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생물체인 컴퓨터가 생물학적 속성이 없다는 이유로 지능을 갖추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생물체 쇼비니즘'이다. 생각하는 과정은 얼마든지 프로그래밍할 수 있으며 따라서 컴퓨터는 궁극적으로 유연성을 지닌 지능을 소유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논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기 위해 먼저 유사한 질문 몇 가지를 나열해 보자.
컴퓨터가 지능(intelligence)을 가질 수 있는가?
컴퓨터가 생각(thinking)할 수 있는가?
컴퓨터가 마음(mind)을 갖는가?
컴퓨터가 감정(emotion)을 갖는가?
컴퓨터가 정서(feeling)를 가질 수 있는가?
컴퓨터가 의식(consciousness)을 가질 수 있는가?
컴퓨터가 인식(cognition) 할 수 있는가?
컴퓨터가 이해(understanding)할 수 있는가?
많은 독자들은 이러한 질문 중 어떤 질문들은 서로 비슷하고 어떤 질문은 본질적으로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논의를 '컴퓨터가 지능을 가질 수 있는가' 혹은 '컴퓨터가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국한하기로 하자. 마음이라는 것은 별로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고 기계가 감정이나 정서, 의식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은 무의미한 것 같고 컴퓨터가 인식과 이해를 할 수 있냐는 질문은 지능과 생각의 범주에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체 속성 없다'고 '지능없다' 단정은 위험
지능은 생물만이 갖고 있는 생물학적 본성과는 구분해야 할 것이다. 창 옆에 놓인 화초가 햇빛 밝은 쪽으로 구부러지는 것은 식물이 갖고 있는 속성이고 동물이 먹이가 없으면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동물의 속성이다. 박테리아는 음식물을 향해 이동하면서 유해물결을 피하기 때문에 지능을 가진 유기체처럼 행동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일으키기 위하여 기억이나 선택 등의 심적 활동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속성적 행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기계가 이러한 생물학적 속성의 유무에서 생물과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컴퓨터에게 이러한 동식물적인 속성이 없다고 해서 지능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한다면 논의의 시작이 어렵다. 이러한 고집은 '생물체 쇼비니즘'이라고나 할까?
또 지능이란 하느님이 인간, 혹은 동물에게만 준 선물이기 때문에 이 피조물만이 지능을 가질 수 있다는 신학적 견해나, 언어는 사람간의 약속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컴퓨터가 지능을 처리할 수 있다'는데 동의하는지 통계 조사하여 결정하자는 견해도 배격하고자 한다. 오로지 논리적 전개에 의하여 지능이 무엇이며 어떠한 성격이 있기 때문에 컴퓨터에 표현이 가능한 것인지 혹은 불가능한 것인가를 밝혀야 한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먼저 '컴퓨터'라고 지칭되는 기계에 대하여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컴퓨터란 그 자체에 프로그램을 내장할 수 있는 디지털 컴퓨터를 일컫는다. 여기서 '프로그램을 내장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즉 컴퓨터라고 하면 형태를 갖고 있는 하드웨어와 내장된 프로그램, 즉 소프트웨어를 통합한 기계를 일컫는다. 따라서 '컴퓨터가 생각할 수 있는가' 라든가 '컴퓨터에 지능이 있는가' 라고 묻는 것은 '생각하는 과정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가?' 혹은 '지능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가' 라고 묻는 것과 동일하다.
프로그램이란 수행하고자 하는 업무 절차를 수학적 연산 비교 등 기본적인 명령어의 순차적 집합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따라서 원래의 질문은 '지능적 행위를 수학적 연산, 비교 등의 명령어로 분해할 수 있는가?'라고 바꾸어볼 수 있다. 이렇게 질문을 정리해 보면 그 대답은 벌써 자명해진다.
융통성 갖춘 자동화 시스템의 경우
새 우리말 큰사전은 지능을 '새로운 사물 현상에 부딪혀 그 의미를 이해하고, 스스로 가지고 있는 지식을 사용하여 해결하는 능력이나 지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영어로는 Intelligence라고 한다고 적혀 있다. Intelligence를 웹스터 영어사전에서는 '배울 수 있는 능력' '지식을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단어사전의 모든 어휘 설명이 그렇듯이 애매모호한 기술(記述)이다. 이 기술만 보고 컴퓨터가 지능을 가질 수 있는지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지능의 정의를 시사하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두 명의 비서, A와 B가 있다. A에게 일을 시킬 때에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하라고 일일이 지시해야 하는데 반해서 B에게 일을 지시할 때는 무엇을 원한다고만 지시하면 그 방법은 스스로 알아서 처리해 준다. 이때 우리는 누가 더 지능적이라고 할 것인가?
