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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하이테크에서 하이컬처로 최대의 만족감을 설계한다.

투박하고 사용하기 불편해도 '튼튼하기만 하면 좋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도구는 더이상 무의미하다. 개인의 특성까지도 이해하고 쾌적감을 제공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기계와 환경이 인간에게 최대 만족감을 줄 수 있도록 설계하는 감성공학이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눈앞에 닿아 있는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 세계 10위권 진입을 노리는 무역규모, 이미 세계 10위권에 도달한 자동차와 반도체 생산…. 이 정도의 나열만으로도 우리나라가 '중진국을 벗어나 조만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전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선진국이란 호칭이나 국제 사회에서의 인정 여부는 단순히 수출액이나 국민소득, 제품 생산능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력과 기술력 등에 의해 뒷받침되는, 국제사회를 이끌 수 있는 국민의 의식수준과 삶의 질이 보다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새롭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는 질보다는 양적 팽창에 힘써온 경제, 기술연구보다 제품 생산에 집중된 산업, 삶의 질 향상보다는 수출을 통한 외화벌이와 자본축적에 치중된 정책, 기술과 제품들의 슬기로운 활용보다는 과시형의 제품 구매, 여기에 무질서와 맹목적 낭비, 물질 만능 의식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인간성과 자아의식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경제적 배고픔이 해결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진 국가의 국민 개인들에게 향상된 삶의 실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 중 개인이 실감할 수 있는 삶의 질 향상은 '생활'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편리하고 안전하며 안락한, 그리고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는 일상 생활을 모든 개인이 영위할 수 있다면 이 사회야말로 선진사회이며 복지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성공학은 바로 이처럼 개인의 생활을 편리하고 안전하며 쾌적하게, 그리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 개인과 사회가 이용하고 있는 제반 대상(기계 건축 환경 등)을 인간중심으로 설계 제작 운용하는 데 필요한 학문이다.

느낌을 점수로 매긴다

감성공학은 인간의 개인특성(신체적 생리적 심리 행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인간-기계-환경 시스템을 사용자가 만족스럽도록 설계하는 전체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감성공학은 아직 학문적 정의조차 명확히 내려지지 않은, 또 연구내용과 방법 등이 체계화되지 않은 초기 상태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감성공학'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일본에서 조차 감성공학이란 말은 잘 사용되지 않고 있어, 일부 학자들만이 산업 디자인의 한 기법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정도다.

1986년 일본 마쓰다 자동차회사의 야마모토 회장은 1986년 자동차의 본고장이라 할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새로운 스포츠카 '미야타'의 개발과정을 설명하며 '감성공학'(kansei engineening)이란 단어를 처음 소개했다. "감성공학적으로 개발됐다"는 이 스포츠카는 미국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구매자들이 실물도 보기전에 선금 예약과 웃돈 거래가 이루어질 정도로 크게 히트했다. 이와 함께 감성공학이라는 단어도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후 일본 히로시마 대학의 나가마치 교수는 그동안 자신이 '이미지 테크놀러지'(image technology)라 명명했던 제품 디자인기법을 감성공학이라 고쳐 부르고 국제 학회 등에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또한 일본정부는 1990년부터 10년에 걸쳐 2백억엔의 예산을 투입해 '인간 감각 계측 연구'를 국가차원(통산성 주도)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대학과 연구소뿐만 아니라 자동차 가전 화장품 등 일본의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으며,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사단법인 '인간공학 연구센터'를 오사카에 설립해 산학연 연계를 돕고 있다.

감성이란 누구나 그 의미를 느끼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다. 철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빌리면, 인간의 감성은 "감각이나 지각에 의해 불러 일으켜져 그것에 의해 지배되는 심적 체험의 전체, 혹은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힘"이라고 설명된다. 다시 말해 "인체의 감각기관에 의해 감지된 사물이나 환경에 대해 인간이 느끼는 복합감정"을 감성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정교한 시스템을 자랑하는 인간에게 감성이란 결과물(output)은 외부로부터의 감각과 정보자극이라는 투입물(input)에 대해 두뇌에 기억돼 있는 의사결정과정을 적용한 정보처리과정의 결과다. 이 시스템에서 의사 결정과정은 개인의 지식과 경험 등 제반 특성과 심신의 상태, 시점 등에 따라 변화되는데, 이는 동일한 투입물에 대해서도 그 결과물은 개인과 시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노란색이나 동그란 모양 같은 단순한 시각 자극은 따스하거나 예쁘다는 복합 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예쁘다 귀엽다 포근하다 쾌적하다 고급스럽다 등과 같은 복합 감정을 유발하는 감정요소들을 정량적이고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느낌을 물리적 척도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나가마치 교수는 감성공학을 "인간이 제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욕구로서의 이미지나 느낌을 물리적인 디자인 요소로 해석해 이를 제품 디자인에 반영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감성을 물리적으로 요소화하기 위해 '의미 차별법'(semantic differentials scale)을 이용했다 이러한 개념에서 나가마치 교수의 감성공학은 '느낌의 형용사'를 이용한 제품 디자인의 결정 기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감성은 느낌의 형용사적 표현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느낌 또는 감성은 이성적이거나 논리적 표현에 앞서며 때로는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섬세하거나 분명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감성은 여러가지 복합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수지대신 재생용 판재가구로 만든 텔레비전. 감성공학은 기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다.


