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고는 버릇이 심하면 작업능률 지능 집중력까지 떨어 뜨리는 등 그 폐해가 심각하다.
P씨는 지난 해 동원예비군 훈련소에서의 잠못 이룬 밤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특별히 훈련이 심해서 그가 불면의 밤을 지샌 것은 아니다. 옆 자리에 누운 S씨의 대포소리같은 코고는 소리때문에 잠을 설친 것이다. S씨의 코고는 소리는 같은 내무반에서 함께 잔 다른 20여명의 코고는 소리를 완전히 압도했다. 심지어는 본인도 자기의 콧소리에 놀라 잠을 깨곤 했다.
이처럼 코고는 소리는 다른 사람의 수면을 방해할 뿐아니라 자기 자신의 숙면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외국에서는 코를 심하게 골아 이혼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사실 옆사람의 코고는 소리에 잠을 설쳐본 사람이라면 다시는 그 사람과 함께 자고 싶지 않을 것이다.
코 잘 골게 생긴 사람
수면연구가들은 우리중의 45%가 때때로 코를 골고 그 가운데 25% 정도는 만성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여기에는 현저한 성차가 있어 코고는 사람의 숫자는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많다. 대체로 30~35세 남성의 20%, 여성의 5%가 코를 곤다. 또 나이가 들수록 코고는 사람의 숫자도 함께 늘어난다. 60세 이상의 남성 60%, 여성 40%가 코를 고는데, 특히 여성은 폐경기 이후에 급격히 증가한다.
그렇다면 왜 코를 골게 될까.
"수면중 숨을 들이마실 때 코와 성대 사이에 있는 입천장 편도인두 부위의 점막이 문풍지처럼 떠는 소리가 바로 코고는 소리"라고 고려병원 박재훈박사(이비인후과)는 설명한다.
따라서 잠자는 동안 일시적으로 기도에 어떤 장애가 생기면 코를 골게 된다. 이때 기도장애의 대부분(95% 정도)은 구강인두에서 발생한다. 구강인두는 입 안쪽에 있는 부위로 목구멍과 닿아 있다.
또 편도선과 구개수가 있는 부위에서 장애가 생기기도 한다. 이 경우 그 원인은 다음 둘 중 하나이거나 둘다이다. 첫째로 연구개가 특이하게 길어 입과 목구멍 사이의 통로 길이가 정상보다 짧은 경우다. 이런 사람이 등을 대고 누운 상태에서 공기를 들이 마시면 편도선과 구개수의 점막이 진동하게 된다. 이 진동이 코를 골 때 생기는 소리의 전형이다.
둘째로 우리 몸의 다른 근육과 마찬가지로 목구멍의 벽을 이루는 근육도 수면시 근긴장도가 떨어질 수 있다. 목구멍 벽의 근긴장도가 저하되면 혀를 움직이도록 하는 근육도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 특히 등을 대고 누운 상태에서는 혀에 작용하는 중력으로 인해 목구멍의 근긴장도가 더욱 감소한다. 설상가상으로 깊은 호흡으로 인해 혀가 목구멍 쪽으로 흡인되면 목구멍이 잠시나마 완전히 막혀 버림으로써 코를 골게 된다.
마지막 원인은 목구멍 통로를 둘러싸고 있는 조직이 지나치게 비대한 경우다. 이렇게 되면 자연 목구멍이 좁아져 버린다. 실례로 코를 고는 어린이의 90%는 비대한 편도선을 갖고 있다.
성인의 경우 코 잘 고는 사람이 따로 있다. '코 잘 골게 생겼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우선 비만한 사람이 그 범주에 든다. 뚱보들은 일반적으로 목이 굵고 짧으면서 후두부가 좁기 때문이다. 대개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은 입천장구개 구개수 목구멍 벽이 정상인보다 두껍다.
또 '무턱'이라고 불리는 하악골이 거의 발달하지 않은 사람도 코를 잘 곤다. 혀가 비정상적으로 크거나(혀가 안으로 밀리면서 기도가 좁아진다) 콧속을 가로 지르는 중격이 휘어진 사람도 코를 잘 곤다.