지능이란 필요한 정보를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능력을 스스로 익혔다든지, 아니면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든지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알고 있다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을 적절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지능 아닐까?
우리가 빛이 무엇인지 설명하긴 쉽지 않지만 빛이 일으키는 현상을 설명하기는 쉬운 것처럼, 지능의 정의는 어려워도 지능을 가진 동물이나 지능적 시스템의 차이점은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고도의 지능을 갖춘 시스템으로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것으로는 우리 인간 자신이 있다.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간은 복잡한 언어를 이용하여 정보를 교환하고, 물체를 보고 이해하며, 높은 수준의 전문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또 게임에서 이기기 위하여 여러 방편을 강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능력을 컴퓨터가 가질 수 있다면, 즉 이러한 능력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컴퓨터가 지능이 있다고 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지능적 시스템이 갖고 있는 특성을 살펴보자. 지능적인 시스템은 융통성이 있다. 미리 약속한대로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서도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소위 '인공지능 세탁기'라는 것을 살펴볼 것 같으면 그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능적이지 못한 세탁기는 세탁물이 많든 적든, 빨래가 매우 더럽든 깨끗하든 일정한 시간 동안 세탁하는데 반해서 인공지능 세탁기는 세탁물이 많으면 오랜 시간을, 세탁물이 매우 더러우면 더 많은 시간을 세탁하는 융통성을 발휘한다.
지능적 시스템은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많은 중간 과정이 스스로 작동하도록 자동화돼 있다. 예전에는 세탁기를 사용할 때 애벌빨래가 끝나면 스위치를 눌러서 헹굼을 시작하고 헹굼이 끝나면 탈수를 하도록 스위치를 눌러주었어야 했으나 인공지능 세탁기는 스스로 작업을 알아서 수행한다. 이러한 자동화된 능력도 지능적 시스템의 특성 중 하나다.

뇌신경세포 흉내내는 인공 신경망 컴퓨터
컴퓨터에 지능이 있을 때와 지능이 없을 때의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일찍이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 알렌 튜링(Alan Turing)은 지능의 유무를 살필 수 있는 검사를 제안했다. 이 검사를 '튜링 검사'라고 하는데 이는 벽으로 밀폐된 두 방 속에 두 사람, C와 D가 서로 컴퓨터 통신을 통하여 게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이 게임에서 C의 목적은 D가 남자인가 혹은 여자인가를 알아맞추는 것이고 D의 목적은 C가 틀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C는 D에게 질문을 할 수 있고 D는 거짓말이든 진실이든 아무렇게나 대답할 수 있다. 한 예를 든다면 C가 "당신의 머리카락의 길이는 얼마입니까?"하고 물을 수 있고 D는 "글쎄요. 4㎝ 보다는 길겠지요"하고 대답한다. 이러한 게임을 진행하던 중 D를 컴퓨터로 바꾸어 놓았을 때 C가 컴퓨터로 바뀐 것을 알아내는가를 알아보는 검사이다. 즉 C가 컴퓨터로 바뀐 것을 모른다면 그 컴퓨터는 D만큼의 지능이 있는 것으로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검사를 통과한 컴퓨터, 즉 프로그램은 아직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검사 방법을 기계가 지능을 가질 수 있는가의 검사 방법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컴퓨터가 지능적인 시스템의 흉내를 그럴듯하게 내면 지능이 있다고 동의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컴퓨터는 사람의 흉내를 얼마만큼 낼 수 있는가? 아직 제한적이긴 하지만 사람만이 갖고 있던 능력에 버금가는 여러 가지 컴퓨터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다.
사람과 사람간에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손으로 흘려 쓴 글씨를 인식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 음성으로 명령한 것을 알아듣는 컴퓨터, 오래 훈련받은 전문의사처럼 질병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주는 프로그램, 복잡한 미적분 문제를 기호적으로 처리해 주는 프로그램 등등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도의 판단 능력을 이미 컴퓨터 프로그램은 갖고 있다. 이러한 고도의 판단 능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은 전문적 지식과 이를 활용하는 방법이 프로그램이라는 형태로 컴퓨터에 내장되어 있다. 그 내장된 프로그램을 순차적으로 수행할 때 컴퓨터는 지능적인 행위를 하게 된다.
