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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구는 생물이 살기 알맞도록 환경을 조절해 왔다

생물ㆍ무생물의 상호작용

가이아 이론은 지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지구상에 생명이 태어난 시점부터 지금까지, 지구의 대기권 암석권 생물권을 지배하며 항상성을 유지시켜온 실체가 '대지의 여신' 처럼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이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는 살아 있다"는 가설이다. 가이아(Gaia)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을 가리키며, 지구는 살아있다는 주장이 전개되면서 지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말이다.

가이아로 표현되는 지구란 현재의 지구 그 자체만은 아니다. 가이아는 공간적으로 대기권과 암석권 생물권을, 시간적으로 지구상에 생명이 태어난 시간부터 지금까지를 포함한다. 즉 가이아란 공간적, 시간적 경계를 가지는 하나의 실체이며 바로 이 실체가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살아 숨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옛부터, 즉 지구상에 생명이 존재하기 시작한 때부터 이미 숨쉬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가이아 이론은 러브록(Lovelock)이라는 영국 대기과학자가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1978년에 '지구상의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표하였다. 이후 그 자신에 의해 보완된 책만도 두권이 더 출판 되었고 미국의 여성 미생물학자인 마굴리스가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글들을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 권위를 가진 미국 지구과학회에서도 특별 심포지움을 개최하여 이 문제를 가지고 토의했을 정도로 과학자들 사이에서 이미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가이아 이론의 구성

여하간 가이아 이론이 과연 얼마나 타당성 있는 이야기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은 얼마나 이 이론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혹시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이론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이 이론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모두가 의문투성이일 것이다.

'지구가 살아 있다'는 주장은 크게 다섯 가지 내용으로 전개된다.

1) 지구에서 생물계는 무생물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2) 물론 이때 무생물계 역시 반대로 생물계에 영향을 미친다.

3) 생물계가 무생물계에 미치는 영향은 무생물계가 안정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4) 지구의 환경은 이렇게 안정되게, 또 오랫동안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는바, 이는 생물계에 의해서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생물계를 위해서' 이루어졌다.

5) 따라서 생물계는 지구 환경을 생물이 살기에 가장 좋은 조건이 되도록 조절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생물이 지구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위 내용들은 생물과 지구환경이 상호관련성을 갖는다는 사실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생물이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생물계에 유리한, 좀 더 강하게 표현한다면 '생물계를 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러브록은 이를 바탕으로 생물이 지구의 환경을 생물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바꾸어가고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지구가 살아 있다는 주장은 이들 내용과 연결돼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우선 생물계가 무생물계에 미친 영향이 무생물계, 즉 지구환경이 안정되는 방향으로 진행된 결과 지구는 오랫동안 어느 정도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 이를 항상성(恒常性)이라고 한다.

항상성은 생물계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하므로 이는 지구 스스로가 자기조절의 기능, 즉 능동적인 기능이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았다. 생물에 유리하게, 생물이 존재하기 위해서 능동적으로 지구환경을 변화시켜 왔다는 것은 곧 '지구는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가이아 이론에서 제시하는 증거들은 대부분 지구가 일정한 환경을 유지한 사실들과 관련된 것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생물이 사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기 중 산소가 일정한 양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것과 대기 온도 역시 생물이 얼어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 수 있도록 유지되어 왔다는 것, 그밖에 바닷물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는 것 등이다.

이렇게 일정한 환경이 유지된 것이 생물의 작용에 의한 것임이 강조된다. 생물이 지구가 탄생한 이래 멸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존재해 왔음을 주장하는 것이 내용의 핵심이다. 가이아 이론의 주창자들이 제시하는 이러한 증거들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대기중 산소가 21%인 이유는?

대기중 산소는 약 6억년 전부터 지금까지 21% 정도로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러면 최초의 지구는 어떤 상태였을까? 46억년에 탄생한 지구는 수증기와 이산화탄소가 주성분인 대기로 둘러싸여 있었다. 지구가 식기 시작하면서 수증기는 물이 되고 이산화탄소가 주성분이 되었다.

