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큰 대형 기종이 컴퓨터의 전부였던 시절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경천동지할 사건이 일어났다. 집집마다 컴퓨터가 들어 앉은 것이다. 사무실의 문을 박차고 뛰쳐나온 컴퓨터는 이제 냉장고나 텔레비전에 버금가는 가전제품으로 자리잡으며 가정생활의 중심에 서 있다.
1890년 경 등장한 기계중 '센서스 머신'이란 게 있다. 당시 미국의 군의관이었던 존 쇼 빌링스(John Shaw Billings)가 인구수를 보다 빨리 집계하기 위해 펀치카드를 이용하면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헤르만 홀레리스(Herman Hollertth)가 만든 이 기계의 등장으로 10여년씩 걸리던 인구조사가 3년도 채 걸리지 않게 되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후, 최초의 완벽한 전자컴퓨터 에니악은 적의 비행기나 배를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에니악은 3천평방 피트에 30t의 중량을 가진 거대한 기계였다. 물론 이 엄청난 크기의 기계는 요즘의 XT만도 못한 성능의 것이긴 했지만 에니악은 1백명의 과학자들이 1년을 계산해야만 했던 핵물리학 계산을 두시간만에 해치우는 괴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컴퓨터는 명실공히 국가기관의 재산목록 1호였지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기술의 진보는 PC를 책상 위로 끌어올렸다. 실리콘칩의 커다란 진보가 1만8천개의 진공관을 우표크기만한 칩속에 집어넣어 버린 것이다. 컴퓨터를 미국방성으로부터 사무실로 끌어들인 것은 1975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을 만들어 일약 세계적 거부가 된 스티브 잡스와 스테판 워즈니액이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PC(Personal Computer)는 소프트웨어의 빈곤과 비싼 가격탓에 주로 업무용으로만 사용되거나 호사가들의 장난감으로 인식되었을 뿐이었다. 애플의 독주속에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뛰어들었고 IBM호환기종이 득세했을 때에도 PC는 회사의 복잡한 수치들을 처리하는데 주로 사용됐다(미국에서는 지금도 로터스 123와 같은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이 가장 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멀티미디어와 네트워크의 하모니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PC는 그 기능을 한층 강화해 멀티미디어 시대를 열었다. 문자 음성 화상 사진 음악 애니메이션 등을 총체적으로 결합시킨 PC가 업무의 한계를 뛰어넘어 TV수신 전화자동응답 노래방 팩시밀리 홈쇼핑 홈뱅킹 CD-롬을 통한 도서관만한 크기의 정보관리는 물론 온라인 게임 등 온갖 정보와 취미, 문화생활까지 그 영토를 넓힌 것이다.
PC는 점점 작아지고 있고 국방성을 거쳐 사무실로, 가정으로, 우리들의 주머니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PC는 이제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주부들과 노인들도 손쉽게 다룰 수 있는 텔레비전과 가스 레인지 같은 가전제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작년 7월 싱가포르 세계 무역전시관에서 개막된 인테크에서 에키드 파이퍼 컴팩 회장은 "미국의 경우 가정용 컴퓨터(Home PC)가 전체의 59%를 차지하고 있고 이같은 추세는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PC를 보유하고 있는 가정은 1천5백만 세대인데 이 중 2백50만 가구가 멀티미디어 PC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PC보급대수가 이미 3백만대를 넘어섰으며 94년 하반기부터는 거의 모든 PC에 CD-롬 드라이브와 고속모뎀, 음악카드 등이 기본으로 장착되고 있고 가정에서 손쉽게 다룰 수 있는 많은 소프트웨어들이 번들 형태로 깔려 나가고 있다. 멀티미디어와 네트워크, 이것이 PC를 가정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두개의 주요한 수레바퀴다.
그동안 PC는 특별한 사람만이 다루는 기계로 인식되어온 측면이 많다. 컴퓨터를 쓰려면 베이식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워야 하고 파일이니, 디렉토리니 하는 듣도 보도 못한 어려운 용어에 부닥쳐야 했다. 냉장고는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기만 하면 돌아가지만 PC는 연결해야 할 코드가 왜 이리 많은지 이사를 갈 때마다 가장 꼼꼼히 그것들을 기억해 놓아야만 한다. 또 무슨 영어는 이렇게 많은 것인지,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이러한 인식이 홈PC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PC가 다른 가전제품보다 복잡한 데는 일정한 근거가 있다. 냉장고나 전기밥솥은 한가지 기능만을 가진다. 냉장고는 음식물을 상하지 않도록 해주고 전기밥솥은 밥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것을 전용기라고 한다. 그러나 PC는 어떤가? 작가는 PC로 글을 써서 모뎀과 전화선을 통해 신문사나 출판사로 글을 전송하며, 연구자는 수많은 자료들을 입력해 넣고 그것들을 원하는 대로 검색해서 필요한 자료들을 논문작성에 이용한다. 회사에서는 복잡한 재무상태를 컴퓨터로 처리하고 분석하며 그래프를 그려내기도 한다. 또 공장에서는 선반을 컴퓨터와 연결하여 쇠를 깎기도 하며 정치가들은 유권자들의 성향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영화도 음악도 비행기 엔진을 설계하는 것도 컴퓨터가 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는 범용기인 것이다. 소프트웨어만 만들면 그것은 어떤 일이든 처리할 수 있다. 이같은 범용성이 컴퓨터를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각각의 일을 처리하는 프로그램마다 사용방법이 다르니 어찌 복잡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다행히도 기술의 진보는 좀 더 인간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사람들이 더욱 배우기 쉽게 되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하나의 예가 있다. 지금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는 '도스(DOS)'는 문자기반의 운영체계다. 사용자는 키보드를 이용해서 명령을 내린다. 한 글자만 틀려도 컴퓨터는 '삑' 소리를 내며 더 이상 대꾸하지 않는다.
