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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양치식물 탐사를 마치고

"학생들 현장교육에 자신감 생겼다"

제주도 양치식물 탐사를 마치고 좌담회


이창복-이제 3일간의 탐사를 마쳤고 내일 오전 프로그램만 남았습니다. 이번 탐사는 태풍이 몰려오는 바람에 고생도 많았고 코스도 예정대로 이루어지지는 못했습니다. 또 탐사의 중심주제가 생소한 분야라 어려움도 있었을 듯합니다. 이 시점에서 이번 탐사를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3일간 주로 관찰한 제주도의 양치식물에 대해, 그리고 교육현장에서 이 경험들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 또 행사자체에 대해 자유롭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최선철-매일 4시간씩 보충수업을 하던 중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됐는데, 와보니 '공부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싶습니다. 고사리의 종이 이렇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고사리 하나를 관찰해도 우편과 소우편, 열편 등으로 구분해 탐구하는 경험을 통해 '구체적 사실'의 중요성을 다시금 배웠습니다. 아이들에게 '탐구'란 말만 했지 몸으로 경험하게 할 기회는 거의 없었지요.

오창호-저는 식물과 곰팡이의 공생관계를 알기 위해 뿌리에 사는 균, 즉 근균류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공부를 위해 이전에 한라산을 3번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매번의 산행을 비교할 수 있는데, 이번 탐사는 그 규모나 내용, 체제에서 아주 잘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혼자 산에 왔을 때는 혼자 산을 뒤져 3개 정도 찾았습니다. 두번째는 유경험자와 함께 왔는데, 10여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오늘까지 65종의 고사리를 발견했지요. 저는 산굼부리에서 바로 얼마전 새로 산 고가의 안경을 잃었습니다. 대신 안경을 쓰고도 보지 못했던 고사리를 볼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마음의 안경을 얻었습니다.

또 한가지, 교수님의 지도방법에서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첫째 둘째날은 지팡이를 짚고 "이건 뭐뭐"라고 말해 주시던 것에서 오늘은 저희 스스로 찾아보고 질문만 하게 하셨지요.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방법을 현장에서도 적용해볼 생각입니다.

임지춘-저희 상고에서는 한학기 18시간 수업을 전부 실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학생들을 필드로 데리고 나가는 수업은 시간적인 제한도 있고 진행방법도 막막해 제대로 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악천후에도 애정을 가지고 탐사에 임하는 교수일의 마음자세를 접하며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허왕호-큰 것보다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을 관찰한 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충청북도에도 고사리가 많지만 공부의 대상으로 삼은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등산이라도 가서 '이게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당황하곤 했죠. 공부할 영역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넓어졌다는 느낌입니다.

박광훈-생물도감이 없다시피 한 현실에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19세기가 물리화학의 시대, 20세기가 전자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유전공학, 즉 생물학이 지배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우리 주변 생물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 도감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공부를 하려해도 문헌 자체가 없으니 벽을 느낄 수밖에요. 그런 점에서 이교수님이 우리나라 식물에 관한 제대로 된 도감을 정리해주신데 감사드립니다.

김종철-한번으로 끝내기보다는 좀더 공부할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제 걸음마하는 법이라도 배웠으니 혼자라도 공부할 수 있겠지요. 태풍 때문에 본래 예정했던 물장올, 영실, 윗새오름 등을 탐사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배희병-일선에서 과학교육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교육의 기조가 변해간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무엇보다 탐구학습이 강조되고 있지요. 그러나 말로는 '탐구'라 하면서도 정작 뭘 해야 할지는 잘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최근 생각하는 기회'를 학생에게 주는 것이라는 쪽으로 정리가 되고 있는데, 그 기초는 '관찰학습'입니다. 그리고 관찰학습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 분류지요.

김소직-광주 교육계에도 '교단 선진화' 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시교육청 주관으로 자연탐사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는데, 동아일보에서 주최하는 생태계 탐사와 함께 좋은 모범이 된다고 봅니다. 비가 온 덕분에 한라수목원을 볼 기회가 생겼는데, 제주도의 특산 식목을 중심으로 체계있게 정리해 놓은 것에 감탄했습니다. 이같은 수목원을 각 시도별로 하나 정도씩 만든다면 그 지방의 관광코스로서도 좋고 사라져가는 식물종을 보존한다는 의미도 있을 듯합니다.

이창복-식물원 건립 문제는 학계에서도 행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세금 받아서 뭐하고 있느냐며. 여러분이 늙어서 손주나 며느리의 손을 잡고 놀러갈 수 있는 것이 수목원·식물원이 아니겠습니까. 식물원의 수는 그 나라의 국력을 상징합니다. 세계에서 식물원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 그 다음이 무너지기 전의 소련, 독일 영국 순입니다. 일본도 10위권에 들지요. 식물표본 보유고도 마관가지입니다. 세계 최고라 일컬어지는 영국의 큐(Qew)가든이라는 식물원에는 5백만종의 표본이 있는데 이 표본들을 사진을 찍어 또 다른 표본을 만들고 그래도 모자라 그림으로 그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는 글쎄, 10만점 정도 만들어져 있을까요.

김소직-이번 행사와 연계, 욕심 같아서는 이 자리에 계신 선생님들을 다시 만나 우리나라 양치식물에 대해서만 똑 떨어지게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어느 한가지라도 이렇게 하니까 알겠구나"라는 점을 실감했습니다. 비바람속 '전우여 잘 있거라'를 함께 부른 이 모임에서 장기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제안 합니다.

