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훈련을 한다는 것은 마음의 세계를 조절함으로써 무의식에 내재돼 있는 자연스런 본성을 더욱 발현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 몸은 기관(organ)과 이들 전체를 통합하는 계(system)로 나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계의 대표적인 예는 혈액계와 신경계이다. 이외에도 내분비계 면역계 등이 근대의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이 중에서도 신경계는 몸과 마음의 상관관계를 따질 때 핵심적인 것이다. 특히 신경계의 중추인 뇌는 마음을 관장하는 중요한 위치를 확보해왔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는 신경계 못지않게 몸과 마음의 관계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면역계와 내분비계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했을 때 내분비계나 면역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무튼 서양의학이든 동양의학이든 의학자들이 기관 못지 않게 계에 주목하는 것은 인체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새로운 동향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경락의 존재에 대해서는 확연히 입장이 나뉜다. 동양의학에서 경락계는 신경계와 혈관계의 두개 시스템을 통합하는 고차원적인 네트워크로 인식한다. 그리고 경락계는 피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본다. 피부는 신체를 구성하는 모든 계의 최고봉이라는 입장이다.
무의식을 길들인다
우리가 배워온 의학지식을 통해 살펴보면 중추신경(대뇌피질)에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감각신경과 명령을 실행하는 운동신경이 연결돼 있으며, 피질 아래에는 자율 신경에 관련된 뇌간이 있다. 자율신경은 인간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개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식물적기능(호흡 순환 영양 배설 생식 등)을 담당한다. 이에 반해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은 동물적 기능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식물인간은 바로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은 마비됐지만 자율신경은 작동하는 상태를 말한다.
자율신경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있는데, 이둘이 긴장과 이완의 균형을 취함으로써 내장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유지된다. 지나치게 긴장하면 스트레스로 인해 몸 전체가 이상 상태에 놓인다. 이러한 자율신경의 조절에 착안한 것이 바로 동양의 심신법이다.
운동선수나 음악가 등이 수많은 관중 앞에서 긴장하면 감정이 흐트러져 제대로 실력을 발휘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쉽게 볼수 있는 예다. 감정이 평정을 잃으면 신체의 움직임도 굳어져 몸과 마음이 뒤죽박죽이 된다.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훈련, 예를 들면 좌선 명상의 수행은 무의식에서 솟아오르는 울퉁불퉁한 감정을 순화시키고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게 하기 위한과정이다.
신체 운동은 여러번 반복하거나 거듭 훈련을 쌓음으로써 몸에 익숙한 기(技)가 된다. 일종의 길들이기다. 요즘의 스포츠를 예술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훈련을 통해 습득한 기술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런 신체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움직임도 거듭 훈련을 쌓음으로써 향상되고 발전된다. 예를들면 밀교의 수행법에 부처님의 이미지에 마음을 집중하면서 일정한 진언(眞言, 일종의 주문으로 다라니수행법에서는 '옴마니반메훔'을 반복함) 몇만번이고 외우는 방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옴마니반메훔은 모음의 조화를 고려해 온몸에 좋은 기가 작용하도록 조합해놓은 진언이다.
"불교의 수행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반복해서 절하는 것을 비롯해 '나무아미타불'을 반복해 염불하는 것, 독경, 다라니수행법, 참선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들의 수행법은 모두 인체의 기를 가장 조화스런 상태로 재배치시키기 위한 것이지요." 기 수련원인 방하바른생활연구소에서 훈련부장을 맡고있는 한승권(33)씨의 이야기다. 예부터 소리와 기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 발성기관을 이용한 수행법이 가장 발달했지만 다른 수행법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명상훈련이나 기공, 혹은 동양의 무술의 목표는 훈련을 통해 무의식을 통제하고 무의식을 의식에 통합시키며 마음의 상태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 훈련에 대해 좀더 알아보자.
기 훈련의 기본은 조신(調身) 조식(調息) 조심(調心)에 있다고 말해진다. 이는 도교나 불교에서도 공통적으로 이야기한다. 조신은 신체능력을 훈련시키는 것이고 조심은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조식, 즉 호흡 훈련은 무엇인가. 호흡에 의한 기훈련은 마음과 신체의 훈련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흥분된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하는 일은 누구나 경험해본 일이다.
호흡을 유심히 살펴보면 특징이 하나 있다. 인간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측면이 있고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호흡을 천천히 하고 빨리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산에 오를 때 저절로 숨이 가빠진다든가 잠잘 때 호흡이 멈춰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것을 보면 의식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호흡은 수의근과 불수의근 모두에 관계된다. 따라서 조식훈련은 의식과 무의식을 결합시키면서 자율계의 생리적 기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 잠재능력을 높인다고 할 수 있다.