이 불편한 운영체계는 '윈도스(Windows)'로 대체되고 있다. 윈도스는 그림지향의 운영체계다. 화면상에 나타난 아이콘이라 불리는 작은 그림을 마우스로 눌러주기만 하면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또 하나의 프로그램 사용법만 익히면 다른 프로그램의 사용법도 저절로 익혀지게 된다. 아무리 여러 갈래의 프로그램이 나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앞으로 PC는 다섯살바기 어린애부터 고희를 넘긴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가전제품처럼 손쉽게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가정의 컴퓨터는 사람이 중심돼야
언제부터인가 '재택근무'란 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아마 90년대 초기 PC통신 인구가 늘어나면서 전자우편, 전자회의 등이 그 가능성을 조금씩 비추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재택근무의 실현은 진정한 의미의 '가정용 컴퓨터(Home PC)'가 아니다. 그것은 회사 업무의 집안으로의 연장이나 이동일 뿐인 것이다.
또 비디오폰 방범방재 전등제어 가스누출 경보시스템 등 소위 '가정 자동화(Home Automation)'도 홈PC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고 그것들은 서로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면 도대체 홈PC란 무엇일까?
그것의 주요한 의미는 '가정에서 누가 어떤 용도로 PC를 쓰고 있는가'에 있다. ' 업무 중심'의 사고체계에서 '사람중심'의 환경으로 어느 정도 이전되었는가가 홈PC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척도인 것이다. PC가 집에 있다고 다 홈PC가 아니라는 얘기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PC를 균등하게(민주적으로)즐기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실생활 사용자 환경(Social Interface)'에 기반한 '밥(Bob)'이라는 기본프로그램을 개발, 시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 '밥'이라고 명명된 이 프로그램은 앞으로 2-3년 내에 사용자가 마이크를 통해 PC에 명령을 내리고 펜으로 쓴 필기체를 인식하는 등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도록 설계된다고 한다. 이 소프트웨어는 현재 윈도스 환경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되고 있지만 곧 홈PC를 겨냥한 새로운 운영체제로 태어날 전망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업무환경은 윈도우 시스템으로, 홈PC 환경은 '밥'시스템으로 밀고 나갈 작정이다.
PC 다루는 법이 쉬워지는 것과 함께 어린이나 주부들이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PC의 가정화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창조적인 사고를 길러주는 게임들, 교육용 CD-롬, 노래방, 홈뱅킹, 홈쇼핑, 가족일정관리, 가정지출입관리, PC통신 등등.
PC를 사용해보지 않은 주부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역시 PC통신이다(물론 타자치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면 타자치는 프로그램부터 마스터하는 것이 좋다). PC통신을 이용하면 패션이나 인테리어 정보는 물론 내집 마련 정보, 부동산 투자, 금융상품 활용 정보, 성공 사업 부업 정보, 영화나 연극, 여행에 대한 정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PC를 통해 대화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동호회 등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 세계가 있다. 안방에 앉아 모니터상으로 상품들의 사진과 내역들을 읽고 구매를 할 수도 있고 은행에 가지 않고 잔액을 조회하거나 송금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명절날마다 고스톱을 치는 것보다 PC로 노래방을 만들어 노래 자랑을 하는 것도 홈PC가 할 수 있는 쉬운 분야 중 하나다. 말을 더듬더듬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상호작용성이 강한 CD-롬을 통해 세계를 보여주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또 아이들은 게임을 통해 PC에 익숙해진다. 그들은 텔레비전에 익숙한 세대이고 절대로 PC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곧 PC통신에 익숙해지고 보다 넓은 세계와 접하게 된다. 그들은 안방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런던이나 모스크바의 소년들과 대화를 하는 세대가 될 것이다. PC통신을 통한 불법복제나 음란물들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이런 것들은 부모가 컴퓨터를 잘 알고 아이들을 적절히 컨트롤해야 할 문제이지, PC통신으로부터 아이들을 떼어놓아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집과 사무실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
멀티미디어가 홈PC의 주요 도화선이었다면 네트워크는 가정과 회사, 학교를 연결하는 기본동력이다. 또 이 시기쯤 되면 홈 오토메이션도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세밀한 시기를 예측키는 어려우나 어쨋든 수년 안에 회사나 학교에 갈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홈PC가 그 영역을 넓혀 홈오피스와 홈스쿨까지 담당할 현실적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러한 단계가 오기 전에 하나의 과도기가 있을 것이다. 즉 사무실이나 학교에 근거리통신망(LAN)이 완비되는 단계다. 이미 랜이 설치된 사무실에서는 전자결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좀더 선진적인 회사에서는 앞으로 외국과의 무역에서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를 이용해 주문서나 송장 등이 모두 전자적으로 처리되고 환업무도 비슷한 경로로 처리될 것이다. 전화나 팩시밀리 또는 직접 만나 계약하고 검사하는데 한달이 걸린다면 이 전자적 시스템은 2-3일로 끝나버릴 것이다.
