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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인공장기의 대안 미사일약

필요한 부분만 치료한다

기존의 인공장기가 갖는 한계에 도전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장기를 완전히 들어내지 않고 꼭 필요한 부분만 치료하는 '미사일약'개발이 그 하나다. 몸의 상황에 맞게 '알아서' 기능을 수행하는 지능형 장기도 개발 중이다.

우리 몸의 한 부위에 세균들이 침입했다고 가정하자. 소위 백혈구로 알려진 우리의 아군들이 세균(적군)들을 물리치는 전투상황에 돌입하게 되고, 이 싸움에서 아군이 승리했을 경우 곧 전쟁 전의 평화상태(건강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적군들이 환부(점령지)를 만들면 이를 치료(격퇴)하기 위해 우리는 세균을 죽이는 다른 치료법을 쓸 수밖에 없다.

만일 장기 조직이 암에 걸려 회복될 수 없게 됐다면 일단 떠올릴 수 있는 대책은 그 장기를 들어내고 인공장기를 이식하는 일일 것이다.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한 경우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예를 들어 크루즈 미사일이나 스텔스 전폭기와 같이 암 발생 부위에만 약물을 집중적으로 투여해 다른 건강한 세포나 조직에 손상을 주지 않고 치료할 수 없을까. 만일 약물 말고도 건강한 유전자나 세포를 정확한 ‘폭격 지점’에 떨어뜨리면 손상 부위가 자생력을 회복해 병이 나을 수 없을까.

먹는약이 비효율적인 이유

꿈같은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현재 과학자들은 약물이나 유전자를 달고 목표 지점을 소리없이 찾아가 적군을 정확하게 파괴하는 ‘미사일’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만일 이 일이 실현된다면 지금까지 사용되던 인공장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모든 약물은 방출, 흡수, 분포, 그리고 대사/배설의 4단계를 거치면서 일생을 마감한다. 현재 우리가 생활에서 많이 쓰는 경구제나 주사제는 혈액을 약물의 수송수단으로 삼는다. 따라서 혈액에 의해 희석되는 것을 감안한다면병이 생긴 부위에서 실제 필요로 하는 양보다 훨씬 많은 약물을 투여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경구제의 경우주사제와 비교해 더 많은 양의 약물이 요구된다.

먹는 약의 대부분은 작은창자를 통해 혈액에 흡수된 뒤 간을 거쳐 심장으로 이동, 온몸으로 퍼지는 복잡한 흡수경로를 거친다. 그런데 약물의 대부분은 간에서 대사작용을 일으켜 그 형태가 변한다. 치료부위에 도달하기 전에 효과가 소실된다는 말이다.

이에 비해 주사(피하, 근육, 정맥)의 경우 약물은 간을 통과하지 않고 직접 혈액을 타고 심장을 거쳐 치료 부위에 도달한다. 특히 정맥주사는 약물이 투여되자마자 직접 정맥혈액에 섞여 심장으로 들어가 온몸에 퍼지기 때문에 제일 빠르고 경제적이다.

하지만 주사(특히 정맥주사)는 의료전문인만이 시행할 수 있어 일반인들은 손쉬운 경구복용을 일상화하고 있다. 이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약물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효능을 극대화시켜 일정량의 약물을 필요한 시간만큼 투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약물전달시스템(Drug Delivery System, DDS)이라고 부른다.

DDS에서는 약물이 필요한 기간 동안 서서히 방출되도록 하기 위해 생체에 부작용이 적은 고분자물질을 이용한다. 고분자는 사슬과 같은 구조다. 작은 고리들이 반복적으로 연결돼 긴 사슬을 이루듯이, 고분자(polymer)는 단량체(monomer)들이 반복적으로 결합해 긴 분자사슬을 이루고 이들이 얽혀 그물과 같은 구조로 만들어진 형태다. 만약 약이 이런 고분자막으로 둘러싸여 있거나 고분자 안에 녹아있다면 그물눈을 빠져 나오기 위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원리를 이용해 약물의 방출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피부에 붙이는 약은 먹는 약과 주사약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암세포만 골라서 공격

1970년대 말 미국은 피부를 통해 약물이 일정한 속도로 흡수되는 초기 형태의 DDS 제품을 선보였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멀미약, 협심증 치료제, 여성호르몬제, 금연보조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보다 한발 앞선 것이 크루즈 미사일의 개념과 유사한 ‘목표지향형’ DDS 제품이다. 암이 걸린 부위를 정확히 추적해야 하는 항암요법 분야가 대표적인 연구 대상이다. 항암제란 이상증식되고 있는 암세포를 죽이거나 그 증식을 억제하는 약물이다.

보통 항암효과가 높은 약일수록 암세포는 물론 정상세포도 똑같이 무작위로 공격하기 때문에 효과에 비례해 부작용도 엄청나게 심하게 나타난다. 마치 핵탄두의 위력이 커질수록 전투목표가 아닌 민간인의 살상은 물론, 생태계 파괴의 위력도 증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목표지향적 항암제의 핵심은 이미 쓰고 있는 항암제를 암세포만을 인지하는 항체를 항법장치로 삼고 수송체 역할을 담당하는 특수고분자에 붙여 암세포만을 공격하게 하는 것이다.

또다른 형태로 ‘자극반응형’ DDS가 있다. 몸이 약물을 필요로 할 때만 그 요구를 감지해 약물을 필요한 만큼만 방출하는 지능형 DDS를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공췌장이다.

췌장은 몸의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을 분비하는 기관이다. 췌장에 이상이 생기면 당뇨병에 걸려 몸에 필요한 포도당이 몸 밖으로 소실된다. 당뇨병 치료 초기에는 유전공학으로 개발된 인슐린을 직접 주사하거나 적당량의 인슐린을 혈중에 내보내는 바이오센서를 피부 아래에 장착하는 기술이 이용됐다. 그러나 시시때때로 변하는 혈중 포도당 농도를 제대로 감지해서 인슐린을 투여하기엔 무리였다. 그래서 당뇨병환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시력감퇴나 신장 기능 저하와 같은 합병증에 시달렸다.

이 한계점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바로 DDS 제품이다. 특수한 고분자로 이루어진 주머니 안에 췌장세포를 넣고 이를 몸 안에 집어넣는 방식이다. 주머니 안에서 분비된 인슐린은 주변 농도가 낮으면 막 바깥으로 나와 몸의 혈당을 높여준다. 만일 주변 농도가 높으면 바깥으로 나올 필요가 없다. 상황에 맞게 자가조절하는 지능적인 형태다.

유전자를 옮길 수 있다면

최근 DDS는 기존의 화학 약물뿐 아니라 치료제로 쓰일 수 있는 단백질이나 유전자를 전달하는 목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고분자 주머니 안에 항암 유전자를 넣은 뒤 암 발생 부위에 도달하게 하면, 항암 유전자는 암세포 안으로 침투해 암유전자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은 이론상의 논의일 뿐이다.

DDS는 생각에 따라 무수히 많은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분야다. 많은 연구성과가 축적된다면 현재 활약하고 있는 인공장기의 기능을 크게 보완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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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정서영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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