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현존하는 모든 과학이 총동원된 종합과학의 산물이다. 이 연구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로봇에 대한 어린 시절의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이 첫걸음이다.
"이 다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의 어린이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답이 있다.
“로봇 만드는 과학자요.”
‘우주소년 아톰’과 ‘마징가Z’를 보고 ‘건담V’를 만들며 자란 어린이들에게 로봇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꿈과 희망의 상징이자, 언제나 곁에 함께 있는 친구였다. 그러나 국내에는 그 많은 어린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가르치는 ‘로봇학과’란 어느 대학에도 개설돼 있지 않다. 이는 외국에서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로봇과학자들은 모두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말인가.
대학에 로봇공학과가 없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전기, 전자, 컴퓨터, 기계, 제어계측, 소재 등 모든 공학 요소가 로봇의 각 부분과, 로봇이 필요로 하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분야의 연구성과가 완벽한 조합을 이루지 않은 상태에서 로봇의 탄생은 불가능하다.
50년이 안되는 짧은 역사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의 로봇연구 경향은 몇가지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초기의 로봇은 제한된 환경에서 정해진 위치에 놓인 물체를 프로그래밍된 대로 다루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 당시에는 로봇의 형태를 만들고 작동을 책임지는 기계공학과, 로봇이 최대한 인간과 근접한 지능을 갖추도록 하는 전자공학, 그리고 여기에 로봇의 ‘근육’을 담당하는 재료공학과 전기공학 등이 연구의 흐름을 좌우했다.
그러나 로봇의 개념과 용도가 주변의 변화를 읽어 환경을 이해하는 개인용 로봇으로 발전하면서 이들만의 연구로는 미진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참여한 것이 인간의 감각과 지능을 기계에 부여하는 센서공학과 전산학이다.
‘사람처럼 움직이는 기계’를 위해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안마는 초등학생 정도면 충분히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단순 작업이다. 그러나 로봇에게 이 일을 맡긴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안마로봇에게 몸을 맡겼다가 어깨뼈가 으스러뜨릴지도 모른다.
사람처럼 상하 좌우로 조금씩 몸을 움직이는 부모님을 좇아 적절한 강도로 빠르게 두손을 왕복시키는 일을 해낼 기계를 구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손을 움직이는 단순 기능 조차도 상당한 수준의 연산처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기계적 특성을 구현하는 일보다는 고급 연산처리에 동원되는 컴퓨터, 전산학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들 학문은 로봇에게 다양한 센서를 이용해 정해진 조건과의 차이를 감지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동작 계획을 실시간으로 처리해줌으로써 주위 환경에 즉각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인식’과 ‘판단’ 능력, 즉 지능을 부여해준다.
최근들어 집중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또다른 분야는 통신. 고정 상황에서는 비교적 중요도가 떨어지지만, 여러 대의 로봇이 사람의 도움 없이 주위 환경을 이해하면서 원활하게 공동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로봇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다. 여기에 통신분야는 최근 성과를 내고 있는 다양한 연구결과를 제공하면서 로봇의 질적 성장을 돕고 있다.
물론 지능로봇의 구현에 관심이 쏠렸다고 해서 전통적으로 로봇 연구의 중심을 이루었던 학문의 역할이 감소된 것은 아니다. 정해진 자리에 고정돼 움직이던 로봇에 발을 달아준 것은 이들 학문의 덕이다. 로봇 연구의 최종 목표가 ‘인간처럼 움직이는 기계’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목표의 절반도 이루지 못한 현실에서는 여전히 이들 분야의 연구가 필수적이다.
재료공학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액튜에이터(작동부)를 개선하는 것이 눈 앞에 놓인 임무. 실제 강철로 만들어진 로봇의 힘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못하다. 사람과 비슷한 몸집과 무게를 가진 로봇은 사람이 들어올릴 수 있는 중량의 10분의 1 내지 3분의 1밖에 들지 못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현재의 철 이외에 세라믹이나 플라스틱, 형상기억합금, 사람의 생체조직과 유사한 신소재 등을 찾는 한편, 정밀 설계를 통해 똑같은 소재를 이용하면서도 무게를 줄이는 방법을 찾고 있다.
또한 마이크로로봇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기계와 전기 공학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마이크로로봇은 매우 작은 공간에서 수술 등 정밀한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첨단공학으로, 미세기계, 극소형 센서, 반도체 등의 분야로 나뉘어 연구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손상된 인체를 로봇으로 대치하려는 시도가 거듭되면서 공학 외에도 생물학이나 의학 같은 순수 기초과학은 물론, 인지과학 등이 가세하면서 로봇은 본격적인 ‘통합과학’으로 변하고 있다. 이에 대해 KIST 휴먼로봇센터장 이종원 박사는 “현재 활용되고 있는 로봇이 공학의 영역에 속해 있다면, 미래에 등장할 로봇은 과학의 영역에 속해 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로봇의 기능과 역할을 향상시키기 위한 인간의 상상력은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미래의 로봇은 내 손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진 젊은이라면 무엇보다도 로봇에 대해 끊임 없는 흥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비록 당장은 로봇에 관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다 해도 인간의 어떤 점을 로봇이 흉내내도록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는것도 훌륭한 연구 테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휴먼로봇 프로젝트
KIST에서 지난 94년 말부터 오는 2004년까지 진행되는 로봇 연구 계획의 이름이다. 인간과 유사한 5감과 지능을 가진 자율형 휴먼로봇을 개발하기 위한 이 연구에는 기계, 컴퓨터, 제어, 전자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국내 핵심 로봇 과학자 10여명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오는 99년에 끝나는 이 계획의 1단계 목표는 인간이 하기에 위험하거나 불가능한 일을 대체할 수 있는 원격조정 로봇 시스템 '센토'를 개발해내는 것이다. 센토란 말(馬)의 몸뚱이에 사람의 상체가 붙은 형상을 한 그리스 신화의 괴물이름. 신화에서의 모습처럼 휴먼로봇은 손을 장착한 2대의 팔과 4각 보행기능을 갖출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행해진 대부분의 연구가 생산용 로봇에 몰려 있던 것을 생산 활동 이외의 분야에 눈을 돌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