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생명을 끊는 자살행위는 인간들만의 것은 아니다. 동물도 나름의 이유와 목적 하에서 자살을 한다. 동물이 자살하는 원인에 대해 동족을 위한 자기희생론, 우울성향론 등의 논의를 실은 뉴욕타임스 근착기사를 싣는다.
자살은 자연법칙을 조롱할 뿐 아니라, 가능할 때까지는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존재의 본성을 무너뜨리는 행위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 진화유전학자들은 조금 다르게 보고 있다. 자살이 자연선택과 적응의 영역을 벗어난 탈선이라거나 인간의 병리학적 현상이라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들은 자살이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통적일 뿐 아니라 전체 사망원인의 약 1%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게다가 자살시도까지 고려한다면 그 수치는 더 올라간다. 이 발생 빈도는 사회적 불행이나 정신병리학적 사례라는 표준적인 설명으로 해석하기에는 너무 높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문화 대부분에서 자살에 집착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점에 착안,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이는 자살이라는 행위가 다윈의 이론으로 설명가능한 진화적 요소를 바탕에 깔고 있을지 모른다고 제안하고 있다. 자살하려는 경향이 진화의 한 시점에서 그 무리에게 이득을 주는 여러 특성들과 함께 생겨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자살은 자연 질서를 완전히 어기는 것이라기 보다는 냉혹하기 그지없는 자연선택 논리가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자살률이 상당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하버드 의대 임상 정신병학자이자 영국 케임브리지대 인류학자인 다니엘 윌슨 박사는 "비교적 공통적이고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모든 행동체계는 '이 체계가 선택되었는가,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자살 행위는 여러 문화에 걸쳐 비교적 안정돼 있다"고 말했다.
물른 그는 자살을 지시하는 일종의 유전자가 존재한다거나 자살이나 정신병을 좋은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파괴적인 행동에 합당한 진화적 설명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 희생인가, 우울증인가
자살에 대한 생물학적 이유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자신을 죽이려는 충동은 살아남는 친척들의 이득을 위한 자기 희생의 표현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가령 유인원 가족이 정글에서 사자를 만났을 때, 이중 하나가 스스로를 희생해 가족들을 살리면 그의 유전자는 생존한 형제·자매를 통해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반면 인간은 복잡한 집단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러한 순교에의 충동이 때로 복잡하고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다. 자신의 죽음에 의해 이득을 보거나 자신의 유전자를 보전시켜 줄 가족이 없는 경우에도 영혼을 바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이와 입장을 달리하는 다른 진화생물학자들은 자살을 유전적인 행동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우울한 상태가 되려는 경향을 선택한 데서 빚어진 비극적인 사건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윈주의 이론가들에 따르면 병적인 상황은 극도로 비참한 기분을 유발한다고 한다.
그들은 또한 우울한 기간이 유용한 것이 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때 일종의 감정적 동면에 들어가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는 것.
그러나 이러한 전략도 너무 오래 계속되거나 자주 반복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그것 자체가 심한 괴로움을 수반하는 우울증이 될 수도 있는 것.
어떤 연구자들은 인간이 동물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행동들 이상의 특성들을 개발해내지 못했다고 추론한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종에서 우울한 상태나 자살의 기원에 대한 힌트를 찾아내려 한다.
생물학자들은 친척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많은 생물들을 발견해 왔다. 어떤 개미는 적이 침입하면 자신의 배를 터뜨려 독성물질을 내뿜음으로써 종족을 지킨다.
또한 과학자들은 사람 이외의 많은 영장류 종들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생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런 예로 스트레스에 들볶인 원숭이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온갖 행동을 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영양실조로 죽을 때까지 음식을 거부하거나, 정신이 멀쩡한 원숭이라면 접근하지 않을 위험한 나뭇가지에 몸을 던지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원숭이의 우울증은 사람 우울증과 아주 비슷해서 프로작(Prozac)과 같은 항우울증(抗憂鬱症)제로 증상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한다.
