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늙는가. 프로그램설 가처분신체론 등 여러가지 이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도 수수께끼에 싸여 있는 것이 노화이다. 인간의 수명 연장에 도전하는 최신 이론을 소개한다.
에오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이다. 트로이의 왕자 티토노스를 사모한 끝에 황금전차로 그를 납치했다. 그리고 제우스에게 간청하여 그에게 불사(不死)를 허용하도록 했으나 영원한 젊음을 함께 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날마다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마음 아파했다. 마침내 그가 수족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뒷바라지에 지친 나머지 침실에 유폐하여 결국 귀뚜라미가 되게 했다.
우리는 그녀가 지금도 흘리고 있는 통한의 눈물을 이른 새벽 풀잎에 내리는 이슬로 보고 있다.
수명은 타고 나는가
우리는 티토노스처럼 조만간에 늙게 되고 이윽고는 죽는다. 나이를 먹어 불편한 일이 나타나는 현상을 노화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노화의 굴레에서 벗어날수 없다. 노화는 여러가지 이론이 제안되었으나 아직까지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구 위의 생물은 노화되지 않는 것이 없다. 노화는 진화의 산물이다. 따라서 노화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과학적 근거는 진화론이다. 과학자들은 1800년대 말엽부터 다윈의 진화론에 입각하여 노화의 설명을 시도했다. 다윈 이론의 중심개념은 자연도태이다. 자연도태는 적자생존으로 규정된다. 환경에 잘 적응하는 개체는 그렇지 못한 개체보다 자손을 더 많이 생산한다는 뜻이다. 요컨대 자연도태는 적자의 적성(fitness)을 높이는 유리한 형질을 선택하여 보전시킴으로써 생물로 하여금 세대를 거듭하면서 단계적으로 적응능력을 축적하도록 한다.
자연도태개념으로 노화를 설명한 학자들은 종의 보존 측면에서 노화가 불가피하게 진화된 것으로 보았다. 종의 보존을 위해서는 생식능력을 상실한 동물을 도태시켜 젊은 동물의 적성을 증대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에 노화가 발생했다는 생각이다. 자식을 본 뒤에는 젊은 동물의 먹이를 축낼 뿐 종의 보존에 백해무익하므로 살아남을 이유가 없어서 노화가 진화되었다는 아이디어이다. 이러한 논리의 밑바탕에는 유기체의 파괴가 유일한 목적인 유전자가 있으며 그 내부에 노화가 미리서 프로그램되어 있다는 암시가 깔려있다. 말하자면 생물은 태어날 때부터 수명을 결정하는 프로그램이 짜넣어진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운명론적인 노화이론을 수명프로그램설이라 한다.
세포의 수명 발견
수명프로그램설은 동물이 대부분 조악한 환경에서 노화될 때까지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에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인간의 역시를 되돌아보더라도 사람은 젊어서 죽었다.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대개 75살까지 살지만 지나간 역사를 통틀어 기대수명(life expectancy)은 고작 해야 30—40살에 머물렀다. 그러나 수명프로그램설을 밑받침하는 증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유전적 조로증이 좋은 보기이다. 베르너 증후군(Werner's syndrome)의 경우, 정상적인 사람의 노화를 연상시키는 증세가 젊어서 나타난다. 스무살무렵에 흡사 노인처럼 주름살이 생기고 백발이 된다. 백내장이나 동맥경화 등 노인이 걸리기 쉬운 질병이 나타나며 마흔살 쯤에 죽어버린다.