심장에 큰 부담 안겨
잠자는 자세, 피로 과음 약물복용 질병 등이 코고는 소리를 한 옥타브 더 올려놓기도 한다.
"천장을 보는 자세로 똑바로 누워 자면 혀가 기도의 입구를 막아 코고는 소리가 커진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옆으로 또는 엎드려 자는 버릇을 길러야 하는데 이때 잠옷의 등판에 테니스공 두개를 붙여 똑바로 누워자는 것을 막는 방법도 효과적이다."
서울대 의대 정도언교수(신경정신과)의 진단이다.
피로할 경우에는 우리 몸이 평소보다 더 많은 산소를 요구한다. 이 과도한 산소수요는 의당 코를 골게 한다. 또 전날 잠을 제대로 못잤을 때는 그 다음 날 밤에 요란한 '굉음'을 내기 십상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근육의 긴장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음주도 코고는 소리와 관계가 있다. 평소에 코를 골지 않은 사람이 음주후 코를 고는 것은 코안의 비갑개라는 부분이 확장돼 공기통로가 좁아지는데 기인한다. 아울러 알코올이 기도를 유지하는 근육의 긴장도를 떨어뜨려 코를 골게 된다.
또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코골기를 심화할 수 있고 수면제 항히스타민제 진정제 등의 복용이 수면시의 콧소리를 증폭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 코골기의 구조적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그 기능적 결과는 동일하다. 즉 순간적이지만 완전한 기도차단과 깊고 가쁜 호흡이 교대로 일어난다. 이런 기도차단이 수면중에 자주 생기면 혈액으로의 산소공급이 현저히 차단된다. 때로는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 특히 심장에 큰 부담을 지우게 된다. 몸 전체에서 산소의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자면 심장은 더 빠르고 힘차게 박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심근은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산소를 공급받게 된다. 심장에 이런 압박이 계속되면 부정맥, 지속적인 고혈압상태, 혈관이 영구적으로 협소해지는 증상 등이 올 수 있다.
수면리듬이 깨지고
수면중 산소결핍에 따른 즉각적인 효과는 자연스런 수면리듬의 방해다.
"정상적인 수면의 경우 잠의 두 형태(렘수면과 비렘수면)가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몸과 뇌의 기능을 변화시킨다. 처음에는 비렘수면(non-REM, 눈동자의 움직임이 없는 잠)을 하다가 REM수면(rapid eye movement)으로 이어지는데 이 REM수면단계에서 꿈을 꾸게 된다. 그러나 수면무호흡증을 겪는 사람은 비렘에서 렘으로 자연스럽게 이행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도 개운치 못하며 온종일 졸음에 시달리게 된다"고 서울중앙병원 김헌수박사(정신과)는 말한다.
대부분의 코고는 사람들은 코를 곤다는 문제가 일시적이며 생리적으로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코를 고는 것이 건강함을 뜻한다는 잘못된 속설을 믿으려 한다. 코를 고는 사람 자신은 자기가 만들어 내는 디젤버스 엔진소리와 맞먹는 70~80dB의 소리를(심한 경우)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피해는 배우자나 한방 친구 또는 가족들이 받게 된다.
큰 소리로 끊임없이 코를 고는 사람은 보통 낮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졸림을 경험하게 된다. 회의나 운전을 하는 도중 또는 기계를 만지거나 TV를 볼 때에도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이런 사람은 수면무호흡증으로 고생하고 있을 소지가 크다.
