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뇌지도 완성 인간마음 읽는다

인간의 뇌는 아직 과학의 메스가 충분히 가해지지 않은 과학 최후의 영역. 그러나 MRI PET 등 첨단 영상장비에 의해 뇌의 지도가 조금씩 그려지고 있다.​


PET로 찍은 뇌사진^위는 처음 단어를 생각해낼 때, 아래는 학습을 통해 단어을 숙지하고상황에 따라 단어를 기억할 때

 

"사랑이 자라는 곳은 어디인가요. 심장속인가요, 머릿속인가요."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대사의 한토막이다. 사람의 마음이 심장에서 솟아난다는 주장과 뇌에 위치한다는 주장이 17세기까지 팽팽하게 맞서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곧잘 인용되는 문장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사고 또는 지각과 같은 인지활동이 모두 뇌가 작용한 결과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 시대에서 셰익스피어 시대에 이르기까지 2천년이 넘도록 마음이 자리하는 신체부위를 놓고 논쟁이 끊이지를 않았다.

2천년 넘게 지속된 논쟁

1922년 고대 이집트문화의 연구에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가장 풍부한 보물을 간직한 왕릉이 발견된 것이다. 왕릉의 임자는 약 3천3백년 전에 18살의 어린 나이로 죽은 투탄카멘이었다. 소년파라오를 미라로 만들 때 심장은 몸속에 보존했지만 뇌는 두개골에서 뽑아내버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뇌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사례이다.

기원전 10세기경 생존한 그리스의 대시인 호머조차 인간의 지능과 감정을 품고 있는 신체부위는 뇌가 아니라 심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경 의사인 히포크라테스는 뇌가 사고의 원천이라는 주장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이를 계기로 마음의 자리를 놓고 길고 긴 논쟁이 시작되었다.

오늘날의 과학상식으로는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이 논쟁이 무려 2천년 이상 지속되도록 만든 장본인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호머의 아이디어를 되살려서 인간의 정신활동은 심장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뇌는 심장에서 덥혀진 혈액의 온도를 낮추는 기능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잘못된 견해는 뇌를 해부한 학자들에 의하여 여러차례 치명타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철학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17세기까지 영향력을 잃지 않았다.

1862년 미국의 골동품 수집가가 고물상에서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찾아냈다. 쓰여진 상형문자로 보아 기원전 17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논문은 그로부터 50년이 지나서 판독되었다. 머리와 목덜미에 생긴 각종 상처를 설명하고 그 처방을 써놓은 고대 이집트왕국의 문서였다. 뇌의 기능을 밝혀놓은 최초의 문헌으로 기록되고 있다.

사람을 공공연히 해부한 첫번째 인물은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의학교사였던 헤로필로스이다. 그는 왕이 죄수를 넘겨주면 숨쉬고 있는 동안에 해부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천명에 이르는 죄수의 해부를 통해 헤로필로스는 신경과 혈관이 다르며, 신경은 심장이 아니라 뇌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헤로필로스의 연구결과는 이를 능가하는 새로운 사실이 17세기가 되어서야 나타날 정도로 귀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세유럽의 학자들은 헤로필로스의 연구를 망각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 먹혀들어갔던 것이다.

골상학과 의학영상

뇌와 마음의 관계는 현대과학이 풀지 못한 숙제의 하나로 남아있다. 뇌의 기능을 표시한 지도를 작성하려는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첫번째 시도는 19세기가 시작될 즈음에 등장한 골상학(phrenology)이다. 골상학에서는 사람의 두개골 생김새가 상응하는 뇌 부분의 발달 정도를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골상학자들은 죄수 또는 정신병자의 두개골을 분석하여 정신의 기능에 상응하는 뼈의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를 작성했다. 그 중에서 성공적인 작품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코프비니언 브로드만의 지도이다. 그는 1909년 대뇌피질을 그 기능에 따라 분할하여 번호를 부여했다. 예컨대 전두엽에 있는 지역 4는 운동, 후두엽의 지역 17은 시각, 측두엽에 자리한 지역 41과 42는 청각을 담당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의학영상(medical imaging)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뇌의 지도 제작이 한결 수월해졌다. 컴퓨터 기술의 도움으로 뇌의 내부를 간접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됨에 따라 인지활동에 관련된 뇌의 영상을 찾아내서 뇌의 지도를 만들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뇌영상방법으로는 컴퓨터단층촬영(CT),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자기공명영상(MRI)이 손꼽힌다.

