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왜 새의 모양을 하고 있을까? 자동차는 왜 유선형일까? 과학의 발달과 함께 아름다움과 편리성을 추구하는 디자인 영역의 진보를 거듭해 왔다. 현대의 학문, 산업디자인의 세계를 짚어본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사물은 나름대로 독특한 기능과 형태를 갖고 있다. 이제는 산업디자인의 고전이 되다시피 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말처럼 모든 자연물은 기능과 부합되는 형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새와 물고기의 형태는 공기나 물의 저항을 가장 작게 받도록 유선형이다. 특히 참치나 상어와 같이 빠른 속도로 헤엄을 치는 물고기들은 아주 날렵한 유선형태를 갖고 있고, 물 밑에서 사는 가자미는 무거운 물의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납작한 형태를 갖고 있다. 치타 사자 표범 등과 같이 빨리 달릴 수 있는 육식동물들도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아주 날렵한 몸매를 갖고 있다. 우리 몸의 각 부위도 조금만 세밀하게 관찰해보면 기능에 부합되는 형태를 갖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사물의 형태는 마땅히 발휘되어야 하는 기능이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에 주목한 미국의 건축가 호레이쇼 그레노(Horatio Greenough)는 이미 19세기 중반에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물의 형태적인 특성은 곧 어떤 기능을 갖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증거이며, 아름다운 형태는 그와 같은 기능이 완벽하게 발휘될 수 있음을 나타내는 약속이다."
사물의 형태는 기능에 의해 결정된다는 그레노의 생각은 1900년대에 들어 더욱 구체화되었다.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는 '형태와 기능은 하나'(Form and Function are One)라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어떤 사물의 형태란 그 사물의 내부에 있는 힘과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이 이루어내는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새로운 이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 다르시 톰슨(D'Arcy Wentworth Thompson)은 자연물의 조형과정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에 최소한의 에너지로 대응하려는 내부적인 힘의 작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다양한 형태의 눈(雪)의 조형 과정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눈의 형태는 좌우대칭되는 육각형을 기본으로 분자구조를 이루려는 내부적인 요인과 다변하는 외부적인 요인(온도 습도 풍속 기압 등)의 상호작용에 의해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눈의 형태는 육각형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모양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제품의 기능과 형태
자연물과 마찬가지로 산업제품의 경우도 기능과 부합되는 형태를 가진 경우가 많다. 제품의 기능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발휘되어야만 하는 활동능력이다.
휴대용 오디오 제품의 예를 들면, 원하는 음악을 아무 때나 어느 곳에서나 들려준다는 것이 곧 그 제품의 기능이다. 그와 같은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음의 재생기능 전달기능 크기조절기능 등과 같은 여러가지 부차적인 기능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즉 어떤 제품을 구성하는 여러가지 부품이나 요소들의 고유한 구실이나 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져야만 제품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제품의 형태는 그와 같은 기능이 완벽하게 발휘될 수 있도록 해주는 내·외부적 요인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되게 마련이다. 여기서 내부적인 요인이란 구조나 재료 등과 같이 그 제품의 작동 생산 조립 등과 관련되는 요인이다. 외적 요인은 내부의 구조를 경제적으로 감싸주는 외피(外皮)의 형태, 사용상의 편리성, 공기의 저항 등과 같은 요인이다.
예를 들어 스포츠카 고속전철 비행기 등과 같이 빨리 달리는 제품들이 모두 유선형태를 갖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공기의 저항을 가장 적게 받으면서 빨리 달릴 수 있도록 하려는 외적인 요인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모든 내적 요인을 합리적으로 조절하려는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비행체의 형태는 특히 속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초기의 비행기 디자인은 거의 모두 연이나 나비, 잠자리 등과 같은 형태를 갖고 있었다. 비행체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날개가 넓어야만 공중에 오래 떠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의 혁신으로 엔진의 성능이 좋아지고, 가볍고 질긴 재료가 개발되면서 형태의 변화가 생겨나게 되었다.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무게보다는 공기의 저항이 더욱더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면서 새나 상어, 가오리 등과 같이 빠른 동물을 연상할 수 있는 유기적인 형태를 갖게 된 것이다.
이처럼 무심히 보아 넘기기 쉬운 여러가지 제품의 형태는, 자세히 관찰해보면 기능과 부합되도록 세심히 디자인된 '과학'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제품의 기능과 부합되는 형태는 누구의 손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과학과 조형의 유기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산업디자이너의 역할에 달려 있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데 있어서, 과학자나 기술자들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제품조형의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가 바로 산업디자이너다. 여기서 예술과 과학을 결합시키는 매개자인 산업디자이너에 대해 알아보면 산업디자인의 세계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디자이너는 소비자들의 진정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제품의 아이디어를 창출하여 새로운 생활양식의 형성에 기여할 뿐 아니라,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제품을 창조함으로써 우리의 생활환경을 미화시켜 준다. 그러므로 독창적인 제품의 아이디어를 창출하는데 바탕이 되는 창조성(創造性)과 쓰기에 편리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가진 제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심미적인 조형 능력이 산업디자이너가 갖추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다.