여기서 주성분이 이산화탄소에서 산소로 변화한 것이 생물작용이었음을 가이아론자들은 강조한다. 육상 식물이나 바다의 조류들이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바다의 많은 동물들도 석회석 껍질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이들이 죽으면 바다에 쌓인다. 석회석은 칼슘과 이산화탄소가 반응하여 만들어지는 암석으로 1㎥석회석을 녹이면 3백㎥의 이산화탄소가를 발생한다. 결국 이산화탄소는 생물작용, 또는 석회석 형성에 의해 제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산화탄소가 제거되는 과정은 산소가 생성되는 과정과 동시에 진행되었다고 한다. 시생대 말기에서 원생대까지 대기중 산소 함량은 약 1%에 불과했으나 이후 육상식물이 번성하면서 산소가 현재 농도인 21%에 이르게 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이 산소 농도가 유지된 이유는 산소의 연소성 때문이라고 한다. 산소 농도가 15% 이하이면 공기 중에서 불이 붙지 않는 반면, 25%가 넘으면 자연적으로도 불이 발생하므로 지구상의 산소 농도가 과도해지면 불이 나서 대부분의 삼림을 태워 버려 산소농도가 다시 낮아진다고 하였다. 이것은 지층 속에 식물이 타서 형성된 석탄층이 2—3억년 전부터 나타남을 관찰하여 추론한 결과다.

생물에 의해 산소가 조절되었음은 현재 생물이 존재하지 않는 태양계의 다른 행성과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표1)은 금성과 지구의 대기 조성을 나타낸 것이다.

금성 화성뿐 아니라 생물이 없는 가상의 지구도 현재의 지구보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낮고 산소 농도는 높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생물작용에 의해 변화된 환경이라 보았고 생물에 유리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표1) 금성 화성 지구의 대기조성 온도 기압
 

생물이 기후 조절 담당

가이아 이론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지구의 기후 조건이 일정하고 생물에게 안락하다는 사실이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방사에너지는 생물이 태어난 초기 시대에 지금보다 약 30% 적었으므로 지구가 얼어 있어야만 했고 생물은 살지 못했어야만 했다.

반대로 이 시기의 온도가 생물이 살기에 최적이었다면 오늘날의 온도는 지구 온도가 태양광의 증가와 함께 올라가야만 했기 때문에 생물이 살기에 적합치 않아야만 한다. 태양광이 약 30%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온은 생물이 살기에 적당한 온도로 머무는 사실(현재 지구의 평균온도는 13℃ 이다)을 생물의 작용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이아론자들의 주장이다.

지구 온도는 온실효과와 알베도 효과에 의해 조절된다. 온실효과에 관여하는 기체는 수증기와 이산화탄소다. 최초의 지구는 이산화탄소로 둘러싸였다고 한다. 만일 이산화탄소로 둘러싸이지 않았다면 태양에너지가 지금보다 적었던 시대에는 약 -19℃였을 것이다. 이산화탄소로 둘러싸여 따뜻한 기온을 유지했던 지구는 이산화탄소가 감소하면서 찬 지구로 변해야만 하는데 온화한 기후가 유지 되었던 것은 알베도 효과로 설명한다.

알베도란 지구에 입사되는 에너지량과 지구로부터 반사되는 에너지량의 비(比)다. 이는 지구의 색깔과 관계가 있다. 지구의 색깔이 검은색에 가까우면 열을 많이 받아들여 온도가 을라갈 것이고 흰색에 가까우면 열을 반사하므로 온도가 내려갈 것이다. 이때 지구의 색깔을 결정하는 것이 식물의 번성 정도라는 것이 가이아론자들의 설명이다. 이를 데이지라는 식물의 색깔로 설명하였다(22페이지 참고).

