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대의 공룡을 현대 유전공학으로 되살린 공상과학영화 쥐라기 공원이 화제다. 고대 호박속에 갇힌 곤충의 뱃속에서 공룡의 DNA를 추출, 현대에 공룡을 되살린다는 소설과 영화의 구상은 과연 어디까지 '과학적'인 것일까.
살아 움직이는 것이면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잡아먹는 거대한 공룡 티라노사우루스-렉스, 몸체는 작지만 상당한 지능과 번식력을 가진 육식공룡 벨로시랩터, 몸무게 약 30t에 이르는 순진한 눈빛의 초식공룡 브론토사우루스, 독초를 먹고 병에 걸린 트리세라톱스, 시체나 움직이지 못하는 동물을 뜯어먹는 닭만한 크기의 프로콤프 소그나티드….
'공룡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쥐라기 공원의 식구들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6천만 달러짜리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는 수천만년전의 공룡들이 과학의 힘으로 되살아나 포효한다. 일단 태어난 이들은 인간들을 해치기도 하고 자연을 파괴하며 생존과 번식을 추구하는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분자 생물학 발전 힘입어 탄생한 영화
미국에서 지난 6월 10일 개봉된 쥐라기 공원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공룡이라면 무조건 열광하는 풍조에 편승, 이 영화는 심지어 E.T.가 세운 전대미문의 흥행 기록 돌파를 바라보고 있으며, 각 박물관에서는 공룡 전시회 등을 개최하고 관련 팬시 산업이 활기를 띠는 등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같은 선풍과는 별도로 이 영화는 또다른 면에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멸종된 동물의 DNA에서 유전자를 복원하는 최근 일련의 발견들을 종합한 이 영화, 혹은 원작소설을 놓고 "쥐라기 공원은 과연 과학적인가"를 따지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 뉴욕 타임스를 비롯, 더 사이언티스트, 뉴스위크, 과학 아사히, 쿼크, 옴니 등 과학자들이 쥐라기 공원에 대한 찬반양론을 펴고 있으며 고생물학자들이 이 논쟁에 참여하고 있다.
컴퓨터와 유전공학, 현대물리학 둥 방대한 첨단과학 지식이 동원됐음에도 불구하고, 작가 스스로는 소설의 비과학성에 대해 자인하고 있다. 그는 책 말미에 붙인 '저자의 말'에서 "많은 과학자들의 도움과 영감을 얻었지만 이 소설의 내용은 완전한 허구"라고 밝히고 있다.
'쥐라기 공원'은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의 1990년 베스트셀러 동명 소설에 기반하고 있다. 2억3천만년에서 6천5백만년 전인 중생대의 모기나 파리가 공룡의 피를 빨아먹은 뒤 곧바로 나무진에 갇혀 화석이 되었을 경우, 건조된 나무진이 굳어져 호박이 된 후에도 이 벌레들 중 일부는 현재까지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보존돼 있을 수 있으며, 그중에는 아마도 그들의 마지막 식사가 된 공룡피도 보존돼 있을 수 있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호박 속에 갇힌 중생대 모기에서 공룡의 DNA 추출
먼저 소설의 줄거리부터 살펴보자. 코스타리카의 한 섬에 6천5백만년 전에 멸종한 공룡들의 공원이 만들어진다. 이 공원을 통해 '떼 돈'을 벌고 자신의 꿈도 이루려는 투자가가 유전공학과 컴퓨터 전문가 등 천재 과학자의 힘을 빌려 진짜 공룡을 복원시킨 공원을 만든 것이다.
공룡의 복원에는 호박 속에 갇혀 있던 모기나 파리의 뱃속 공룡피에서 추출해낸 DNA가 사용된다. 야생 그대로의 중생대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초식 공룡뿐 아니라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육식 공룡들도 만들어야 했다.