산업디자이너는 특히 과학과 기술에 관해서 깊은 이해를 해야만 한다. 과학자가 발견해내는 새로운 원리나 새롭게 발명된 소재를 활용하여 소비자의 어떤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디자이너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알아내어 기술혁신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디자이너의 역할 중 하나이다.
이는 곧 산업디자이너가 제품의 조형을 위하여 과학기술과 조형예술의 조율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산업디자이너의 재능과 솜씨에 따라서 비슷한 기능과 성능을 가진 제품이 다른 것과 확연히 구분되는 조형적 특성을 갖게 되는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선진국의 기업들은 산업디자인을 기술적인 우세를 유지하기 위한 기업경영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능과 형태가 조화를 이루는 제품의 창출을 위해 산업디자이너는 다음과 같은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제품의 작동과 관련되는 지식 : 물리학, 수학, 기구학, 전산학 등
제품의 생산과 관련되는 지식 : 생산공학, 재료학 등
제품의 가격 및 판매와 관련되는 지식 : 경제학, 마케팅 등
제품의 인간적 가치와 관련되는 지식 : 심리학, 사회학, 인간공학 등
제품의 디자인과 관련되는 지식 : 디자인사, 표현기법, 실무론 등
이상과 같은 지식을 바탕으로 산업디자이너는 좋은 제품을 디자인하기 위해 제품의 구조, 재료, 제조공법 및 공정, 생산단가, 시장의 특성, 인간공학적 데이터, 색채 및 형태의 선호경향 등에 대하여 세심히 연구해야 한다.
그렇지만 산업디자이너가 제품에 관해 모든 것을 아는 '레오나르디안'(Leonardian :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이 다재다능한 천재)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기술의 혁신이 가속화됨에 따라 학문과 산업분야에서의 전문화도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품은 관련되는 여러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의 공동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산업디자이너는 제품조형전문가로서 제품개발팀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 된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산업디자이너는 본질적으로 미술가와는 다른 속성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미술가는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창작활동을 하지만 디자이너는 그렇지 않다. 미술과의 경우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주 적거나, 설사 아무도 그것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다. 조형활동의 객관성이 요구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디자이너의 경우는 다르다. 수만명 또는 수십만명의 소비자들을 만족시켜 주어야 하는 제품조형의 문제를 다루므로 보편성과 객관타당성이 있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
전화기를 디자인할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번씩 그것을 손에 들고 통화를 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산업디자이너의 윤리적인 자세가 중요시되는 것이다.
이러한 산업디자인은 제품의 경쟁력 증진에 기여하는 경영전략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비슷한 수준의 과학기술력이 활용된 여러가지 제품이 있을 경우, 다른 것들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차별성은 디자인을 통해 얻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디자인은 기술력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업의 이윤 추구가 아니라, 그가 디자인한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만족이다. 곧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하기 전과 사용하는 중에는 물론, 사용하고 난 다음에도 만족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디자이너의 성공과 실패는 아주 명확하게 구분된다. 만일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사용하면서 불편함이나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면 그 제품을 디자인한 산업디자이너는 실패한 것이 된다. 반면 어떤 제품이 사용하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거나 능률을 높여주고 행복감을 가져다준다면, 그 디자이너는 성공한 것이다. 디자이너들이 자주 사용하는 '사용자 친화 디자인'(User Friendly Design)이라는 용어가 바로 그와 같은 이념을 반영해주고 있다.
기능은 형태를 따른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신제품의 개발과정에서 디자인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디자인이 제품개발의 마무리 단계에서 기능에 부합되는 형태를 창출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는 생각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디자인이 새로운 제품의 아이디어나 형태를 창출해내면 공학자나 기술자들이 그에 합당한 구조나 작동방법, 성능 등을 해결하는 현상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산업디자이너가 신제품개발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자동차 디자인의 경우, 디자이너가 창출한 형태에 맞추어 나머지 개발업무가 추진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고 있다.
새로운 산업디자인의 세계에서는 형태와 기능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고전적인 표현이 '기능은 형태를 따른다'로 대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특히 기술수준이 고도화될수록 그와 같은 경향이 두드러지게 될것으로 예측된다. 디자이너가 만들어내는 독창적이고 미적인 형태가 생산의 용이성이라는 미명 하에 수정되는 일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디자이너가 추구하는 조형성이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이루어내는 기능성과 바람직한 조화를 이룰 때, 인류의 삶은 점점 더 안락하고 퐁요롭게 될 것이다. 최근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는 '환경 친화 디자인'(Environmentally Friendly Design)이라는 개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아울러 과학과 기술의 혁신이 추구하는 국부론(國富論)의 지혜는 산업디자인을 통해 구체적인 현실로 드러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