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필자가 1954년 6월 12일 경기도 광릉에 이화여자대학교 생물학과 학생들을 데리고 야외실습하러 갔을 때 찍은 것이다. 필자 옆에 계신 분은 곤충 학습지도를 위해 모신 조복성 선생님(1905~1971)이시다. 이분은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왜경에 쫓겨 독일에서 동물학을 공부하고 1928년 동물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의경 선생(1899~1950, 귀국하지 않고 문필생활을 했음) 다음으로 1929년 동물학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우리나라 곤충학의 최고 원로였다.
필자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생물학과 재학시(1946. 9~1949. 7) 강사였던 조 선생님의 동물분류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필자가 갑각류의 분류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조선생님으로부터 게류에 관한 중요한 문헌을 물려받은 것과 관계가 깊다.
필자는 한국에서 1946년 9월 사상 처음으로 창설된 서울대 생물학과에 입학해 졸업한 맨 첫 졸업생 2명 중 한 사람이었다. 우리 두사람은 1949년 졸업하자 마자 대구사범대학(지금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에 새로 생긴 생물학과 전임강사로 부임하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있다.
일정 때 우리나라에 정류 대학이라고는 경성제국대학 하나만 있었고 생물학과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일인들은 한국사람이 고등교육을 받는 것을 제도적으로 극도로 제한하였고 기초과학을 공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당시에 생물학과, 식물학과 또는 동물학과를 졸업한 이들은 이의경 박사 이외에 일본에 유학한 7명 뿐이었다. 이렇게 한국 현대 생물학의 역사는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