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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을 수 없는 고통의 메커니즘 : 몸 이상 알리는 적신호 위험 경고하는 통각신경

조물주의 선택은 과연 옳았는가

우리 몸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피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외부 병원체로부터 몸의 조직을 보호하는 일이다. 피부가 손상될 때 느껴지는 아픔은 이 보호 기능을 돕기 위한 것이다. 피부의 통증은 '면역적 방어 메커니즘' 으로 설명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천적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기형아들이 외부의 해로운 자극을 제대로 피하지 못해 온 몸에 치명적인 상처가 나는 것을 보면 통증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

시각이나 청각은 빛이나 소리 같은 자극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통각은 그렇지 않다. 어떤 자극이라도 강도가 강해져서 신체에 유해할 정도가 되면 아프게 느껴진다. 밝은 불빛이나 큰 소리가 아프게 느껴져 눈이나 귀를 막는 것은 일상 생활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다. 또 누르는 자극이나 냉.온각 자극도 정도가 심하면 차갑거나 뜨겁다 못해 통증을 느끼게 한다. 이는 대부분의 감각들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선별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적(informative)성격을 갖는 반면, 통각적 선별력 없이 그저 방어적(defensive)성격만을 띤다는것을 의미한다.

공룡덩치가 클수록 상처가 많다

아픔을 전달하는 것은 가느다란 감각신경(수초가 없는 무수신경이나 가는 유수신경)이 담당한다. 지름이 좁은 관일수록 물질이동에 대한 저항이 높아진다. 신경에서도 가는 신경이 굵은 신경에 비해 이온들의 이동이 활발하지 못해 감각정보의 전달 속도가 느리다. 그 결과 굵은 신경에 의해 전도되는 촉각이나 압각(초속 80m로 전달하는 굵은 유수신경)보다 가는 신경에 의한 통각(초속 0.5-3m의 무수신경 또는 초속 4-30m의 가는 유수신경)이 뇌나 척수에 늦게 도달한다.

방어 기능을 담당하는 통각의 전도 속도가 다른 감각들보다 늦다는 것은 '생체보존의 기본법칙' 에 어긋난다. 예를 들어 못에 찔렸을 때 아프다는 정보가 뇌나 척수에 늦게 전달되면 자극으로부터 늦게 피하게 돼 손상이 커지지 때문이다. 이 내용대로라면 조물주가 생물체를 만들 때 통각의 전달부분을 잘못 만들지 않았나 의심하게 된다.

통각은 척추동물에게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억년 전의 공룡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척추를 가진 동물은 모두 통각을 느낄 수 있으며, 그 도움으로 외부의 위험에 대항해 왔다. 그러나 덩치가 큰 동물일수록 통각을 전달하는 감각신경의 전도속도가 늦기 때문에 유해한 자극에 대항하기에 여러가지 불리한 점이 있다. 공룡도 이런 불리한 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몸 길이가 30m이상 돼 '정글의 기린' 이라 불리는 브라키오사우루스의 경우, 통각을 전달하는 신경의 전도속도가 초속 0.5-30m 이므로 꼬리 끝의 통증이 뇌까지 전달 되는데 1-60초 이상, 그리고 척수반사를 관장하는 척수까지 0.5-30초 이상 걸릴 것이다. 유해한 자극으로부터 벗어나기에 너무 긴 시간이다. 확인할수는 없지만 브라키오사우르스의 몸에는 상처가 많았을 것이다. 몸길이가 2m이내인 인간도 전달 속도가 늦으면 불리하기는 마찬가지다. 눈 앞으로 날아 오는 공을 피하는 것은 시각의 의한 정보가 몸을 피하도록 만들지만, 발밑의 압정과 같이 미처 보지 못한 유해한 자극은 피부에 있는 신경을 통해 아픔을 감지한 후에야 피할 수 있으므로 아픔이 조금만 늦게 느껴져도 상처는 깊어질 것이다.
 

(그림)문조절이론^척수 교양질에서 굵은 신경섬유는 기능적 문A를 닫아 통각을 못느끼게 하고(+),가는 신경섬유는 이를 열어 통각을 느끼게 한다(-).(A:척수교양질 내 기능적 문 B:척수 내 통각정보 전달신경)

'고통의 문' 을 여닫는다

그렇다면 통각의 전도속도는 왜 느리게 만들어 졌을까. 생물체의 모든 구조는 그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며, 그 기능도 그의 걸맞게 적응돼 있다. 통각을 전달하는 신경 가늘기 때문에 유리한 점은 무엇일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것이 있냐?" 는 말이 있다. 피부에 통각을 느끼는 신경이 촘촘하게 분포돼 어느 곳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야 방어기능을 충분히 갖췄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신경이 굵어 전도속도가 빠르고 신경 수가 많아 분포도 촘촘하려면, 연필 굵기만한 우리 다리의 신경은 팔뚝 굵기 만큼 굵어지고(지금의 비율대로라면) 다리는 코끼리 다리만큼 커진다. 그러면 피부는 넓어져 필요한 신경의 수는 더 늘어나게 된다. 곰곰히 생각하면 악순환의 연속이다. 조물주도 이 부분에서 여러분과 똑같은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선택은 두가지 중 하나다. 가는 신경으로 촘촘하게 할 것이냐, 아니면 굵은 신경으로 듬성듬성 할 것이냐. 여러분이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조물주는 전자를 택했다. 가는 관이 굵은 관보다 저항이 높다는 물리법칙을 알고서도 촘촘한 쪽을 택한 것이다.