물론 인간들은 나름의 통제 시스템을 마련해 놓는다. 공룡들은 1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담장 안에서 수시로 이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컴퓨터시스템의 통제 하에서 살도록 돼 있다. 또 이들 공룡들은 자체 생식이 불가능하도록 암컷들만 만들어졌으며 영양대사 과정에서 라이신 생산능력을 결여시켜 공원에서 주는 사료를 먹지 않으면 한달 안에 죽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컴퓨터 시스템은 쉽게 고장이나 착오를 일으키고 이를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모든 기능이 중단되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는 컴퓨터 전문가가 경쟁 업체에 공룡들의 수정란을 넘겨주기 위해 공원 전체의 시스템을 중단시킨 뒤 공룡에게 살해당하면서 주인공들의 모험이 시작된다. 나머지 사람들이 컴퓨터를 작동시키기 위해 공원 전체의 전원을 끄자 전류가 흐르는 담장이 무용지물이 된다.
담장 밖으로 나온 티라노사우루스의 무작위 사냥이 시작되며 벨로시랩터 등 육식공룡들에게 초식공룡과 인간들이 차례로 변을 당한다. 그뿐 아니라 암컷만 태어나 생식이 불가능한 공룡들이 자체 생식을 통해 번식하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또 파충류보다는 조류에 가까운 일부 공룡들은 철새처럼 이동하고 싶어하는 본능을 가지고 섬밖으로 빠져나갔음도 확인된다.
소설에서는 공룡들의 욍국이 된 이 섬을 군대를 동원, 폭격하는 것으로 줄거리는 끝나지만 이미 공룡들이 섬밖으로 빠져 나갔음을 암시하는 '에필로그'가 사태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나타내며 여운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들이 창조해낸 것의 결과를 스스로 겪음으로써 윤리적 경종을 울리는 소설의 내용은 영화에서는 상당 부분 순화되었고, 대신 공룡들의 움직임과 영화적 액션들이 강조되고 있다.
20세기 말의 프랑켄슈타인 이야기?
과연 쥐라기 공원의 내용은 황당무계한 허구일까, 혹은 얼마든지 개연성을 가진 '과학적' 이야기일까. 여기서 유전공학자들의 경우 이같은 문제를 따지기에 앞서, 이 영화가 일반에게 생명공학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는 듯하다. 쥐라기 공원은 마치 비윤리적인 과학자들이 통제할 수도 없는 괴물을 만들어내는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쥐라기 공원에 가장 큰 목소리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인물은 유전자 미생물학의 권위자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치 분자시스템의 러셀 히구치 박사인 듯하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최근 과학자들에게 '쥐라기 공원'을 비난하는 인쇄물을 돌렸다. 소설과 영화 모두, 'DNA 기술의 가능성에 대한 엄청난 과장'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사람들을 '비합리적인 공포'로 이끌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유로 그는 "만일 공룡이 환생할 수 있다면 다른 나쁜 유전자적 기술이 가능하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쥐라기 공원을 놓고 언론이나 유전공학계에서 제기하는 문제의 초점은 몇가지로 가닥 잡을 수 있다. 우선 6천5백만년 전에 지상에서 사라진 공룡의 DNA를 과연 구할 수 있는가. 그것을 구한다면 유전자로 가능하도록 대량으로 복제할 수 있는가. 충분한 양의 DNA를 얻더라도 그것으로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작업이 과연 옳은가라는 윤리적 문제로 귀결된다.
이중 고대 공룡의 유전자를 구하는 문제나 이를 대량으로 증식시키는 문제는 현대 유전공학과 관련 과학의 발달로 어느 정도 단서가 잡힌 상태. 그러나 DNA의 코드를 모두 파악해낸 뒤에도 이를 생명체에 적용,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은 현대 유전공학으로서는 불가능한 대목이라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한 과학자의 상상에서 출발
실제로 1980년대를 거치면서 숨막힐 정도의 과학의 발전이 없었다면 '쥐라기 공원'은 완벽한 상상의 산물이 될 뻔했다. 최근까지 속속 보고되는 새로운 발견 내용들은 쥐라기 공원에 조금씩 근접해가는 듯하다.