학교에서는 각 학생들의 책상에 단말기가 놓여지고 암세포가 증식하는 모습과 수술하는 장면을 모니터상으로 보게 될 것이다. PC로 다빈치의 작품과 베토벤의 음악을 감상하고, 북극곰의 생태도 관찰하게 될 것이다. 모든 과제는 PC로 작성되어 선생님의 아이디(ID)로 전송되게 되고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들은 모니터상에서 선생님의 지적을 당할 것이다. 그쯤되면 해커학생들은 새로운 커닝법을 개발할지도 모른다.
홈오피스나 홈스쿨이 실현되면 지하철공사나 버스회사들이 정보고속도로를 반대하는 파업을 할지도 모른다(마치 산업혁명 초기에 노동자들이 기계파괴운동을 벌였던 것처럼). 안방에 앉아 화상회의를 하고, 선생님과 의견 교환을 하며 과제물을 제출한다. 상상도 하기 힘든 새로운 세계가 멀리 있지 않은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SOHO(Small Office/Home Office)환경이 급속히 부상하고 있는데, 전체 근로자의 12%가 이렇게 일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펜티엄급CPU(64비트)에 32MB의 메모리, 2GB급의 하드디스크(또는 광자기 디스크), 광케이블을 완벽하게 지원하는 2만8천8백bps급의 고속모뎀, 8배속 CD-롬 드라이브, 32비트 음악카드, 비디오 오버레이 카드, 오디오 시스템, 캠코더 등 우리가 들어보지 못한 장비는 없다. 이 정도의 시스템과 함께 광케이블망이 완비된다면 홈오피스와 홈스쿨이 실현될 수 있는 객관적인 환경은 마련될 수 있다. 물론 소프트웨어적인 환경도 더욱 중요하다. 막강한 기능의 32비트 운영체계(예컨대, 아직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윈도우95)에다 기본적인 재택관리기능, 홈오피스나 홈스쿨을 공중망을 통해 회사나 학교로 연결시켜주는 리모트 패키지 등이 필요하다.
어떤 제품을 사야 하는가
홈PC는 주부와 노인, 자녀, 가장이 모두 쓰는 컴퓨터다. 다양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쓰는 컴퓨터인 만큼 다기능이어야 한다. 멀티미디어 환경이 고루 갖추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와 함께 컴퓨터의 기본사양도 충실해야 한다. 지금 386에다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무장하는 것은 한달도 못가 후회할 결정이다. 화려한 장치들이 CPU 때문에 허덕거려야 한다면 그것도 참담한 노룻이기 때문이다.
예산상의 문제라면 486이나 펜티엄PC에다 멀티미디어 장비들을 하나씩 추가(Upgrade)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PC가격은 어느 정도 안정된(물론 상대적으로) 반면, 주변기기들은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즘 광고에 많이 나오는 4배속 CD-롬 드라이브의 경우 지금은 80만원을 호가하고 있지만 3-4개월 후에는 20-30만원대로 떨어진다는 예측들도 많다. 그만큼 많은 업체들이 개발에 성공하고 있으며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다. 물론 가격이 떨어지는 것만 기다리다가는 평생 사지 못하겠지만 현실적인 생산비와 수요 증대 등을 조금만 고려한다면 스스로 적절한 구매시기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용자들에게 똑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멀티미디어 기능들을 하나씩 구비해야 한다면 우선 고속모뎀을 장착하고 그 다음에는 CD-롬 드라이브와 음악카드, 비디오 오버레이보드를 장착하는 것이 쓰임의 차원에서 순서일 듯하다. 물론 자신이 주로 화상편집을 하고 탁상출판을 해야 한다면 비디오 오버레이 보드와 스캐너 등을 우선적으로 사야 할 것이다.
이것이 결정되고 나면 어느 제품을 고를 것인가가 남는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기업 제품이냐 용산 조립제품이냐가 된다. 1년 전만 해도 대기업제품은 용산제품에 비해 그 가격이 거의 두배에 가까웠다. 하드웨어의 안정성, A/S 등에서 우월한데도 많은 사람들이 용산에서 PC를 산 것은 가격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대기업제품의 가격이 많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제품의 안정성과 A/S가 훨씬 나아졌기 때문이다. 홈PC에 있어서는 이중에서도 특히 제품의 안정성과 A/S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지금 대기업에서 홈PC 시장을 겨냥해 출시한 제품들은 금성사의 '심포니', 대우통신의 '윈프로 펜티엄', 삼보의 '뚝딱 Q', 삼성전자의 '매직스테이션', 현대전자의 '멀티캡'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