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상/펄·라이네스 자연을 설명하는 '가벼운 디자인'
금년도 노벨 물리학상은 스탠퍼드 대학의 펄(Martin Pearl) 교수와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의 라이네스(Frederick Reines)가 함께 수상했다. 경입자(lepton) 물리와 우주 생성을 이해하는 데 이바지한 공로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리는 경입자 물리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 우주에는 돌 물 꽃 등 다양한 형태의 물질들이 있다 이들은 기본 입자인 쿼크(quark)와 경입자, 그리고 이들을 서로 묶어주는 게이지 입자(guage particle)로 뭉쳐져 있다. 이런 입자들이 원자핵과 원자를 이룬다는 것은 요즘 물리학의 정설이다.
원래 희랍어로 '가볍다'는 것을 뜻하는 렙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바로 전자다. 전자는 질량이 9.11×${10}^{-31}$kg(E=m${C}^{2}$에 의해 0.5MeV로서, 이는 전자를 가속시킬 때 얻는 운동에너지임), 전기량이 1.6×${10}^{-19}$쿨롱인 경입자로서 원자핵 주위를 맴돌면서 원자를 구성하는 요소다.
지구 상에 있는 모든 물질은 u(up)와 d(down), 두 종류 쿼크들의 복합으로 이뤄진 양성자와 중성자가 원자핵을 이루고 있다. 그 주위를 맴도는 전자를 포함해 원자가 되고, 이들 원자들이 모여서 분자가 된다. 쿼크처럼 원자핵을 구성하지 않고, 힘을 전달하는 게이지 입자도 아닌 것을 통틀어 '경입자'라고 한다.
중성자가 붕괴해 양성자와 전자로 변하는 과정은 1920년대에 발견됐다. 중성자의 질량은 939.573MeV다. 중성자가 붕괴해 양성자와 전자만이 나온다고 하면(939.573-938.280)MeV=1.293MeV의 여유에너지가 생긴다. 전자의 질량 0.51MeV를 빼면 0.783MeV가 전자의 운동에너지로 변해야 에너지 보존법칙에 맞아 떨어진다. 그런데 실험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경입자 물리의 개가
방출되는 전자의 에너지는 0에서부터 0.78MeV 사이의 모든 값을 가지는 것으로 관측됐다.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보어(N.Bohr)는 "원자핵과 같은 미시세계에서는 에너지 보존법칙이 성립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극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32년 천재이자 고집장이인 파울리(W. Pauli)가 여태껏 보지 못한 '중성미자'를 예언했다. 중성미자는 질량이 없고 전기량도 지니지 않아서 거의 없는 것과 같은 '겨우 존재하는' 경입자다.
중성미자가 예언된지 25년의 세월이 흘러, 이번에 노벨상을 탄 라이네스와 그의 동료인 코헨(C. Cohen)이 실험적으로 그 존재를 확인했다. 정리를 해보면 1960년대까지 확인된 쿼크는 u와 d, 경입자는 ve(전자와 더불어 존재하는 중성미자)와 전자(${e}^{-}$)였다. 두개의 쿼크와 두개의 경입자가 쌍을 이루고 있는 디자인을 자연이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의 발견된 ${μ}^{-}$라는 무거운 전자(전자 질량의 2백배 정도)는 짝을 찾지 못해 홀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1963년에 슈바르츠, 레더만(1990년 서울대 방문)과 스타인버거에 의해 s(strange) 쿼크의 짝인 c(charm)쿼크가 발견됐다. 자연은 (u d)(ve ${e}^{-}$)인 1세대와 (c s)(vμ ${μ}^{-}$)로 불어났다.
1970년대 펄교수는 전자보다 1천4백배가 무거운 타우(τ)경입자를 발견했다. 금년에 페르미 연구소에서 b(bottom)쿼크의 짝인 t(top)쿼크를 발견함으로써 물질의 세계는 (u d)(c s)(b t)인 쿼크와 (ve ${e}^{-}$)(vμ ${μ}^{-}$)(vτ ${τ}^{-}$)인 경입자로 된 3세대 모양의 디자인이 완성됐다. 이 중에서 vτ와 ${τ}^{-}$를 발견한 공로로, 95 노벨물리학상은 라이네스와 펄교수에게 돌아갔다.
왜 3세대 소립자가 있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른다. 지구 상엔 1세대인 ud, 그리고 전자만이 뚜렷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태양은 핵융합반응을 일으키면서 많은 중성미자를 방출하고 있다. 이 지구상의 모든 것에 1초에 1㎠당 1백억개의 중성미자가 지나가고 있다.
우주가 생성될 때 몇 세대의 경입자가 있었는가는 우주에 있는 수소와 헬륨의 비율을 좌우하고 우주의 팽창 속도에 큰 영향을 준다.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겠지만 중성미자는 빛(photon)과 더불어 이 우주를 이룩하는 일등 공산이었다. 이렇게 보면 금년의 노벨상 역시 탈만한 사람이 탔다고 혼자 중얼거려 본다.