생물은 알베도를 조절했을 뿐 아니라 온실 효과를 나타내는 이산화탄소의 양, 수증기의 양도 조절하였다. 열대지방에서는 활엽수가 증산작용을 활발히 하므로 이때 증발된 수증기가 구름이 되어 하늘을 덮고 있어 강한 열을 차단하고 있다. 바다에서도 미세한 조류들이 합성하는 황산, 혹은 황화디메틸(DMS)이라는 물질이 대기로 방출되어 구름의 응결핵으로 작용, 구름의 형성을 돕는다.

이 구름이 바다를 적당히 덮고 있어 바닷물이 더워지는 것을 막는다는 것이다. 온도가 높아지면 조류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이 결과 더 많은 DMS가 방출되고, 더 많은 구름이 형성되어 바다를 식게 하므로 기온이 조절된다고 보았다.

바닷물은 1㎏ 당 35g의 소금을 함유한다. 약 3.5%에 해당하는 소금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 소금의 양이 오랫동안 일정 정도로 유지된 것도 생물에 의한 작용이라는 주장이다. 소금을 형성하는 이온들은 육지에서 암석이 풍화작용을 일으켜 바다로 유입된 것들이므로 이들 이온은 바다에서 계속 증가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정도에 머무는 것은 바다에서 소금이 다시 계속 제거되었음을 뜻한다. 이는 열대지방의 바닷가에서 이루어진다. 즉 자그마한 호수(lagoon)가 바닷가에 형성되어 바닷물이 갇히면 증발되어 소금이 되고 이것이 지각변동 때 지하에 묻히게 되는 것이다.

이때 호수를 생기게 하는 물질이 바로 생물이다. 열대지방에는 지금도 산호나 스트로마토라이트라는 구조에 의해서 생기는 호수가 많이 있다. 즉 호수의 벽은 생물이 만든 것이다.

가이아 모습 자체가 생명 상징

대기로 둘러싸인 푸른색 지구를 가이아론자들은 생물에 의해서 조절되는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것이라고 묘사했다.

대기 해양 지표면 등은 이 살아있는 실체의 머리카락 손톱 깃털 등에 해당하며 지표면의 물 흐름은 피가 흐르는 순환계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지구 암석은 골격에 해당되는 등, 살아 있는 생명체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가이아 가설의 의미

1991년에 러브록은 다시 '가이아의 지구 생리학'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질 순환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움직이는, 생리작용을 가진 실체로서 간주한 것이다.

즉 지구는 지구생리학이라는 관점에서 보아 외부와 교환하면서 외부의 조건이 변화하더라도 스스로 내부 조건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것이다.

가이아 이론을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가를 지금의 과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판단하려면 그 내용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야만 한다. 지구가 일정한 환경을 가지고 생물이 살 수 있도록 유지되어 왔다는 것은 대부분이 인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즉 가이아 이론의 내용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생물계와 무생물계가 상호작용하여 안정된 계를 이루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작용이 '생물계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할 것이다. 즉 지구가 능동적으로 생물이 살기 적합하도록 환경을 조절해 왔다는 것은 과학적 성격을 벗어나는 해석이라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지구는 살아 있다'는 주장 역시 무리한 점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아 이론에 대해 많은 논란이 이루어지는 것은 다음 몇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지구가 살아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러브록이 펼치는 논리는 지금까지 이와 유사한 논리들보다 훨씬 잘 무장되어 있다. 많은 과학적 증거들을 제시하였으며 또 이를 일관성있게 정리하여, 반박의 여지를 없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가 주장한 가설이 우리 인간생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점이다.

지구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는 현 시점에서 지구가 살아 있음에 대한 애착을 가지도록 한 것은 가이아 이론이 크게 공헌한 부분이다.