문화적 감성까지 표현

예쁘다 고급스럽다 화려하다 좋다 싫다 등과 같은 단어가 제품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개인이 평가하는 지표 할 수 있다면, 이 지표는 미학에서 이야기되는 심미성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제품을 디자인한 사람과는 독립적으로 그 가치와 선호도를 결정하는 것은 이를 감상하는 사람, 즉 소비자다. 인간의 감성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심미성에 의해 큰 영향을 받으며, 심미성 또한 개인에 따라 큰 차이를 나타낸다.

제품에 대해 가지는 인간의 감성은 단순히 모양이나 색상 등 제품의 외형 디자인에 한정되지 않는다. 제품 사용시에 받는 모든 느낌이 제품에 대한 사용자의 만족도와 선호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제품이 내는 소리, 조작 시의 촉감, 힘의 조절 등 모든 요소들이 제품의 외형 디자인을 포함하는 설계시 인간의 감성과 연계시켜 고려돼야 할 사항이다. 그리고 제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능과 신뢰성, 제품 성능의 수준, 제품 사용의 편리성 등이 제품에 대한 궁극적인 만족도, 즉 감성을 결정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감성공학을 부분적인 감성만을 대상으로 정의하고 연구 및 활용 범위를 한정시킨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인간의 감성에 대한 이해와 체계적인 연구 없이 이를 활용하기 위해 감성공학을 정의하는 것도 위험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감성공학을 인간의 감성 자체에 대한 연구와 그 연구 결과를 이용해 사람이 사용하는 제품이나 환경을 사용자가 편리하며 만족스럽게 개발하는 과정을 포함시켜 정의한다.

즉 감성공학은 "인간이 제품이나 주변환경에 대해 감각기관으로부터 받아들인 각종 감각 및 정보 자극과, 이와 관련된 개인의 경험을 통해 갖게 되는 복합감정으로서의 감성을 측정하고 분석해 제품이나 환경을 인간 생활에 편리하고 안락하며 만족스럽게 개발하는 전체과정"인 것이다.

이와 덧붙여 필자는 감성을 제품의 외형이나 색상, 디자인에 대한 '감각적 감성'과 제품의 기능과 사용성 등에 대한 '기능적 감성'으로 분류한다. 감각적 감성의 만족에 초점을 둔 연구분야를 좁은 의미의 감성공학이라 한다면 기능적 감성은 제품 설계를 위한 공학과 기존의 인간공학에서 다루고 있는 분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제품이 사용자의 기능적 감성과 감각적 감성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사용자의 감성 특성이 제품에 반영돼 있어야 한다. 개인의 감성 특성은 연령 성별 심신상태 교육정도 생활 수준 등과 같은 개인적 사항 이외에 생활환경 사회환경 관습 전통 종교 전통문화 등 주변 환경에 의해서도 영향받는다.

이렇게 개인의 감성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배경'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각 및 정보처리 특성뿐만 아니라 개인의 문화적 특성까지 정밀하게 조사해야 할 것이다. 문화적 배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 감성특성을 '문화적 감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기능적 감성이나 감각적 감성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사용자의 문화를 중요시하는 제품은 기능과 기술 중심의 기존 '하이테크'제품이나 디자인 중심의 '하이터치' 제품과 비교해 '하이컬처' 제품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제품이 기능 품질 디자인 그리고 사용자의 생활문화까지 만족시킬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감성공학적 제품이라 할 수 있다.

감성공학 연구에서는 인간 감성을 정확하게 평가, 또는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품이나 제품 요소에 대한 감성 평가에는 설문지나 인터뷰 등이 널리 이용되고 있는데, 질문에 대한 답은 형용어가 나타내는 선호도의 차이나 느낌의 강도를 5단계 혹은 7단계로 표시한다.