진화유전학자들은 자살이나 우울증을 단순히 자연선택의 결과라고 설명할 때 발생하는 위험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이론적 영역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이런 비정통적인 추론과정을 통해, 이들은 자살시도 전에 생기는 행동 변화, 혹은 심한 정신병이나 자살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측면 등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기꺼이 죽는가, 할 수 없이 죽는가"
연구자들은 복잡한 동물행동에 대한 다윈적 설명이 흔히 과장되거나 단순화되곤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예전에는 동물에게 일어나는 일이 사람의 경우보다 아주 단순하다고 잘못 해석되었다. 인간 이외의 종에서 자살을 말할 때 예외없이 사용되는 나그네쥐 (lemming)의 경우를 보자.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설치류가 자명종이 '오늘은 죽기에 좋은 날'이라고 가리키면 떼를 지어 바다에 뛰어드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아냈다.
나그네쥐들이 떼를 지어 죽는 것은 상황판단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나그네쥐는 탐욕스러워서 서식지를 황폐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새로운 먹이가 있는 땅을 찾아 앞으로 전진한다. 그 길에 돌이 있든 나무가 있든 넘어간다. 물을 만나면 헤엄쳐 건너려고 한다.
코넬대 행동생태학자인 폴 W. 셔먼 박사에 따르면 이 물이 연못이나 개울 정도면 아무런 문제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호수나 바다를 만났을 때 그들이 잘못된 것을 알아차려 사태를 돌이키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너무 늦은 것이다.
생물행동학자들은 종종 야생에서 볼 수 있는 죽음이 고의적인 것인지, 사고에 의한 것인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곤 한다. 오로노 소재 매인대 야생 생물학 교수인 레이몬드 J. 오코너 박사는 함께 부화한 한배의 어린 새들이 서로 싸우는 대신 형제에게 순순히 죽임을 당하는 모델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목에 갈기가 있는 펭귄(crested penguin)의 어미는 한 철에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은 두 개의 알을 낳는다. 극 지방의 혹독한 환경 때문에 어미는 한마리만을 독립적으로 키울 수 있다. 보통 큰 알에서 태어난 놈이 살아남지만, 큰 알이 사고를 당할 경우에 대비해 두개의 알을 낳아두는 것이다.
오코너 박사는 어린 새가 죽임을 당하거나 자살을 묵묵히 인정해야하는 상황이 존재하며, 형제는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 과정이 더욱 빨리 진행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상황을 관찰하고도 작은 놈이 진정으로 죽는 것을 기꺼워하지는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노르만에 있는 오클라호마대 동물학 교수 더글라스 W. 모크박사가 그렇다.
"만약 구명선에 나와 마이크 타이슨, 단 둘이 타고 있고 살아남기 위해 적은 음식을 놓고 그와 내가 싸워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때 내가 몸을 숙이고 그를 구명선 밖으로 밀어낼 기회를 노리는 것이 유리할까, 아니면 달려들어 그로부터 한방맞는 것이 유리할까?"
죽음 통해 생식적으로 이득인 경우 '자살'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죽는 행위를 통해 생식이란 측면에서 얻는 것이 많고 잃는 것이 적을 때 '자살'이라고 부른다. 산타 크루즈에 있는 캘리포니아대 로버트 트리버스 박사는 보호색을 가지고 자신을 지키는 나비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생식기(生殖期)가 지난 나비들은 그들이 새에게 발각될 경우 새들에게 배경색과 보호색을 구별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게 되고 그 결과 어린 나비들이 위험에 처하기 쉽게 된다.
이렇게 자손들의 생존에 짐이 될 때 이 나비들은 땅 위까지 내려와 지쳐서 죽을 때까지 날개짓을 해댄다. 새에게 잡히기 전에 자신의 흔적을 감추는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는 다른 예들도 얼마든지 있다. 파리같이 생긴 어떤 작은 곤충(gall midge)은 어미가 자신의 몸뚱이를 새끼들에게 먹이로 제공한다. 털이 없고 앞을 못보는 두더지 (mole rat)는 기생충에 감염되면 복잡한 굴의 공공화장실쯤에 해당하는 곳으로 가서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무른다.