"코고는 것과 관련이 있는 생리적인 장애는 상당히 많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혈압상승, 수면무호흡증 부정맥의 출현, 허혈성 심질환 뇌경색 등 순환기계통의 질환발병, 폐질환의 악화를 비롯해 기억력장애 인포텐스 등 신경계통 질환이 정상인보다 훨씬 빈번하다"고 박재훈박사는 지적한다. 또 최근 일본과 국내에서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40대 돌연사도 코골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수면무호흡증이 원인이 돼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
수면중 호흡을 멈추거나 방해받는 시간이 10초이상 지속되고(최장 2분까지)이런 경우가 한시간에 10번 이상 일어나면 그것은 분명히 비정상적인 상태다. 또 잠자다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거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두통이 있는 경우에도 수면무호흡증을 의심할 수 있다. 베개가 젖어있거나 기력이 없을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증상들은 대개 수면무호흡증에 따른 수면패턴의 혼란으로 일어난다. 코고는 사람의 30~40%가 수면무호흡증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런 사람중 일부(20~30% 정도)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물론 수술받기 전에 여러가지 검사를 먼저 실시해야 한다. 수면측정기를 이용해 수술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수술이 특별히 위험하지는 않지만 입천장을 너무 잘라내면 음식물이 코로 역류하거나 소리가 울려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UPPP라고 하는 수술은 입천장을 약간 잘라줘 공기가 잘 통하도록 하는, 코고는 사람에게는 귀가 솔깃한 수술이다. 이 수술을 받은 사람은 편도선수술을 받은 사람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수술은 전신마취 후에 실시되며 보통 1,2시간 정도 계속된다. 환자는 대개 1주일동안 목이 따끔거리며 아파오는 것을 참아내야 하는데 수술 2~4일 후에는 퇴원할 수 있다. 수술비용은 약 1백30만원이 들고, 수술환자의 70% 정도가 수술결과에 만족했다는 국내의 최근 조사결과도 나와있다.
동맥을 흐르는 피의 산소포화도가 80%이하이고, 코고는 것 외에는 건강상의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쉬 피로를 느끼며, 코고는 도중 호흡정지가 심하게 나타나고, 턱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좁은 경우에만 UPPP를 실시하게 되는데 이같은 수술요법은 코골기대책으로는 마지막 카드다.
코골기 방지약의 효과는 제한적
비만이 코를 골게 하는 원인이라면 이 사람은 식습관과 운동습관을 바꿔 체중을 정상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약물이 원인이면 약물복용을 끊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프로게스테론이나 수면조절제인 프로트립틸린 등의 약물이 코골기를 억제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또 코골기 억제약은 반드시 의사의 처방을 받은 뒤에 복용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현재 생리식염수와 글리세린이 포함된 약물이 개발돼 코골기억제약으로 시판되고 있다. 콧구멍 속이 건조해져 점막이 예민해지는 것을 막아주는 이 코골기방지약은 단기간 코골기를 억제할 뿐 근본적인 원인치료는 되지 못한다.
외국에서는 수면중에 산소를 따로 공급해 기계적으로 호흡을 도와주는 장치까지 선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코골기방지기구만도 자그마치 3백가지나 특허출원돼 있을 정도.
이제 코골기증세를 단순한 생리현상이 아닌 심각한 질병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당사자에게 수면부족을 초래해 낮시간의 사회활동에 큰 지장을 주고(밀려오는 졸음때문에) 우울증과 성격장애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작업 능률 집중력 지능까지 저하하는 코골음증의 심각한 폐해를 바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혼이나 자살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코골기증은 실제로 여러 면에서 당사자를 괴롭히고 있다.
"코골음증 환자의 30%는 야뇨증과 아침 기상시의 두통을 경험하고, 78%는 지능과 집중력이 떨어지며, 48%는 발기불능, 80%는 비만증, 52%는 전신성 고혈압 증세를 보인다"고 경희대 의대 안회영교수(이비인후과)는 구체적으로 통계수치를 제시했다.
더 심각한 것은 방에 코를 고는 것이 40대 돌연사의 원인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40대의 사망률이 세계최고를 기록하고 있으므로 이 점은 앞으로 충분히 연구돼야 할 문제다.
그런가 하면 수면무호흡증은 영아의 돌연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영아들은 호흡조절중추신경계가 미숙한 상태이므로 수면무호흡증이 자칫 돌연사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미숙아 8명중 1명꼴로 수면무호흡증을 보인다'고 연세대 의대 김성규교수는 그 심각성을 지적한다.