동양철학에서 이야기하는 "본연의 성(性)을 기른다"라든가 "불성(佛性)을 실현한다"는 이야기는 바로 우리 몸 깊은 곳에 내재돼 있는 무의식의 세계에 내재돼 있는 자연스런 본성을 더욱 발전시키고 실현시켜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적 직관이라든가 초능력 등은 바로 이러한 수행에 의해 실현되는 것인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경락
동양의학에서 경락(經絡)은 매우 중요한 시스템이다. 경맥과 낙맥, 손맥으로 구성된 경락계는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기가 흐르는 통로라고 인식한다. 경맥은 간선(幹線)이며 낙맥은 간선에서 갈라져 나온 지선(支線)이다. 혈관계 말단의 모세혈관처럼 미세한 통로는 손맥(孫脈) 이라고 부른다.
주요한 경맥은 12개가 있는데 경혈(침자리)이 분포하고 있다. 경혈은 기가 집중되어 있는 곳. 기의 흐름이 막히면 상태가 나빠지므로 경혈에 침을 놓아 기가 원활히 흐르도록 하는 것이 치료법의 기본이다.
서양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경락계를 혈관계나 신경계 이상의 고도시스템으로 보는 동양의학의 신체관은 중요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 신체를 해부해도 경락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이 피부를 중심으로 신체의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체표의학이다. 피부를 중시하는 체표의학은 신체의 기능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하나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피부는 신체의 안과 밖 경계를 이루는 곳. 피부의 안쪽은 자신에 속하고 바깥쪽은 외계이다. 기는 바로 이곳을 통해 외계로 방출되기도 하고 내부로 흡수되기도 한다. 이러한 견해는 신체의 기능을 외부와 연결된 개방계로 이해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신체의 외부인 자연 또한 기로 가득찬 세계이며, 단순한 물질의 세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의 세계인 것이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적극적인 존재인 것이다.
이에 비해 기관이나 내장을 중시하는 서양의학은 신체를 외계로부터 떼어내 이를 완결된 폐쇄계로 관찰하고 그 구조를 더욱 세밀히 분석하여 각각의 기능을 파악하려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경락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여기에 대한 명확한 답변 자료는 없다. 중국에서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경락연구에서는 경락에 기가 흐르는 것을 예민하게 느끼는 경락민감인의 사례가 많이 발표됐다. 77년 경락연구가이면서 기공의 달인이기도 한 중의학원의 맹소위 교수는 "경락에서 기가 흐르는 것을 느끼는 사람의 비율이 대략 5% 정도"라고 말하면서 1백여개의 경락민감인 사례를 발표한 바 있다. 상해중의연구소의 한 조사에서는 "자체에서 실시한 명상훈련 뒤에는 경락에서 기의 흐름을 느끼는 사례가 85% 이상에 달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명상이나 여타의 수행을 통하면 보통 상태에서 자각할 수 없는 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주관적인 관점(심리적인 측면)이 아니라 생리적인 측면에서 기의 흐름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학자들이 달려들어 기의 실체를 증명해 내려고 노력했다. 특히 경락을 따라 두점 피부의 전기저항을 재는 방법 등이 사용됐는데 대표적인 것 하나를 소개해 보기로 하자.
전위차가 발생하는 경락 두점을 고른 다음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두극을 교대로 대본다. 어떨 때는 전기가 흐르지만 반대일 때는 전혀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 이는 양기는 경락 위로 흐르고 음기는 경락 아래로 흐른다는 설을 뒷받침해 준다. 금이 위에 있을 때는 전기가 흐르지만 은이 위에 있을 때는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차례의 실험으로 전문가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 기의 생리적 접근이 이루어졌지만 대중들에게 내놓고 설명할 만한 실험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경락에서 기의 흐름이라는 것은 생체전류와 같은 작용을 매개로 간접적으로 관찰되는 것이지, 직접 기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외부로 발산되는 기
최근들어 수많은 기공사들이 인체 내의 기를 외부로 발산하여 이를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기의 실체를 확실하게 보여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뇌파를 측정해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알아내려고 하듯이 기공사가 발하는 적외선을 측정하고 인체의 자기장을 측정하는 일들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기를 통한 사람과 사람과의 동조현상(예를들면 기공안마사가 대상자에게 외기 치료를 할때)에도 많은 관심이 기울여져 다양한 방법으로 측정이 이루어졌다.
흥미있는 것은 중국 면역학 센터의 풍리달 박사팀이 행한 박테리아와 암세포를 향한 외기의 영향이다. 샬레에 위 암세포(이상증식에 의해 융모가 표면을 뒤덮고 있는 것)를 두고 외기를 조사했을 때 융모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 확인됐다. 실험은 40여회나 반복됐는데 암세포 살상률이 25%에 이르렀다. 샬레서 배양한 암세포이기 때문에 실제로 몸속에서 자라는 암세포에도 적용될지는 의문이다.
