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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의 순간이동장치

영혼과 육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스타트렉(Star T-rek)은 새로운 문명을 찾아 먼 우주를 탐험하는 인간들의 모험을 다룬 공상과학물이다. 진 로든베리에 의해 탄생된 이 SF는 30년 가까이 TV시리즈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왔으며, 여러 차례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스퍽과 피카드, 익살꾼 Q와 로봇 데이터 등 개성적인 주인공들이 엔터프라이즈호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외계 문명을 접하고 겪게 되는 모험들이 스타트렉의 기둥 줄거리다. 이를 통해 영화는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종족과 국가의 이익 때문에 화합하지 못하는 인류에게 전우주적인 화합과 공존의 미덕을 호소한다. 그래서 영화는 과학적이고, 드라마틱하면서 또한 매우 철학적이다.

스타트렉이 오랫동안 인기를 누려온 가장 큰 비결은 초광속비행이나 순간이동장치, 홀로데크, 외계생명체 등과 같은 흥미있는 이야깃거리를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전개한다는데 있다. 영화에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나 양자요동, 블랙홀, 반물질 등 현대 물리학의 첨단 이론들이 자주 등장하여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끌고 나가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래서 스타트렉의 과학자문위원인 스턴바하와 오쿠다는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장치들의 기술적인 매뉴얼까지 책으로 펴낸 바 있다. 또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과학적인 장치들이 과연 얼마나 실현가능한 것인지에 관한 과학 도서들도 선을 보였다.

1995년 물리학자인 로렌스 크라우스는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과학적인 장치들의 원리와 실현가능성에 관한 명저 ‘스타트렉의 물리학’을 출판하였다. 흥미로우면서 명료하게 써내려간 ‘스타트렉의 물리학’에는 뉴트리노를 전공한 이론물리학자다운 해박한 지식과 스타트렉에 대한 따뜻한 애정으로, 스타트렉의 과학적인 오류와 실현가능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착륙할 수 없는 우주선 대신에

스타트렉에서 가장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치는 “스커티! 나를 당장 순간이동시켜 줘!”와 함께 등장하는 순간이동장치다. 순간이동장치는 우주선 안의 승무원을 외딴 행성의 표면으로 순식간에 보낼 수 있는 장치다.

진 로든베리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매우 아름다운 우주선 한 척을 디자인했는데 한 가지 문제점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것은 엔터프라이즈호가 공간을 비행할 때는 부드럽게 미끄러져 날아갈 수 있지만, 땅에 착륙하면 마치 뒤뚱거리는 펭귄처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빈약한 예산 때문에 이 거대한 우주선이 행성의 표면에 착륙하는 장면을 매번 보여주기 어려웠다. 그래서 우주선이 착륙하지 않고 승무원을 행성의 표면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도입된 장치가 바로 순간이동장치다.

그렇다면 순간이동장치의 원리는 무엇일까? 약 ${10}^{28}$개 (1 다음에 0이 28개 달린 엄청난 숫자)의 원자들로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진 사람이 우주선에서 행성의 표면으로 그토록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스타트렉 중 ‘넥스트 제너레이션’ 시리즈 기술 매뉴얼에 따르면, 우선 순간이동장치를 타겟을 향해 조준한 뒤 이동시키고자 하는 목적물의 영상을 읽어들인다. 그리고 목적물을 비물질화 시킨 후 그 형상을 패턴보관실에 잠시 저장해 두었다가 원형구속발사기를 통해 이동시키려는 물질을 목적지로 발사한다.

즉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에 관한 정보를 저장한 후, 인간을 원자들로 분해하여 초고속으로 전송한다. 그리고나서 원래 몸을 이루고 있던 원자들에 관한 정보를 이용하여 다시 인간을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원리의 타당성과 실현가능성에 관해 수많은 문제점을 극복해야만 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정보이론, 컴퓨터 공학, 질량과 에너지와의 관계, 양자역학, 입자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장애물처럼 산재해 있다.

순간이동장치의 오류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물질을 이루는 원자보다 물질에 관한 정보인 비트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한 권 구입하는 것보다 책의 내용을 비트로 저장하면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책을 비트로 저장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처리 속도도 빠르게 된다. 책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이란 실제로 별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사람을 순간이동시키기 위해서는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을 이동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단순히 그 원자들이 담고 있는 정보만을 이동시키면 되는 걸까. 정보는 빛의 속도로 전달할 수 있으므로 정보를 이동하는 쪽이 훨씬 쉬울 것이다. 그러나 책과는 달리 사람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람의 몸에서 원자의 담긴 정보를 추출한다는 것이 쉽지 않으며, 그 정보들을 재결합하여 원래의 물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순간이동장치를 들여다보면 이동대상물의 물질과 정보를 모두 전송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스타트렉의 내용 중에는 이 원리와 모순되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넥스트 제너레이션’ 시리즈 ‘두번째 기회’ 편에서는 리커 중위가 네르바라 4호 행성에서 포템킨으로 순간이동을 하면서 두사람으로 분리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중 하나는 포템킨으로 안전하게 도착하지만, 분리된 또 한 명의 리커 중위는 다시 네르바라 4호 행성으로 떨어져 그곳에서 홀로 8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만일 순간이동장치가 물질과 정보를 모두 보내는 것이라면 이런 분리현상은 일어날 수 없다. 잘 알다시피, 이동을 마친 후의 원자의 개수는 이동하기 전의 원자의 개수와 정확히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물질화된 원자들을 어떻게 전송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실질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다. 실제로 대개의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의 중심에는 무거운 핵자(중성자와 양성자)가 자리잡고 있고, 그 주변으로 전자들이 구름처럼 둘러싸고 있다. 사실상 원자의 대부분은 텅 빈 공간인 것이다.