화학상/크루첸·몰리나·로랜드 오존구멍의 예언자들
올해 노벨화학상은 독일 마인츠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크루첸(Crutzen)교수,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 지구 대기 및 행성과학과와 화학과 교수를 겸하고 있는 몰리나(Molina)박사,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화학과의 로랜드(Rowland)교수가 공동 수상했다.
크루첸교수는 1933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973년 스톡홀름대학에서 기상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몰리나교수는 1943년 멕시코에서 태어나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분교에서 물리화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로랜드교수는 1927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1952년 시카고대학에서 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들의 연구대상인 성층권 내의 오존층은 남극의 오존구멍으로 널리 알려졌다. 상품명 '프레온'으로 더 유명한 CFC 사용에 의한 남극의 오존구멍 형성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자외선으로부터 지구의 생물들을 보호해 주는 차폐벽 역할을 하는 오존층은 지구 생명계의 아킬레스건이라 불릴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오존의 양은 매우 적어 1기압의 지구 표면에서 전부 모았을 때 평균 약3mm 두께 밖에 안된다.
오존층의 존재는 19세기 후반에 예언됐다. 지상에서 관측된 태양빛의 스펙트럼에서 파장 3백mm 이하의 자외선이 없다는 사실과 오존이라는 화합물이 자외선을 강하게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는 연구 결과에서 추론된 과학적 예언이었다. 2차세계대전 후 로켓으로 30km 이상의 상공에 관측기를 보낼 수 있게 됐을 때, 그 곳의 태양광에슨 자외선이 있음이 확인됨으로써 자외선을 흡수하는 오존층이 30km 이하 성층권에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됐다.
1930년 영국의 대기화학자 채프맨교수는 성층권에서 오존층의 형성 과정을 이론으로 정립했다. 이론에 따르면 우선 산소 분자가 두 개의 산소 원자로 분해된다. 이때 만들어진 산소 원자 하나가 산소 분자와 결합해 산소 원자 세 개를 갖는 오존분자가 만들어진다.
첫단계는 강한 에너지를 가진 자외선 영역의 태양광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도가 높을수록 유리하다. 두번째 단계는 산소 원자가 가진 과량의 에너지를 낮추기 위한 제3의 완충제(공기 중 질소 산소 등, 반응식에서 M으로 표시)가 필요해 첫단계와는 반대로 고도가 낮을수록 유리하다. 따라서 지구 위 15-50km 사이의 상공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 그 곳에 오존층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후의 관측에서는 실제 오존의 농도가 채프맨 이론의 예측치보다 상당히 적게 나타났다. 오존을 분해하는 다른 반응이 있다는 반증이었다.
지구 환경 중요성 인식 계기
1970년 크루첸교수는 성층권에서 질소산화물(NOx)이 오존과 촉매반응해 오존의 농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자동차 배기가스에 포함돼 있는 질소산화물은 반응성이 강해 성층권에 도달되기 전에 이미 다 소멸돼 버리고, 실제 성층권에 존재하는 질소산화물은 토양 내에서 미생물들에 의해 만들어진 일산화질소(${N}_{2}$O. 흔히 웃음가스로 불림)라는 것이다. 크루첸교수의 연구는 지구 현상을 이해하는데 생명현상과의 연결이 필수적임을 보였다. 그는 생기구화학이라는 새로운 연구분야를 활성화시키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했다.
오존층이 파괴될 위기는 이미 1970년대초에 있었다. 바로 상업적 목적의 초음속 여객기 개발이 활발히 추진되던 때다. 이 때 초음속 여객기가 성층권을 왕복하는 과정에서 질소산화물을 다량으로 배출하면 오존층이 심각하게 파괴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제시됐다. 크루첸교수의 연구를 필두로 하는 일련의 연구결과들이 나온 성과였다. 결국 미국 등 여러 나라가 이 계획을 포기했고 콩코드 등 일부만 개발이 추진됐다.
CFC는 인간이 만든 가장 안정한 무공해 화합물로 믿어졌고, 냉매 분사제 발포제 등으로 대량 사용됐다. 이렇게 사용된 CFC가 서서히 성층권으로 올라가면 강한 자외선에 의해 분해될 수 있으며, 이때 만들어진 염소 원자들은 질소산화물과 유사한 방법으로 오존을 파괴할 수 있다고 몰리나 로랜드교수팀이 1974년에 제시했다. 그 결과로 CFC 사용을 전 지구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극적으로 개진됐다.
1985년 남극에서 오존구멍이 발견됐고, 드디어 1987년 UN의 지원하에 몬트리얼 의정서가 만들어졌다. 개발국에서는 1996년까지 가장 유해한 CFC들의 사용을 전면적으로 중지해야 한다. 당시 규제를 원치 않던 여러 정부들이나 기업들과 끊임없는 논쟁과 설득 과정에서 세사람의 연구가 결정적인 이론적 근거로 제시됐다.
