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청계천 잡동사니 더미 속에서 찾은 '보물'

4.18직후인 1961년 청계천에 돌아다니는 잡동사니를 모아 설치한 전자파 발생기 앞에서


30여년 전 서울의 청계천에는 지금의 북한산 계곡보다 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4·19 당시 파리 남대학에서 연구에 골몰하던 필자는 학교(고려대)의 부름으로 2년 반만에 그곳에서의 연구를 중단하고 귀국해야만 했다. 당시 이곳의 연구 환경은 불모지와 다름없어서 누구로부터의 후원도, 조언도 기대할 형편이 못됐다.

사정이 이러할 때 내 연구실 꾸미기의 협연자는 바로 청계천의 아저씨들이었다. 당시 청계천은 파리의 벼룩시장과 비슷했다. 미군이 이렇게 저렇게 폐기처분한 전자부품들이 다른 잡동사니와 함께 그 쓸모를 가름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귀국 직전부터 자기유체역학적으로 가장 안정된 플라즈마 가두기에 골몰하고 있던 터라 구상과 준비는 철저했다. 조교들과 함께 청계천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구해 당시 학계의 최첨단 과제인 플라즈마내의 단위체적당 전자수를 계측하는 연구장치를 꾸몄다. 그리고 며칠을 지새우며 오실로스코프에 나타나는 기록을 추적하다 찍은 것이 바로 이 사진이다.

2차대전 후 일본의 대학시설은 폐허상태였다. 폭격으로 망가지고 남아있는 첨단장치는 점령군의 밀봉으로 사용이 금지되었다. 아마 독일은 사정이 더했을 것이다. 이들의 경우를 생각하며 시대성을 갖춘 과제, 그중에서도 우리가 해야 할 것들, 또 내 능력이 소화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연구하며 지낸 나의 대학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오래된 사진을 들추어보는 일은 항상 옛 기억을 더듬게 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3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노봉환 명예교수

🎓️ 진로 추천

  • 물리학
  • 전자공학
  • 역사·고고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