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중미 코스타리카에서 5년간 개미 생태를 연구했다. 1990년 하버드대에서 동물행동학 분야의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4년부터 서울대학교 생물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개미, 흰개미, 거미, 박쥐 등 생물 사회의 기원과 성(sex)의 생태, 그리고 동물의 인지능력과 인간 두뇌의 진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아군의 목이 또 하나 잘려 땅바닥에 나뒹군다. 종일토록 벌인 긴 전투에 병력 손실이 적지 않다. 아군 하나마다 두세명의 적이 덤벼들고 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적을 당할 길이 없다. 지원군을 불러들이기 위해 발빠른 병사 몇몇이 후방으로 향한다.
삼국지를 방불케 하는 이 장면은 실제로 개미 사회에서 벌어지는 전투 모습이다. 인간의 전쟁에서 처럼 ‘돌격’ 또는 ‘작전상 후퇴’를 외치며 진두지휘하는 사령관 개미가 있는 지는 아직 모르나, 최소한 적의 병력을 파악하여 증원이 필요할 때는 신속히 집으로 돌아가 이를 알리는 이른바 ‘연락병 개미’가 있다는 사실은 관찰되었다. 미국 애리조나의 사막지대에 사는 꿀단지 개미들의 전쟁을 십수년에 걸쳐 연구해온 필자의 스승 횔도블러 박사에 의해 발견된 현상이다.
대량학살 불사
우리와 같이 수의 개념을 가진 것도 아닌 작은 개미들이 과연 어떻게 적의 병력을 가늠할 수 있을까. 높은 산꼭대기에서, 또는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 보며 적군의 수를 셀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아마도 적의 병력과 아군의 병력을 비교하는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할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까지 연구에 따르면 줄잡아 세가지 방법이 있으리라 본다.
첫째 적군과 아군이 한데 어우러져 싸우는 전장에서 누구와 더 자주 부딪히는가로 가늠하는 방법이다. 동료를 더 자주 대하면 모르겠지만 적과 더 자주 맞부닥치게 된다면 후퇴할 채비를 차려야 할 것이다. 둘째로 몸집이 다른 일개미 계급을 가지고 있는 종들 간에 전투가 벌어질 경우 대형일개미(major)의 빈도로 적의 병력을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대형일개미는 군락의 규모가 어느 수준 이상이 되지 않고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소형일개미들(minor) 외에도 상당 수의 큰 일개미들을 전장에 내보낼 수 있다는 것은 그 군락이 상당한 규모에 이름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전장에는 출두했으나 실제로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는 병력을 측정하는 것이다. 횔도블러 박사에 따르면 꿀단지 개미는 위의 세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한다고 한다.
동물 중에는 피를 흘리며 물고 뜯는 무서운 맹수들이 있지만 상대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경우란 흔치 않다. 인간처럼 대량학살도 불사하는 동물은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동물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유혈전쟁에 대량학살까지 마다하지 않는 것이 바로 벌과 개미를 비롯한 사회성 곤충들이다.
그렇다고 개미들 간의 전쟁이 모두 피비린내 나는 유혈전만은 아니다. 전통적인 의식을 통해 서로의 힘을 가늠하여 피를 그다지 많이 흘리지 않고 비교적 평화적으로 전투를 끝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꿀단지 개미가 그 좋은 예다. 뉴기니 섬에서 수렵생활을 하는 매링족의 싸움이 이와 흡사하다. 전통적인 차림을 하고 영토의 변방에 일렬횡대로 길게 늘어서서 춤도 추고 큰 소리로 고함도 지르며 서로의 위용을 과시하는 의식이 고작이다. 그래도 끝이 나지 않으면 그제서야 활을 꺼내 쏘기 시작하는데, 어느 편이건 한 사람이라도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하면 전쟁이 끝난다. 전면전은 좀처럼 벌이지 않는다.
꿀단지 개미들이 좀처럼 유혈전쟁을 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의 싸움이 대부분 경제 전략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사막지대에 사는 그들에게 좋은 먹이는 여기저기에서 불규칙적으로 나타난다. 일단 장시간에 걸쳐 수확해 들여야 할 먹이를 발견하면 이웃 군락이 그 먹이를 발견하기 전에 모두 집으로 운반해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필히 먹이를 둘러싸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게 뻔한 일이다. 그래서 꿀단지 개미들은 이웃 군락과의 접경지역에 군대를 파견하여 그 군락으로 하여금 힘겨루기 토너먼트에 여념이 없게 만들고 그 틈에 먹이를 죄다 집으로 수확해 들이는 것이다.