의학영상이 컴퓨터기술을 활용하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 이다. 그 전까지 대부분의 의학영상은 X선에 의존했다. 남아프리카의 앨런 코맥과 영국의 고드프리 하운스필드는 제각기 X선과 컴퓨터기술을 결합시킨 CT(computed tomography)의 원리를 창안했다. 하운스필드는 1972년 최초의 CT장치를 개발하여 임상에 사용했다. 두사람은 1979년 노벨상을 함께 받았다.

CT는 인체의 각 조직에서 X선 에너지의 흡수율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응용한 것이다. 이를테면 물을 0으로 하고, 뼈조직은 +1천, 공기는 -1천으로 2천등분하여 각 조직의 X선 흡수율을 컴퓨터로 계산한다. 따라서 여러 각도에서 신체를 통과하는 X선으로 뼈는 가장 희게, 공기는 가장 검게, 그리고 물은 중간 음영으로 표시되는 신체의 영상을 재구성하게 된다. 컴퓨터가 없이는 다량의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하여 영상을 만들어낼 수 없다. 이렇게 만든 컴퓨터 단층사진은 뇌출혈이나 뇌종양 등 신경계 질환의 진단에 필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PET로 뇌 지도 그린다

CT는 두가지 측면에서 의학계에 영향을 미쳤다. 첫째 의사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뇌 조직을 효과적으로 볼 수 있는 기술을 비로소 갖게 되었다. 둘째 핵의학에서 컴퓨터를 이용하는 영상기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촉발시켰다.

핵의학 영상기술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사용하여 신체 내부의 문자에 표지를 부착하는 방법을 기본으로 한다. 방사성 동위원소는 감마선을 낸다. 감마선은 표지가 붙은 분자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신체기관의 영상을 제공한다. 이러한 핵의학의 영상기술에 컴퓨터가 사용됨에 따라 단층사진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핵의학 영상기술로는 PET(positronemision tomography)가 단연 돋보인다.

PET는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정맥주사로 체내에 투입하여 그 방사능의 단층영상을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양전자는 전자와 질량은 같지만 양전기를 띤다. 양전자는 전자를 만나면 즉시 결합하면서 두 개의 광자(photon)를 방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1백80도 반대방향으로 두개의 감마선을 낸다. 감마선 검출기로 감마선의 방사능을 계측하여 컴퓨터로 보내면 CT에서와 동일한 방법으로 각 조직 부위의 컴퓨터 단층사진이 만들어진다.

PET는 뇌의 다양한 기능, 예컨대 포도당 대사, 산소 대사 또는 국소적인 피의 흐름 등을 측정할 수 있다. 이 가운데서 매순간의 뇌기능을 가장 신뢰성 높게 나타내주는 것은 혈류임이 입증되었다.

PET로 혈류를 측정하여 뇌의 기능을 밝히는데 가장 성공한 분야는 언어의 연구이다. 그동안 언어기능은 뇌가 손상된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되었으나 PET 덕분에 건강한 뇌로부터 연구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를 시도한 대표적인 학자는 미국의 마커스라이클교수이다. 그는 1988년 언어기능을 PET로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이와같이 PET는 뇌의 해부학적 변화보다는 생리적 또는 화학적 변화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정상인에게 각종 자극을 가하여 그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예컨대 노래를 부르거나 책을 읽을 때 주어진 자극에 따라 뇌에서 일어나는 기능적 변화를 영상화하여 사진으로 볼 수 있으므로 뇌의 지도 작성에 필수불가결한 장비가 되고 있다.
 

뇌의 지도를 그리는 일은 핵의학 영상기술의 발달로 현실화되고 있다.


떠오르는 유망주 기능 MRI

한편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는 CT와 함께 조직의 손상을 진단하는 필수 의료장비로 자리를 잡은지 오래이다. 본래 NMR(nuclear magnetic resonance)이라고 불렸으나 핵(N)이란 단어로 말미암아 이 기술을 위험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MRI로 명칭이 바뀌었다. NMR을 개발한 미국의 펠릭스 블로흐와 에드워드 퍼셀은 1952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NMR은 많은 원자가 자장이 있을 때에는 자석처럼 움직인다는 사실을 응용하고 있다. 애당초 분자의 화학적 특성을 연구하기 위하여 개발된 NMR이 임상에 사용된 까닭은 NMR이 양성자(proton)를 검출함으로써 영상을 형성할 수 있음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양성자는 인체에 많이 있으며 작은 자석처럼 행동하여 자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인체의 70%인 물 분자 안의 수소 원자핵은 한 개의 양성자로 되어 있다. 요컨대 MRI는 인체 주위에 강한 자장을 형성하여 체내에 있는 수소원자핵의 분포를 영상으로 나타낸다.