이 두더지를 수년간 연구한 셔먼 박사에 따르면 두더지는 절대로 그곳으로부터 기어나오지 않고 강제로 먹이를 먹일 수도 없었다고 한다.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무리 전체가 병에 감염되는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조치하는 것이다.
자신을 희생해서 일가붙이에게 이득을 주는 경우는 사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엄마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죽는다거나 전쟁 영웅이 동족을 위해 장렬히 산화한다거나 하는 예들이 그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늙거나 병의 말기에 이른 환자들이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스스로 죽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연구자들은 이러한 식의 추론들이 흔히 정신 이상이나 돌봐줄 사람이 없어 외롭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살이라는 행동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는 것은 꺼려하고 있다.
정신병학자들이 관찰한 바로는 자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종종 '자살이 가족이나 친구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전적으로 이타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고 한다. 시카고 주재 자살방지연구소의 데이비드 C. 클락 박사가 심각한 자살 시도를 한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같이 이타적인 내용들이었다.
개체의 성격인가, 화화작용인가
자살전문가들은 자살한 사람들 대다수가 우울증이나 조울증과 같은 정신병으로 고생하던 이들이었다고 말한다. 정신병은 뇌의 화학적 변화를 촉진시킨다.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나 세로토닌(serotonin)같은 신경전달물질은 신경 세포간 신호 전달이나 감정과 공격성 등을 조절하는 분자들인데, 병적 상황에서는 그 양이 감소한다.
과학자들은 사람 이외의 영장류들이 자신을 돌보지 않는 등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는 것을 관찰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은 여덟살바기 침팬지가 어미가 죽었을 때 시체 옆을 떠나려고 하지도 않고 먹는 것도 거부하는 깊은 절망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을 목격했다. 구달과 함께 연구했던 하버드대 리차드 랭험 박사는 아래와 같이 증언했다.
"침팬지는 서서히 피골이 상접해 가더니 결국 죽어버렸다. 제인은 침팬지가 실의에 빠져 죽었다고 말했는데, 전적으로 옳은 해석인 것 같다."
원숭이가 침체된 기분일 때 수반되는 생화학적 변화를 연구한 학자들은 이때의 변화들이 우울증인 사람의 경우와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베데스다의 아동 보건과 인간성장 국립연구소의 비교행동학 연구실장인 스테판 J. 수오미박사는 붉은털 원숭이 (rhosus monkey)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이 원숭이들이 친척이나 짝을 잃거나 사회적 지위가 하락했을 때 약 20% 정도가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는 경향이 있음을 알아냈다. 이러한 통계 수치는 인간의 경우와 거의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우울증에 빠진 원숭이의 대뇌 화학변화는 신경생리학자들이 인간에서 관찰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중추신경계 노르에피네프린 수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미시건의 네시박사 등이 우울한 상태가 사람이나 동물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가늠해 보도록 해주고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를 궁리할 수 있는 이점을 준다고 보는 것은 반박의 여지가 있다. 뿐만 아니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자살과 같은 값비싼 대가를 어떻게 피해갈 것인가라는 의문을 낳는다.
그래서 수오미박사 같은 사람들은 우울한 상태에 대해 덜 긍정적인 관점을 피력한다. 그는 우울증을 시기가 잘 맞아 떨어졌을 때는 꽤 큰 이익을 가지고 올 수도 있는 것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원숭이들이 가끔 사회의 계급조직에서 최상위에 이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수오미 박사의 말에 따르면 이는 자연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 어떤 일이 잠재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을 때 이 일은 또한 잠재적인 이익을 동반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민감한 개체들은 그들의 동료들보다 포식자가 다가오는 소리라든가, 새로운 동료의 불확실한 몸짓과 같은 중요한 변화들을 잘 알아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냄새맡고 느낀다. 그들은 마치 아름다운 바이올린에 걸려 있는 평평한 현(絃)과 같다. 너무 거칠게 연주하면 이 현은 뚝 끊기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