웹스터사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배울 수 있는 능력 '을 지능의 필수조건으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사실을 배워서 알고 있는 지식을 수정, 보완하여 그 성능을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은 과연 경이로운 것이다. 컴퓨터가 스스로 배울 수 있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가 지능을 가질 수 없다는데 쉽게 동의할 것이다.
놀랍게도 컴퓨터는 배울 수 있는 능력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뇌 신경세포들의 구성을 흉내내 만든 '인공 신경망 컴퓨터'는 새로운 자료에 적응해 그 성능을 스스로 개선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기존에는 인간이 지식을 획득하여 컴퓨터에 전달하는 방법으로 컴퓨터가 배울 수 있었으나, 이러한 학습기능을 이용하여 반대로 기계가 배운 지식을 인간이 배워오는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간만이, 혹은 고등동물만이 배울 수 있다는 고집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창의력이라고 하고 이것이 바로 '지적 능력 그 자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과연 컴퓨터는 새로운 사실을 창조해 낼 수 있을까?

목표에 비해 성과 미미하다는 것은 인정
컴퓨터는 주어진 명제로부터 명시적으로 서술되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라는 명제로 부터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는 삼단논법의 논리적 진실을 도출하는 프로그램은 이미 수십년 전에 개발됐다.
창조라는 것도 알고 보면 기본 명제들로부터의 새로운 도출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창조라는 것이 애초부터 있을 수 없다. '새로운 사실'은 알고 있는 사실들로부터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을 뒤늦게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사실은 기계적으로 무한히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그 새로운 사실이 인간의 생물적인 욕구를 만족하는 것일 때에만 가치를 부여한다. 즉 인간에게 효용성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위대한 발명이라고 한다. 컴퓨터는 창조하고 있다. 그것의 효용성을 따지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컴퓨터도 지능을 가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다음 두 가지를 명확히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는 컴퓨터의 지능이 바로 프로그램된 인간의 지능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컴퓨터가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의 지능을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첫번째 지적은 컴퓨터가 생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생존을 위한 욕구를 찾지 않으며 이 기계를 인간이 인간의 목적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의 통제하에 두기 원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두번째 지적은 컴퓨터에 지능을 넣기 위한 연구, 즉 인공지능의 연구는 아직 그 목표에 비하여 성과가 미미하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인공지능 연구에 더욱 많은 연구 성과가 있었더라면 오늘 이렇게 컴퓨터가 지능을 가질 수 있느냐는 논의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논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기 위해 먼저 유사한 질문 몇 가지를 나열해 보자.
컴퓨터가 지능(intelligence)을 가질 수 있는가?
컴퓨터가 생각(thinking)할 수 있는가?
컴퓨터가 마음(mind)을 갖는가?
컴퓨터가 감정(emotion)을 갖는가?
컴퓨터가 정서(feeling)를 가질 수 있는가?
컴퓨터가 의식(consciousness)을 가질 수 있는가?
컴퓨터가 인식(cognition) 할 수 있는가?
컴퓨터가 이해(understanding)할 수 있는가?
많은 독자들은 이러한 질문 중 어떤 질문들은 서로 비슷하고 어떤 질문은 본질적으로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논의를 '컴퓨터가 지능을 가질 수 있는가' 혹은 '컴퓨터가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국한하기로 하자. 마음이라는 것은 별로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고 기계가 감정이나 정서, 의식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은 무의미한 것 같고 컴퓨터가 인식과 이해를 할 수 있냐는 질문은 지능과 생각의 범주에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체 속성 없다'고 '지능없다' 단정은 위험
지능은 생물만이 갖고 있는 생물학적 본성과는 구분해야 할 것이다. 창 옆에 놓인 화초가 햇빛 밝은 쪽으로 구부러지는 것은 식물이 갖고 있는 속성이고 동물이 먹이가 없으면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동물의 속성이다. 박테리아는 음식물을 향해 이동하면서 유해물결을 피하기 때문에 지능을 가진 유기체처럼 행동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일으키기 위하여 기억이나 선택 등의 심적 활동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속성적 행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기계가 이러한 생물학적 속성의 유무에서 생물과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컴퓨터에게 이러한 동식물적인 속성이 없다고 해서 지능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한다면 논의의 시작이 어렵다. 이러한 고집은 '생물체 쇼비니즘'이라고나 할까?