러브록 스스로는 지구가 조절작용에 의해 환경을 극복해가고 있으므로 인간에 의한 노폐물이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경론자들이 지구가 살아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이 이론이 우리가 사는 지구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환경문제는 인간에 의해 주로 유발되므로 인간이 지구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좀더 고려하고 인간이 지구와의 관계에서 어떤 윤리적 사고를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 추가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능동적 변화주체로서 생물 역할 증명한 데이지 세계 모델
 

(그림1) 데이지 세계의 진화양식^모델(A)는 전통적인 개념을 이용한 것이고, 모델(B)는 새로운 지구물리학 개념을 이용한 것이다. 모델(A)에 따르면 데이지들은 기온의 변화에 단순히 반응하거나 적응할 뿐이다. 그러나 가이아 이론에 따르는 모델(B)에서는 옅은색꽃과 짙은색꽃이 경쟁하는 생태계 반응을 통해 태양열의 세기가 넓은 범위게 걸쳐 변하더라도 기온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가이아 이론에서는 지구의 모든 생물이 서로 연계하여 전체 생물권(biosphere)의 생존에 적합하도록 토양 해양 대기권의 조성까지도 변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능동적인 생물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서 러브록은 동료인 앤드류 왓슨과 공동으로 1983년에 '데이지 세계(Daisyworld) 모델'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데이지 세계 모델은 일종의 시뮬레이션 모델로, 지구와 똑같은 크기를 갖는 가상 행성을 가정한다. 이 행성의 주생물은 데이지라는 국화과 식물. 꽃의 색이 짙은 종과 옅은 종의 두가지가 있다고 가정했다.

데이지 세계 모델에서는 환경조건을 단 한가지 변수, 즉 온도 하나로 단순화하고 생물계는 하나의 생물종, 즉 데이지로 한정했다. 데이지는 20℃ 내외의 기온에서 가장 잘 자라는데, 만약 5℃ 이하로 내려가면 성장을 멈추며, 40℃를 넘어서면 시들어서 결국은 말라죽게 된다.

데이지 세계의 평균 기온은 지구와 마찬가지로 태양으로부터 오는 입사열과 지표면에서 발산하는 장파장 복사열의 균형점에서 결정된다고 가정했다. 아무 생물도 자라지 않을 때 이 행성의 알베도(albedo)는 대략 0.4 정도라고 가정하는데, 이는 태양빛의 약 60%만이 행성에 흡수된다는 의미다. 데이지가 만개하면 그 색깔에 따라 짙은색(알베도는 0.2)으로부터 옅은색(알베도는 0.7)에 이르기까지 알베도가 달라진다고 가정했다.

데이지 세계에 처음 생물이 나타났을 때의 환경 조건은 원시지구의 상태를 가정, 태양의 밝기가 현재보다 30% 낮게 책정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태양은 점차 그 밝기를 더하게 되는데, 이에 비례해서 이 행성의 평균 기온은 (그림 1-A)와 같이 상승일로를 나타낼 것이다.

이런 기온 변화에 대해 데이지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낼까? 먼저 과학계의 전통적인 견해를 살펴보자. 행성 기온이 상승하여 10℃ 정도에 이르면 데이지들은 갑자기 번성하기 시작할 것이다. 20℃ 정도의 기온에 이르면 최고의 번성을 구가하다가, 더욱 기온이 상승하면 갑자기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그림 1-A).

그러나 러브록의 이론에 따르면 데이지 세계의 기온변화는 전혀 다른 양상을 나타낼 수 있다. 처음 태양의 밝기가 그리 강하지 못하여 지구의 기온이 낮을 때에는 데이지들의 성장이 무척 더뎠으며 오직 적도지방 부근에서만 꽃을 피울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꽃을 피운 데이지들이 짙은색과 옅은색 꽃을 모두 지녔다고 가정하자.

첫번째 여름에 짙은색 데이지들이 그렇지 못한 데이지들보다 성장이 유리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짙은색 꽃을 피웠던 지역에서는 태양빛을 보다 많이 흡수할 수 있었으므로 기온은 5℃ 보다는 상승할 것이다. 반면 옅은색 데이지들이 점유했던 지역에서는 태양빛 반사가 많았으므로 데이지의 절대 생장온도인 5℃보다 주위 기온이 낮아져 데이지들이 사멸케 될 것이다.

