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현실세계에 뿌리내리고 있는 마이크로머신, 아직은 공상의 세계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나노테크놀러지. 작은 세계를 탐구하는 '기술공상가'들은 인류가 변신할 수 있는 보다 큰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기술공상가' '저주받은 사람'… '나노 테크놀러지(nano technology)의 대부로 자처하는 에릭 드렉슬러에게 쏟아지는 비판이다. 지난 15년간 새로운 분자세계가 열린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온 그는 이제 새로운 세계의 전도사로서 전세계를 누비며 대중 강연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처음 나노테크놀러지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 MIT의 학창시절이다. 생물체의 구성 단위인 분자처럼 작동하는 기계, 즉 분자기계를 만드는 것이 그의 구상이었다. 그리고 이 기계를 대량 생산하는 꿈을 키웠다. 분자기계란 그리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생물분자조직에서 DNA와 RNA의 명령을 받아 생명물질을 만들어내듯이, 엔지니어링을 통해 분자 크기의 기계를 만든다는 뜻이다. 기본 발상은 작은 기계지만 단순히 크기만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공상기술(TF)의 대부
에릭 드렉슬러는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 시절부터 기계공학 재료공학 화학 의학 등 다방면에 걸친 서적을 탐독했다. 나노미터(${10}^{-9}$m) 크기의 기계란 단순히 우리가 늘상 보는 현실의 기계를 축소해서는 불가능하므로, 특히 화학에 관한 많은 공부를 했다.
나노테크놀러지에 관한 그의 첫 논문은 1981년에 나왔다. 내용은 분자조작이나 분자엔지니어링을 위한 접근방법에 관한 것. 그러나 예상외로 과학자들의 반응은 냉담했 다. TF(Technology Fiction, 공상기술)의 하나로 취급하는 듯했다. 과학자들보다는 사회학자 등 비과학분야에서 인기를 끌었다. 외부로부터의 호응에 일부 과학자들도 '어쩔수 없이' 관심을 가졌으나 잘해야 '기술공상가' 심하면 '저주받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드렉슬러의 외로운 투쟁에 힘을 준 것은 MIT 출신 여성 엔지니어인 크리스 피터슨. 부부로서 새로운 관계를 맺은 드렉슬러와 크리스는 미래예측연구소(The Foresight Institute)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소는 일반 대중들, 특히 과학정책 입안자들에게 나노테크놀러지에 관한 전망을 중점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어렵지 않은 기술회의를 자주 열어 미래의 후원자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후원자 중에는 거금을 희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미래의 과학기술은 대중의 호응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드렉슬러의 신념이다. 따라서 그는 피터슨과 함께 일반인들을 위한 대중과학서 저술에도 힘을 쏟았다. 그 첫번째 결과물이 '창조의 엔진'(The Engine of Creation)이다.
생명 연장 기계
그들은 이 책에서 '기술공상가'로서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대표적인 예는 이산화탄소를 잡아먹는 '대기 정화 미소공장'. 태양에너지로 작동하는 극초소형 공장들을 지구 상공에 뿌려놓으면 이 공장들은 이산화탄소를 닥치는대로 잡아먹는다. 배설물은 산소와 탄소. 산소는 그대로 대기에 배설하지만 탄소는 유전 등 새로운 유기물을 양산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진다. 참으로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인류가 당면한 최대의 고민인 온실효과를 일거에 격퇴해버린 것이다.
바이러스를 잡아먹고 스스로 분해해버리는 스프레이 감기약도 선보였다. 코와 목에 이 약을 뿌리면 3시간만에 바이러스를 잡아먹고 6시간이 지나면 미생물에 분해되는 분자기구이다. 암세포도 선택적으로 제거해버리는 분자기구도 등장했다. 어떤 분자기구는 몸속을 돌아다니며 고장난 단백질을 수리해 생명을 연장시켜 준다.
이 책이 나오면서 과학기술사회에서 드렉슬러의 악명은 더욱 높아졌다. 과학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어 지구상의 온갖 범죄를 정당화시켜 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과학자들이 드렉슬러를 범죄의 조장자로 모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떻게 하면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줄일까"를 고민하고 있는 마당에 "얼마든지 배출해도 나노테크놀러지가 해결해준다"는 논리는 범죄 이상이라는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기술로 혹세무민하는 것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드렉슬러와 피터슨은 이에 굴하지 않고 그들의 상상력을 배가시켜 갔다. 한술 더 떠 소설가 출신인 게일 퍼가미트를 멤버로 받아들여 대중들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했다. 이들의 두번째 저서인 '고삐 풀린 미래'(Unbounding The Future, 91년 출판, 국내 번역서의 제목은 나노테크노피아)에서는 스마트 물질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모든 물질이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여 자기변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예를 들어 나노기술은 아주 싼값으로 옷에다가 센서나 컴퓨터, 구동장치까지를 장착할 수 있는데, 이들을 통해 빛이나 열, 압력, 습기 등을 감지해내고 감지해낸 모든 정보를 종합처리해(컴퓨터), 옷의 색상이나 섬유 올의 크기 등을 조절한다. 질감이나 크기 등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리를 반사하고 흡수하는 일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페인트, 어느 장소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가구 등도 나노기술로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한편 드렉슬러는 나노기술이 영원히 공상기술이 아님을 보여주려는듯 기술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91년 독지가가 희사한 17만5천달러의 돈을 가지고 분자제조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에서는 분자나노테크놀러지 연구를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공상과 현실
드렉슬러는 91년 8월에 분자나노테크놀러지로 MIT에서 학위를 받았다. 92년에는 이에 관한 기술서적도 출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는 나로테크놀러지를 미래학의 범주로 취급할뿐 최근 주목받고 있는 마이크로머신이라든가 서브미크론 기술의 주류로 받아 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마이크로머신과 나노기술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 하나는 ${10}^{-6}$이고 하나는 ${10}^{-9}$이니 특별히 질적인 차이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마이크로는 이미 과학자들이 정복한 현실의 세계이고, 나노는 공상의 세계이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적어도 그렇다.