카멜레온의 철학

그러나 이러한 설문이나 인터뷰를 통한 개인의 느낌이나 선호도 조사는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조사자가 질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답을 어느 한 곳으로 유도하는 경우도 있고, 응답자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느낌을 충분히 포함시키지 못하는 일도 있다. 질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응답 대상자 집단이 가질 수 있는 느낌과 선호도를 표현하는 형용어의 탐색과 적정한 사용, 그리고 응답자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잠재의식 내에 존재하는 느낌과 감성까지도 찾아낼 수 있는 체계적이고 정밀한 질문과 분석에 대한 연구가 요구된다. 그러나 조사자가 철저히 준비하고 조사 분석한 소비자의 욕구와 이를 근거로 개발한 제품의 구매나 선호도는 차이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아, 조사자들을 어려운 상황에 빠뜨리곤 한다.

인간 감성의 특징은 애매모호성과 빠른 적응, 변화성 등으로 표현된다. 훈련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느낌을 분석해 정확하게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많은 경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확한 느낌이 무엇인지 모르는 일도 많다.

또한 인간의 감성은 여러 요인에 의해 변화된다. 제품이나 환경에 의한 감성의 변화도 된다. 제품이나 환경에 의한 감성의 변화도 제품이나 환경이 주는 직접적인 감각 자극뿐만 아니라 이들이 포함하고 있는 복합적인 이미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일한 색상을 사용하더라도 색의 배합과 배경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며, 동일한 색채 구성을 사용해도 물체의 형태에 따라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감성에 변화를 미치는 요인 자체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파악없이 감성 변화만을 조사한다면 그 결과의 효용성은 낮을 것이다.

인간의 감각기관은 자극에 의해 빨리 적응하며 또 쉽게 피로해진다. 봄이 되면 몇몇 용감한 이들에 의해 시도되는 강하고 화려한 패션에 거부감을 갖다가도 어느 사이에 이러한 패션에 익숙해져 자신도 슬그머니 시도를 해보는 게 인간이다. 그러다가도 주위 사람들에게 유사한 패션이 유행되면 싫증을 느끼고 다른 패션에 눈길을 주게 된다. 이른 봄에 조사한 소비자들의 선호 색상을 여름옷에 적용했을 때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맹인의 도로보행을 돕도록 고안된 GPS 장치. 하이테크 제품의 감성공학적인 적용은 장애인 등 이른바 '마이너 사용자' 들의 생리적 특성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인간을 위한 기술

인간 감성의 연구에서 개인의 차이는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동일한 종류의 감각 자극에 대해 사람들은 각기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감성 평가시의 건강 상태나 심리 상태에 따라 동일인도 다른 결과를 보일 수 있다.

감성공학의 연구와 활용에서 개인의 특성을 중요시한다는 기본 개념은 그동안 다른 분야의 연구에서 소홀히 다루어졌던 소비자(사용자)에 대한 근본적인 배려를 포함한다. 특히 어린이 노인 장애자들의 특수한 상황까지도 고려한다. 이들 노약자들의 신체적 생리적 특성뿐만 아니라 심리 행동 특성과 감성까지 고려한 제품과 생활 환경을 제공해 이들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만족스러운 삶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감성공학의 목표이며 진정한 의미의 '인간을 위한 기술'이 될 것이다.

이렇게 인간 감성 연구는 미시적 관점에서는 개인의 감각 기능을 포함한 제반 특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며 거시적으로는 개인의 감성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특성과 변화 및 문화적 특성까지 그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이에 앞서 인간의 감각과 관련되는 물리적 화학적 자극들에 대한 정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인간 감성의 정량적이고 객관적 측정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다. 이것이 부분적이라도 가능해질 때 그 활용 범위와 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존하는 센서의 민감도나 측정장비, 신호분석기술은 상당 수준 이상의 격한 감정변화를 부분적으로 측정 할 수 있을 뿐이며 정상인이 정상상태에서 갖는 느낌이나 감성의 변화를 측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외부의 감각 또는 정보 자극에 따르는 인간의 감정변화가 정량적이고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인체 생리학적 척도가 될 것이며 두뇌의 부위별 활동 수준과 관련되는 측정량이 될 것이다.

인간의 감성 변화를 생리학적 척도로 측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감성의 생성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감각의 종류와 특성, 이들을 인지하고 처리하는 인간의 감각기관들이 갖는 특성과 한계(sensing) 감지된 감각 정보들이 인체 내에서 처리되는 과정(perception)과 이에 따르는 생리반응, 두뇌에서의 정보처리과정과 이에 수반되는 생리반응이나 신경반응 등이 주요 연구내용에 포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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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구형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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