오창호-우리나라 학회는 대학교수 이상 상위그룹만 참여하는 것처럼 돼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등 외국의 학회는 국민학교 선생님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문의 저변확대를 위해서도 많은 교사들이 학회등 자발적인 연구모임이나 단체를 조직하고 활동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소직-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광주에는 과학교사협의회가 있는데 그 아래서 식물과 동물로 팀을 나누어 매년 1박2일 탐사를 합니다. 특히 생태분야는 교수들이 시간을 많이 낼 수 없는데 비해 교사들이 해볼 만한 분야라고 봅니다. 게다가 생태는 '우리 것'을 다루는 것이므로 그런점에서도 의미가 있구요.

한병길-자체적으로 경비를 조달하고 자문위원을 모시는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겠지요.

이병우-교사로서 양치식물 전문가가 되려는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만, 이번 탐사를 통해 학생들을 현장에 데리고 나가는 일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전문적 연구모임을 갖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그보다는 여러 도에서 소그룹을 조직, 학생들에게 직접 전파하는 기회를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유면옥-저는 개인적으로 진드기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식물을 채집해 해부현미경 아래서 관찰하는 방법을 취하지요. 그래서 식물의 이름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고, 채집과 식물이름을 알려는 두가지 목표를 나름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이번 탐사를 통해 제게는 몇가지 과제가 생겼습니다. 양치 식물의 70%가 제주도에만 분포하고 있다는데, 다른 식물의 경우는 어떠한지를 알아보고 한국산 고사리의 검색표를 구하는 일 등이 그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분류가 뒤떨어진데는 거창한 것을 해야 학문인줄 아는 우리 학계 풍토에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생물에서 분류는 기초이며, 유전 생리 행동의 모든 내용이 분류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염색체를 알아도 이름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김용현 -자생식물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도 꽃도 없는 식물인 고사리에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기회에 그동안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식물을 알면 등산이 두배로 즐거워집니다. "그때 그 산에서 본 풀이 여기 이 산에도 있구나" 하고 느낄 때는 마치 친구를 만난 듯합니다. 아는 풀은 일반인처럼 무심히 밟을 수도 없지요.

김진국-생태연구는 식물상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도교수가 여러 분이셨다면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가령 이번 탐사의 경우 식물만 보는게 아니라 식생하는 장소의 환경, 즉 빛 수분 위치 캐너피호생·대생관계 빛의 효율성 체계 등에 대해 기록만 해둬도 넓은 분야에서 지적 요구량을 채워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교수님 한분에 15명의 학생은 좀 많았다는 생각입니다.

이창복-앞서도 분류가 무시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사실입니다. 분류란 같고 같지 않은 것을 가려내는 것을 말합니다. 재떨이와 성냥은 같지 않은데, 어디가 어떻게 틀리므로 같지 않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입니다. 분류가 안되면 '무분별'이 되지요. 생태학 말씀을 하셨는데, 외국의 경우 생태학과 분류학은 같이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생태학은 따로 발전해도 분류가 기반이 되지 못했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김영기-무엇보다 교수님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삶의 자세에서 배운 바가 큽니다. 교수님을 '한국의 린네박사'라 부르고 싶습니다. 공부가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진정한 교육이지요. 그점에서 어떤 교육이 좋은 교육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현장교육에서 분류학은 중요도가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교과서에도 끝부분에 약간만 언급이 돼 있을 뿐이고. 쫓아다니며 왜 이렇게까지 해서 이름을 알아야 하나에 대해 생각해왔습니다. 김춘수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는 시에도 나오듯, 이름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류는 생리나 생태, 유전의 기초인 동시에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또 한가지 저는 지금까지 고교교사로 만족하며 살아왔습니다만 와서보니 자꾸 욕심이 생깁니다. 지금까지 취미삼아 해온 생태사진을 더 열심히 찍어 전시회라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김인진-생물교과에서 고사리에 대한 공부는 세대교번, 생식 분야에서 비중이 높습니다. 그러나 고사리의 내용이 이렇게 많은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포막의 형태 등을 가지고 동정하는데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러나 지식보다는 탐구의 자세에서 않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과정에서 문제점을 남겨 차후에 찾아보는 방식은 일선에서도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

김동석-분류는 육상식물만 해봤고 양치류는 어려우니 하지말라는 말을 듣곤 했죠. 다행히 이번 기회에 그 어렵다는 고사리 분류를 하면서 자신감을 얻게 됐습니다. 이번 탐사는 제게는 많은 반성의 계기가 됐습니다. 선생님들 모두 한가지 이상씩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시는 분야가 있는 것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이창복-선생님들 모두 열심히 하셨습니다. 공부란 죽을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지요. 장벽에 부닥치는 때가 발전하는 시기입니다. 안심하고 주저앉아 있으면 퇴보하게 마련이지요. 여러분이 이번 탐사에서 배운것을 나는 '자신감'이라고 요약하고 싶습니다. 배운 내용을 완벽하고 정확하게 아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이 아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고 계속 발전해나가야 합니다.

우리말에 '독불장군'이란 말이 있지요. 정치에서 무소속이 힘을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분류학도 혼자서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집단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지지요. 가령 여기 계신 15명이 일치단결하면 양치식물 뿐 아니라 어떤 연구도 가능할 것입니다. 선진국의 경우 그러한 동호인 모임이나 연구회가 방방곡곡에 있습니다. 나는 특히 우리 인구의 절반이 잠들어 있다고 보는데, 여성들의 힘을 이끌어낸다면 우리 식물 분류학도 엄청나게 발전할 겁니다. 여러분의 분발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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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서영아 기자
  • 사진

    전민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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