를 국화로 지정한 공식적인 법령은 없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 민족과 친숙해진 탓에 국화로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이다.

한편 태극무늬는 우주가 음양의 대립적인 원리로 갈리기 이전의 원초적인 상태를 표현한다. 태극은 모든 창조 신화에서 공통으로 가지는 천지개벽 직전의 혼돈과 무정형의 상황을 의미한다. 하늘과 땅의 구별이 없는 어둠과 혼돈의 형상이다. 따라서 우주만상의 근원이며, 인간생명의 원천으로서의 진리를 나타낸다. 또 사멸이 있을 수 없는 구원의 상을 상징한다.

대한민국 문장은 현재 외국에 대한 공문서나 각종 훈장, 공무원 신분증, 국·공립대학의 졸업증서와 학위증서에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문장과 별도로 대통령의 지위와 권위를 상징하는 표장(1967년 1월 31일)이 있다. 표장은 봉황과 무궁화로 구성된다.

봉황은 새 가운데 으뜸으로 알려진 상상 속의 새다. 봉은 수컷, 황은 암컷을 가리킨다.

봉황은 열가지 동물의 장점을 두루 갖추었다. 앞모습은 기러기(신의를 생명처럼 지킴), 뒷모습은 기린(슬기와 재주를 갖춘 현인), 턱은 제비(비를 오게 하는 재주와 부귀 및 장수), 부리는 닭(여명이 다가오는 것을 가장 먼저 감지), 목은 뱀(풍년과 다산), 꼬리는 물고기(병권, 兵權), 이마는 황새(고귀, 고결, 장수), 뺨은 원앙(원만한 가정, 사회, 국가), 몸 무늬는 용(뛰어난 인물의 상징. 발가락 5개면 황제, 4개면 제후, 3개면 재상), 등은 거북(장수, 예견 능력)를 닮았다.

깃털빛은 빨강, 파랑, 노랑, 흰색, 검정 등의 5색을 띠며, 울 때 5음을 내고, 오동나무에 깃들며,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고 한다.

봉황의 속성은 백성을 다스리는 군왕의 덕목과 같다고 한다. 그래서 왕이 집무하는 정전의 천장에 봉황이 곧잘 등장한다. 예를 들어 현재 창덕궁 명정전의 천정에서 봉황 무늬를 볼 수 있다.
 

창덕궁 명정전 천정에 새겨진 봉황 1쌍.


일본 왕실의 문장

일본 왕실의 문장은 16개 꽃잎이 2겹으로 이뤄진 국화 모양이다. 고도바천황(1180-1239)이국화를 대단히 좋아해 옷이나 수레, 칼 등에 국화 무늬를 장식했는데, 이것이 후세에 답습돼왕실 문장으로 정착했다고 한다. 이후 국화 문장은 국가에 공이 큰 신하들에게 하사돼 왔다. 왕실 문장이 16개 겹꽃잎 국화인데 비해, 왕족의 문장은 14개 홑꽃잎 국화다. 1926년에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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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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