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많고 협동심 강한 영리한 동물 침팬지는 직계자손을 늘리려고 다른 새끼를 죽이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보통 원숭이나 고릴라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사실은 침팬지다. 침팬지 유전자의 99% 정도가 인간 유전자와 동일하다. 어떤 사람은 원숭이와 침팬지가 같은 종이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와 원숭이는 엄연히 다르다.
미국 버클리대 인류학자가 영장류의 유전학적 거리를 계산한 결과, 침팬지가 사람과 갈라진 것은 불과 4백만-6백만년 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침팬지는 사람과 꽤 유사한 행동양식을 보인다.
침팬지는 보통 50마리 이상이 집단을 이뤄 10-30㎢의 영역을 점유하며 산다. 주 서식지는 아프리카 열대우림 지역. 이들은 과일을 몹시 좋아해서 먹는 시간의 4분의 3 이상을 과일을 먹으며 소비한다. 과일 중에서도 특히 단백질이 풍부한 무화과를 좋아한다.
과일을 즐겨 먹는 미식가
과일 외에도 침팬지가 먹는 음식은 무척 다양하다. 고릴라가 24가지 정도의 나뭇잎과 열매를 먹는데 비해 침팬지는 2백가지 이상을 먹는다고 한다. 다양한 종류의 식물 곤충 등과 함께 심지어 원숭이를 비롯한 포유류도 침팬지가 즐겨 먹는 사냥감이다. 원숭이는 침팬지처럼 과일을 좋아하므로 침팬지가 원숭이를 사냥하는 것은 '먹이 경쟁자'를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보통 침팬지가 사는 영역에는 1백여종 이상의 나무가 있다. 이 중 단지 10여종만이 먹을 수 있는 과일을 맺는다. 그러나 열대성 수목이 과일을 맺는 시기를 예측하기는 무척 어렵다. 게다가 이 과일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익는다고 한다. 따라서 침팬지는 과일이 열린 나무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원숭이는 침팬지에 비해 작기 때문에 나무 꼭대기에서 더 능숙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원숭이는 침팬지와 식량을 두고 경쟁하는 라이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침팬지는 원숭이에 비해 지능이 뛰어나다. 즉 과일이 열리는 나무를 보다 많이 찾아낼 줄 알며 숲에서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다. 또한 침팬지는 숲에서 아주 효과적으로 움직인다. 그들은 원숭이처럼 나무 가지를 타고 이동하기 보다는 땅에서 잘 걸어다닌다. 게다가 나무에 오르는 것도 능숙하고 나무 위에서 먹고 자기도 한다.
침팬지는 호기심도 많은 동물이다. 이 호기심 덕분에 침팬지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 가령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사용해 흰개미를 잡아 먹는다.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잎을 모조리 딴 후 흰개미집의 구멍을 쑤신다. 이 때 흰개미들은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 침입한 나무를 공격, 물고 늘어진다. 그러면 침팬지는 이를 입안에 넣고 훑어 먹는 것이다.
이성보다 동성을 선호?
다른 사회적 동물처럼 침팬지는 큰 집단을 이뤄 시간을 보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번에 많은 침팬지가 먹고 살 만큼 많은 과일을 맺는 나무는 거의 없다. 따라서 침팬지가 먹이를 찾아 여행할 때는 혼자, 혹은 3-4마리로 무리지어 다닌다.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지므로 각각의 작은 무리는 여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최소화하면서 그럭저럭 충분한 먹이를 발견할 수 있다.
만약 동료 전부를 충분히 먹여살릴 정도의 충분한 과일이 발견되면 수컷은 큰소리로 다른 동료를 부른다. 그러면 곧 많은 침팬지가 그 나무로 몰려든다.
침팬지는 휴식을 취할 때 많은 시간을 동료의 털을 다듬고 이를 잡는데 소요한다. 혼자서는 손발이 쉽게 닿지 않거나 보이지 않는 머리나 목 부위의 '가려움'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런 친밀한 행위는 사회적 결속력을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기생충을 제거해 건강을 지켜준다.