기계시스템의 소형화, 즉 모기만한 로봇이나 새끼 손톱보다 작은 자동차를 만드는 일에 처음 매달린 것은 일본 사람들이었다. 1970년대 초반 일본 도쿄대학의 하야시교수는 소형기계 제작에 몰두했으나, 당시에는 미세가공기술이 워낙 떨어져 기계를 비약적으로 소형화시키는데는 실패했다. 센서의 소형화는 어느 정도 가능했으나 직접 행동을 취하는 구동장치의 소형화에는 여러가지 장벽에 부딪쳤다.
마이크로머신 세계에 새로운 획을 그은 것은 1987년.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연구자들이 지름 수백㎛의 초소형 기어축과 베어링 등을 이용해 현미경 부품을 만들어 학회에 발표했다. 미세가공기술을 이용해 실리콘 기판 위에 마이크로 크기의 기계 부품을 만든 것이다.
88년 7월에는 이 대학 전기공학과 교수인 리처드 뮬러와 대학원생 롱생 팡, 유총 타이 팀은 지름이 1백20㎛인 마이크로모터를 제작해 발표했다. 이 모터의 에너지원은 정전기로 분당 5백회를 회전했다. 미국전기전자통신학회에서 이 모터가 발표되자 참석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눈에 보이는 기계만 보다가 현미경으로 수백배 이상 확대해야 보이는 회전하는 모터를 접했을 때의 감동을 상상해보라.
이러한 마이크로머신 연구의 씨앗은 80년대 초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버클리대학 리처드 뮬러 교수의 지도를 받던 로저 하우는 고집적반도체 제작기술을 이용해 극소형 센서 개발을 성공시켰다. 하우가 사용했던 기술은 다름 아닌 묘화기술(lithography). 그는 학위를 받은 후 MIT로 자리를 옮겨 마이크로모터 개발을 구체화시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과 MIT 사이에는 치열한 마이크로모터 개발 경쟁이 본격화됐다. 70년대 MIT와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사이에 불붙었던 중력파 검출 경쟁에 이은 2라운드라고 할 수 있다. 로저 하우가 주도한 MIT의 마이크로머신팀은 메란 메레가니라는 걸출한 스타를 탄생시켰다. 그는 후에 케이스웨스턴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분당 1만5천번을 회전하는 마이크로모터 (크기 1백㎛)를 개발해냈다. 1㎠ 정도되는 공간에 수 백개의 모터가 빽빽히 들어차 일제히 회전하는 모습은 일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모습이 눈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이밖에도 소규모이긴 하지만 미국 국방부 소속 DARPA와 항공우주국(NASA) 등에서 마이크로머신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위스콘신 대학과 루이지애너 대학 등에서 마이크로머신과 관련된 프로젝트가 수행되고 있다.
팀플레이의 일본
미국이 대학연구소 차원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일 때 일본은 기업에서 마이크로머신에 대한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반도체에서 정상에 선 일본이, 로봇이라든가 자동차에서 미국을 능가하고 있는 일본이, 당장 그 쓰임이 무궁무진한 마이크로머신의 연구개발에 뒷짐을 지고 있을리가 만무하다. 8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산업계는 자동차나 가전제품, 로봇에 채용되는 미 소형 센서와 구동장치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팀플레이를 시작했다.
91년에 이르면 일본 기업 연구자들의 마이크로머신에 관한 논문 발표건수가 21건에 이르러 12편에 머물고 있는 미국을 능가했다. 일본 정부 또한 마이크로머신을 국가 우선 사업으로 선정하고 구체적인 제품의 발주를 시작했다. 일본 통산성이 처음 발주한 품목은 원자력 발전소 파이프 검사용 로봇과 외과수술용 로봇에 쓰이는 미소 센서와 소형 구동장치(엑추에이터). 이 프로젝트에는 히다치 도시바 후지츠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20여개의 기업이 모두 참여했다.
돈이 되는 기술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실용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본은 자동차에 쓰이는 가속센서를 개발해는 등 마이크로머신 분야에서도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1992년에는 히다치사에서 진공 공간에 분사되는 가스의 양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마이크로밸브를 개발했다. 이 제품은 양자효과(part3 참조)를 이용해 제조됐다.
기계공학 분야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전자산업에서 뒤쳐져 있던 독일은 메카트로닉스에서 옛영화를 회복하고자 마이크로머신에 집착하고 있다. 독일에서 주목받는 마이크로머신의 대부는 윌프강 에르펠트. 그는 80년대 초 칼스루에 핵연구센터에서 5㎛의 폭에 3백㎛의 높이를 갖는 니켈 구조물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해냈다. 이것이 바로 마이크로머신 기술의 핵심 도구로 등장한 LIGA(part4 참조). 독일 정부는 상당한 양의 연구비와 연구인력을 LIGA에 배치하고 있다.
이미 현실 세계에 뿌리내리고 있는 마이크로 머신이나 아직 공상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나노기술은 인류에게 제2, 제3의 르네상스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지만 그 파장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