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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색깔 등 분야별로 전문처리 네트워크 구성해 바깥세계 이해

(2) 눈이란 창구 통한 '외부와의 대화'

시각에는 5종류의 영역이 존재하고 각기 형태나 색 등 특정 성분을 전문처리한다. 동시에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처리결과를 통합, 지각이나 이해를 해낸다.

시각계의 연구는 고도의 철학적인 모험이다. 뇌가 어떻게 바깥 세계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는가 라는 문제의 탐구를 뜻하기 때문이다. 뇌가 위대한 것은 시각대상이 각기 다른 조건에 있다 하더라도 그 대상을 정확히 판별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가령 조명조건이 다르면 시각 대상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의 파장이 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는 그 시각대상의 색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손짓을 해가면서 말하는 사람의 손의 망막상은 순간순간 변하지만 뇌는 일관되게 그 망막상을 손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거리가 달라지면 시각대상의 망막상도 달라지지만 그래도 뇌는 그 대상의 진짜 크기를 알 수가 있다.

이와 같이 뇌는 쉴새없이 변화하는 시각정보의 홍수 속에서 보편적인 시각대상의 특징을 추출해내고 있으며 동시에 시각대상의 해석도 행한다. 해석은 시각과 같은 감각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눈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라는 지식을 얻는데는 뇌는 망막에 비친 대상을 단순히 분석할 뿐 아니라 그분석에 기초해 시각세계를 뇌 속에 적극적으로 조립해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뇌는 이 목적을 위해 정교한 신경기구를 만들어냈다. 시각과 관련된 뇌의 구조가 너무도 정교하기 때문에 신경기구가 몇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는가를 추정하는 데만 1세기에 걸친 연구가 필요했다. 뇌 신경기구의 정교함을 여실히 말해주는 것이 '시각처리의 분업체계'다. 즉 대뇌피질이나 하위신경계에서는 시각대상을 형태, 색, 운동 등의 성분으로 나눠 이들 성분을 전문처리하는 영역이 각기 나뉘어 존재한다. 이 사실은 해부학적으로 증명돼 있다. 또 병리학적으로는 그들 전문처리 영역이 손상되면 색 등의 지식을 획득할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돼 있다.
 

(그림1) 눈이 사물을 보고 인식하는 신경경로
 

시각처리의 분업체계

19세기 후반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뇌에서 '보는' 처리와 '이해하는' 처리를 하는 담당피질은 각기 다른 위치에 있다고 믿어져 왔다. 그러나 두가지가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 최근 20년의 연구로 명확해지고 있다.

화상신호는 망막을 출발점으로 하여 외측슬상체를 지나 시각야 중 V1에 도달한다. 이 경로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가 파괴되면 맹인이 된다. 시각 영역의 창구인 V1은 말하자면 '우체국' 역할을 하고 있으며 화상신호를 일단 모아 형태나 색, 운동 등의 성분으로 나눈 뒤, 각 성분을 직접, 혹은 V2를 경유해 V3과 V4, V5에 분배한다.

V5는 운동성분을 취급하는 영역으로 여기에 손상을 입은 환자는 대상이 정지해 있을때는 볼 수 있으나 움직일 때는 볼 수 없다. V4는 색성분을 취급하는 영역으로 여기에 손상을 입으면 색맹이 된다. V3은 V4와 함께 형태성분을 취급하는 영역인데, 형태만을 볼 수 없는 환자는 아직 보고된 바가 없다.

이들 다섯 영역의 세포들은 서로 결합하여 대규모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이 네트워크는 각기 따로 처리된 화상신호를 통합하고 바깥세계의 지식을 얻는데 깊이 관여한다.
 

(그림2) 각기 다른 그림은 시각야의 다른 부위를 자극한다^밝은 색을 한 몬드리안 도형은 V4를 활발하게 움직이게 한다. 흑백으로 된 움직이는 이미지는 V5를 활동적으로 만든다. 두 이미지는 모두 V1과 V2의 활동을 일으키는데, 이 두 영역은 특화된 기능보다는 다른 영역에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V1은 시각야의 '우체국'