세 사람은 오존층의 연구 이외도 지구환경의 또 다른 문제인 지구온난화 과정에서의 구름의 역할, 메탄의 지화학적 과정 등의 연구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크루첸 교수는 '핵겨울'이란 말로 흔히 표현됐던 핵 전쟁의 비극적 종말을 이론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경고한 업적으로 여러 상을 수상했으며, 로랜드 교수는 생태 및 에너지 분야의 권위있는 타일러 세계상, 레이철 카슨상, 일본환경과학 및 기술상을 받았다.
이번 지구환경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지구환경과학이 기초과학으로 인식되고 이 분야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의학·생리학상/루이스·뉘슬라인-볼하트·비시하우스 배 발생의 유전 메커니즘 규명
올해의 노벨의학·생리학상은 에드워드 루이스(미국 프린스턴대), 크치아니 뉘슬라인-볼하트(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에릭 비시하우스(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등 3인에게 공동으로 수여됐다. 이들의 업적은 '초기 배아 발생의 유전학적 조절 메커니즘'에 관한 발견이었다. 발달생물학 분야에 노벨상이 주어진 것은 1935년 한스 스페만에 이어 두번째인 셈이다.
배(胚) 발생 연구에 사용되던 기존의 주요 방법은 배아 조직을 분리해 재조합하거나 배아세포 중 특정 세포를 제거하는 등 주로 세포학적 조직학적 방법이었다. 이번 수상자들의 획기적인 공로는 유전학의 개념과 기법을 이용, 배아 발생을 조절하는 유전자들을 정의하고 분석함으로써 이들을 분자생물학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이다.
1970년대 말 뉘슬라인-볼하트와 비시하우스는 하이델베르크의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초파리 초기발생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들의 의문점은 초파리 수정란이 줄무늬 마디를 갖는 유충으로 발달하는 유전학적 메커니즘이었다.
이들은 먼저 수정란에 무작위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중심축이나 마디에 이상이 발생한 유충을 선별했다. 하나의 유충을 둘이 함께 볼 수 있는 현미경으로 1년 넘게 관찰했다. 그 결과 이들은 돌연변이가 발생할 때 유충 마디에 이상이 생기는 15개의 유전자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유전자는 돌연변이 표현형에 따라 3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간격(gap) 유전자들은 머리-꼬리 축을 따라 몸의 형태를 조절한다. 둘째 짝짓기법칙(pair-rule) 유전자들은 2마디를 한 짝으로 볼 때 각 짝의 형성에 영향을 준다. 한 예로 어떤 돌연변이(evenskipped) 유충은 홀수번째 마디만 남아있다. 세째 마디방향결정(segment polarity) 유전자들은 각 마디의 앞뒤 방향성을 결정한다. 이들의 결실은 1980년 가을 '네이처'에 보고돼 생물학 전반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초파리 돌연변이, 인간발생 이해에 큰 몫
루이스는 40대 초반부터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돌연변이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날개가 4개 달린 돌연변이가 유충 마디의 중복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유전학적 분석을 시도했다.
루이스가 발견한 것은 거대한 비상동 돌연변이(모양은 정상이나 그 위치가 잘못된 것) 유전자 가족이었다. 개체가 정상일 때 이 유전자들은 머리-꼬리 축을 기준으로 기관들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한다.
이 유전자들은 게놈에서 차례대로 줄지어 서로 가까이 존재한다. 여기서 앞쪽 유전자는 머리쪽을, 그리고 뒤쪽으로 갈수록 꼬리쪽의 형태 형성에 관여한다. 즉 유전자 위치와 몸의 발현부위가 서로 대응하는 것. 이 발견으로 '평행대응이론'(colinearity theory)이 성립됐다.
루이스는 20여년 간 관찰한 내용을 1978년에 보고했다. 이 선구적 업적은 많은 동물에 동일하게 적용됐다. 한 예로 초파리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한 기능을 갖는 유전자(HOX)가 포유류에서 발견됐다. 이 유전자는 4개의 유전자 묶음으로 구성되며 그 차례와 순서가 초파리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기능 역시 돌연변이 초파리를 거의 회복시킬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하다.
수상자들이 연구한 유전자는 인간 태아의 초기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유전자는 몸의 중심축 형성을 비롯, 형태형성의 방향과 위치를 결정해 개체가 정상적으로 발생하게 한다. 따라서 이 유전자들의 돌연변이는 자연유산의 중요한 원인(약40%)으로 추측된다.
가령 비타민 A를 과다복용하면 특정 유전자(HOX)의 정상적 발현이 어려워 임신초기에 심각한 선천성 기형을 유발한다. 또한 왈덴버그씨병은 초파리의 짝맞춤유전자와 상동인 인간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병에 걸리면 실명 안면근육이상 홍채색소이상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심한 경우 안구가 없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과학자들의 개인적 관심으로 출발한 연구가 선천성 기형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까지 발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연구는 선천성 기형의 형성과 그 예방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과학적 탐구는 바로 현실을 떠나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일련의 과정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