또 지능이란 하느님이 인간, 혹은 동물에게만 준 선물이기 때문에 이 피조물만이 지능을 가질 수 있다는 신학적 견해나, 언어는 사람간의 약속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컴퓨터가 지능을 처리할 수 있다'는데 동의하는지 통계 조사하여 결정하자는 견해도 배격하고자 한다. 오로지 논리적 전개에 의하여 지능이 무엇이며 어떠한 성격이 있기 때문에 컴퓨터에 표현이 가능한 것인지 혹은 불가능한 것인가를 밝혀야 한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먼저 '컴퓨터'라고 지칭되는 기계에 대하여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컴퓨터란 그 자체에 프로그램을 내장할 수 있는 디지털 컴퓨터를 일컫는다. 여기서 '프로그램을 내장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즉 컴퓨터라고 하면 형태를 갖고 있는 하드웨어와 내장된 프로그램, 즉 소프트웨어를 통합한 기계를 일컫는다. 따라서 '컴퓨터가 생각할 수 있는가' 라든가 '컴퓨터에 지능이 있는가' 라고 묻는 것은 '생각하는 과정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가?' 혹은 '지능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가' 라고 묻는 것과 동일하다.
프로그램이란 수행하고자 하는 업무 절차를 수학적 연산 비교 등 기본적인 명령어의 순차적 집합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따라서 원래의 질문은 '지능적 행위를 수학적 연산, 비교 등의 명령어로 분해할 수 있는가?'라고 바꾸어볼 수 있다. 이렇게 질문을 정리해 보면 그 대답은 벌써 자명해진다.
융통성 갖춘 자동화 시스템의 경우
새 우리말 큰사전은 지능을 '새로운 사물 현상에 부딪혀 그 의미를 이해하고, 스스로 가지고 있는 지식을 사용하여 해결하는 능력이나 지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영어로는 Intelligence라고 한다고 적혀 있다. Intelligence를 웹스터 영어사전에서는 '배울 수 있는 능력' '지식을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단어사전의 모든 어휘 설명이 그렇듯이 애매모호한 기술(記述)이다. 이 기술만 보고 컴퓨터가 지능을 가질 수 있는지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지능의 정의를 시사하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두 명의 비서, A와 B가 있다. A에게 일을 시킬 때에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하라고 일일이 지시해야 하는데 반해서 B에게 일을 지시할 때는 무엇을 원한다고만 지시하면 그 방법은 스스로 알아서 처리해 준다. 이때 우리는 누가 더 지능적이라고 할 것인가?
지능이란 필요한 정보를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능력을 스스로 익혔다든지, 아니면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든지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알고 있다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을 적절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지능 아닐까?
우리가 빛이 무엇인지 설명하긴 쉽지 않지만 빛이 일으키는 현상을 설명하기는 쉬운 것처럼, 지능의 정의는 어려워도 지능을 가진 동물이나 지능적 시스템의 차이점은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고도의 지능을 갖춘 시스템으로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것으로는 우리 인간 자신이 있다.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간은 복잡한 언어를 이용하여 정보를 교환하고, 물체를 보고 이해하며, 높은 수준의 전문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또 게임에서 이기기 위하여 여러 방편을 강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능력을 컴퓨터가 가질 수 있다면, 즉 이러한 능력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컴퓨터가 지능이 있다고 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지능적 시스템이 갖고 있는 특성을 살펴보자. 지능적인 시스템은 융통성이 있다. 미리 약속한대로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서도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소위 '인공지능 세탁기'라는 것을 살펴볼 것 같으면 그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능적이지 못한 세탁기는 세탁물이 많든 적든, 빨래가 매우 더럽든 깨끗하든 일정한 시간 동안 세탁하는데 반해서 인공지능 세탁기는 세탁물이 많으면 오랜 시간을, 세탁물이 매우 더러우면 더 많은 시간을 세탁하는 융통성을 발휘한다.