MRI는 CT보다 해상도가 뛰어나고 뇌의 구조를 명확하게 영상화하지만 PET처럼 뇌의 기능을 보여주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MRI가 PET에 잡히지 않는 신호를 검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확인됨에 따라 MRI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MRI가 신경활동이 증대되는 뇌의 부위에서 일어나는 산소의 증가를 실시간으로 검출할수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예컨대 사람에게 손가락을 가볍게 두드리도록 하면 뇌의 운동피질 일부가 이 명령을 내보낸다. 이 작용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더 많은 피가 뇌의 그 부위로 흘러들어간다. 그러면 혈액안의 산소가 그 부위 안의 자장을 변화시키게 된다. 이와 같이 MRI는 혈액 내부에서 기능적으로 유발된 산소의 변화를 검출함으로써 뇌의 작용을 영상화할 수 있다. 이 기술을 특별히 기능 MRI(functional MRI)라고 부른다. fMRI는 1986년 영국에서 처음 시도되었으나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fMRI는 PET보다 유리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첫째 신호를 얻기 위해 PET처럼 방사성 동위원소를 핏속에 투입할 필요가 없다. 뇌 조직 안에서 기능적으로 유발된 변화로부터 신호가 직접 오기 때문이다. 둘째 PET보다 선명한 그림을 보여준다. PET는 2~3mm가 한계이지만 fMRI는 1mm의 작은 부분까지 뇌를 보여준다. 셋째 가격 이 PET의 1/5에 불과하며 사용하기 쉽다. 올해 서울대에 국내 최초로 설치된 PET는 현존 의료기기 중에서 최고가격인 60억원 상당에 도입되었다. 물론 성능면에서는 PET가 fMRI를 앞선다. fMRI보다 검출가능한 신호의 범위가 훨씬 넓을 뿐만 아니라 한번에 뇌 전체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요컨대 뇌의 영상기술은 PET와 fMRI의 경쟁 속에서 발전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간의 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존재이다 그러나 마음을 하나씩 읽어나가는 영상장비에 의하여 뇌의 지도가 작성되면 그 신비가 벗겨질 것으로 보인다. '사고의 대륙, 정서의 섬, 의식의 골짜기, 언어의 바다 등 미지의 영역이 그 모습을 드러낼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뇌의 파형을 기록하는 뇌파제


마음으로 휠체어 운전

뇌의 기능 연구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용된 장비는 뇌전도(EEG)이다. EEG(electroencephalogram)연구는 독일의 한스 베르거에 의하여 개척되었다. 그는 1929년 두피에 전극을 부착하여 대뇌의 전기적 활동, 즉 뇌파를 기록하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EEG는 대뇌의 거시적인 전위를 측정할 수 있으므로 전체 신경세포집단의 전기적 활동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PET 또는 fMRI에 견주어서 그 해상도가 뒤떨어지기 때문에 뇌의 지도 작성에서 큰 몫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뇌파는 0.5~50Hz의 주파수 범위에 있는 느리고 연속적인 전자파이다. 예컨대 눈을 감고 뇌가 쉬고 있을 때에는 알파파(8~12Hz), 깊은 수면상태에서는 델타파(0.5~5Hz)가 출현한다. 뇌의 활동상태에 따라 주파수가 다른 뇌파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뇌파의 특성을 이용하여 생각만으로 기계를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 최근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뇌작동제어(brain-actuated control)기술이다. 먼저 머리에 띠처럼 두른 장치로 뇌파를 모은다. 이 뇌파를 컴퓨터로 보내면 컴퓨터가 뇌파에 담겨있는 사람의 생각을 분석하여 적절한 반응을 일으킨다. 컴퓨터가 사람의 마음을 읽어서 사람 대신 행동을 하는 셈이다.

미국에서는 뇌파로 조작되는 비디오게임 장치가 판매되고 있으며 전신마비 환자들이 생각만으로 휠체어를 운전할 수 있는 제어기술이 선보이고 있다. 뇌작동제어 분야의 전문가들은 20~30년 뒤에는 비행기 조종사가 손 대신에 단지 머릿속의 생각만으로 조종간을 제어할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4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인식 과학평론가

🎓️ 진로 추천

  • 의학
  • 심리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