고생물에 대한 연구는 호박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을 정도. 호박 속의 곤충과 공룡 복원을 연결시킨 최초의 인물로는 일반적으로 뉴욕 로커빌 센터의 찰스 펠레그리노(Charles R.Pellegrino) 박사가 거론되곤 한다.
과학소설과 넌픽션 작가인 펠레그리노 박사는 고생물학 박사학위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오랫동안 호박 속의 곤충들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1977년 그는 뉴저지산 호박에서 9천5백만년 전에 갇힌 파리를 보게 됐고 여기서 생각의 끈은 풀려갔다.
펠레그리노 박사는 과학잡지 '옴니' 1985년 3월호에서 "앞으로 30년 정도만 기술적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이 파리의 위에서 DNA를 추출하여 해독할 수 있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공룡의 피와 피부조직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썼다.
흡혈 파리들은 공룡들 사이를 날아다니다가 때에 따라그들의 피를 빨아먹었을 것이므로, 지금은 골격과 발자국만으로 추정되는 생물이라 해도 언젠가는 과학자들이 유전자 암호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만일 코드 중 일부가 유실되었다 해도 우리는 그 간격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어 '문단'끼리 편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살아있는 생물 가운데 일부를 빌려 진짜 공룡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완전한 단백질쌍을 만들어내는데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공룡을 형성하는데 드는 모든 것은 염색체 형태로 발표될 것이다. 이것을 세포핵에 끼워 넣고 노른자와 알껍질을 제공하면 오늘날에도 공룡을 부화시킬 수 있다."
생명공학자들은 이 아이디어를 대체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아직 아무도 유전자 대부분이 파괴되거나 불완전한 멸종된 동물은 고사하고, 하다못해 완전한 유전자 코드가 있는 살아있는 동물의 무성생식에도 성공하지 못한 상황임을 지적했다.
호박 속에서 4천만년 전 각다귀의 염색질이 보였다!
호박에 갇힌 생물에서 DNA를 추출한다는 최근 연구의 단초가 될 만한 발견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교 곤충 병리학자인 게오르그 포이나(George O. Poinar)박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1962년 포이나 박사는 덴마크의 서부해안을 산책하다가 해안에 밀려온 호박덩어리를 발견했다. 이때부터 호박 수집은 포이나 박사의 취미가 되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호박은 그의 필생의 업이 됐고 요즘 그는 호박을 과거로 통하는 '황금의 창'이라 부른다.
1982년 포이나 박사와 버클리교의 곤충학 분야 현미경학자이자 그의 부인인 로버타 헤스 박사는 4천만년된 것으로 추정되는 암석 침전물 속에 묻혀 있던 호박을 입수했는데, 그 안에는 각다귀가 들어 있었다.
먼저, 두 사람은 호박덩어리를 일반 현미경에 놓고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는 더 자세한 내용을 얻을 것을 기대하며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호박 안쪽에서 화석이나 윤곽이 아니라 조직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검은 부분을 관찰할 수 있었다."
포이나 박사는 뉴욕 과학 아카데미에서 발행하는 잡지 '더 사이언스' 5월호에서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이 표본을 좀더 강력한 전자 현미경으로 옮긴 포이나 박사 부부는 경탄의 소리를 질렀다. 이들은 각다귀의 근육세포를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흔히 세포의 유전자를 지닌 것으로 알려진 염색질이 포함된 핵과 미토콘드리아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시들어버린 세포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한다는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였다. 이같은 사정은 1984년에 이루어진 또하나의 기술적 업적에 의해 좀더 확고한 배경을 갖게 된다.
그 해에 버클리교의 알랜 윌슨(Allan C.Wilson) 박사, 히구치(그는 훗날 로치 분자 시스템에 합류한다) 박사, 스반트 파보(Svante Păăbo) 박사 등 생화학자 3명은 1백40년 전에 멸종된 동물, 쿼가(quagga)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쿼가는 갈색의 몸 앞쪽에 얼룩 무늬를 지닌 말과 유사한 동물로 19세기 초 사냥꾼들에 의해 멸종될 때까지는 남아프리카에서 서식했다. 과학자들은 독일 박물관에 염장 상태로 보존돼 있던 쿼가의 가죽 안쪽에 남은 근육 세포에서 기본 염기쌍의 순서를 알아낼 수 있는 충분한 양의 DNA를 추출해내는데 성공했다.