만일 개체에 수명이 정해져 있다면 생명의 기본단위인 세포에도 수명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시험관에서 배양한 세포가 노화연구의 중요한 재료로 각광을 받는 이유이다. 그러나 1950년대에는 인체의 세포를 추출하여 배양하면 무한정 분열하여 증식할 것으로 믿었다. 세포의 쇠퇴를 좌우하는 프로그램에 의해서 노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61년 미국의 레너드 헤이플릭이 이러한 고정관념을 뒤엎는 충격적인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태아로부터 추출한 세포를 배양한 실험에서 50번의 세포분열 끝에 증식능력이 상실되는 것을 발견했다. 또 성인의 세포는 약 20번 분열 한 뒤에 사멸하였다. 50번 분열하는 태아의 세포를 20번 분열시킨 다음에 동결보존 하였다가 다시 배양을 시켜 보았으나 30번 분열하고 정지하였다. 따라서 헤이플릭은 정상세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에 정해진 수명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헤이플릭 한계 (Hayflick limit) 라고 불리는 이 실험치는 노화연구에 있어 획기적인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전자 속에 수명과 노화를 결정하거나 적어도 매우 큰 영향을 주는 인자가 포함되어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헤이플릭 한계는 그 후로도 여러차례 다른 학자의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물론 모든 세포가 반드시 노화되고 죽음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두 종류의 세포는 영구불멸 한다. 하나는 생식세포, 즉 난자와 정자이고 다른 하나는 암세포이다.
유전자의 이중적 기능
수명프로그램설에 맞서는 노화이론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예컨대 1957년 미국의 조지 월리엄스가 내놓은 이론이다. 그의 이론은 두가지 가정에서 출발한다. 첫번째 가정은 개별적인 유전자가 여러가지 생물학적 과정에 관여한다는 것이다. 다면발현(多面發現)이라 일컫는 개념이다. 같은 유전자가 하나 이상의 표현형 특징을 조절하는 현상이 다면발현이다. 눈색깔이나 크기 등 개체의 관찰가능한 특징을 표현형이라 한다. 두번째 가정은 어떤 유전자는 생명의 초기에 생존에 도움이 되지만 나중에는 생리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월리엄스는 두개의 가정을 적자생존 개념에 연결시켰다. 다른 개체보다 성공적으로 생식기능을 발휘하는 적자는 자연도태의 압력이 감소되기 때문에 오래 살아남게 되고, 따라서 생명의 후기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자연도태에 의해 제거되지 않기 때문에 노화가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월리엄스는 이러한 이중적인 과정, 이른바 대립적 다면발현(antagonistic pleiotrophy)이 노화의 유전적 기초를 제공한다고 주장하였다 .
대립적 다면발현을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는 성 호르몬을 합성하는 유전자이다. 난소에서 나오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배란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에스트로겐에 장기간 노출되면 유방조직에 악성종양이 생기기 쉽다. 중년부인들이 유방암에 걸리기 쉬운 이유의 하나이다.
한편 1977년 영국의 토마스 커크우드는 월리엄스와 다른 각도에서 대립적 다면발현 개념을 적용한 노화이론을 제안했다. 그는 유기체가 항상 신체의 보존과 생식을 위해 생리적 에너지를 쪼개 쓰지 않으면 안된다고 전제하였다. 그리고 종의 적성을 최적화시키기 위해서 생식보다는 신체 보존에 에너지를 더 적게 할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신체의 완벽한 보존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세포와 조직 안에서 미처 수복(修復)되지 못한 결함이 누적되어 노화가 불가피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전자의 제어를 받는 신체의 수복체계가 종의 보존을 위해 유기체의 생식을 보장할 만큼 우수하긴 하지만, 개체의 보존을 위해 신체의 사멸을 방어할 만큼 우수하지는 못하므로 노화가 발생된다는 이론이다. 종의 보존이 개체의 보존을 우선한다는 원칙에 입각한 이론이다. 노화는 생식능력의 극대화를 위해 치르는 대가라는 뜻이다.