뛰는 개미 위에 나는 개미
이렇듯 기가 막힌 전략을 사용하는 꿀단지 개미에게도 만만찮은 적수가 있다. 꿀단지 개미의 이웃에 사는 코노머마(Conomyrma bicolor) 개미가 좋은 먹이를 먼저 발견하게 되면 그들은 즉시 군대를 풀어 꿀단지 개미의 굴을 포위한다. 그리곤 주변에 있는 작은 돌들을 물어 굴 속으로 계속 떨어뜨린다. 갑자기 산사태를 만난 꿀단지 개미들은 끊임없이 굴러드는 돌들을 치우기에 여념이 없고 그 동안 다른 코노머마 일개미들은 먹이를 죄다 수확해 들인다. 실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격이다.
다분히 경제적인 이유로 전쟁을 하는 개미들은 이념이나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극렬한 전쟁을 벌이는 우리 인간과는 무척 다르다. 인간이 전쟁을 벌이는 한가지 원인이 경제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런 전쟁은 믿음이 다른 종족 간의 전쟁에 비하면 그 잔인한 정도가 다르다. 히틀러의 나치스가 일으켰던 세계대전,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보스니아나 르완다의 전쟁에서 보듯이 인간은 때로 상대 종족의 씨를 말살하기 위하여 엄청난 규모의 대량 학살도 서슴지 않는다. 인간의 특성 중 아직 동물세계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이 바로 종교인데,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르겠다.
개미들이 전쟁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노예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꿀단지 개미의 경우 상대 군락이 엄청나게 약세임을 파악하면 급기야는 상대의 굴 속까지 밀고 들어가 여왕개미를 죽인 후 어린 일개미들과 유충들을 납치해다 노예로 삼는다. 이렇듯 같은 종 내에서 노예를 만드는 예는 사실상 드물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다른 종의 유충들을 납치해와 노예로 삼는다. 인간 사회에 비유하면 전자의 경우는 노예제도라 할 것이나 후자는 사실 인간이 소나 말을 가축으로 삼은 것과 흡사하다.
노예잡이 개미로 가장 잘 알려진 아마존 개미(Polyergus)가 노예를 포획하러 다른 개미의 굴로 돌진하는 장면은 실로 장관이다. 약탈할 군락을 정하고 나면 우선 정탐개미 몇 마리가 정찰을 마치고 돌아오며 만들어 놓은 냄새길을 따라 좌우 살핌도 없이 전속력으로 적의 굴 속을 향해 돌진한다. 여러 줄로 어깨를 나란히 한 일개미들이 매초 3cm의 속도로 달려간다. 개미 크기를 사람의 몸집으로 환산해 추정하면 병사들이 줄을 지어 한시간에 26km 정도를 달리는 셈이다.
종에 따라 다르지만 아마존 개미는 앞장을 선 정탐개미들을 뒤따르거나 그들이 그려 놓은 냄새길을 따라 쳐들어 간다. 눈 앞에 나타나는 적군을 가차없이 물어 죽이며 적진 깊숙히 파고들어 번데기들을 물고 돌아온다. 이렇게 남의 군락으로 옮겨진 유충들은 새 여왕이 분비하는 화학물질(queen substance)에 세뇌를 받으며 성장하여 같은 종도 아닌 남의 군락을 위해 평생 죽도록 일만 한다. 일단 노예를 확보한 노예잡이 군락의 일개미들은 이를테면 채찍을 들고 노예만 부릴 뿐 별로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린다. 실험적으로 노예들을 모두 제거하면 마지 못한 듯 군락의 모든 일을 하다가도 다시 노예들을 넣어주면 금새 일손을 놓고 노예들을 부리기 시작한다.
혼란 일으켜 ‘슬쩍’ 하기도
노예잡이 개미들 중에는 아마존 개미처럼 닥치는대로 적군을 학살하며 무력으로 노예를 약탈해오는 종들이 대부분이지만 피를 흘리지 않고도 쉽게 노예를 확보하는 종도 있다. 포르미카 서브인테그라(Formica subintegra) 일개미들은 배의 반 이상이 두포어샘(Dufour’s gland)이라는 분비샘으로 가득 차 있는데, 남의 군락을 습격할 때 이 분비샘으로부터 이른바 ‘불온 선전’ 화학물질을 내뿜어 대혼란을 일으키곤 그 틈에 노예로 만들 번데기들을 납치한다.
개미들의 전쟁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다. 필자의 연구진도 지난 봄 벚꽃이 한창일 때 바로 실험실 건물 옆 벚나무 아래에서 장장 며칠에 걸쳐 벌어진 일본왕개미(Camponotus japonicus)의 전쟁을 관찰했다.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는 확실치 않았으나 그들에게도 역시 전투에 투입된 병사의 수가 중요한 것 같았다. 한 일개미가 적을 일대일로 마주하고 춤을 추듯 견제하다 기회를 보아 적의 안테나나 다리를 물어 행동을 부자유스럽게 만들고 다른 일개미들은 좌우에서 적의 목이나 허리를 물어 끊는 전략을 쓰는 것 같았다. 지난 봄에는 너무 준비없이 덤벼 들었으나 다음에는 필자의 연구실원들과 함께 좀더 훌륭한 종군기자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