버클리 팀은 쿼가의 DNA와 유사한 종의 순서를 비교, 쿼가는 보통 말과는 촌수가 멀고 현대의 얼룩말과 가깝다는 사실을 알아 냈다. 윌슨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이로써 쿼가의 조상을 들러싼 해묵은 동물학적 논쟁을 잠재웠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오래된 DNA에서 유용한 발견을 해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DNA 염기배열을 알아낸다는 것과 그것에서 생명체를 복구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게다가 그같은 표본이 복구가능한 DNA를 충분하게 가지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 과학자들이 분석할 만한 DNA는 극히 소량만이 남아 있으며 그나마 항상 극히 손상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고생물학 연구에 혁신 가져온 PCR 기법
이같은 문제를 해결한 혁신이 지난 1985년, 캘리포니아주 에머리빌의 시터스 코포레이션의 생화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중합연쇄반응)이라 불리는 과정을 개발해 특허를 취득했는데, 이는 특정 DNA분자 조각을 취해 1시간 안에 과학자들이 분석하기에 충분한 1조개의 복사본을 만들 수 있는 과정이다.
PCR이 가능해지자 생물학자들은 미미한 양이라도 DNA가 들어 있으면 온갖 종류의 화석과 미이라가 된 소재의 유전자 암호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가령 1천7백만년 된 화석 잎, 고대 안데스산맥의 옥수수, 뉴질랜드의 날지 못하는 새, 4만년된 매머드, 미이라가 된 7천5백년전 플로리다 인디언의 뇌 등의 유전자 코드가 연구됐다. 이집트의 미이라에서 DNA를 추출한 연구자도 있었다.
연구는 더욱 진척돼 지난 해에는 두 연구 그룹이 거의 동시에 4만년된 곤충의 DNA를 복구시켜 분석했다. 첫째 그룹은 포이나박사가 이끌고 그의 아들 헨드릭과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인스티튜트의 라울 카노, 스미소니언 재단의 데이비드 루빅 박사로 이루어진 팀. 이들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발견된 호박에서 멸종된 4만년전 침없는 벌의 DNA를 추출했다. 또 하나의 그룹은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롭 드살레, 와드 휠러, 다비드 그리말디와 예일대의 존 가테지 박사팀인데, 도미니카 산 호박에 든 멸종된 3천만년전 흰개미(termite)를 가지고 작업했다.
박물관팀은 흰개미의 DNA는 흰개미가 지금까지 추측된 것처럼 바퀴벌레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흰개미와 바퀴벌레가 같은 조상에서 어느 시기에 갈려 나왔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결과들은 아직도 공룡에 생명을 돌려주기에는 미흡한 수준이다. 한편 최근에 이루어진 연구는 공룡 복원에 한발짝 더 다가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포이나 박사팀은 도미니카산 호박에서 공룡과 같은 시기를 살았던 바구미의 DNA를 채취, 복원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6월 10일자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레바논 근방에서 채취된 호박에서 1억2천만 년에서 1억 3천5백만년 전의 바구미의 DNA를 발견해냈다는 것. 이들은 이 결과를 지난 6월 9일자 영국의 과학지 '네이처'에 발표했는데, 이는 영화 쥐라기공원이 시작되기 하루 전이었다. 이들은 이같은 시기의 일치는 우연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에 참가한 캘리포니아 종합기술대의 라울 카노박사는 "공룡의 유전자를 증식시킨다는 것은 아주 먼 이야기다. 아마도 불가능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공룡이 살았던 시기의 DNA를 추출해 보였다. 이것이 이번 연구의 목적이다"라고 말했다.