이듬해에는 짙은색 데이지들이 보다 많은 씨앗을 남길 수 있었으므로 처음부터 크게 번성할 수 있다. 짙은색 데이지들이 만개하게 되자 처음에는 데이지꽃 자체의 온도가 상승하고 이어 토양과 주변의 대기 온도가 높아지게 될 것이다. 이런 기온 상승에 힘입어 점차 데이지들이 적도 부근에서 양극쪽으로 퍼져 나가면서 처음에는 그 지역의 기온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데이지 행성 전체의 기온이 상승하기 시작할 것이다.

행성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데이지의 성장이 가속화되고 생장기간이 길어진다. 이어서 짙은색 데이지들이 보다 널리 퍼져나가게 되어 이러한 작용이 양의 피드백 (positive feedback) 효과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 그 결과 행성 대부분이 짙은색 데이지들로 뒤덮이게 될 것이다.

이러다 보면 행성 기온이 너무 상승해서 데이지 생육이 저해받는 시점이 이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짙은색 꽃들이 씨앗을 맺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되면, 옅은색 데이지들이 짙은색 데이지들과 경쟁할 수 있게 된다. 옅은색 데이지들은 주위 환경보다 자신의 체온을 낮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성장이 빨라 크게 번성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데이지들은 옅은색 종과 짙은색 종이 매년 그 조성비를 달리하여 번성하면서 행성의 기온을 자신들의 생육에 적당한 범위 내에서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기간 중에 태양빛 세기와 같은 외부적인 환경인자가 상당한 정도까지 변화를 보이더라도 데이지들은 그에 따른 영향을 무난히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러브록이 간단한 수식을 사용해서 작성한 데이지 세계 모델은 태양빛 강도가 지구 생물 진화의 기간 동안 30%나 강해지는 조건 속에서도 데이지들이 행성 지구의 평균 기온을 20-30℃ 범위 내에서 유지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그림 1-B). 이에 반해 데이지들이 존재하지 않는 무생물 행성에서는一또는 생물들이 지구의 물리화학적 과정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는 이론에 따른다면一태양열 증가로 지구 기온이 50℃ 이상까지 상승할 수 있다.

만약 데이지 세계가 두가지 종이 아닌, 세가지 데이지들로 이루어진다면 어떨까? 짙은색, 옅은색, 그리고 중간색 꽃을 피우는 데이지들로 이루어진 행성 모델에서는 (그림2)와 같은 기온 변화를 보여 주었다. 러브록은 데이지들의 종류가 10개, 20개나 되는 행성 모델에 대해서도 검토했는데 데이지의 종류가 많아질수록 행성의 기온조절에 더욱 유리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러브록은 또한 생태학에서 널리 인용되는 피식자-포식자 관계(prey-predator relationship) 수식을 차용하여 데이지들이 토끼에게 뜯어 먹히고 토끼들은 다시 여우에게 잡아먹히는 행성 모델을 가정했다.
 

(그림2) 세가지 데이지를 갖는 데이지 세계 모델^아래 그림은 점선은 생물이 존재하지 않을 때의 기온 변화를 나타낸다.
 

그리고 원래보다 훨씬 복잡해진 모델이 얼마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시험하기 위하여 데이지들의 약 30%가 갑자기 사멸하는 대재난이 몇 차례 발생하도록 모델의 수식을 변경해 보았다(그림 3). 그런데 초식동물을 모델에 첨가시키거나 질병 만연과 같은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데이지들의 기후조절 능력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러브록의 데이지 세계 모델은 처음에는 학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가이아의 기후조절 능력을 입증하기 위하여 개발됐다. 그러나 퍼스널컴퓨터 보급으로 시뮬레이션 게임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급증하면서 1980년대 말부터는 데이지 세계 모델의 원리를 차용한 PC 게임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런류의 대표적인 게임인 SIMEARTH는 40억년에 걸친 행성 지구의 진화 과정을 재현하며 SIMCITY는 도시의 발전과 쇠퇴를 재현해 보여준다.
 

(그림3) 토끼와 여우가 함께 존재하는 데이지 세계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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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고철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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