커크우드의 이론은 마치 단기간 사용될 소모품을 만들 때 내구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신체 역시 제한된 시간에 사용된 뒤 버려 진다는 의미에서 가처분 신체론(disposable soma theory) 이라 명명되었다. 소모되는 것은 물론 생식능력이 없는 체세포이다. 그러나 생식세포는 종의 보존을 위해서 반드시 완벽한 자기수복 능력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체세포가 전체 수복능력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커크우드는 체세포가 40년정도 버틸 수 있도록 보완체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사람은 중년을 넘길 무렵부터 서서히 환경적응 능력을 상실하여 결국 노화되어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가처분 신체론에 의하여 이론적 지지를 얻게된 노화이론의 하나는 교차결합(crosslink) 이론이다. 신체는 뼈나 힘줄 등 결합조직에 의하여 지탱된다. 결합조직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단백질은 콜라겐이다. 콜라겐이 기능을 발휘하려면 그들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 반응이 일어나서 더욱 강한 교차결합이 형성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교차결합은 집을 지을 때 재목을 단단히 죄는 못의 구실을 한다. 사람이 성장할수록 결합조직의 기계적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 교차결합은 더욱 증가한다. 그러나 교차결합은 멈춤이 없이 진행되므로 나중에는 콜라겐이 필요 이상으로 딱딱해져서 도리어 나쁜 영향이 나타난다. 콜라겐의 경직된 벽이 조직 사이에 생기면 산소나 노폐물의 수송이 원활하지 못해 세포기능이 저하됨에 따라 전신에 걸쳐 노화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자유기 이론의 재발견
1950년대 중반에 미국의 덴햄 하먼이 제안한 산소 자유기(free radical)이론 역시 가처분 신체론의 이론적 뒷받침을 받고 있다. 강력한 산화제인 자유기는 자동차가 휘발유를 연소할 때 내놓는 매연처럼 신체가 에너지를 사용할 때 부산물로 나오는 유독물질이다. 사람의 기관은 호흡이나 소화과정에서 매일 약 1백억개의 자유기를 내놓는다. 자유기는 자동차의 쇠를 산화시켜 갉아먹는 녹처럼 거의 모든 생체분자를 산화시켜 세포를 손상시킨다. 젊었을 때는 세포가 자유기의 공격을 물리칠 능력이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방어능력이 쇠약해져서 세포가 죽어가므로 노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자유기 이론은 오랫동안 무시되었으나 80년대 후반부터 가장 각광을 받는 노화이론으로 부상했다. 디옥시리보 핵산(DNA)과 단백질의 산화가 노화를 촉진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된 덕분이다.
1990년 나이든 사람의 심장과 뇌의 세포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가 태아의 조직에서 발견되지 않는 결함을 갖고 있음이 보고되었다.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호흡하여 에너지를 만드는 세포의 발전소이므로 자유기의 주요 공급원임과 아울러 자유기의 끊임없는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 미토콘드리아 DNA가 산화되어 손상되면 에너지 생산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결국 에너지에 굶주린 세포는 기능이 저하되므로 노화가 촉진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1991년에는 단백질에 대한 자유기의 공격이 생리적 기능을 훼손시키는 사실을 입증하는 최초의 증거가 제시 되었다. 그리고 PBN(phenylbutylnitrone)이라 불리는 화합물이 단백질의 산화를 감소시켜 젊음을 유지시킬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더욱 놀라운 증거는 베르너증후군 환자로부터 나왔다. 같은 또래의 정상적인 사람보다 단백질이 산화된 정도가 극적으로 높게 나타난 것이다. 자유기의 각종 연구는 유전자의 수명프로그램설보다는 신체의 마손을 완벽하게 수복하지 못해서 노화가 불가피하다는 가처분 신체론의 입지를 강화해 주고 있다.
수명연장에 성공
노화의 이유는 이와 같이 여러 각도에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노화이론도 아직까지 검증되지는 못했다. 노화의 열쇠가 유전자 안에 숨어 있음을 알고 있지만 노화를 제어하는 유전자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 일군의 소장학자들이 십수년전만해도 엄두를 못낼 작업, 즉 노화에 관련된 유전자를 찾는 일에 도전하고 나섰다. 그들은 단순한 생물의 수명을 연장 시키는 유전자를 찾아내는 접근방법으로 노화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고 있다.
