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생산되는 냉장고는 육류 야채 등 저장물 종류에 따라 분리해서 보관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는 음식물의 적정 저장온도를 찾아내 필요 이상의 냉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인류문명은 굶주림을 극복하려는 본능 못지않게, 추위나 더위를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어 왔다. 이중에서도 추위는 생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였지만, 더위는 아무래도 덜 중요한 문제였을 듯하다. 그러기에 추위를 몰아내는데 이용된 불이라는 도구가 상징하는 바는 대단히 크지만, 더위의 극복을 위해 이용됐던 도구는 구체적으로 떠올릴 만한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생활의 질적인 면이 보다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양상이 크게 달라져 냉장고나 에어컨과 같은 냉방기구가 일상의 필수품으로 인식될 정도로 보편화되고, 이것이 지나친 나머지 오히려 에너지문제나 환경문제라는 역기능을 초래할 정도가 됐다.
여름철만 되면 폭증하는 냉방용 전력수요 때문에, 산업체에 공급되는 전력마저도 모자랄 지경이라는 문제는 접어두고라도, 모든 냉방기구에 냉매로서 대량 이용되는 프레온이라는 물질은 지구오존층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밝혀진 지 오래다. 이런 이유에서, 프레온을 대체할 냉매를 개발하든가 냉각원리 자체를 전혀 다르게 해, 보다 효율적이고 이용에 문제가 없는 새로운 냉방기구를 개발하는 일은 필연적이고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바람에 땀 마르는 것과 갈은 이치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냉방기구의 냉각원리는 우리가 흔히 보는 일상적인 현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뜨거운 물을 컵에 담아 찬 공기 중에 놓아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식어버린다든가, 바람이 불면 시원함을 느끼는 자연현상들 속에 냉장고의 원리가 들어있다.
우선 뜨거운 물이 식는 현상은, 물속에 있던 열이 공기 중으로 흘러 나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열은 언제나 온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이동한다는 예외없는 자연의 법칙이 적용되는 경우인데, 과학자들은 이것을 열역학의 제2법칙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열의 이동은 맞닿아 있는 두 물질의 온도가 같아질 때까지 계속된다.
보통 '열'이라고 하면 얼핏 '뜨거운것'을 연상하지만, 사실 열은 모든 물질 속에 들어 있다. 심지어는 아무리 차가운 얼음일지라도 열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온도의 높고 낮음이란, 내재된 열이 많고 적음을 나타내는 척도일 뿐, 아무리 온도가 낮다해도 그에 해당하는 열이 반드시 들어있게 마련이다. 열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경우는 최저온도로 규정된 영하 2백73℃일 때 뿐이다.
다음으로, 바람이 불 때 시원함을 느끼는 현상은, 바람에 의해 피부에 묻은 수분(땀)이 증발되었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수분이 증발할 때 시원함을 느끼는 이유는 약간 복잡하다. 모든 물질은 앞서 말한대로 내재된 열의 양에 따라 온도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그 형태까지도 달라질 수 있다. 즉 내재열의 양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 중의 어느 한가지 상태만을 취한다고 볼 수 있는데, 기체는 액체에 비해, 액체는 고체에 비해 열을 많이 갖고 있다. 이 상태들간의 내재열 차이를 각각 기화열 및 융해열이라 부른다. 따라서 바람이 불어 피부의 땀이 억지로 증발되기 위해서는 어디에선가 기화열이 공급돼야 한다. 이 기화열은 주변의 공기나 피부에 내재돼 있던 열로부터 충당되는데, 피부의 입장에서는 열을 빼앗기는 것이므로 시원함을 느끼는 것이다.
현재 이용되고 있는 모든 냉장고의 냉각기는, 이처럼 액체가 기체로 바뀔 때 요구되는 기화열을 교환하는 방식을 응용하고 있다. 이때 이용되는 물질을 냉매라고 부른다. 냉매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열역학적인 특성이지만, 안전성 가격 등의 조건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프레온은 이러한 요구조건들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물질이라고 여겨져서, 냉매로 독보적인 자리를 지켜왔던 것이다. 냉장고 안에서는 냉매를 강제로 증발시켜 음식물로부터 기화에 필요한 열을 빼앗게 한뒤 냉매를 밖으로 끌어내 강제로 액화시켜 기체상태의 냉매에 들어 있던 열을 외부로 배출시킨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됨에 따라 냉장고 내부의 온도는 자꾸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열을 강제로 빼앗는 수단은 다른 메커니즘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 한가지의 방법은 최근에 발견된 수소저장합금을 이용하는 것이다. 수소저장합금이란, 외부에서 압력을 가하면 이 금속조직의 내부에 수소가 흘러들어가 저장될 수 있는 물질로서, 저장되어 있던 수소가 빠져나올 때는 주변으로부터 열을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 성질을 냉각장치에 응용하려는 연구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시작했는데, 얼마전 우리나라에서도 이 방식을 응용한 냉장고 실험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센서발달로 저장칸 다양화
냉장고의 원리가 어떻게 바뀌든, 궁극적으로는 내부의 열을 외부로 끌어내주어야 한다. 냉장고의 밖은 일반적으로 안쪽보다 온도가 높은 상태기 때문에, 열의 이동은 오히려 거꾸로라야 자연스럽다. 따라서 안쪽과 바깥쪽의 열관계를 역전시켜 주는 장치에는 에너지를 계속 공급해 주어야 한다. 이 에너지는 결국 전기에너지일수밖에 없기 때문에,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보다 효율높은 냉각방식에 대한 연구가 절실하다. 이 방면의 연구는 주로 음식물의 적정한 저장온도를 찾아내서 필요 이상의 냉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를 줄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0℃의 얼음도 얼음인데 굳이 얼음을 영하 수십℃까지 낮은 온도로 유지할 필요는 없다. 또한 야채나 육류 혹은 생선 등의 적정한 냉장온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모두 한곳에 넣어 필요 이상으로 냉각할 이유도 없다. 이런 까닭에 냉장고의 내부공간은 육류 야채 음료수 등 저장물 종류에 따라 여러 개로 분리되는 추세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각 음식물의 적정저장온도에 대한 연구가 뒷받침 되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 온도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센서가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냉장고의 에너지 효율성은 무엇보다도 이용자의 이용방법에 가장 크게 좌우된다. 아무리 효율좋게 설계된 냉장고라도, 몇 초 동안 열린 문으로 밀려들어온 열을 다시 적정수준으로 내려주거나, 한 그릇의 뜨거운 음식물을 식혀주기 위해서는 냉각기를 적어도 수십 분 동안 가동시켜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