그런데 원자의 대부분이 텅 빈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물질들을 서로 뚫을 수 없는 것은 입자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전기장 때문이다. 즉 내가 손으로 책상을 내리칠 때 손이 책상면을 뚫고 지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내 손의 전자들이 책상의 전자를 통과할 수 있을 만큼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책상의 전자와 내 손의 전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전기적인 척력 때문이다. 이 전기장은 물질이 서로 관통하지 못하게 막아줄 뿐 아니라 물질들을 서로 단단하게 묶어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순간이동장치에서 물질을 각각의 원자 수준으로 해체시켜 비물질화를 하려면 이러한 결합에너지를 끊어줄 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또 원자들을 거의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전송하기 위해서는 다시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원자들을 광속에 가깝게 가속시키려면 그 입자 전체의 질량 에너지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투여해야 한다.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순간이동장치는 ‘상태 전이 코일’이라 불리는 장치를 이용하여, 인간의 몸을 쿼크 단위로 분리, 전송한다. 그러나 쿼크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이론에 의하면, 양성자나 중성자를 이루고 있는 쿼크를 낱개로 분리시키는 데는 무한대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스타트렉의 순간이동장치의 실현가능성은 더욱 희박하기만 하다.

불확정성의 원리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에 담긴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메모리가 필요할까? 인간의 몸은 대략 ${10}^{28}$개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개개의 원자가 놓여져 있는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각각 세 개의 좌표값이 필요하다. 또 전자들이 점유하고 있는 에너지 준위, 원자들 사이의 결합강도, 분자의 진동상태 등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정보를 저장하는데 대략 원자 한 개당 1kB가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한 사람의 정보량은 약 ${10}^{28}$kB에 달한다. 지구상에 있는 책을 모두 모은다고 해도 ${10}^{12}$kB 정도면 정보화시켜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한 사람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하드디스크 중에서 용량이 가장 큰 것이 10GB 정도다. 하드 디스크 한 개의 두께가 10cm정도이므로 한 사람의 몸에 있는 정보를 여러 개의 하드 디스크에 분산 저장하여 차곡차곡 쌓는다면, 그 높이는 은하계 폭의 세배, 즉 1만광년에 달하게 된다.

저장하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그 정보를 전송하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현재 디지털 정보를 전송하는 장치는 고작해야 1초에 1백MB정도가 가능하다. 이 정도 속도라면 한 사람의 정보를 전송하는데 우주 나이의 무려 2천배에 달하는 시간이 걸린다는 계산이다(우주의 나이는 약 1백50억살 정도로 알려져 있다).

또 하나의 난관은 양자역학이라는 미시세계를 다루는 패러다임 속에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아무리 정확한 측정기술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임의의 측정대상에 대해 어떤 특정한 물리량들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원자의 위치와 에너지 분포를 모두 정확하게 재조합해 인간의 형상을 재생시키는 일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모든 관측량에는 피할 수 없는 불확정성이 항상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렉의 작가들도 순간이동장치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양자역학적인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뛰어난 순발력을 발휘해 물체의 양자적 해상도를 높여주는 ‘하이젠베르크 보완장치’라는 기계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장치의 원리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무한한 인간의 가능성

이렇듯 현재의 과학으로 순간이동장치는 불가능하게만 보인다. 그러나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인간의 역사를 함부로 단정짓는다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일 것이다. 3백년이 지난 후, 상황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모른다. 컴퓨터의 발전 속도가 10년에 10배 정도 증가한다고 하니까, 23세기쯤 되면 방대한 양의 정보를 단시간에 처리해야 하는 순간이동장치가 컴퓨터 기술로 실현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타트렉의 매장면들 속에서 우리는 “완벽하게 금지된 일이 아니면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우주시대의 격언을 떠올리게 된다. 수많은 SF영화광들이 스타트렉에 열광하는 것도 날카로운 과학적 예지력과 놀라운 상상력으로 다듬어진, 그래서 때론 당혹스럽기까지한 3백년 후 인류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스티븐 호킹은 ‘스타트렉의 물리학’ 서문에서 “우리의 관심을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묶어두는 것은 인간의 영혼을 묶어두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참 근사한 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스타트렉은 인간의 영혼을 순간이동장치에 묶어둘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순간이동장치로 인간을 이동시킬 수 있다면 인간은 그저 원자들의 집합체에 불과한 존재인가. 그렇다면 어떤 사람의 원자들의 화학적 들뜬 상태를 철저히 분석해 동일한 원자의 집합체를 만들 수 있다면, 그 사람의 기억과 꿈, 희망과 영혼까지도 똑같이 복제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사람이 순간이동을 거친 뒤에도 여전히 같은 사람으로 남아 있게 된다면, 인간이란 결국 원자들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물론적인 시각이 사실로 증명되는 셈이다. 이러한 생각은 육체와 영혼이 별개로 존재한다는 영적인 믿음에 정면으로 상충된다. 결국 순간이동장치는 영혼과 육체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안고 있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의 문제가 인류가 영원히 생각해야할 철학적 명제이듯이, 순간이동장치는 인류가 영원히 풀어야할 과학적 명제일지 모른다.
 

스타트렉의 과학자문위원인 스턴바하(왼쪽)와 오쿠다(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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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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