시각의 기능이 '보는'처리와 '이해하는'처리로 각기 나뉘어 있다는 생각은 19세기 후반부터 20년 전까지 신경생물학자들을 지배한 사고방식이었다. 그들은 시각정보는 시각대상이 반사·방사한 빛 속에 부호화되어 있어서 마치 사진 필름위에 그림이 현상되듯 망막위에 시각상이 각인되며, 이 각인은 시각에 보내지고 시각피질은 각인에 포함된 부호를 분석하여 해독, 시각을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즉 보이는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망막 위에 비친 각인을 느끼고 거기에서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망막 위의 각인에서 이전에 경험한 유사한 각인을 연상하는 과정이라는 현재의 생각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 계속된 이 잘못된 생각은 '본다'와 '이해한다'를 구별하여 전자를 수동적인 과정, 후자를 능동적인 과정으로 한 칸트의 2차론과 유사하다.

이들은 그 증거로 망막이 뇌의 특정영역과 강하게 결합돼 있는 점을 강조했다. 이 특정영역은 다른 대뇌피질과 명확하게 구별되는 영역으로 현재에 와서 1차시각영역, 또는 V1라고 불리고 있다. 망막으로부터 V1야 사이의 경로는 극히 정밀한 지형도와 같이 만들어져 있어 망막의 모든 영역이 V1에 효율적으로 그려져 있다.

망막에서 V1 사이의 경로의 중간에는 외측슬상체라 불리는 6층구조의 피질하구조체가 있다. 외측슬상체의 윗쪽 4층은 작은 세포체를 포함하므로 소세포층이라 불리고 아랫쪽 2층은 큰 세포체를 포함하므로 대세포 층이라 불린다.
 

(그림3) 시각에 손상을 입은 환자가 보는 세계
 

20년 전에야 밝혀진 시각의 구조

시각에는 5종류의 영역이 존재하고 각기 형태나 색 등 특정 성분을 전문처리한다. 동시에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처리결과를 통합, 지각이나 이해를 해낸다. 이같은 사실은 1970년대에 행해진 위스콘신대학 존 알만과 존 카스 팀의 올빼미원숭이연구와 런던대 세미르제키의 원숭이 연구 등에서 과학적으로 명확해졌다. 제키의 연구는 이들 영역이 각기 독자의 시각과제를 수행하도록 전문화돼 있다는 것을 알아내 뇌가 어떻게 시각상을 형성하는가를 이해했다는 점에서 시각 연구의 전환점이 되었다.

제키는 생리학적 실험에서 원숭이에게 일련의 시각자극(색, 다양한 위치의 선, 다른방향으로 움직이는 점)을 제시하고 미소전극을 사용, 시각연합영역 세포의 활동을 모니터했다. 그 결과 시각연합영역 중 V5라 불리는 영역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V5에서는 모든 세포가 운동방향에 선택적이었다. 그런데 운동자극을 주어도 어느 세포도 그 자극의 색상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같은 사실에서 V5는 시각운동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영역이라 추정됐다(신경해부학의 용어는 통일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V5는 일부에서는 MT영역이라고도 불린다).

V4는 V5와는 대조적인 영역이다. 압도적 대다수의 세포가 특정 빛의 파장에 어느 정도 선택적이고 형태를 구성하는 선들의 방향에도 선택적이다. 게다가 V4에 인접한 V3과 V3A의 거의 모든 세포도 형태에 선택적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영역의 세포는 V5와 마찬가지로 자극의 색상에 대해서는 선택성이 없다.

제키는 1970년대에 처음으로 행해진 이 연구에 기초, 시각영역에는 시각처리기능이 전문화돼 있다는 개념을 제안했다. 즉 시각세계 중 색, 형태, 운동 그밖의 시각세계의 속성도 각기 다른 부위에서 처리된다고 가정한다. 그러면 이들 전문화된 영역은 V1에서 신호를 받으므로 V1도 전문화 돼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V1에서 입력을 받아 V3 등의 영역을 결합하는 V2도 또 전문화돼 있을 것이다.

이 이론의 검증은 생리학 연구와 결합된 새 '조직염색기술'에서 이루어졌다. 인간이 특정과제를 수행하고 있을 때 대뇌피질의 국소혈류의 증가를 측정할 수 있는 PET(position emissin tomography) 기술이 그것이다. 이 기술 덕에 V1에서 시각연합영역에 이르는 기능전문화의 루트를 추적할 수 있게 됐다.

원숭이 실험에서 얻어진 이들 발견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PET 검증에서도 확인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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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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