아프다는 것은 임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정보다. 환자들이 의사를 찾는 주요 원인은 아프기 때문이며, 의사는 이를 분석해 병을 진단한다. '아픔'은 일어나는 부위에 따라 크게 체성통각과 내장통각으로 나뉘어진다. 체성통각은 외부 자극을 받기 쉬운 신체표면의 피부나 피부밑에 있는 피하조직, 근육막, 관절 등에서 나타나는 통각을 일컫는다. 이에 비해 내장 통각은 뇌나 뇌막에 분포하는 혈관에서 일어나는 통각(뇌나 뇌막 자체에는 통각신경이 없다), 위장, 소장, 자궁이 수축할 때에 일어나는 통각, 화학자극에 의한 심장의 통각 등을 말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아픔의 메커니즘에 대한 정설은 없다. 1965년 멜작과 월은 통각이 뇌에 전달되는 과정을 설명하고자 문조절이론(gate control theory)을 발표했다(그림). 이 이론은 말초감각신경 중 촉각이나 압각을 전달하는 굵은 신경섬유가 가느다란 신경섬유에 의해 전달되는 통증을 억제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즉 굵은 신경섬유는 척수 교양질 내에 있는 문을 닫아 통각정보를 차단하며, 가는 신경섬유는 거꾸로 문을 열어 통각정보가 뇌에 도달하도록 한다. 결국 통증의 크기는 문을 여닫는 가느다란 신경섬유와 굵은 신경섬유 활동의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통각 신경.굵은 것과 가는 것 두 종류가 있다.
 

아플 때 열나는 이유

이후 많은 연구자들은 이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 굵은 신경섬유를 자극함으로써 통증을 줄이는 방법을 개발해 상당한 효과를 봤다. 그러나 최근 가는 신경섬유도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상반된 연구결과가 보고돼 앞으로 많은 연구 과제를 남기고 있다.

몸의 어디든 통증을 느낀다는 것은 체내 조직이 손상됐음을 의미한다. 이때 통각신경을 흥분시키는 물질이 방출된다. 그래서 가만히 있어도 욱신욱신 아프거나, 평소에는 아픔을 일으키지 않는 자극에도 아프게 느껴지는 통각과민을 일으키기도 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통각물질로는 세로토닌, 브래디키닌, 아세틸콜린, 히스타민, 칼륨이온, 수소이온, 프로스타글란딘 등 여러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 물질들이 어떻게 통각신경을 흥분시키는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 물질들의 대부분은 통각을 일으키는 동시에 이 혈관을 이완시키는 작용을 갖기 때문에 염증이 생기며 부위가 빨갛고, 붓고, 열나고, 아프게 된다. 통증을 치료할 때 항생제와 함께 소염제를 사용하는 이유는 바로 이때문이다.
 

소리도 통증을 일으킬 수 있다.
 

통각과민과 통각감소

자극이 일정한 강도(문턱값)을 넘어서면 통각이 일어난다. 만일 신경의 문턱값이 낮아지면 통각이 정상보다 쉽게 발생하는데, 이런 상태를 의학적으로 통각과민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화상을 입었을 때 건드리는 자극만으로도 아픔을 느끼는 이유는 상처 부위 신경의 문턱값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통각과민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은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말초신경이 손상되거나 중추신경에 이상이 생기는 신경성 질환으로도 통각과민이 생길 수 있다. 이는 대부분 중추신경계(뇌와 척수)의 변화에 의하므로 화상과 같은 말초적인 상황보다 매우 복잡한 양상을 나타낸다.

어떤경우에는 통각신경의 문턱값이 높아져 심하면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통각감소 또는 무통각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운동을 많이 했을 때는 몸이 피로해도 통증을 느끼기보다 기분이 좋은 경우다. 이는 운동할 때 엔돌핀과 같이 통증을 완화시키는 호르몬에 분비되기 때문이다. .또 주의를 다른 것에 집중시키고 있을 때나 전쟁터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통증을 못느낀다. 예컨대 전쟁 중 다리를 잃은 병사는 병원에 후송되서야 다리가 아프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는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정신적 긴장감이 잘린 다리의 통증을 억누른 경우다. 이를 통해 통증에는 말초적인 메커니즘과 함께 중추적인 메커니즘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얼음 때문에 물의 온도가 떨어지면(B)통증이 느껴지기도 한다(A,통증을 지속적으로 전기적으로 측정한 값).그러나 사람마다,그리고 때에 따라 문턱값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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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나흥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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