바구미는 쥐라기 다음의 백악기에 살았던 초식곤충. 그러므로 바구미가 공룡의 피를 빨았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러나 미국자연사 박물관의 과학자들에게 입수된 같은 시기의 호박 속 곤충 중에는 공룡의 유전자를 가진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이들이 레바논 근방과 미국 뉴저지에서 모아놓은 호박 중에는 무는 진드기를 비롯한 여러 곤충이 들어있는 것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공룡 화석에서 DNA 추출하는 연구도
소설과 영화의 모델이 된 몬타나의 고생물학자 잭 호너 박사는 일부 공룡은 알을 낳고 버리기보다는 어린 공룡들을 돌보았음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발표한 사람이다. 그는 소설 속의 한 인물로 형상화되는데 머물지 않고 영화제작과정에서 공룡의 근육조직과 움직임, 야외 실험실의 외관단장에 이르기까지의 자문역할을 담당했다. 대신 그의 몬타나 동료들은 스필버그의 앰블린 기구로부터 연구 지원을 약속받았다.
호너 박사의 요즘 프로젝트는 공룡의 화석에서 DNA를 추출하려는 시도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계획에 대해 "보관이 잘된 화석이 있다면 가능한 이야기"라는 게 KIST 유전공학 연구소 이대실 박사의 말이다. "가령 북극이나 남극의 얼음 속에 보존된 미이라나 화석이라면 DNA가 온전한 상태로 보존돼 있을 수 있다. 생명이란 오묘해서 가령 꽃가루의 경우는 수천년이 지나도 성질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발전에도 불구하고, 현대 생명공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설사 공룡의 DNA를 추출해 그 방대한 유전자 코드를 해독해낸다고 해도, 지금으로서는 생명체의 유전자 발현을 통제하는 기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바퀴와 핸들, 몸체를 장만한다고 해도 그 설계도를 얻지 못하면 자동차로서의 기능을 해낼 수는 없다. 지금의 유전자 코드 해독이 바로 그 수준"이라고 이대실 박사는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라기 공원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말하는 그는 유전공학이 소개된 지 수십년 밖에 안된 상황임을 지적한다. 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낸 이래, 80년대로 들어오면서 하루가 다르게 발전이 이루어진 점을 감안한다면 무조건 허구라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생명공학 앞서 '윤리적 관점' 견지돼야
마지막으로 제기되는 것이 생명공학의 윤리성 문제다. 쥐라기 공원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혼돈이론을 앞세운 냉소적 문명비판론을 펴며 쥐라기 공원건설에 반대하는 수학자 말콤의 경고에는 귀기울일 대목이 적지 않다.
"분명히 해둡시다. 지구는 위험에 처해있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한테는 지구를 파괴시킬 힘이 없습니다. 동시에 구할 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구할 힘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경고는 곧 저자 마이클 크라이튼의 주장이기도 하다.
'안드로메다 스트레인'을 비롯, 그밖의 대중적인 과학소설과 영화대본을 써온 크라이튼 박사는 코난 도일처럼 의학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나도 과학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과학만능주의적 경향이 눈에 거슬린다"라고 말했다.
유전공학만큼 인간이 상상력을 펼칠 여지를 주는 학문도 드물 것이다. 수박만한 사과, 돼지 크기의 닭, 나아가 자신의 복제인간에 이르기까지, 조물주의 능력에 버금가는 힘을 인간이 구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현대인들을 열광케 했다. 게다가 이 꿈이 실현될 가능성에는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인간이 과학을 어떻게 구사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현대 과학에서 반대론을 불러 일으키는 분야는 두가지다. 그 하나는 원자력 발전이며 두번째가 생명공학이다. 그 편리성과 이 점과 함께 잘못하면 인류에 끼칠 폐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의 유전공학자들은 자신의 작업이 전체에 끼칠 긍정성과 부정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이를 감시하는 국제적인 노력 또한 있어야 한다"는 것이 서울대 생물학과 홍주봉 박사의 의견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유전공학은 19세기의 다이너마이트, 20세기의 맨해턴 프로젝트(원자폭탄 개발사업)와 마찬가지로 21세기 인류의 운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