금년에 39살되는 미국의 마이클 로즈는 초파리를 사육하여 수명이 두배 정도 연장된 것을 만들어냈다. 이 초파리에서 장수에 관련된 유전자를 발견했을 뿐만아니라 자유기를 중화시키는 산화방지 효소를 보통 초파리보다 더 많이 생산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에 고무된 로즈는 장수하는 생쥐를 만들어서 노화관련 유전자를 찾아낼 계획이다. 생쥐가 포유동물이므로 초파리보다는 유전적으로 사람에 가깝기 때문이다. 약 1천만달러가 소요될 이 연구는 므두셀라(Methuselah)프로젝트로 명명되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므두셀라는 가장 장수한 인물로서 9백 69년을 생존했다. 불로초를 찾던 진시황이 살아 있다면 선뜻 연구비를 대줄지도 모르겠다.
로즈의 발견과 유사한 연구성과가 미국의 토마스 존슨으로부터 나왔다. 마흔살되는 1988년에 땅속에 사는 작은 벌레의 유전자를 변화시켜 평균수명이 70% 가량 증가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이 벌레 역시 산화방지 효소를 다른 벌레보다 더 많이 생산하고 있었다. 존슨은 그가 변화시킨 유전자를 에이지 1호(age-1)라 명명하고 이와 비슷한 것을 생쥐와 사람으로부터 찾아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인간의 노화과정은 헤이플릭의 배양세포와 하먼의 자유기 등 놀라운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수께끼 투성이이다. 또한 노화의 신비가 밝혀져서 수명이 어느 정도까지 연장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추측이 개진되고 있다. 1백 20살에서 4백살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더욱이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려는 연구의 당위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명하는 견해가 적지 않다.
물론 노화연구의 부산물인 PBN이나 산화방지효소를 개발하여 노후의 질병, 예컨대 암 심장병 또는 뇌의 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 헌팅턴병 알츠하이머병들을 치료할 수 있다면 인류의 복지가 증진될 것이다. 그러나 수명연장으로 야기될 인구통계학적 변화가 사회적 측면에서 엄청난 충격을 몰고올 것이기 때문에 수명연장이 인류 전체의 삶에 진실로 이익이 될 것인지 여부를 진지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장수는 반드시 좋은 것인가
65살 이상의 노년층 인구는 1900년에 전체 세계인구의 1%미만이었지만 1992년에는 6.2%로 급증했으며 2050년까지는 25억명으로 불어나 전체 인구의 20%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불로장수약까지 개발된다면 지구는 아마도 취업 주택 교통 등 사회적 문제로 엄청난 파국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이 대목에서 로즈의 다음 말은 곱씹어볼만하다. "수명연장 연구는 고성능 폭탄을 만들거나 달에 사람을 보내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제3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을 예방접종 시키는 것보다 나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장수는 모든 사람의 소망이다. 장수한 사람들이 화제가 되는 이유이다. 1566년에 1백2살로 죽은 어느 베니스 귀족이 밝힌 장수비결은 20세기 초반부터 학계의 연구주제가 되었다. 그는 매일 14온스의 음식밖에 먹지 않았다. 소식으로 칼로리 소비를 줄이는 것이 장수의 첩경이라는 뜻이다. 아울러 채식이 권장되고 있다. 푸성귀에는 산화방지제가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촌, 예컨대 히말라야산맥의 훈자 왕국이나 일본의 유즈하라 산촌에서는 야채가 주식이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최장수 기록보유자는 일본의 시게찌요 이즈미라는 사람이다. 1986년 폐렴으로 죽을 때까지 1백20년 2백37일을 살았다. 그는 장수한 까닭을 부처님과 태양에게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