지능적 시스템은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많은 중간 과정이 스스로 작동하도록 자동화돼 있다. 예전에는 세탁기를 사용할 때 애벌빨래가 끝나면 스위치를 눌러서 헹굼을 시작하고 헹굼이 끝나면 탈수를 하도록 스위치를 눌러주었어야 했으나 인공지능 세탁기는 스스로 작업을 알아서 수행한다. 이러한 자동화된 능력도 지능적 시스템의 특성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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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신경세포 흉내내는 인공 신경망 컴퓨터
컴퓨터에 지능이 있을 때와 지능이 없을 때의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일찍이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 알렌 튜링(Alan Turing)은 지능의 유무를 살필 수 있는 검사를 제안했다. 이 검사를 '튜링 검사'라고 하는데 이는 벽으로 밀폐된 두 방 속에 두 사람, C와 D가 서로 컴퓨터 통신을 통하여 게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이 게임에서 C의 목적은 D가 남자인가 혹은 여자인가를 알아맞추는 것이고 D의 목적은 C가 틀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C는 D에게 질문을 할 수 있고 D는 거짓말이든 진실이든 아무렇게나 대답할 수 있다. 한 예를 든다면 C가 "당신의 머리카락의 길이는 얼마입니까?"하고 물을 수 있고 D는 "글쎄요. 4㎝ 보다는 길겠지요"하고 대답한다. 이러한 게임을 진행하던 중 D를 컴퓨터로 바꾸어 놓았을 때 C가 컴퓨터로 바뀐 것을 알아내는가를 알아보는 검사이다. 즉 C가 컴퓨터로 바뀐 것을 모른다면 그 컴퓨터는 D만큼의 지능이 있는 것으로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검사를 통과한 컴퓨터, 즉 프로그램은 아직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검사 방법을 기계가 지능을 가질 수 있는가의 검사 방법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컴퓨터가 지능적인 시스템의 흉내를 그럴듯하게 내면 지능이 있다고 동의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컴퓨터는 사람의 흉내를 얼마만큼 낼 수 있는가? 아직 제한적이긴 하지만 사람만이 갖고 있던 능력에 버금가는 여러 가지 컴퓨터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다.
사람과 사람간에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손으로 흘려 쓴 글씨를 인식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 음성으로 명령한 것을 알아듣는 컴퓨터, 오래 훈련받은 전문의사처럼 질병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주는 프로그램, 복잡한 미적분 문제를 기호적으로 처리해 주는 프로그램 등등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도의 판단 능력을 이미 컴퓨터 프로그램은 갖고 있다. 이러한 고도의 판단 능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은 전문적 지식과 이를 활용하는 방법이 프로그램이라는 형태로 컴퓨터에 내장되어 있다. 그 내장된 프로그램을 순차적으로 수행할 때 컴퓨터는 지능적인 행위를 하게 된다.
웹스터사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배울 수 있는 능력 '을 지능의 필수조건으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사실을 배워서 알고 있는 지식을 수정, 보완하여 그 성능을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은 과연 경이로운 것이다. 컴퓨터가 스스로 배울 수 있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가 지능을 가질 수 없다는데 쉽게 동의할 것이다.
놀랍게도 컴퓨터는 배울 수 있는 능력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뇌 신경세포들의 구성을 흉내내 만든 '인공 신경망 컴퓨터'는 새로운 자료에 적응해 그 성능을 스스로 개선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기존에는 인간이 지식을 획득하여 컴퓨터에 전달하는 방법으로 컴퓨터가 배울 수 있었으나, 이러한 학습기능을 이용하여 반대로 기계가 배운 지식을 인간이 배워오는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간만이, 혹은 고등동물만이 배울 수 있다는 고집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창의력이라고 하고 이것이 바로 '지적 능력 그 자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과연 컴퓨터는 새로운 사실을 창조해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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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에 비해 성과 미미하다는 것은 인정
컴퓨터는 주어진 명제로부터 명시적으로 서술되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라는 명제로 부터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는 삼단논법의 논리적 진실을 도출하는 프로그램은 이미 수십년 전에 개발됐다.
창조라는 것도 알고 보면 기본 명제들로부터의 새로운 도출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창조라는 것이 애초부터 있을 수 없다. '새로운 사실'은 알고 있는 사실들로부터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을 뒤늦게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사실은 기계적으로 무한히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그 새로운 사실이 인간의 생물적인 욕구를 만족하는 것일 때에만 가치를 부여한다. 즉 인간에게 효용성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위대한 발명이라고 한다. 컴퓨터는 창조하고 있다. 그것의 효용성을 따지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컴퓨터도 지능을 가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다음 두 가지를 명확히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는 컴퓨터의 지능이 바로 프로그램된 인간의 지능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컴퓨터가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의 지능을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첫번째 지적은 컴퓨터가 생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생존을 위한 욕구를 찾지 않으며 이 기계를 인간이 인간의 목적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의 통제하에 두기 원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두번째 지적은 컴퓨터에 지능을 넣기 위한 연구, 즉 인공지능의 연구는 아직 그 목표에 비하여 성과가 미미하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인공지능 연구에 더욱 많은 연구 성과가 있었더라면 오늘 이렇게 컴퓨터가 지능을 가질 수 있느냐는 논의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