풍박사팀은 샬레의 박테리아에 기를 방사해 '죽이고 살리는 실험'을 해보았다. 기공사가 1분간 '죽인다'는 생각을 갖고 외기를 조사했을 때 48시간이 지난후 50% 이상이 죽어 있었고 '살린다'는 생각을 갖고 외기를 조사했을 때는 대장균의 수가 2배 이상 늘어나 있었다. 그 결과 앞의 기공을 살상공(殺傷功), 뒤의 것을 증식공(增殖功)이라고 한다.
풍박사는 이 실험결과를 가지고 독특한 이론을 전개시켰다.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 혹은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이것이 무의식적으로 전달되는 것은 바로 기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과 마주 앉아 있거나 대화를 할 때 자신에 대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느낄 수 있다. 언어로 '사랑한다'든가 '미워한다'는 구체적인 표현이 없을지라도. 결국 말이 '의식의 정보매체'라면 기란 '무의식의 정보매체'인 셈이다.
끝으로 경락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일본의 기 연구가인 유아사 야스오는 "기란 살아 있는 인체에 존재하는 생명현상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기의 작용은 소멸된다. 따라서 서양 의학의 해부학에서는 흐르는 경락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기의 기본형태 여섯가지
인간의 일생이 생로병사로 요약되듯이 기도 풍한서습조화의 6가지 형태를 띤다.
우리의 인생은 일생동안 여러가지 일을 경험하게 된다. 인체의 세포도 마찬가지이다. 생로병사가 반복적으로 계속 되면서 외부의 반응으로부터 갖가지 변화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포의 기도 자체적인 변화, 흑은 외부의 자극으로 유발된 변화를 나타내게 된다.
생로병사란 복잡다단한 인간의 일생이 전부 이 4가지의 개념으로 귀납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옛부터 인체의 기의 기본적인 변화를 6가지로 대별하여 구분했고 천태만상의 기의 변화는 모두 이 6가지의 기의 상태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가 풍(風)이라고 하는 상태로서 이는 병리적으로 주로 일정부위의 신경 손상, 혹은 신경마비가 있을 때이다. 그 부위의 세포의 기능적 상태가 어떤 변화를 나타내건 풍(風)이라고 간주한다. 임상적으로 중풍이나 중풍후유증 파킨슨씨병, 혹은 변형성 척추증 등으로 인한 신경감각장애 등이 포함된다.
둘째가 한(寒)이라고 하는 상태로서 인체의 어떤 부위가 차가운 것에 장기간 노출되었을 때에는 그 부위에 차가운 기(寒氣)가 나타나게 된다. 짐작컨대 이런 경우 각각 세포의 신진대사가 몹시 저하되고 혹은 위축현상 등이 일어나리라 생각된다. 그 특징은 차가운 것에 대해 몹시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찬 음식만 먹으면 설사하는 것은 위(胃)나 장(腸)에 한기(寒氣)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고 날씨만 추워지면 재발되는 여러 질환, 예컨대 비염 축농증 추간판탈출증 등은 그 부위에 각각 한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추운 곳에서 피부가 알레르기반응을 일으키는 경우에는 피부에 차가운 기가 있는 것이다.
셋째는 서(暑)라고 하는 상태로서, 일정 부위의 기가 장마철같이 더우면서(熱) 습(濕)할 때를 지칭한다. 이를 습열(濕熱)이라고도 한다.
넷째는 습(濕)이라고 하는 상태로서 기가 맑지 못하고 탁(濁)해지고 습기찬 공기처럼 습해졌을 때를 지칭한다. 낭습이라고 하여 사타구니가 축축한 것은 그 부위의 기가 습해져 있는 것이고, 인체의 병리적인 제반 염증도 습한 기와 일치할 때가 많다. 세포의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못하여 그 분비물이나 노폐물이 세포주변에 많이 축적되어 있는 상태다.
다섯째는 조(燥)라고 하는 상태로서 이는 습과 반대되는 상태. 기가 물기없이 메말라져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피부가 잘 트거나 갈라지기도 한다. 염증도 잘 생긴다. 메마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부위의 기의 흐름이 원활치 못해서 세포의 기능이 저하되는 것이며 기의 밀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여섯째는 화(火)라고 하는 상태로서, 쉽게 말해 장시간 열에 노출됐을 때 나타나는 생리병리적인 현상을 말하고 그 부위의 기 상태를 지칭한다. 기의 최소단위로서의 세포의 기능은 항진되어 있거나 비대되어 있다. 혹은 세포의 온도가 미미하게 상승하기도 한다. 예컨대 긴장성 두통 등의 경우 두개골 외곽의 신경 혈관 근육을 구성하는 세포에는 이러한 변화가 생긴다. 다시 말해 '더워진 기'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더워진 기를 식히면 세포의 기능은 다시 정상을 되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