대부분의 사회적 동물에서 수컷은 다 자라면 무리에서 추방된다. 집단의 핵심세력은 암컷과 그 새끼다. 추방된 수컷은 암컷 무리를 만나 생식을 위해 다른 수컷과 싸우고 다시 다른 무리를 찾아 떠난다. 그러나 침팬지 집단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수컷 침팬지들은 그들이 태어난 집단에 남아 보호자가 되고 새로운 후손의 아버지가 된다. 반면 암컷은 성숙하게 되면 출생 집단을 떠나 새로운 집단에 들어간다. 따라서 암컷은 새로운 집단의 수컷과는 아무런 인척 관계가 없다.
이 사회적 구조는 수컷 침팬지에게 진화적 이점을 부여한다. 같은 집단의 다른 수컷은 그의 가까운 친척이다. 또한 어린 새끼들은 자신의 아들이거나 가까운 친척의 후손이다. 그러므로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많이 갖는 이들을 도움으로써 수컷은 자신의 많은 '유전자 복제품'을 만드는데 공헌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수컷이 과일이 많이 열린 나무를 발견하면 혼자만 먹지 않고 동료를 부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한편 성숙한 암컷은 자신과 후손을 돌봄으로써 자신의 진화적 성공을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다. 이들은 새끼를 낳고 기르는 데 무척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암컷은 보통 15살쯤 부터 새끼를 배고 약9달 동안 임신을 한다. 이후 암컷은 새끼가 독립할 수 있는 4-5살 때까지 기르고 보호하고 가르치며 먹을 것을 발견하는 모험에 어린새끼를 데리고 다닌다.
또한 암컷은 짧은 시간에 한 집단에서 많은 수컷과 교미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수컷 침팬지는 발정기 암컷과 교미하기 위해 격렬하게 경쟁하지 않는다. 심지어 불과 몇m 떨어져 일어나는 교미를 무시하기도 한다.
다른 자식 죽이는 잔인함도
이런 침팬지 사회의 모습은 왜 수컷이 다른 수컷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암컷은 다른 암컷 혹은 새끼와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때때로 원정여행 동안 집단에서 떨어진 우세한 수컷이 다른 수컷을 물리치고 발정기 암컷을 취하기도 한다.
침팬지는 자기 집단의 구성원에 대해서는 무척 친근하지만 다른 집단 구성원에게는 적대적이다. 가령 한무리의 암컷이 낯선 암컷을 몰아내는 일이 종종 관찰된다. 수컷의 공격성은 훨씬 빈번하게 관찰된다. 이들은 암컷보다 더 난폭하다.
수컷은 자신의 영역을 순찰·경계하며, 영역에 들어온 다른 구성원을 쫓아낸다. 만일 수컷이 새끼를 데리고 있는 낯선 암컷과 만나면 그 새끼를 죽이기도 한다. 이런 잔혹한 행동은 두가지 점에서 수컷에게 이점을 준다. 먼저 새끼를 잃은 암컷이 수컷과 살게 되면 수컷은 자신의 직계를 늘리는 효과를 얻게 된다. 즉 다른 수컷과의 유전자 경쟁이 줄어든 것이다. 둘째 암컷이 새끼를 잃고나면 발정기가 빨리 온다. 그 결과 살해자나 그 친척이 새끼 잃은 암컷과 교미, 새로운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진화에서 '자연선택'은 수컷이 다른 집단의 새끼를 잘 제거하도록, 그리고 암컷이 수컷에게 보호받는 영역에서 잘 머무르도록 진행되는 것 같다.
심지어 어떤 수컷들은 다른 집단 수컷들과의 전쟁을 통해 그들을 죽이고 영역을 취하기도 한다. 이런 침팬지의 행동은 우리 자신의 행동과 그 유전적 결과에 관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